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러도 말했듯 최초이자 최고의 문학 심리사 연구가는 해럴드 블룸이었다. 블룸은 프로이트의 구조를 문학 계보학에 적용하면서 작가의 ‘영향에 대한 불안‘, 즉 자신이 자신의 창조자가 아니고 선배들의 작품이 이미 자신을 넘어서서 존재하며 자신의 작품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할 것이라는 불안에서 문학사의 역동성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문학 부권 은유를 논의할 때 지적했듯이, 문인들의 순차적인 역사적 관계라는 블룸의 패러다임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특히 프로이트의 정의에 따른 관계다. - P141
페미니즘 이론가 줄리엣 미첼은 프로이트에 대해 말하면서 ‘심리분석이란 가부장적 사회에 던지는 충고가 아니라 그 사회에 대한 분석‘이라고 말했다. 블룸의 문학사 모델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문학사란 우리 문화의 주요 문예 운동에 깔려 있는 가부장적 시학(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불안)에 건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학을 분석하는 것이다. - P143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말과 사회생활을 배울 때 똑같이 아버지(블룸의 용어로 말하자면 선배)의 자리를 차지하기 원하지만, 남자아이만이 언젠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용받을 것이다. 더 나아가 두 성 모두 어머니를 욕망하도록 태어나는데, 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은 어머니가 욕망하는 것은 아이 모습의 남근이기 때문에 남녀 아이는 모두 어머니를 위해 ‘팔루스‘가 되고자 욕망한다. 여기에서도 남자아이만 자기 자신을 어머니가 욕망하는 것으로 완전히 인식할 수 있다. 그리하여 두 성 모두 여성성이 암시하는 것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여자아이는 ‘아버지의 법에 종속됨으로써 자신이 ‘자연‘과 ‘섹슈얼리티‘, 즉 창조성의 무의식적이고 직관적인 혼돈을 의미한다는 것을 배운다. 따라서 남성 예술가와 달리 여성 예술가는 먼저 사회화의 영향과 싸워야 한다. - P145
여성 예술가는 (남성) 선배의 세계를 읽는 시각이 아니라 자신을 읽는 시각과 싸운다. 자신을 작가로 정의하기 위해 여성 예술가는 자신의 사회화 조건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 P146
여성 예술가의 고독, 여성 선배와 후배에 대한 갈증과 남성 선배로부터의 소외감, 남성 독자의 반감을 사는 일에 대한 두려움, 여성 독자에 대한 절박한 갈구, 문화적 조건 안의 자아를 극화시킬 때 튀어나오는 소심함, 예술의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두려움, 여성창조의 부적절함에 대한 불안 등등이 모든 ‘열등화‘ 현상은 여성 작가가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정립하려는 분투의 표식이며, 자아 창조를 위한 그녀의 노력을 남성 작가와 구분해주는 현상이다. - P147
강한 아버지와 아들의 싸움이라는 ‘남성적‘ 전통과 대조적으로, 작가 되기에 따른 여성의 불안은 여성을 심각하게 무력화한다. 이 불안은 한 여성에게서 다른 여성에게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엄격한 문학적 ‘아버지들‘에게서 모든 ‘열등화된‘ 여성 후손에게 전해진 것이다. 그것은 불편함, 적어도 불만, 방해, 불신 등 여러 가지 세균이다. 세균은 많은 여성문학의 구조와 문체, 특히 (이 책에서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20세기 이전 여성문학 전반에 얼룩처럼 퍼져 있다. - P148
