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이주와 소속감
- 다섯 가지 이주 체계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유럽과 유럽 식민지들을 이어 준 대서양 이주 체계: 15세기 초 ~ 1950년대 중반
아프리카 노예 대서양 이주 체계: 1440~1870
영국 제국 혹은 여타 유럽 제국들, 미국의 식민지 투자자들의 권력 관계 틀에서 진행된 아시아 자유민 혹은 계약 노동자들의 이주 체계 ->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태평양 횡단 이주 체계
유럽 쪽 러시아 내에서 진행된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주, 카스피해와 남부 시베리아 지역에의 정주, 북아메리카로의 소규모 이주, 서유럽으로부터의 이입 이주로 구성된 러시아 시베리아 이주 체계
북중국에서 진행된 만주로의 이주 체계: 1920~1930
1장 장기 지속의 관점
이주의 결정에 영향을 준 것은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른 투쟁, 인종화와 저항, ‘인간의 조건’에 대한 사고방식의 재정립

국가는 19세기와 그 이전 시대에서는 유용한 분석 단위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사정이 다르다. 19세기 말과 특히 20세기의첫 20년 동안 여권이 도입되고 인종적 특징에 따라 배타적 정책도 쓸 수 있게되어 이주민의 출입국과 관련된 장치를 마련하거나 이주 제도를 수립하는 데서 국가의 역할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 P493
전 세계에 걸친 이주의 관점에서 보면 철도와 항구도시들이 연결되고1870년대에 증기선이 도입된 것이 여행의 속도를 높이고 이주민도 크게 늘어나게 한 요인이었다. 물론 인구 증가의 면에서 보면 이주율이 반드시 높아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운송수단과 통신수단의 발달도 유럽으로부터의 집단적 이출 이주, 아메리카에서 본국으로 돌아가는 귀환 이주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집단 이주‘가 시작되는 것에 영향을 미쳤다. 주로 영국 제국이 부과한 일시적 속박 노동제 또한 인도양과 대농장 지대로 향한 프롤레타리아집단 이주를 급속히 증가시킨 요인이었다. 1800년대 초부터 1860년대까지 유럽의 농노제가 폐지되고 1880년대까지는 아메리카 대륙의 노예제가 폐지된것도 이동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었으나, 이 경우에는 피부색이 제약으로 작용했다. 유럽의 백인들은 유럽 내에서 움직이는 지역적 이주, 대서양 횡단 이주,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이주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으나,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은 아메리카 대륙 내에서만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곳에서 인구가 증가한 것도 사람들이 ‘자유로운 곳, 다시 말해 인구 밀도가낮은 곳과 그보다도 임금노동이 가능한 곳을 찾아 나서게 만들었다. 동아시 - P527
아에서는 동일한 이주의 개연성이 대규모 집단 이주의 결과로도 나타났다. 반면에 아프리카인 이주는 대부분 유럽 식민주의 국가와 투자자 혹은 그 직원들에 의해 제약을 받거나 통제받는 상태로 계속 남아 있었다. - P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