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우리는 어떻게 타락했는가

6장 밀턴의 악령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이었던 죽은 시인‘을 소생시키기 위해 문학적 여성은 ‘밀턴의 악령 너머를 바라보아야 한다. 어떤 인간도 그 시야를 막아서는안 되기 때문‘이라고 선언한다.‘ - P360

문학적 부권 은유에 대한 논의가 암시하듯, 독자든 작가든 문학적 여성들은 모두 유일한 아버지 신을 모든 것의 창조자로 정의하는 가부장적인 원인론에 의해 오랫동안 위협받고 ‘당황’해왔다. 또한 그런 우주적인 작가만이 지상의 모든 작가에게 유일한 합법적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두려워해왔다. 밀 - P361

턴의 기원 신화는 여성 혐오적인 장구한 전통을 요약하고 있으며, 여성 혐오적 관념을 (밀턴의 전형적인 가부장적 시에 대한불안을 직간접적으로 기록했던) 숱한 여성 작가들에게 분명하게 암시했다. 그런 여성 작가들의 목록에는 최소한 마거릿 캐번디시, 앤핀치, 메리 셸리, 샬럿과 에밀리 브론테, 에밀리 디킨슨,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조지 엘리엇, 크리스티나 로세티, H. D., 실비아 플라스, 스타인, 닌, 울프 등이 포함된다. 이들 중 많은 여성이 밀턴의 서사시가 표현하는 제도화되고 정교하게 은유화되곤 했던 여성 혐오와 타협하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신화와 은유를 수정했다. - P362

‘최초의 남성 우월주의자‘인 밀턴이 여성들에게 전하는 명백한 이야기는 물론 여성의 부차성과 타자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어떻게 그 타자성이 가차 없이 여성을 악마적인 분노, 죄, 타락으로 몰고 가는지, 신의 정원(여성에게는 시의 정원이기도한 장소)에서 여성을 배제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 P366

셜리는 최초의 여자는 이브가 아니라 ‘반은인형, 반은 천사’로 언제나 악마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었다고 가정한다. 이브는 티탄이며 특유의 프로메테우스적인인물이었다. - P370

밀턴의 사탄이 (그가 신과 동등한 체하는 것에도 불구하고)천사에서 무시무시한 (매우 교활하지만) 뱀으로 변하는 것처럼, 이브도 점차 천사 같은 존재에서 괴물과 닮은 뱀 같은 존재로 몰락한다. 그녀는 아담의 호령을 슬프게 듣는다. - P374

사탄과 이브가 어떤 의미에서 소외되어 있고 반항적이기에바이런적인 인물이라면, 하나의 계급으로서 여성 작가들도 (셜리뿐만 아니라 셜리의 창조자, ‘주디스 셰익스피어‘ 뿐만 아니라버지니아 울프도) 그러하다. 오빠들(‘신의 아들들‘)에 의해 소유권을 박탈당한 채, 순종하도록 교육받고 침묵을 강요당한 여성 작가는, 현실에서는 아닐지라도 환상 속에서는 바이런적인영웅들처럼, 사탄처럼, 프로메테우스처럼, ‘기쁨 없는 백일몽속에서 홀로 활보했던‘ 경우가 허다했을 것이다. - P385

여성들은 가장 반항적일 경우엔 사탄, 가장 덜한 경우에 반항적인 이브, 그 밖에는 거의 항상 낭만주의 시인들과 동일시된다. 따라서 여성들이 밀턴의 수정본이 초래할 종말론적인 사회변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 P387

밀턴의 사탄은 결정적으로 여성과 매우 흡사할 뿐만 아니라, (오스틴의 매력적인사탄적 반反영웅들을 통해 우리가 보았듯이) 여자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이다.
따라서 여성과의 관계에서 사탄은 일종의 니체적 초인으로서 명령하고 자신의 ‘자연적인‘ (말하자면 남성적인) 우월성에대한 존경을 기대한다. 마치 자신이 신의 그림자 자아이며 천국의 이드인 양, 가는 곳마다 낙원의 정치학을 악마적으로 되풀이해 말한다. - P390