어떤 독자에게나, 특히 작가이기도 한 독자에게는 모든 텍스트가 은유적인 세균전에서 ‘판결(문장)‘이나 무기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감염된 문장은 새끼를 친다‘는 말은 문학작품이 강제적이고 감금시키며 열병을 일으킨다는 것, 그리고 문학은 독자의 내면을 강탈하기 때문에 사적 영역에 대한 침해라는 디킨슨의 인식을 나타낸다. (…) ‘우리‘는 한편으로 여성의 자율성과 권위를 부인하고자 하는 모든 가부장적 텍스트로부터 ‘절망을 들이마실지도 모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선배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로부터 (여 - P149
자 선배들은 혼란스러워하는 여성 후계자들에게 작가가 된다는 행위에 담긴 전통적인 불안을 공공연하고도 암암리에 전달하므로) ‘절망을 들이마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대대로 내려오는 은유적으로 모계적인 불안 때문에, 여성일 때는 텍스트의 창조자조차 텍스트 안에 (접힌 채, 그리고 ‘주름 잡힌 채‘) 감금되어 있다는 것, 그리하여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계속해서 말해주는 ‘영원한 솔기‘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것이다. - P150
프로이트가 정신과 몸의 역동적 관계를 밝힌 유명한 연구의 출발이 된 질병인 ‘히스테리‘는 원래 정의상 ‘여성의 질병‘이다. 히스테리의 명칭이 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 히스테르hyster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실제로 19세기에는 자궁이 정서적 장애를 ‘야기한다고 생각했다) 히스테리라는 질환이 주로 19세기 말의 빈 여성들에게서 발병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내내 다른 신경증과 마찬가지로 이 정신병도 여성의 생식기관 때문에 발병한다고 여겨졌다. 이런 발상은 여성성 자체가 결함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상세히 설명하는 것같다. - P152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이 고통받았던 ‘여성의 질병‘은 꼭 여성성 훈련이 낳은 부산물만은 아니었다. 그 질병이 바로 훈련 목표였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와 디어러 잉글리시가 보여주었듯, 19세기 내내 ‘상류층과 중상층 여성들은 ‘병든‘(허약한, 건강이 나쁜) 존재로 여겨졌으며, 노동자 계급 여성들은 ‘병들게 하는‘ (감염시키는, 병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그들은 ‘숙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계속 ‘숙녀란 약하고 병약한 존재라는 사회적 동의 - P153
가 있음’을, 그 결과 ‘여성의 병약함에 대한 숭배‘가 영국과 미국에서 발달했음을 지적한다. - P154
다시 말해 수동적인 천사들 능동적인 괴물이든 여성 작가는 문화가 제공하는, 여성을 쇠약하게 만드는 대안들 때문에 있는그대로의 의미에서든 비유적인 의미에서든 자신이 무능하다고느낀다. 여성이 처한 조건의 치명적인 효과는 여성 선배 문인들에게 이어받은 피 묻은 구두 속 죽음의 선고처럼 ‘퍼져나간다.‘ - P158
포프는 ‘변덕스러운‘ 우울의 ‘여왕‘이 ‘15세부터 50세까지의 여성‘ 을 지배하기에 (여성 섹슈얼리티의 ‘전성기‘에 걸쳐 여자를 지배하며) 히스테리와 (여성) 시의 ‘부모‘가 된다고 말했다. 이 말에 핀치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것 같다. ‘그대는 오만한 아내로서 허풍 떨며 예술을 말한다‘라고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포프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굴복하지 않은 여자는 그저 신경증적인 여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군주다운 남자는 제국을 통치하도록 태어난다‘고도 핀치는 말한다. 그러나 시에서 남자는 우울증을 앓는 여자에게 패배한다. 그는 ‘평화를 위해 타협한다. […] 여자는, 우울로 무장한 채, 노예처럼 복종한다.‘ 그러나 동시에 핀치는 자기 내부에서, 특히 예술가로서의 자기 자신안에서, 우울의 가장 유해한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 P163
