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력과 상상력의 결핍 탓에 쇄신의 원동력을 자신에게서 끌어낼 수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 올 시간이나 초인종을 울릴 우편배달부가 설령 나쁜 소식일지언정 뭔가 새로운 것을, 어떤 감동이나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면 하고 바라며, 또는 한가한 하프 소리처럼행복이 침묵하게 한 감수성이 설령 난폭한 손에 그 줄이 끊어질지언정, 다시 한 번 울려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법이다. 또는욕망이나 고통에 방해받지 않고 전념할 권리를 아주 어렵게획득한 의지는, 비록 아주 잔혹한 사건이라고 해도 그런 급박한 사건들의 손아귀에 고삐를 맡기고 싶어 한다. - P206
숲은 이미 어둡고, 하늘은 아직 푸르도다. "젊은이, 자네에게는 하늘이 항상 푸르기를 바라네. 그러면지금 내게 다가오는 이 시간처럼, 숲은 이미 어둡고 밤이 빨리 저무는 시간이 와도, 내가 지금 하늘을 쳐다보면서 그러듯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을걸세." - P214
내가 황홀감에 사로잡힐 때는 특히 아스파라거스를 마주할 때였다. 아스파라거스는 짙은 군청색과 분홍빛이 감돌아, 꼭지 부분이 벼이삭처럼 보랏빛과 하늘빛으로 어우러져 아래로 내려갈수록 ㅡ밭의 흙이 아직 묻어 있는 땅 색이 아닌 무지갯빛으로 아롱거리며 그 빛깔이 조금씩 연해져 간다. 이러한 천상의 빛깔은어떤 감미로운 존재들이 즐겨 채소로 변신해서는, 먹을 수 있는 단단한 살로 변장해, 해 뜰 무렵 여명의 색깔이나 짧은 무지갯빛 출현, 푸른빛 저녁이 사라져 가는 과정에서 그 귀중한정수를 드러내는 듯 보였다. 저녁 식사 때 아스파라거스를 먹고 자는 날이면 나는 밤새 그 정수를 느꼈는데, 그것은 마치셰익스피어 요정극에서처럼 시적이면서도 외설적인 소극을연출하여 내 방의 요강을 향수병으로 바꾸어 놓았다. - P215
파브르가 관찰한 막시류 곤충인 땅벌은 죽은 후에도 유충이 먹을 신선한 먹이를마련하려고, 해부학의 힘을 빌려 자신의 잔인성을 키워 바구미나 매미를 포획하고는, 다른 생명 기능은 그대로 둔 채 다리 운동을 주관하는 신경중추를 놀라운 지식과 솜씨로 찔러, 그 마비된 곤충 주위에 알을 갖다 놓고는 알이 부화해서 유충이 되면 그 유충에게 온순하고도 무해하고, 도망치거나 저항할 수없는, 그렇지만 조금도 썩지 않은 먹이를 제공하게끔 한다고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프랑수아즈는 어떤 하인이라도 우리 집에 오래 붙어 있지 못하도록 그 끈덕진 의지로 매우 교묘하고도 가혹한 술책을 썼는데, 그해 여름 우리가 거의 매일같이 아스파라거스를 먹어야만 했던 것도, 아스파라거스 껍질을 도맡아 벗기던 부엌 하녀가 냄새 때문에 심한 천식 발작을 일으켜서 마침내 우리 집을 떠날 수밖에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러 해가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 P220
"우리가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나라로부터 나그네가 보내 주는 꽃다발처럼, 아주 오래전에 내가 지나온 봄날 꽃향기를 그대 젊음에서 맡게 해 주게나. 앵초, 민들레, 금잔화와 함께 오게나. 발자크의 식물군에 나오는, 순수한사랑의 꽃다발을 만든 꿩의비름*과 함께 와 주게나. 부활절 아침의꽃 데이지**와 함께 오게나. 그리고 부활절의 우박 섞인 마지막눈송이가 아직 녹지 않았을 때, 그대의 고모할머니 댁 오솔길에향기를 풍기기 시작한 정원의 불두화***와 함께 와 주게나. 솔로제비몬 왕에게 어울리는 백합의 영광스러운 비단옷을 입고, "****제비 - P223
꽃의 다채로운 빛깔과 함께 와 주게나. 특히 마지막 서리로 아직은 싸늘하지만, 오늘 아침부터 문에서 기다리는 두 마리 나비를 위해서 예루살렘의 첫 장미꽃을 피우려는 산들바람과함께 와 주게나." - P224
"아아! 그렇게 나를 아프게 하지 말게. 난 정말로 게르망트네 사람들을 모른다네. 내 평생의 상처를 건드리지 말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말썽꾸러기 르그랑댕, 이 사기꾼 르그랑댕에겐 또 다른 르그랑댕처럼 아름다운 언변은 없었지만, 대신 아주 순발력 있는, 소위 ‘반사작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말솜씨가 있었으므로, 달변가 르그랑댕이 그에게 침묵을 부과하면 또 다른 르그랑댕이 이미 말을 해 - P228
버린 뒤여서, 우리 친구인 르그랑댕 씨는 그의 ‘알테르 에고’*가 폭로한 나쁜 인상을 유감으로 여기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저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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