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5장

수치 ->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 사회 존재로서 성공을 가늠하는 지표
임신 중지는 수치 유발 요인도 변화시켜, 임신중지가 그 자체로 수치의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님
임신중지 수치가 임신중지 자유 법제화 이후에도 계속된 것은 여전히 임신중지가 여성 규범의 정반대에 놓여있기 때문
개별화, 탈정치화를 통한 수치
침묵은 수치 최소화의 전략

모성의 젠더화된 역할은 인종주의적이고 인종화된 국가주의 열망과 연결됨.
여성의 정체성은 가족으로, 백인 여성의 신체는 국가로 돌아감

수치는 누군가가 사회적 존재로서 처참히 실패했음을 나타내며, 따라서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감정이다. 수치스러워하는 주체는, 스스로 인지하는 자기와 이상적 타자, 즉 되고 싶은 자아상 사이의 단절을 겪는다. 그는 그 자아상을 향해 가려는 한편, 자기를 거기에 반한다고 평가한다.

수치를 느끼는 주체는 스스로 실패한 이상이나 규범에 다시 통합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모방하는 데 실패한 사회적 이상에 대한 애착이 곧 수치이기 때문이다. 모든 비규범적(백인ㆍ이성애자ㆍ중산층ㆍ남성이라는 비가시적 기준에 반하는) 신체는 수치를 통과한다. 여자아이는 수치를 거쳐 성인이 되며, 규범적 여성다움에 실패(임신했으나 임신중지를 원하는 등)하면 이후 수치를 겪게 된다. 여성은 수치에 ‘영속적으로 조율’된다. 여성 신체가 비규범적이어서만이 아니라, 여성 신체가 육체성ㆍ섹슈얼리티ㆍ섹스라는, 수치를 주기 특히 쉬운 것들을 통해 규범적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죄책감의 원인은 여성의 임신중지다. 이는 자아의 일탈을 알리는 신호다. 반면 수치 안에서 여성은 스스로 책임감을 붙든다. 이때 임신중지라는 일탈은 결점 많고, 부적절하고, 비도덕적이거나 병리적인 자아를 반영한다. 그러므로 수치는 여성적인 감정이다. 비규범적 신체, 특히 섹스와 여성 신체에 들러붙어 사회적 존재로서 개인의 실패감을 드러낸다.

수치는 죄책감보다 더 ‘강렬하고 혐오스러운 경험’이어서, 주체가 원인을 더 감추려 들고 고립감과 열등감을 더 크게 느낀다. 또 수치를 설명하는 것은 죄책감을 설명하는 것보다 덜 자유롭다. 수치는 주체의 자아를 반영하는 반면, 죄책감은 주체의 행동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1975년, 멜버른 최초의 합법적 임신중지 진료소에서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됐다. 이에 따르면 독신 여성은 임신한 사실에, 기혼 여성은 임신중지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죄책감의 근원은 독신 여성의 경우 임신, 더 정확히는 임신으로 이어진 섹스였고, 기혼 여성의 경우 아이를 원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나 임신중지에는 죄책감이 불가피하다는 통념과 반대로, 겨우 3분의 1에서 3분의 2에 해당하는 응답자만이 죄책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 결과는, 여성이 임신중지에 죄책감과 수치를 느끼리라는 강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이 이 감정을 내면화하지 않음을 보여 줬다.

결혼한 여성이 그저 아이를 원치 않아 임신중지를 한다는 생각은 사실상 임신중지에 대한 공적 논의에 오를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공적 논의상 임신중지 여성은 독신으로 정형화되었다.

피임에 대한 책임이라는 체제 아래, 여성은 아이를 원하지 않으면 임신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여성은 아이에게 재정적ㆍ감정적 안녕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임신은 방지할 수 있는 것으로 프레이밍되며, 그런 방지는 책임감 있고 성공적인 여성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n43n 따라서 피임 영역에서 여성에게 ‘선택’이란, 피임할지 말지가 아니라 피임법을 선택하는 개념으로 설정된다.

