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듣건대 법이 바르면 백성들은 충성스럽고, 형벌이 합당하면 백성들이 순종한다고 하오. 게다가 백성을 다스려 선으로 인도해야 하는 사람이 관리이거늘, 인도하지도 못하고 또 바르지 않은 법으로 죄를 다스린다면, 도리어 백성들에게 해가 되고 난폭한 짓을하는 것이오. 어떻게 하면 이를 막을 수 있는가? 또한 짐은 연좌제의 이점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깊이 생각해 보시오." - P417
"짐이 듣건대 옛날에 제후가 세운 나라 천여 개는 각각 자신의 봉지를 지키며 때맞춰 조공을 바쳤으나 백성들은 고생스러워하지 않았고 위아래가 기뻐했으며 덕을 잃은 적이 없었다고 하오. 그런데지금은 열후들이 대부분 장안에 거주해 식읍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말단 관리들이 물자를 수송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힘들며, 열후들 또한 봉지의 백성을 교화하고 훈계할 길이 없소. 열후는 봉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장안에서 관리로 있거나 소환돼 머무르는 사람은 대신 태자를 파견하시오!" - P421
"오늘날의 법은 [남을] 비방하고 민심을 흔드는요사스러운 말을 하는 데 대한 죄명이 있으니, 이 때문에 많은 신하들이 과감하게 남김없이 생각을 말하지 못하게 해서 황제가 자신의과실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래서야 장차 어떻게 먼 곳의 현명하고 선량한 이들을 오게 할 수 있겠는가? 이 법령을 없애도록 하라!" - P423
"법이 순수하지 못해 어리석은 백성들이 죄로 빠져드는구나. 『시경』에말하기를 "다정하고 자상한 군자여, 백성의 부모로다."라고 했다. 지금사람들에게 잘못이 있으면 교화를 베풀지도 않고 형벌을 먼저 가하니, 간혹 잘못을 고쳐 선을 실천하려 해도 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짐은 이 점을 참으로 가련하게 생각하노라. 무릇 형벌이란 사지를 잘라 버리고 피부와 근육을 도려내 죽을 때까지 고통이 그치지 않으니 얼마나 대단히아프고 괴로우면서도 부덕한 것인가. 어찌 이것이 백성의 부모 된 자의뜻에 걸맞은 것이겠는가. 육형을 없애도록 하라!" - P428
천하에 가뭄이 들고 명충의 피해가 있었다. 황제는 은혜를 베풀어 제후들에게 조공을 바치지 말고 산과 못의 이용 규제를 풀고[황실의] 각종 복식과 거마, 개와 말 같은 애완물을 줄이고 황제를모시는 관리의 숫자를 줄였으며, 창고를 열어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고 백성들이 작위를 팔 수 있게 했다. - P433
"황금 일백 근이면 중류층 열 집의 재산이다. 나는 선제들의 궁실을 받들면서 항상 누가 될까만 걱정하는데, 무엇 때문에 새로 노대를 짓겠는가!" 황제는 항상 수수한 옷을 입었다. 또한 총애하던 신 부인愼夫人에 - P433
게 옷을 땅에 끌리지 않게 하고 휘장을 수놓지 못하게 해 마음이 돈후하고 소박한 것을 나타냄으로써 천하의 모범이 되게 했다. 또한패릉陵문제의 능묘을 지을 때, 모두 와기를 사용하게 하고 금, 은, 구리, 주석으로 장식하지 못하게 하고 분묘를 높이 올리지 못하게 했는데, 이는 비용을 줄이고 백성을 번잡하게 하지 않으려 함이다. - P434
천하의 관리와 백성들은 이 조령을 받고 나서 사흘만 상례를 치르고 모두 상복을 벗으라.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 제사와 음주와 고기 먹는 일을 금지하지 말라! 장사 지내는일에 참가하거나 복을 하는 자들도 전부 맨발을 드러내지 말라! 질대帶상중에 허리에 매는 띠는 세 치를 넘지 말고 수레와 무기를 늘어놓지 말며 백성들 가운데서 남녀를 뽑아 궁궐에서 곡하게 하지도 말라 궁 안에 - P435
