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으로 우리는 지구가 회전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실제로는 깨닫지 못하며, 우리가 걷는 땅도 움직이지 않는 듯 느끼며 그래서 편안히 살아간다. 삶의 ‘시간‘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려고 소설가는 시곗바늘의 움직임을 미칠 듯이 가속화하여 독자로 하여금 이 초 동안 십 년이나 이십 년, 삼십 년을 뛰어넘게 한다. - P104

아버지는 "이제는 어린애가 아니잖소. 지금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알고, 취향도 거의 변하지 않을 거요…………." 라는 말씀으로 나 자신이 느닷없이 ‘시간‘ 속에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고, 내가 아직은 정신 나간 양로원 입소자는 아니라고 해도, 작가가 책 마지막에 유달리 잔인하다고할 수 있는 무관심한 어조로 "그는 점점 더 시골을 떠나려고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곳에 정착했다……."라고 말하는 그런 소설의 주인공이 된 듯한 슬픔을 안겨 주었다. - P105

습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 친숙한 날씨였다. 나는 갑자기 새해 첫날이 다른 날과 다르지 않으며, 아직 손대지 않은행운과 더불어 질베르트와의 교제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창세기‘ 시절처럼 과거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때때로 그녀가 주었던 환멸도 내가 그 환멸에서 미래를 위해 끄집어낼수 있는 교훈 탓에 소멸되었다는 듯, 예전의 것이라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 단지 질베르트가 날 사랑해주기를 바라는내 욕망만이 남아 있는 그런 새로운 세계의 첫날이 아니라는느낌과 예감을 받았다. 내 마음이 내 마음을 채워 주지 못하는 주변 세계의 쇄신을 열망한다면, 그건 바로 내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질베르트의 마음도 나보다 더 변할 이유가 없다는 걸 말해 준다고 그때 나는 중얼거렸다. 이 새로운 우정도 옛 우정과 같다고 느꼈다. 마치 새로운 세월이 하나의 고랑에 의해 다른 세월에서 분리되지 못하듯, 우리 욕망 - P113

이 그 세월을 붙잡거나 변경할 수 없어 몰래 다른 이름으로 덮은 데 불과하다. 그러니 내가 질베르트에게 이 새로운 세월을바쳐 본들, 또 자연의 눈먼 법칙에 종교를 포개듯이 새해 첫날에 품었던 특별한 관념을 이 새해 첫날에 새겨 보려고 노력한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새해 첫날이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그렇게 불린다는 것도 모른 채로, 내게는 전혀 새롭지 않은방식으로 마침내 황혼 속으로 사라지는 걸 느꼈다. 광고 기둥주위에 부는 따뜻한 바람 속에서 나는 영원하면서도 평범한물질, 친숙한 습기, 오랜 나날들의 무심한 흐름이 다시 나타나는 걸 느꼈다. - P114

우리의 욕망은서로 부딪치고, 이런 삶의 혼동 속에서는 행복이 그 행복을 요구한 욕망 위에 정확히 놓이는 일이 극히 드물다. - P115

사랑하지 않을 때라야 우리는 그 사람의 움직임을 고정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움직인다. 따라서 우리에겐 언제나 실패한 사진만이 있다. l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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