임신중지에 대한 법이 1970년대 전환기를 맞아 자유화되면서 프로초이스 활동은 임신중지 비범죄화 요구를 기조로 삼았다. 이때 임신중지 절차는, 원치 않은 아이의 출생을 막는 방법으로 더 권장되던 피임에 필수적인 ‘최후의 보루’로 재현되었다. ALRA의 주요 슬로건은 "임신중지는 권리, 피임은 책임"이었다. 피임기구 사용이 늘면 임신중지에 대한 요구가 줄어들리라는 가정과 더불어, 임신중지는 프로초이스 활동의 흐름 안에서 흔히 문화적 후진성의 기호로 프레이밍됐다. 여성해방론자들은 "책임감 있는 피임에 대한 프로파간다"가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경고했다.

여성은 단지 원치 않은 임신을 막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피임을 한다. 그럼에도 타인 혹은 자기 스스로가 피임을 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피임하는 경우가 많다. 피임 효과가 높아지고 이용도가 늘어나 여성이 임신 여부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증진되면서, 여성은 효과적ㆍ효율적으로 피임할 규범적 의무를 갖게 됐다. 따라서 섹슈얼리티의 재생산 규범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진 동시에 제약조건(피임기구를 쓰라는 문화적 의무의 형태)도 따랐다. 그러나 피임기구 확산에 동반되는 훈육 제도는 질문되지 않은 채로 있거나, 숨겨진 측면도 있다. 왜냐하면 피임기구 사용 및 확산은 20세기 서방 여성의 자유와 가장 긴밀히 연결된 발전이었기 때문이다.

피임할 책임이라는 규범은 피임과 그 이용을 사회관계와 권력의 영역 바깥에 놓는다. 남녀의 친밀한 성적 관계는 젠더화된 권력관계의 그물에서 일어난다. 예컨대 여성이 남성 파트너와 안전한 섹스를 협상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피임기구의 엄격한 사용이란, 제약 없는 즉흥적 섹스 등 보다 광범위한 섹스 이데올로기와 불일치하기도 한다.n62n 이때 피임기구 사용에 대한 젠더화된 책임이 덧씌워져, 이성애 관계에서 여성에게 재생산 능력을 통제하라고 하는 것이 남성에게는 같은 정도로 적용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여성이 원치 않은 임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여전히 재생산과 모성에 결합돼 있다는 뜻이다. 이는 남성의 성적 신체에서 재생산을 지우는 한편 쾌락을 특권화함으로써 가능해졌다.

국가 보건 정책은 번번이 임신중지를 "피임에 관한 건강관리를 제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 보았다. 임신중지를 겪은 여성은 임신중지 절차에 정례화된 피임 상담을 통해 실패자로 묘사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약 40퍼센트의 임신이 ‘계획하지 않은 채’ 이루어진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 출산으로 이어질 때는 여성이 죄책감이나 수치를 느끼지 않는다. 임신중지에 관한 의학 연구에서 "임신중지의 불가피한 결과인 ‘죄책감’"을 우려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과학 연구에는 임신중지의 ‘심리적 후유증’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반면에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지속하는 여성의 경험은 비슷한 정도의 연구를 요하는 ‘문제’로 구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효과적 피임에 실패했다는 감각에서 생겨난 수치는 여성이 임신중지를 선택할 때만 활성화된다. 임신중지란 그 이상의 실패, ‘모성적이지 않고 이기적인 존재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임신중지는 무아성(여성이 타인중심적 규범에 실패했음을 보여 주는 기호)에 붙어서 수치를 일으킨다. 수치는 임신중지 여성의 자기평가를 (적어도 남들이 인지하는 한에서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고, 신경질적인 것으로 나타낸다. 잠재적 아이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어렵사리 임신중지를 한다는 서사가 여기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임신중지를 겪은 여성은 수치를 통해 실패를 드러내고 인지한 다음, 자신을 무아적 모성이라는 이상과 동일시함으로써 복구를 시도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실패했던 가치와 규범에 스스로를 재배치한다.