상을 치르는 자들도 모두 아침저녁 각 열다섯 번씩만 곡소리를 내고예가 끝나면 그만두라. 아침저녁으로 곡할 때가 아니면 제멋대로 곡하지 말라. 안장이 끝나면 대홍아홉 달 동안 입는 복은 보름, 소홍少紅다섯 달 동안 입는 복은 열나흘, 섬복服가는 베로 만든 상복은 이레만 입고 벗으라! 이 명령 가운데 있지 않는 다른 것들은 모두 이 명령에 의거해 처리하라! 천하에 널리 포고해 백성들에게 짐의 뜻을 분명히 알게 하라! 그리고 패릉陵의 산천은 원래 모습을 따라야지 고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부인 이하에서 소사少使황제의 후궁은 부인 밑에 미인美人, 양인良人, 팔자자 장사,소사가 있음까지는 그 집으로 돌려보내라. - P436
효경황제孝景皇帝는 효문황제 원년에 태자로 세워졌고 기원전 157년에 제위를 계승하여기원전 141년에 세상을 떠난 인물로 사후에 그의 시호를 효경이라고 한 것이다. 『사기 본기』중에서 가장 짧은 분량인 이 편은 상당히 이채롭다. 이 편은 반고가 지적한 대로 『사기』전체 백삼십 편 중에서 목록만 있고 내용은 없는 열 편 중 하나이다. 또한 『한서』 「경제기景帝紀」에 의거해 재구성했다는 설도 있어 이 편에 대한 위작 시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효경 본기」가 다른 편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밋밋한 문장으로 쓰였다는 점도 위작 시비의 쟁점이다. 사마천은 단순히 사실의 기록만을 나열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곳곳에 배어 있게 한 후 편 마지막에 자신의 논평을 적는 사가인데, 유독 이 편에서만사마천 특유의 걱정이나 품평이 사라지고 그저 당시 경제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역사적 상황을 건조하게 써 내려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를 역설적으로 ‘본기‘ 의 서술 방식에가장 부합된다는 측면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대담성을 보였던 사의 전적에 비추어 보면 이 역시 석연찮다. - P441
무제는 정치적, 영토적으로 중국을 하나로 통일한 사람으로, 다른 어떤 중국의 제왕보다도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 제후국들이 천자의 관할 아래 있는 것을 이상적 세계로 생각했다. 물론 이러한 이상은 이미 주나라 때의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온천하는 왕의 신하가 아닌 자가 없다."라는 관념에서 나왔다. 사마천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한무제는 자신에게 궁형이라는 치욕을 안긴 인물이지만 사마천은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냉철한 역사적 관점으로 한 무제를 서술했다. 사실 이러한 점 때문에, 이 편에서 드러난 사마천의 필법을 차치하고서 도사가들은 이 편에 대해 많은 의혹과 모순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아직 죽지도 않은 사람에게 시호 ‘효‘ 를 사용한다든지, 문장이 처음 육십여 자를제외하면 「봉선서」와 완전히 일치한다든지 하는 점 등에서도 의심을 품을 수 있다. 사마천이 무제 폄하 작업의 일환으로 「혹리 열전酷吏列傳」에서 두개 더 촉각가 가장 많았다고 - P453
말하고 있으며, 또 무수히 많은 공적을 이룬 황제임에도 그저 무제 자신의 개인 영달만을위해 노력하는 필부만도 못한 존재로 그리고 있는 점 등에서도 그렇다. - P454
한나라 왕조가 창시한 봉선은 다섯 해년에 한 번씩 제사를 거행했다. 박유기의 건의로 세운 태일, 삼일, 명양, 마행馬行, 적성赤星 등 다섯 신사는 제사를 담당하는 관리가 해마다 때맞춰 제사를 잘 지냈다. 이상 여섯 군데 제사는 모두 태축이 주관했다. - P487
방사들은 신선에게 제사 지내며바다로 들어가서 봉래를 찾아보았지만 결국 효험이 없었다. 또한 공손경은 신선을 기다리며 거인 발자국을 신선이라고 해명했지만 아무 효험도 없었다. 천자는 나날이 방사들의 기괴하고 빙빙 돌리는말에 싫증과 권태를 느꼈으나, 끝내 얽매고 속박되어 끊지 못했으니, 이는 천자가 진심으로 신선을 만나길 기대해서였다. - P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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