여성 혐오는 브래드스트리트의 ‘삶에 대한 옹호’를 특징 짓는 요소였다. (…) 캐번디시가 드러내는 젠더에 대한 태도와 자기 직업에 대한 의식이 보여준 모순은 그녀를 어떤 의미에서 ‘미치게’ 만든 것처럼 보인다. - P166
애프라 벤(사실상 영국 최초의 ‘전문‘ 여성 작가)처럼 아주 뻔뻔하고 사죄할 줄 모르는 반항아는 항상 의심할 바 없이 문란하고 방종하며 ‘음란한‘) ‘수상한 여자‘로 간주되었다. ‘판단력과 신성한 시를 금지당한 이 가련한 여자는 무엇을 했는가?‘ 벤은 솔직하게 질문했고, 또 솔직히 말하자면 왕정복고 시대 방탕자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마치 현실판 두에사처럼, 그녀는 진지한 문학의 정전에서뿐만 아니라 점잖은 사람들의응접실이나 도서관에서도 점차 가차 없이 추방(나아가 삭제)당했다. - P167
이 모든 선택, 즉 확실히 주류적인 것이 아니라 외관상 소품 같은것, 극적인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것, 공적인 것이 아니라 사적인 것, 영광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은 것을 선택한 데는 의식적이거나 반의식적인 아이러니가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 P168
사실적이든 비유적이든 남성으로 분장하고 나자 이들은 처음에 남성을 모방한 이유였던 변덕이나 괴물 됨에 대한 공포와 동일한 공포가 되살아나는 동시에, ‘여성적인 저항‘을 해야 한다는 신경증적 강박 역시 생겨났을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 문인이 기억하는바, 그것은 결국 야망을 위해 자신의 ‘성을 제거‘해달라고 신에게 간청했던(셰익스피어의 여자 주인공 중 가장 고약한 인물인) 레이디 맥베스의 강박과 같다. - P171
고귀한 자는 결국 맥베스이고 레이디 맥베스는 괴물이다. 마찬가지로 오이디푸스는 영웅이지만, 메데이아는 마녀일 뿐이다. 리어의 광기는 거룩하고 보편적이지만, 오필리아의 광기는 그저 측은할 따름이다. 비극의 구조가 가부장제의 구조를 반영하는 한(다시 말해 비극이 ‘고귀한‘ 인물의 ‘몰락‘ 이야기여야 하는 한) 비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그런 이야기를 단순히 사용한다기보다는 필요로 하는 것이다. - P175
여성 작가는 ‘작가의 정신분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질병에 특히 취약하다. 왜냐하면 여성 작가는 가부장적인 플롯이나 장르를 사용함으로써(그리고 그것에 참여함으로써) 이중성이나 불신에 불가피하게 연루된다는 것을 그녀 자신이 암암리에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 P176
여성들은 어떤 의미에서 양피지에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쓴 것 같은 문학작품을 생산했다. 이런 작품들의 외관은 표면의 무늬가 훨씬 깊고 접근하기 어려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가 더 어려운) 층위의 의미를 감추거나 흐려놓았다. 작가들은 이렇게 가부장적인 문학의 표준에 순응하는 동시에 그것을 전복시킴으로써 진정한 여성문학의 권위에 도달하는 어려운 임무를 해냈다. - P183
흥미롭게도 최근 몇몇 페미니즘 비평가들은 남성 (기원의) 문화와 여성 (식민화된) 문학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프란츠 파농의 식민주의 모델을 활용했다. 그러나 영미의 여성 작가들은 그들이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언어가 하나였기 때문에 식민화된 다른 지역의 여성작가들보다 애매하게 이중으로 말하기에 훨씬더 능란해야 했다. - P183
