내 앞에서 총 한 방이 발사되고 그 연기 속에서 비둘기가 날아가는데도 프록코트 차림으로 멀쩡히 서 있는 마술사처럼, 젊고 투박하며 키가 작고 다부진 체형에 근시이며 코가 달팽이 껍데기 모양으로 붉은, 검은 턱수염 남자가 인사에 답했다. 나는 죽을 듯이 슬펐다. 왜냐하면 지금 재가 되어 버린것은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은 처량한 늙은이만이 아니라, 그의 쇠진한 성스러운 몸 안에 내가 머물게 할 수 있었던 거대한 작품의 아름다움이었기 때문이다. - P215
아마도 이름이란 제멋대로 충동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데생 화가와 같아서 현실과 하나도 닮지 않은 사람들과 고장에 대한 스케치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까닭에, 만약 우리가 상상의 세계 대신 진짜 눈에 보이는 세계를 마주하면 종종 놀라게 되는지도 모른다.(하기야 눈에 보이는 세계도진짜 세계가 아니며 우리 감각에도 상상력에 비해 더 비슷하게 그리는 재능은 없기에 결국 우리가 현실에 대해 얻을 수 있는 대략적인 그림은, 적어도 눈에 보이는 세계가 상상의 세계와 다르듯이, 이눈에 보이는 세계와 다르다.) - P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