Ⅶ. 과잉역사화

[집합적 무죄와 예드바브네]
예드바브네에서 유대인 이웃들을 살해한 죄로 전후 공산주의 법정에서 각각 15년과 1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라우단스키 형제는 2000년 12월 폴란드 자유주의 일간지에 자신들은 무죄라고 변명. -> 자신들은 유대인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유대인 빨갱이‘라는 고정관념은 폴란드인이 유대인 공산주의자의 희생자였다는 기억을 정당화하는 것
이념과 체제에 따른 기회주의(유연한 실용주의?)(자)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한나 아렌트의 ‘집합적 유죄‘와 ‘집합적 무죄‘ -> 집합적 유죄: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닌데도 자기네 집단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일에 죄가 있다고 가정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범주적 사고방식, 집합적 무죄: 집합적 유죄의 반대에 있으나 무죄를 가정한다는 점에서 같은 논리 - 양자는 서로를 떠받치고 정당화한다
가해자들에게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자신의 죄의식을 숨기고 분노를 정당화하는 중요한 기억의 자산이다.
키엘체 포그롬에 대한 폴란드 민족주의 우파의 부정론(1946.7.4): 유대인에게 납치되어 종교의식의 희생양이 될 뻔했다는 8살 소년의 거짓말로 촉발되어 40명의 유대인과 2명의 폴란드인의 사상자 발생(나치 지배로부터 해방된 폴란드에서 일어난 반유대주의적 공격의 절정 -> 유대인 망명 가속화). 키엘체 학살 이후에도 폴란드에서 유대인이 학살은 이어짐. 문제는 학살의 주체가 평범한 폴란드 민중이었다는 사실.
폴란드의 극우 민족주의는 나치 점령군과 홀로코스트의 협력을 거부함으로써 역사적 정통성을 고수하여 반유대주의가 나치의 협력자가 아니라 폴란드 애국을 위한 것이라는 상징성으로 남아
여성 레지스탕스의 상징성 ‘조피아 코사트-슈추츠카‘: 유대인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가톨릭 폴란드인의 의무임을 제시하면서도 유대인이 폴란드의 적이라는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반유대주의)이라 단언
유대인을 숨겨주다 목숨을 잃은 울마 가족(1944.3.24) -> 울마 가족 기념관 만들어져(2016.3): 폴란드의 집합적 무죄 상징하는 기억의 터
‘민족기억연구소‘ 수정 법령(2018.1.26): 폴란드 민족이 나치에 협력했다거나 홀로코스트의 공범이라는 주장은 처벌 대상.-> 얀 그로스 처벌 대상되(폴란드 이웃이 유대인 이웃을 학살한 역사를 기록)
비시 프랑스의 반유대주의적 조처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구한 모로코 국왕 모하메드 5세 전후 모로코 민족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져. 역설적으로 비시 프랑스 정부가 세운 강제노동수용소에는 모하메드 5세의 이야기 없어.

[B·C급 전범과 조선 화교 포그롬]
포그롬: 대 박해, 러시아 말. 러시아 제국 내 유대인에 대한 비유대인의 폭력을 가리키는 용어
《세계일주기: 붕정십만리》(1949): 작자 안동원. 런던에서 한 영국인이 ˝유, 코리안?˝ 물어보니 ˝빠가야로˝ 하며 때릴 듯 달려들었다. 한국인이라 항변하니 한국인이 더 나쁘다며 응수. 알고 보니 그 영국인은 일본군의 싱가포르 함락 당시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3년을 보냄. 그의 분노는 일본군에 배속된 식민지 조선인 간수들에게 향해 있던 것.
《인도기행:》: 작자 고황경. 아시아의 이웃들에게 악랄한 조선인의 인상이 박힌 데 대한 경험
뉴델리의 범아시아대회(1947): 대동아공영권의 이데올로기적 허구를 확인하고 전후 아시아의 새로운 단결을 도모하고자 개최되었으나 일제의 피해자였던 조선인이 아시아 이웃에게는 가해자임이 드러나는 계기도 되었음
타이-미얀마 철도 부설사업에 동원된 전쟁포로 관련 학대 전범 재판에서 조선인 군무원 수가 전체 120명 중 35명. 그 중 33명이 유죄 판결 받아. 대한민국 탈식민주의 공적 기억에서는 희생자로 남아.
KBS 다큐멘터리 <전범이 된 조선 청년들>: 조선인 포로감시원+연합군 포로 희생자 대립구도 확인돼. -> 보자
‘매개 행위‘: 가해자가 자신의 무고함을 변호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논리 - ex) 아돌프 아이히만: 가해자의 행위 주체성은 어디로 갔는가?
정부가 발간한 <조선인 BC급 전범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는 ˝연합군 포로들을 학대하게 된 것은 일제 침략전에 강제 동원되었기 때문˝으로 주장. 1차 가해자는 일제. 2차 가해자는 연합군 군사재판. 전범 당사자는 사죄의 제스처를 취했으나 정작 정부는 이들을 이중의 피해자로 규정.
양칠성은 식민지 조선인, 일본군 군무원, 친일협력자, 일본군 전범, 인도네시아 민족해방군, 네덜란드군에게 사로잡힌 사형수 포로 생활을 하며 여러 공간을 넘나드는 기억의 경계인.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완바오산 사건(1931.4)‘: 학계 공식 용어 -> 조선 화교 포그롬(저자가 주장하는 용어 - 한반도에서 벌어진 화교에 대한 학살과 약탈 사건 은폐할 우려): 만주 창춘 완바오산(만보산) 부근 황무지 개간과정에서 수로 공사를 둘러싸고 불거진 조선 농민과 중국 농민의 갈등에서 비롯된 사건. 조선일보 만주 지국의 오보로 한반도에서 조선인이 화교를 학살.
2003년 고등학교 국사 검인정 교과서 ‘완바오산 사건‘ 최초 기술하여 공식 기억의 영역으로 들어가.
한국인의 집합적 무죄에 대한 확신은 일본인의 집합적 유죄에 대한 폭력적 단죄론을 낳아

