愼靚王名定顯王子在位七年

【癸卯】三年楚趙魏韓燕同伐秦攻函谷關秦人出兵逆之五國之師皆敗走

【甲辰】四年齊大夫與蘇秦爭寵刺秦殺之
張儀說魏襄王曰梁地四平無名山大川之限卒戍楚韓齊趙之境守亭障者不下十萬梁之地勢固戰場也夫諸侯之約從盟洹水之上結爲兄弟以相堅也今親兄弟同父母尙有爭錢財相殺傷而欲恃反覆蘇秦之餘謀 其不可成亦明矣 魏王乃倍從約而因儀以請成于秦張儀歸復相秦

【乙巳】五年蘇秦弟代厲 亦以遊說顯於諸侯燕相子之與蘇代婚欲得燕權蘇代使於齊而還燕王噲問曰 齊王其霸乎對曰不能 王曰何故對曰不信其臣於是燕王屬國於子之子之南面行王事而噲老不聽政顧爲臣國事皆決於子之

【丙午】六年王崩子赧王延立

赧王名延愼靚王子在位五十九年

【丁未】元年燕子之爲王三年國內大亂齊王伐燕取子之醢之遂殺燕王噲

소진은 연나라에서 있다가 죄를 지어 핑계를 대고 제나라 객경으로 가서 지냈는데 어느 날 칼에 찔린다(허나 바로 죽지는 않았다고)
소진은 제나라 왕을 조종하여 연에 대한 복수를 하고 죽는다. 당연히 제나라는 이후 연나라에 원한을 품게 된다.

이 때 연나라는 혼란스러웠다.
연왕 쾌(噲)보다 재상인 자지(子之)에게 힘이 실려 있던 상태였던 것이다.
녹모수(鹿毛壽)라는 신하가 연왕에게 모든 것을 자지가 움켜쥐고 있다며 이를 처리해야 한다고 부추긴다.
요임금이 아들이 아닌 현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할 때 당시 은둔자로 지낸 명사인 허유를 찾아간다. 허유는 그 말을 듣고 물가에서 귀를 씻었다고 한다. 이 모습을 지켜본 소부가 자초지종을 들었다고. 실상 허유에게 선위를 하지도 않았는데 요임금의 인기는 올라갔다는 이야기였다.
녹모수는 사실 재상 자지 사람이었는데 연왕을 부추긴 것이다.
귀 얇은 연왕은 자지에게 넌지시 말했다가 ‘국정을 잘 수행해보겠소‘ 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재상이 결국 국정을 횡행하면서 연나라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소진이 이제 죽었으니 합종책은 소용이 없다 생각한 위왕이 종약을 배반하고 장의에 의해 진(秦)나라와 성成(화평을 맺다)했다. 장의는 이 때 다시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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