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 스타킹 한 켤레 - 19, 20세기 영미 여성 작가 단편선
세라 오언 주잇 외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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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마다 이야기하는 방식은 달라도 하고자 하는 말은 비슷하다고 느꼈다.


1. 결혼이란 제도로 사람의 욕망은 끝나는가?
'아니오'일 것이다.

욕망의 대상은 다양하다.
사람일 수도 있고 감정일 수도 있고 규율의 파괴일 수도 있다.

감정이 고조에 이르고 줄어드는 것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뜨거웠던 애정은 언젠가 식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감정의 모양은 달라져도 서로에게 익숙해져서 친구처럼 지내거나 동지(!)처럼 지내게 된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옆사람에게 묻곤 한다.
"10년 전 내게 가졌던 감정을 지금도 가져야 하는 거 아냐?" 나 좀 봐달라는 애두른 표현이지만 딱 잘라 말한다. "지금도 그렇다면 병이야."
결혼하고보니 막상 내가 원하던 사람이 아니라면? 마음이 떠나 그 사람을 보기 싫어졌다면?
일부는 취미 생활을 하고 사람을 만나거나 해서 다른 방향으로 마음을 돌릴 수도 있겠다. 일부는 외도를 하겠지.
규율에 대한 욕망은 항시 존재할 것 같다.
결혼을 하면 이것을 해야 하고 이것을 조심해야 하고 격식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회의 지침(!)이 있지 않은가.
평소에는 이렇게 지키는 사람도 가끔 그 구속에서 벗어나버리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무채색의 양말을 벗어던지고 화려한 실크스타킹을 사 신는다. 스타킹에 걸맞는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백화점 1층에 가서 뷰티 서비스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분위기를 낼 겸 영화나 공연을 본다.
이럴 때의 욕망은 자유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이런 것조차 지탄을 한다면 기혼 여성의 욕망의 범위는 거의 없는 것이 아닌지 싶어 갑갑해진다.


2. 폭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아니오'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누구에게든 폭력이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릴 적 학교에서, 집에서 폭력을 경험했을 때 '사람은 왜 사람을 때리는가' 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물론 그렇게 항변하는 경우도 보았다. "말을 안 듣는데 어떻게 폭력을 안 쓰냐?" 그렇다고 해도 나의 분노를 상대에게 물리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본인에게도 상처가 될 거라는 생각이다.
내가 만약 아이가 있었다면 이런 경우를 이해할 수 있을까? 역시 경험이 없으므로 답을 할 수 없다.
소설 속에서 폭언과 폭력을 서슴치 않고 행하는 남편이 있다. 심지어는 만나는 여자를 집으로 데려온다.
이런 사람 옆에서 어떻게 평정심을 갖고 살 수 있느냔 말이다. 나는 정말 모르겠다.
어떤 남자는 여자를 정신병원에 보낸다.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핑계를 대며.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아주 최근까지 정신병원으로 가는지 『여성과 광기』를 통해서도 본 일이 있지만 짧은 이야기로 고스란히 보여준다.


3. 가부장제와의 결별(?)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단편이 있었다. 죽음이란 상실이기만 할까. 여러 감정이 조금씩 아니면 한꺼번에 밀려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정한 규율이 있고 그에 위반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가 정한 규칙을 따라야 하는 딸들이 있었다. 심지어 남자까지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인위적으로 결정되고 그에 순응하며 살던 딸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어떠했을까. 아버지는 가부장제를 지탱하는 축이기도 하다는 면에서 그의 죽음은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했다. 딸들의 마음은 후련함에 가까운 해방일까. 아니면 그러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애도와 그리움에 더 가까울까.