[세습적 희생자의식과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기억 문화는 ‘홀로코스트‘ 전후 세대에게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라는 지위 세습
이스라엘 건국 후 공식 기억은 시온주의적 영웅 vs 허약하고 수동적인 유대인 디아스포라 희생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음 -> 시온주의적 헤게모니에 입각한 역사 담론 강조
미국 유대인 사회도 자신들이 승리한 영웅에 속해야 한다는 것을 문화적으로 공유. 희생된 유대인에 대한 기억을 강제로 없애거나 줄여야 하는 것 공유.(냉전 체제도 영향을 주었음)
체코슬로바키아의 루돌프 슬란스키 재판 이후 미국 유대인은 스탈린과 공산주의 진영의 반유대주의를 강조하기 시작
유대 민족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전쟁 영웅이 지배하는 기억 문화에서 홀로코스트 희생자는 주변화
이스라엘 독립선언서: 유럽 유대인의 학살은 디아스포라의 과거를 청산하고 이스라엘 국가 수립이 시급한 과제임을 일깨워주었다 적시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 홀로코스트의 참상이 공개도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계 여론 들끓어.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의견 높아져. -> 이스라엘 국가의 도덕적 정당성 승인받아

역사의 가해자가 기억의 희생자로 변신할 때는 공통된 현상이 하나있다. 연루된 개개인이 행위의 주체성을 반납하고 역사의 구조 뒤로숨는 것이다. 역사적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선 개인은 상황의 압도적인힘 앞에서 초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억의 영역에서 행위 주체성을 반납한다는 것이 반드시 무기력의 표현만은 아니다. 폭력의 구조와역사적 상황의 압도적인 힘에 대한 일방적 강조는 개개인의 주체적행위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도망가는 편리한 변명의 기제이기도하다.

아렌트의 비판에 따르면, 조상이나 아버지 세대의 죄를 민족의 이름으로 뒤집어쓰는 ‘집합적 유죄‘나 개개인이 저지른 죄를 민족의 이름으로 덮어버리는 ‘집합적 무죄‘는 집합 내의 모든 사람을 유죄나 무죄로 단정함으로써 결국 아무한테도 죄를 물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린다. 유대인 이웃을 학살한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 실존적 책임을 지는 대신, 나치즘과 스탈린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인 폴란드 민족의 일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희생자로 간주하는 라우단스키 형제는 ‘집합적 무죄‘의 사유 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나치와 스탈린주의의 가장 큰 희생자이면서도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걸고 유대인 이웃을 구한 폴란드인은결코 가해자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따라갈 때만 단 하나뿐인 출구를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과 가족을 희생한 ‘의인‘ 울마 가족의 기억이 예드바브네의 유대인 학살자 라우단스키 형제의 기억과 만나는 곳도 바로 이 지점이다. 선량한 희생자 폴란드 민족의 집합적 무죄가 폴란드 사회의 집단적 기억을 구성하는 프레임으로 자리 잡으면, 나치 점령기의 예드바브네 학살뿐만 아니라 전후의 키엘체 학살 부정론도 고개를 내민다. 이들에 따르면, 학살은 폴란드 민족주의의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스탈린의 비밀경찰 또는 폴란드 공산당 공안기관의 음모로 환원되고, 폴란드인 가해자는 음모의 무고한 희생자가 된다.

폴란드의 경험은 민족의 집합적 무죄에 기초한 사회적 기억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기억 정치의 도덕주의는 도덕적이지 못하다. 과잉 역사화된 집합적 무죄의 도덕적 정당성에 안주하기보다 개개인의실존적 책임을 묻는 양심의 목소리가 훨씬 더 소중하다는 모순어법이야말로 바람직한 기억의 정치를 추동하는 문법이다.

