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으로 식민지에 대해 어떤 결정이 내려지면, 그다음 절차는 내각 또는 공식적으로는 추밀원-의 지시를 받아 남부장관이 그 소식을 식민지 총독들에게 통보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었지만 식민지 관련 정보는 보통 이런 식으로 전달됐다. 그렌빌은 이런 통상적인 절차를 무시했고, 단지 재무관료인 토머스 웨이틀리가 여러 식민지 관리들에게 13개 식민지에서 사용하는 법률 문서의 성격에 대해서 물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문서들에 붙이는 인지가 과세의 대상이 될 예정이었다. - P153

의회 내 인지세법 반대파는 연설에서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투표에서는 패배했는데, 결국 의회에서 중요한 것은 투표였다. 인지세법에 찬성하는 사람들 절반은이미 너무 오래 끌어온 과세 문제에 분노했고, 나머지 절반은 식민지가 방위에 일정 부분 기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확신했기에 찬성표를 던졌다. 의회의 토론 기록을 믿는다면, 그들은 오히려 쉽게 찬성표를 던졌다. 대부분의 반대 의견은 토론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했다. 하원의원들은 빠르게 마음을 정했고, 필요한 지원을 확보했다고 생각한그렌빌은 반대파의 통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방이치욕으로 느낄 정도로 쉽게 법안을 밀어붙였다.


인지세법은 아메리카에서 전례 없는 위기를촉발했다. 어떤 의미에서 1765년 여름과 가을에 벌어진 폭동과 시위는 인지세법 도입 사건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시위와 폭동도 흥미로웠지만, 위기 사태에 시위대가 조직되고 현지 정치가 재조직된점은 그보다 더 주목할 만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식민지의 정치체제에 대한 입장이 명확하게 수립되는 과정에서 식민지인의 자의식이 발현되었다는 사실이다 - P161

버지니아 하원은 5월 31일 일련의 결의안을 승인했다. 본국의 정치체제는 과세권을 주민 또는 그 주민들의 대표들에게 한정시키고, 이 권리는 영국 정치체제 아래 사는 영국 신민인 버지니아인에게도 해당한다는 내용이었다. 숨겨진 뜻은 너무나 분명했다. 아메리카인이 대표를보내지 않은 기관인 영국 의회는 그들에게 과세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 P162

1766년 초가 되자 대부분의 식민지 정치 상황은 인지세법이 통과된 1765년 3월의 상황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매사추세츠는 폭력 행위가 처음 시작됐고 정치도 변모해 갔다. - P172

오티스는 봄에 두 편의 소논문을 발간했는데, 그의 이전 논문 영국 식민지들의 권리〉(1764년)에서 취한 정치체제에 대한 입장을 뒤집는 내용처럼 보였다. 이 두 소논문은 영국 의회의 주권과 영국 의회의 식민지 과세권을 인정했다. 그다음에는 기이하게도 식민지는 사실상 영국 의회에 대표를 파견하지 않았지만 법률에 의해표를 파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 P178

글을 발표하고 말보다 행동을 앞세우기로 결심한 소수의 사람들은매사추세츠 인지 분배관으로 임명된 앤드루 올리버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을 로열 나인 Loyal Nine이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자유의 아들들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들은 장인과 가게 주인 등으로 구성되었고, 존 길John Gill과 함께 《보스턴 가제트》를 발간했던 인쇄공 벤저민 이데스Benjamin Edes도 일원이었다. 새뮤얼 애덤스samuel Adams가 이들과 비밀리에 몇 차례 만나기는 했으나,
이 그룹에 공식적으로 참여한 의회 지도자는 없었다. 로열 나인 중에서 사회적 지위가 있는 유일한 인물은 존 에이버리 John Avery 였다. 그는1759년에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상인이었고 유력한 가문 출신이었다. 로열 나인은 하노버 광장에 있는 체이스와 스피크먼 증류소에서자주 만났고, 거기에서 8월 14일의 폭동을 계획한 듯했다.43 폭동이라는 거친 일을 도모하기 위해 그들은 유경험자를 동원했는데, 바로 최근에 통합된 노스 엔드와 사우스 엔드의 폭도였다. - P181

따를 사례가 필요했든 아니든, 보스턴 폭동은 아메리카 전역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인지세법에 대한 혐오감은사회 모든 집단에 퍼져 있었고, 인지 분배 업무를 맡은 세금 징수관과그 일당에게 자연스럽게 분노가 집중됐다. 10월 말에 이르면 아메리카로 임명된 인지 분배관들 중에서 두 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사임했다. 자신들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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