4. 연대
현대 사회에서 연대라는 것이 가능할까 생각하지만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주변 소식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기회가 늘었다는 점에서 빛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전에 여성의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사람이 빛을 보며 태어났는데 어떤 이유로도 갑작스런 죽음은 있어서는 안된다. 이는 개인의 비극이자 사회의 비극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만 살면 되는 것이 아니고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소설 속에서는 이를 비롯하여 다양한 사례에 걸맞는 상황들이 등장한다.
기존에 19세기 고전 소설을 읽었을 때는 나와 맞지 않는 상황들과 인물들의 태도 등으로 거리감을 느꼈었다.
헌데 여기 단편들은 그렇지 않고 대부분의 상황들이 놀랍도록 지금에 견주어도 비슷해서 읽는데 수월했으나 그만큼 아팠다.
지금도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아프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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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10-13 09: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폭력에 반대하고 경험때문에 타인에게 소리치는 것도 심각한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이런저런 경험들이 쌓여 피해자에 쉬이 감정이입되고 가해자를 미워하게 되더라구요.
(무채색의 양말을 벗어던지고 화려한 실크스타킹을 사 신는다....
마지막으로 분위기를 낼 겸 영화나 공연을 본다.)
화가님 써주신 요 부분 읽는것만으로도 이미 힐링되는 느낌입니다.ㅎㅎㅎ

거리의화가 2022-10-13 10:02   좋아요 2 | URL
폭언과 폭행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선을 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ㅠㅠ 그런 경험이 있다면 더더군다나 피해자는 두려움을 갖게 되겠죠.
ㅎㅎㅎ 저도 그 상황 자체가 힐링이더라구요. 저는 심심하게 옷을 입고 다니는 편인데요(편해서). 처음에 여행 다닐때는 평소와 마찬가지의 옷차림을 했어요. 그랬더니 사진들이 죄다 우중충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차려입은듯한 복장도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밝게 입어야 사진이 좀 더 잘 나오는 듯한~? 게다가 기분 전환 효과도 있더군요^^

2022-10-13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3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2-10-13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의 정리된 글 잘 읽었어요.
적어주신 1번에서 4번까지가 우리가 항상 생각하는 문제의식이기도 하고요.
결혼 생활하다보면 남편은 이제 동지에 가깝고, 폭력 사용하면 안되는데 어제 그만 화가나서 아이 등짝 세게 한 대 쳤어요 ㅎㅎ
그리고 친구 만났는데 세상이 발전해도 여성에 관련해서는 별로 바뀐 것 없다고 얘기했고요.
고전 읽으면 언제나 여성에 대한 견해가 안타까운데 잠시 무시하고 읽게 되더라고요. 잃.시.찾도 마찬가지예요^^

거리의화가 2022-10-13 15:46   좋아요 1 | URL
저도 아이가 있으신 분들의 입장을 듣기만 하는지라 조심스러운데 부모도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어쨌든 저는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맞아요. 남편은 설레는 기간 초반에 길어야 5년 간다고 봅니다ㅋㅋㅋㅋㅋ 이제는 뭐 친구나 동료처럼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이 책 읽으면서 19,20세기 여성 단편선인데 작품이 길게는 100년 전, 짧게는 몇 십년 전인데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바뀐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좀 허하더라구요.
제인 오스틴 소설들을 읽을 때는 이렇게 이입이 좀 안 되었던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오스틴이 당시 중상류층 이상의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고전 읽을 때는 잠시 여성에 대한 생각은 내려놓아야하는 것 같아요. 안 그러면 매번 스트레스 받을듯합니다ㅎㅎㅎ

새파랑 2022-10-13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읽었습니다!! 다양한 작가의 좋은 단편들이 섞여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욕망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ㅋ

거리의화가 2022-10-13 21:09   좋아요 1 | URL
역시 새파랑님 읽으셨군요^^ 저도 몰랐던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을 알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욕망은 문제없다는 말씀에 저도 동의해요ㅎㅎㅎ

희선 2022-10-14 0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뀌는 것도 있지만, 바뀌지 않고 여전한 것도 있겠습니다 그런 것도 바뀔 날이 오리라고 믿어야겠지요 폭언 폭력은 안 좋지요 그러고 보니 아주 옛날이 아닌 때도 여자를 정신병원에 넣었다는 거 봤군요 그게 19세기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니... 남한테 피해 주지 않는 욕망은 괜찮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10-14 09:34   좋아요 0 | URL
네. 요즘에도 여전한 것들이 많아서 쉽게 읽혀서 오히려 껄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현실에 있다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면 바꿀 수 있다 희망을 가져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