임신중지 수치를 가장 잘 가늠하게 하는 것은 남들에게 임신중지를 숨기는 여성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이다. 여성 대부분은 임신중지 사실이 알려지면 타인에게 부정적 평가를 받으리라 예상한다. 그래서 수치당할 두려움과 내면화된 수치감을 거쳐 임신중지를 선택적으로만 알리며, 보통은 친구나 가족에게도 숨긴다. 임신중지를 비밀에 부치면서 여성에게 그 일은 더욱더 고립되고 외롭고 비정상적인 사건으로 자리매김한다. 임신중지를 겪은 여성의 목소리는 임신중지에 대한 공적 토론에서도 흔히 부재하다.

임신중지를 가득 채우는 수치는 이를 비밀에 부치도록 부추기며, 사실상 자주 위반되는 규범(‘의도된 임신’과 ‘태아적 모성’)을 유지하는 데 일조한다. 이로써 임신중지는 일상적이기보다 예외적인 일이 된다. 수치 침묵 예외성 수치의 순환은 규범적 여성성과 임신중지 담론(감정의 기록 등)이 서로를 영속시키는 또 다른 순환을 만들어 낸다. 모성적 여성성은 애통함과 수치가 뒤따르는 어려운 임신중지라는 서사를 유도하고, 애통함과 수치는 모성적 여성성을 자연화하는 근거가 된다. 이 자기영속적 순환고리는 왜 똑같은 감정이 다양한 담론장을 가로질러 임신중지에 자꾸만 들러붙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임신중지의 비규범성이 만든 은폐와 비밀에 부치기는 애통함과 수치가 유연하게 이동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한다.

1970년대부터 ‘십 대 엄마’라는 인물형은 유독 ‘과도한 재생산적 신체’로 비난받았다. 십 대 엄마는 성적 미성숙이나 무책임과 연결되며, 특히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확산됨에 따라 복지에 의존하는 계층화된 몸이 되었다. 임신중지 법의 자유화가 진행된 이래 십 대 임신중지ㆍ모성이라는 국가적 ‘수치’를 해결할 방책으로는 성적 억제라든지 피임기구 사용을 다루는 도덕교육이 제안됐다.

‘이십 대 이상 백인 중산층 여성’은 아이를 너무 적게 낳고 임신중지를 너무 많이 한다며 수치를 당하고, 이 기준 바깥의 여성은 반대로 아이를 너무 많이 낳는다며 수치를 당한다.

‘의도된 임신’이라는 이상은 무척 세속적이며 근대성ㆍ교육ㆍ여성의 자유와 결합된 서방 담론으로 나타난다. 서방 사회에서 출생률 감소와 더불어, ‘의도된 임신’이 규범화됨에 따라 ‘잘못된 여성’, 즉 종교적이고, 인간 본성을 그대로 갖고 있고, 교육받지 못하고, 억압되었으며, 사적 영역과 영속적 재생산에 틀어박힌 여성이 아이를 너무 많이 낳는다는 공포가 생겼다.

임신중지 수치와 수치 주기는 법 같은 외부 규제력 없이도 품행을 단속한다. 그 방법은 개별화와 탈정치화를 통해 규범적 가치ㆍ실천ㆍ신념을 강력하게 자연화하는 것이다. 수치가 법 바깥에서 일어나긴 하지만, 수치와 수치 주기는 임신중지를 범죄화하고 임신중지를 겪은 여성을 범죄자로 나타내는 사법 관할구역 안에서 강화된다. 법이 규범적 도덕성을 성문화하고, 따라서 범죄화는 수치 주기의 강화된 양식으로서 작동한다. 그러나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에도 임신중지를 한 여성은 계속 국외자로 지목됐다. 그 이유는 재생산과 계속 결부된 여성의 섹슈얼리티, 임신한 여성에 대한 모성적 정체성, 인종ㆍ연령ㆍ계급 같은 축을 따라 여성의 재생산 선택의 가치를 다르게 매기는 다양한 벡터 때문이다. 수치를 통해 임신중지의 비규범성이 개인적 실패감으로 변환되면서, 임신중지 여성은 실패한 개인으로 체현된다.