낭만주의자들이 근친상간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밀턴의 ‘죄‘사탄 관계의 묘사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그러나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이 글의 요점이 아니다. 그보다는 여자와낭만주의 시인들이 사탄과 ‘죄‘ 각각과 맺고 있는 자신들의 관계가 사탄과 ‘죄‘의 근친상간적인 관계와 유사하다는 점을 틀림없이 발견했다는 사실이 훨씬 더 핵심적이다. - P391

브론테는 자신의 생각이 찬양받는 남성(바이런, 사탄, ‘지니어스‘)의 생각과 놀랄 정도로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치 아담의 갈비뼈가 이브 몸의원천인 것처럼 남성의 사고가 모든 여성의 사고의 원천이라는가정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말하자면 ‘지니어스‘가 자신을 만들었다고 가정하고 있다. 게다가 브론테의 자율성은 근친상간적인 결합에 의해 부정되는데, 근친상간은 브론테를 자신의 창조자와 연결시키고 그 둘을 동등하게 만든다. - P393

근친상간의 금기를 깨뜨리고자 하는 욕망이 자아충족적(자아 증식적)이 되려는 욕망인 한, 그것은 ‘신들처럼’ 되고자 하는 소망, 동시에 신이 금지한 소망이다. 그것은 마치 맛을 보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선악과에 대한 욕망과 같다. - P394

여성 작가들은 앤 핀치처럼 가사노동으로, ‘독창성 없는 집 관리 같은 따분한 일로‘ 추락할 뿐만 아니라 생식이라는 굴레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맨프리드처럼 고상하게 죽는 만족감조차 주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도리어 불임으로 인한 단조로움으로 점차 여위어가는 여성 작가는 그릇된 창조의 예술가로서 사탄과 이브의 이미지가 결국은 가장 품위 없고 낙담시킬 뿐인 밀턴의 악령의 화신이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 당연했다. - P396

지배자이자 일종의 영감을 받은 가장으로서 시인은 밀턴처럼 신성한 신비의 사제이자 수호자이며, 그릇된 여성적 창조
‘나태와 나약한 절망‘에 항상 대항했다. 게다가 시인은 인류를 싸움터로 집결시키는 씩씩한 트럼펫이고, 칼집조차 삼켜버리는 지독히 남근적인 칼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가장 밀턴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를 모델로 한 ‘움직이지 않은 채 움직이게 하는 영향을 미치는 신과 같은 존재다. 따라서 조지프 비트라이히가 말하듯, 『낙원』의 저자는 ‘낭만주의자들이 가장 찬양했던 모든 것의 정수, […] 진리에 의해서만 움직였던 식자, 신적 사고로부터 신적 행위가 나오도록 한[…]행위자, 신적 사고를 시로 번역하여 말하는 자‘였으며, ‘따라서 밀턴을 안다는 것은 구분할 수 없는 두 질문(시인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의 답변을 아는 것이었다.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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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1-29 11: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제 밀턴 읽을 차례입니다!! 언제 다 읽죠..

거리의화가 2022-11-29 14:25   좋아요 1 | URL
<실낙원> 읽지 않고 도전했는데 중간에 약간 험난하긴 했지만 읽을만했습니다. 이브, 사탄 여성주의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이 나오더군요. 이 책 결국 이 달 안에 읽는 건 못하겠네요~ㅎㅎ 다락방님도 힘내세요!

독서괭 2022-11-29 17: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후 저도 이제 6장 읽을 차례인데 걱정이네요. 실낙원은 커녕 성경도 안 읽었는데.. ㅠㅠ

거리의화가 2022-11-29 17:50   좋아요 2 | URL
저도 성경 잘은 모르고 앞부분 창세기 쪽만 읽어봤습니다...ㅎㅎ 아무래도 성경을 잘 모르기도 하고 빗댄 작품인 실낙원은 이해못할듯하더라구요. 결국 냅다 6장을 읽었죠! 아무래도 이 부분은 후속 주자분들의 감상을 기다려봐야할 것 같습니다^^

mini74 2022-11-29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실낙원 그림으로 된 거 읽고있어요 ㅎㅎㅎ

거리의화가 2022-11-30 10:13   좋아요 1 | URL
저도 그림으로 된 거 살 걸 그랬나봐요~ㅎㅎㅎ 괜히 2권짜리를 샀습니다ㅠㅠ 하~ 아까워서라도 읽어야 할텐데 손이 안가네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