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庚戌】四年張儀說楚王曰夫爲從者 無以異於驅群羊而攻猛虎不格明矣今王不事秦秦劫韓驅梁而攻楚則楚危矣楚王許之張儀遂之韓說韓王曰夫戰孟賁烏獲之士以攻不服之弱國無異垂千勻之重於鳥卵之上必無幸矣大王不事秦秦下甲據宜陽塞成皐則王之國分矣爲大王計莫如事秦而攻楚韓王許之張儀歸報秦王復使東說齊王曰從人說大王者必曰齊蔽於三晉地廣兵彊雖有百秦將無奈齊何今秦楚嫁女娶婦爲昆弟之國韓獻宜陽梁效河外趙王入朝 割河間以事秦 大王不事秦秦驅韓梁趙攻之雖欲事秦不可得也齊王許之
張儀去西說趙王曰大王收率天下以擯秦秦兵不敢出函谷關十五年大王之威行於山東今楚與秦爲昆弟之國而韓梁稱東藩之臣齊獻魚鹽之地此斷趙之右肩也夫斷右肩而與之鬪失其黨而孤居求欲無危 得乎爲大王計莫如與秦王面約常爲兄弟之國趙王許之張儀乃北說燕王曰大王不事秦秦下甲雲中九原驅趙而攻燕則易水長城非大王之有也燕王請獻常山之尾五城以和 張儀歸報未至咸陽秦惠王薨子武王立武王自爲太子時不說(悅)張儀及卽位群臣多毁短之諸侯聞儀與秦王有隙皆畔(叛)衡復合從

【辛亥】五年張儀相魏一歲卒儀與蘇秦皆以縱橫之術遊諸侯致位富貴天下爭慕效之又有魏人公孫衍者號曰犀首亦以談說顯名其餘蘇代蘇厲周最樓緩之徒紛紜徧於天下務以辯詐相高不可勝紀 而儀秦衍最著

장의의 연횡 정책을 위한 설득은 4국에 이어서 조나라, 연나라까지 이어진다. 이들 제후국은 진에 토지 등 물자를 바치면서 화친을 청하게 된다.
합종을 마무리하고 장의가 진으로 이제 돌아가려는 찰나 아직 함양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진나라 왕이 죽는다는 소식을 듣는다. 태자가 무왕으로 즉위한 후(본래 장의를 좋아하지 않았음) 장의에게 대신들이 때맞춰 험담을 한다. 6국의 제후들은 둘 사이에 틈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는 합종으로 정책을 돌아가게 된다(장의가 힘써온 연횡 정책은 이렇게 흐지부지된다).

본문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이 때문에 장의는 진나라에서 설 길이 없어진다. 때문에 장의는 무왕에게 진나라를 위해서 힘써보겠다는 의견을 표시하면서 위나라로 간다(제나라 군대를 위나라로 끌어들여서 나라 간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면서 제나라 군대를 출동시킬 것이다. -> 제나라는 자신을 싫어하니 내가 간 곳으로 제나라에서 위나라로 군대를 반드시 출동시킬 것이다.). 장의는 위나라 제후를 설득하면서 본인의 계획대로 제나라에 군사를 물리치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장의는 자신의 가신을 초나라로 몰래 보내면서 초나라에서 정식으로 사신을 보낸 것처럼 위장한다. 사신 노릇을 한 가신은 초나라에 가서 제나라는 너무 장의를 잘 도와주고 있다라고 말을 건넨다(장의의 계획대로 진나라에서는 장의의 실력을 믿게 되었다고). 이 때문에 제나라에서는 군대를 물리게 된다.

위기에서 벗어난 장의였으나 위나라에서 재상이 된 지 1년 만에 죽고 만다.

이 시기 설득의 대가는 소진, 장의, 공손연(서수) 세 명이 자타공인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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