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속 2.8독립선언, 그 역사적 의의 - 젊은이들의 만남과 꿈
오노 야스테 외 지음, 재일한인역사자료관 엮음, 배영미 외 옮김, 이성시 감수 / 삼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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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독립선언은 도쿄에서 일어난 3.1 운동의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만 생각해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주는 의미와 중요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3.1 운동에 대해 축적된 연구량은 방대하다. 반면 2.8 독립 선언에 대해서는 3.1독립운동과의 관련성 측면으로만 볼 뿐 2.8 독립선언 자체에 대한 연구나 2.8 독립선언과 관련한 동아시아 연구는 더군다나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나조차도 2.8 독립선언은 3.1 운동의 전사적 사건으로만 인식했던 것 같아 부끄럽다.

2.8 독립선언은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 유학생이 '조선청년독립단'이란 이름으로 도쿄 재일조선YMCA 회관에서 발표한 독립선언이다. 이광수가 한국어, 일본어, 영어 세 언어로 기초 선언서를 작성하였고 2월 8일 오전 각국의 주일대사관, 일본의 제국의회, 언론사로 송부되었다. 1920년 상하이 잡지 《신한청년》 창간호(1920년 3월)에 중국어판도 추가로 게재되었다(이광수가 편집인).
선언서의 내용은 '한국병합'은 조선인의 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가 조선 민족의 생존권을 빼앗고 있다. 국제연맹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군국주의적 침략'을 불식시키려 하고 있다. '민족자결주의를 우리 민족에게도 적용할 것을 만국강화회의에 청구'한다, 등이다. (P.17)
2.8 독립선언은 파리강화회의에서 조선의 독립문제를 논해달라는 요구를 담은 선언이었다.

조선인 유학생의 계몽 활동은 실력양성론에 근거를 두었다. 먼저 실력을 쌓아야 독립을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직접적인 독립을 목표로 삼지 않고 합법적 활동을 근거로 삼은 것은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한 단체를 조직하는 일이 치안경찰법으로 인해 표면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조선인 유학생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인 유학생을 만나 비합법 독립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1차 대전에 승전국이 된 일본은 1915년 1월 중국의 위안스카이 정권에 21항의 요구를 내건다. 21개 조 요구로 인해 일본은 중국을 단독 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1915년 2월 11일 중국인 유학생은 도쿄에서 중국인 유학생 야오졘난과 조선인 유학생 하상연이 중화유일기독교청년회단에서 모임을 갖고 신아동맹당이라는 비밀결사를 만든다. 신아동맹당은 일본 제국주의 타도와 조선 중국 타이완 해방을 위한 조선 중국 타이완 동지들간의 상호협력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단장은 메이지 대학에 다니던 중국인 유학생 황제민이 맡았다. 구성원들은 모두 조선 중국 타이완 유학생이었는데 중국인 유학생이 중심이었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조선인 유학생들과 타이완 유학생 간의 연계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당원을 모집하면서 박은식의 한국통사를 배포하는 활동을 했다. 신아동맹단은 1917년 관헌의 탄압을 우려하여 자주적으로 해산했다. 이들은 비합법적 운동을 벌이고 동아시아 유학생 네트워크 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신아동맹단 해산 후 1918년 상하이에 건너간 장덕수가 여운형, 조동호 등과 함께 11월 신한청년당을 만든다. 이들은 알려져 있듯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특사로 파견하였다. 파리강화회의에는 혁명파 중국인들도 참여하였다. 이 무렵 조선인 유학생들은 2.8 독립선언을 준비했다. 이들은 조선이 파리강화회의에서 논의될 민족자결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편적 인권적으로 식민지 민족들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민족자결을 요구했다.

1장에서 2.8 독립선언에 대한 재평가를 담은 outline을 잡았다면 2장에서는 2.8 독립선언 이후의 조선인 유학생들이 일본 국내 정책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대응했는지 보여준다. 3장에서는 2.8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이들과 교회 세력과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4장은 타이완인 유학생과 조선인이 어떻게 연대했는지 알 수 있다. 5장은 5.4 운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들여다본다. 구체적으로는 반제국주의적인 흐름에서 평가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 자체의 내셔널리즘 관점에서 평가할지다. 이보다는 이 이분법을 넘어서서 결국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해야할 수도 있겠다.

이처럼 1919년 2.8 독립선언 이전에 이미 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 유학생 간의 교류가 활발했다.
2.8 독립선언서가 재일본YMCA회관에서 제창, 발표되었다고 해서, 또 선언서의 구성원 대부분이 기독교도인이라고 해서 당연히 교세 세력과 기독교도인들이 중심이 됐을 거라는 것이 좁은 해석일 수 있다고 느꼈다. 독립선언서의 작성자인 이광수만 해도 교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재일본YMCA회관은 기독교도를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유학생들의 교류공간으로 더 역할하는 측면이 컸다.
2.8 독립선언서는 조선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로 출판되었다. 3.1 독립선언서와 비교되는 지점이었다. 이광수가 작성한 2.8 독립선언서 영어판은 현재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이 어딘가에 묻혀 있거나 발견된다면 그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2019년 2.8 독립선언 및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도쿄에 있는 재일한인역사관에서 열린 심포지엄을 바탕으로 기획된 것이다. 그래서 말미에 이들의 토론의 내용과 참고자료로 2.8 독립선언서의 다국어판(조선어판, 일본어판, 중국어판, 영어판)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의 사건을 다각도로 보려는 노력은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된다. 2.8 독립선언을 단층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면 이 책을 통해 다층적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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