조선인 전범의 변론과 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옹호론적 기억은 ‘집합적 무죄‘와 ‘매개 행위(mediation of action)’의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 식민지 조선 출신의 포로감시원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한민족 전체와 더불어 무죄라는 식이다.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행위가 엄연한 전쟁범죄라고 할지라도 행위 자체의 폭력성 이면에 식민지 민중에게 ‘강요‘ 가해의 ‘완장‘을 단순한 범법행위로 처벌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것은 집합적 무죄론의 전형을 보여준다.

한편 ‘매개 행위‘는 가해자가 자신의 무고함을 읍소할 때 자주 사용하는 논리다. 유대인의 뺨 한번 때린 적 없는 자신은 결코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며, 단지나치독일의 관료로서 상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고 무죄를 강변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대표적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책상 위의 가해자‘인 명령권자는 자신은 실제로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는 이유로, 명령 체계 말단의 가해자는 자신은 강요된 명령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로 모두 무죄가 된다. 가해자의 행위 주체성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포로 학대가 상관의 명령에 따른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이학래 씨의 말은 자신이 ‘불가피한‘ 가해자였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별 행위의 잘잘못에 상관없이 유대인이므로 유죄라는 발상의 극단이 홀로코스트였다는 점에서, 국적이나 민족이 무엇이냐에 따라 가해자와 희생자를 나누는 기억의 코드는 위험천만하다. 조선인 포로감시원은 식민지 조선인이기 때문에 피해자였다는 식의 논리가 아니라,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된 같은 가해자인데도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에 대한 원호를 거부해온 일본 정부의 국제적 책임을 어떻게 묻고 기억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아닐까 한다. *********

한국과 중국을 이간질하여 만주 침략을 옹호하고 유리하게 만들려는 일본 제국주의의 이간책이라는 음모론이 ‘조선 화교 포그롬‘에 대한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기억을 지배했다. 음모론에 따르면, 조선 총독부 형사들이 ‘조선인 지게꾼‘들을 매수하여 중국인 상점과 중국인을 습격하게 했고, 이들은 일본경찰의 방조 아래 중국인에 대한 방화와 약탈, 파괴를 자행했다. 심지어는 식민지 시대가 주요 배경인 대하소설 《토지》에서 작가는 "한복으로 변장한 일본인이 군중 속에 섞여 있었다"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폴란드 공안 장교가 군중을 진두지휘한 키엘체 학살은 폴란드 공산당의 음모였다거나, 이 학살에서 군중을 이끌던 인물이 1960년대 텔아비브의 소련 대사관에서 근무한 스탈린의 비밀경찰 간부였다는 폴란드 우익의 스탈린주의 음모론을 연상시킨다.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를 거부하고 동화를 주장하면서 유럽에 남은 유대인에게 닥친 대재앙은 이스라엘 땅에 독립된 국가를 재건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시온주의적 전망이 옳음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였다.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는 대부분 유럽에 남아 있던 동화주의자였던 것이다. 민족은 시민적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동화주의의 패배는 이스라엘에서 시온주의자의 혈통적 민족주의를 강화했다. 또한 팔레스타인 이주를 강조한 시온주의적 민족주의 노선이 옳다는 증거라고 받아들여졌다. 시온주의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옛 땅에 독립된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는 것은유대 민족에게 부과된 태생적 운명이자 유일한 대안이었다. 이런 역사 담론에 홀로코스트가 들어설 여지는 별반 없었을 것이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전제하는 가해자와 희생자의 이분법적 세계관에서는 식민주의, 제노사이드, 홀로코스트 등을 근원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 그것은 식민주의와 홀로코스트를 낳은 세계사의 규칙을비판하고 바꾸기보다, 규칙은 그대로 둔 채 패자의 자리에서 승자의자리로, 희생자의 자리에서 가해자의 자리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욕망을 낳기 쉽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희생자가 된 역사에대한 회한과 비판에서 출발하지만, 자리를 바꾸어 승자나 가해자가 될수 있다면 식민주의와 홀로코스트의 규칙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식이다. ‘세습적 희생자‘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자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역사적 성찰이 21세기 문화적 기억의 서사적 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희생자 민족‘의 집단적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 세습적 희생자라는 지위는 잠재적인 또는 이미 가시화되고

있는 식민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비판을 근원적으로 가로막는다. 홀로코스트가 주는 섬찟한 교훈은 또다시 그런 일이 우리에게 닥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우리도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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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11-17 0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생각하면 일제강점기 때 일본쪽에서 일한 친일파도 있고, 강제 동원으로 전쟁에 나간 사람도 있군요 그런 사람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한국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안 좋았다는 말도 있네요 한국이 늘 피해자는 아니기도 하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11-17 09:43   좋아요 0 | URL
네. 한국도 피해자이기도 하고 가해자이기도 하고 참 복잡한 문제입니다. 들여다볼수록 단순하게 단정지을 수 없는 문제겠구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