18세기와 19세기 여성 작가들은 남자에 의해, 남자를 위해 만들어진 구조에 갇힌 채 지배적인 미학에 반항하기보다는 순응할 수 없다는 데 죄의식을 느꼈다. 생명력 있는 여성 문화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던 여성 작가들은 다른 (말하자면 남성) 작가들이 결코 느끼거나 표현하지 않았던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퍽 고통을 겪었다. 그들 자신의 권위를 의심할수 밖에 없는 조건 속에서 디킨슨의 말마따나 ‘조롱거리가 되지않는‘ 것을 묘사하려 했던 여성 작가들은 사회를 향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 더 쉬웠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예술적 회피나 은폐는 대부분 남성 작가들보다 훨씬 더 정교하다. 19세기 문학 문화의 가부장적 편견을 감안한다면, 여성 문인은 감추어야 할 중요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85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여성 작가는 우선 자신을 감염시켰던 문장(판결)을 쫓아내야 한다. 그녀는 공공연하게 또는 암암리에 ‘주름진 창조자‘에게서 들이마신 절망을 벗어내어 자신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여성작가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창조자의 텍스트를 수정하는 것이다. 다른 은유로 표현해보자면, ‘유리 표면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여성 문인은 모든 여성이 지켜야 했던 사회적 규범을 그토록 오랫동안 반영해온 거울을 박살내야 한다. - P187
미친 여자는 어떤 의미에서 작가의 분신이고 작가 자신의 불안과 분노의 이미지다. - P189
남성의 관점에서 가정생활의 순종적 침묵을 거부한 여성들은 무시무시한 대상(고르곤, 세이렌, 스킬라, 라미아, 죽음의 어머니, 밤의 여신)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러나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괴물 여성은 자신을 표현할 힘을 구하는 여자일 뿐이다. - P191
의무에 얽매여 생활 속에 갇힌 채, 정신은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봐도, 죄를 짓지 않고는 빠져나올 방도가 없네. 피해볼 도리도 없이 단지 살고, 일할 뿐. 청하지도 않았는데 미리 부과된 의무, 자연의 법칙이라는 강력한 힘으로 옥죄고 있나니, 적대적인 생각의 압박, 마음속을 후비네, 매 시간, 힘을 낭비하고 있다는 인식이 그토록 어둡고 낮은 천장의 집, 무거운 서까래가 햇빛을 차단하고, 힘들이지 않고는 일어설 수도 없구나. 내면의 영혼이 무덤을 애원할 때까지… 더 넓은 무덤을. - P199
글자 그대로 집 안에 갇힌 채, 비유적으로는 한 ‘장소‘에 갇힌채, 응접실에 갇히고 텍스트에 넣어지고 부엌에 가두어지고 시 구절에 모셔져 있었기 때문에 여성 예술가들은 자연스럽게 어두운 내면을 묘사했으며, 집 안에 묶여 있다는 인식과 얽매인 의무에 대한 반항을 혼동했다. - P200
작품 속에서 감금과 탈출의 드라마를 강박적으로 재연한 여성들의 문장에서 감염은 지속적으로 퍼져나간다. 특히 여성의 질병으로 알려진 거식증과 광장공포증은 극의 패턴, 주제의 패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 P201
물론 19세기의 많은 남성 작가들도 감금과 탈출 이미지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그들이 진지하게 느꼈던 바를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 남성과 여성이 만들어낸 감금 이미지 차이는 항상 그러했지만) 한편으로는 형이상학과 은유의 차이이고, 또 다른 면에서는 사회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의 차이다. - P202
여성의 자궁은 확실히 늘 어디에서든 아이 최초의 집, 가장 만족스러운 집이자 음식의 원천, 어두운 보호소였다. 따라서 자궁은 신성한 동굴, 비밀스러운 성소, 성스러운 오두막 등으로 반복해서 형상화되는 신화적 낙원이었다. 그러나 여성 작가에게 집과 자아를 낡은 방식으로 연관시키는 것은 여성 작가가 자신의 예술에 투사했던 갇힘에 대한 불안을 강화시켰던 듯하다. (…) 여성 예술가는 자신의 자궁을 일종의 무덤으로 경험하지 않거나 아이가 그녀의 집/몸을 점유하는 것을 자신의 비인격화 경험으로 인식하지 않더라도, 본질적으로 자신이 순전히 인간 종의 생물학적 유용성에 의해서만 규정받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만다는 것이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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