임신중지를 하는 백인 여성은 ‘백인의 취약성’이라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공포를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한다. 이 취약성은, 국가적 이상으로서 백인 이성애 가족을 증진하는 일, 그리고 그 이상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젠더화ㆍ인종화된 일련의 특권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와 불가분 관계를 맺는다.

‘국민’은 정치체에 누가 속하며 누가 배제되는지를 끊임없이 경계 짓는 과정에서 주조되는 사회ㆍ역사적 구성물이다. 그런 포섭과 배제의 기술은 여러 가지다. 공식적으로는 어떤 이들이 법적 권리를 갖고 시민으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지를 정하는 데서부터, 비공식적으로는 공유되는 가치ㆍ전통ㆍ역사ㆍ미래를 설정해 국민성을 규범적으로 구성하는 데까지 아우른다. 이때 공식적인 기술과 비공식적인 기술은 함께 작동한다.

인종은 원래 생물학적 용어였다. 20세기 후반부터 백인성은 ‘앵글로색슨다움Anglo-ness’을 통해 이야기되는 일종의 문화자본으로서 작동했다. 지금은 생물학적 특성이 아니라(흰 피부는 분명 백인성의 중요한 표식이기는 하지만), ‘민주주의, 관용, 언론 자유’가 본질이 됐다. 문화적 인종주의는 어떤 공동체를 병리적이라든지 역기능적이라고 지목하며 작동한다.

인종은 재생산과 결부된다. 흔히 인종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본질’이라 보기 때문이다. 이때 본질은 생물학적인 것으로서, 피부색 같은 표식을 통해 전해진다. 또한 문화적 가치(종교 등)와 행동 패턴 등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고 하는 것들을 형성하기도 한다.

여성은 아이를 길러 문화적 가치와 사회 풍습을 세대 간에 전수하는 데 주된 책임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국민이란 ‘재생산 가능한 인종 구성’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여성의 재생산노동은 국가 자원이며, 인종화된 국가 공동체를 만들어 가족 기획의 동력이 된다.

2015년에 시작된 ‘이민 위기’와 이로써 가시화된 ‘구멍 뚫린 국경’은 지구화의 징후이자, 그 증상의 악화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이 주권국가의 통합성에 도전하자, 국경안보를 다시 강화하고,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적 동질성이라는 이상을 구체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브렉시트Brexit,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유럽ㆍ오스트레일리아에서 부흥한 국가주의적 정당은, ‘재국가화re-nationalisation’를 더 폭넓게 시도하려는 (부분적인) 징후다.

배제(국민으로부터 특정 신체를 배제), 재생산(백인 중산층 여성의 재생산), 부인(식민화 내지는 선주민 주권의 부인)은 국가적 불안을 관리하는 교차적 기술이다. 국민은 바로 그 구성 자체 때문에 불안을 준다. 국민은 한 번도 ‘만들어진’ 바 없기에, 이를 ‘다시 만드는’ 과정이 계속된다. ‘국민 만들기’의 과정은 결코 끝이 없다. 그리고 여기서 국가 주권의 취약함이 드러난다.

불안은 고정된 대상이 없다. 따라서 ‘관리’에는 국민이라는 것의 일반화되고 근본적인 불안을, 특정한 공포의 대상으로 변환하는 일이 포함된다. 이 변환은 모종의 봉쇄를 유지한다는 환상을 가능케 한다.

1979년 ‘러셔 발의안’은 1970년대를 통틀어 일어난 임신중지에 관한 공적 토론을 더 격하게 부채질한 것이다. 2000년대 중반의 도덕적 공황은 2004년 연방정부 토론에서 최고조에 달하긴 했지만, 2008년 빅토리아 주의 임신중지 비범죄화 토론에서 ‘너무 많은 임신중지’ 담론이 다시 떠올랐다. 사실상 임신중지 통계 수치는 부정확하기로 악명이 높다. 게다가 임신중지가 법적으로 자유화된 이후, 임신중지율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럼에도 두 차례 공황이 일어난 것이다.

통계는 도덕적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임신중지를 수치로 전환함으로써, 해마다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 수만 명, 또 그들이 임신중지를 원하고 필요로 하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맥락이 규격화ㆍ수량화됐으며, 관리와 통제에 딱 알맞게 되었다. 임신중지의 수량화는 임신중지를 정부가 해결할 ‘문제’로 만드는 한편, 정치적 문제와 열망을 객관적ㆍ기술적 측정으로 변환해 이 과정을 탈정치화했다. 이 과정은, 수가 ‘너무 많다’고 재현될 때 심해졌다.

국가안보에 대한 공황은, 외부 세력 침투에 취약해 보이는 땅(여성성)을 보호(남성성)한다는 식으로 젠더화되었다. 따라서 9ㆍ11로 촉발된 전 지구적 안보 위기가 고조된 상황은, 남성적ㆍ군사주의적 국가주의가 강화된 상황에 조응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이와 관련한 대중적이고 정치적인 서사도 함께 등장했다. 바로 ‘남성성의 위기’에 관한 서사로, 1990년대 초 이래 발달해 왔다.

(백인) 여성에게 재생산을 함으로써 국가를 선택하라는 요청은 매우 명백했다. 그리하여 임신중지 여성은 백인 인구 재생산이라는 사회적 선을 위협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임신중지는 아주 중대한 국가적 사망 사건들과 연결됐다. 임신중지 반대론자들은 임신중지로 사라진 생명과 가장 칭송받는 오스트레일리아 순교자, 즉 전쟁에서 사망한 오스트레일리아 군인을 비교했다.

몇 가지 서로 연관된 현상이 위기의식에 불을 지폈다. 이를테면 한부모 혹은 퀴어 가정이 대중적으로 점점 가시화된 것(남자아이들이 더 이상 영속적인 이성애자 ‘아버지 상’을 보며 자라나지 않으리라는 우려와 함께), 여자아이들의 교육성취 수준이 남자아이들을 모든 면에서 능가한다는 것, 남성이 가정법원에 서는 경험을 하며 ‘남성운동’이 성장한 것, 오스트레일리아 사회ㆍ정치 영역에 비백인 남성의 참여가 늘어난 것 등을 들 수 있다.

두 차례 도덕적 공황을 겪는 동안 언론인과 정치인 등 공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임신중지율을 ‘우리’에게 속하는 문제, 그리고 ‘손을 떠나기는’ 했지만 통제할 수 있는 문제로 봤다. 2000년대 중반 토론을 예로 들면, 입법자들은 "우리 사회는 더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이 주의 임신중지 건수를 줄이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시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치인들과 광범위한 공동체는 임신중지를 ‘우리’가 판단해야 하는, 관리할 수 있는 사회문제로 프레이밍하면서, 임신중지를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었다. 임신중지에 대해 토론하는 행위는, 임신중지를 고려하는 임신한 여성을, 그들을 걱정하고 평가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통제 대상으로 바꿔 놓는다.

공포는 임신중지 여성이라는 상을 만들어 내는 한편 그 주위를 감돈다. 공포는 백인 여성을 위한 모성적 시민권의 역사가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백인 국가라는 환상과 그 핵심 제도인 ‘가족’의 안정을 위협하는 다른 인물형이 임신중지 여성과 환유적으로 연결될 때, 공포는 더 강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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