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특유의 속내를 알 수 없는, 어둡고 깊은 눈동자와 마주치자 한순간 아주 낯설고 외로운 어떤 피조물의 눈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희미한 두려움이 차가운 안개의 숨결처럼 그녀의 몸을 훓고 지나갔다. - P55

클레어의 문제는 자기 케이크를 차지하고 먹겠다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들의 케이크에까지 손을 댄다는 데 있었다. - P70

그녀는 그가 행복하기만을 바랐지만, 그가 주어진 것들과 더불어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분개했다. 그리고 그의 행복을 바라면서도 단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자기가 그를 위해 세워놓은 계획에 따라서만 그렇게 되길 원한다는 점은 결코 인정하지 못했다. 그녀는 또 아들들을 위해, 그리고 그만큼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위해 자신이 고집하는 삶의 터전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 어떤 계획도, 그 어떤 방식도 인정하지 않았다. - P83

그녀는 자신과 클레어에게 화가 났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클레어 켄드리의 성화에 못 이겨 브라이언이 확실하게 하지 말라고 한 일을 허락해버렸다. 그녀는 그가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가 까닭 모를 불안증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런 일에 동의한 것도 짜증이 났다. 댄스파티로 끝난다면 모를까, 앞으로 온갖 사소하고 귀찮은 일들과 애매한 상황에 말려들 것이 뻔했다. 클레어가 그들과 그들 사이에 들어와 일어날 수 있는 불쾌한 일들이 그녀의 눈앞에 끝없이 떠올랐다. - P100

그녀는 생각했다. ‘뭐가 됐든 뭔지 알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텐데.‘
다시 브라이언. 그는 불행했고, 불안했고, 자기 안에 틀어박혔다. 그의 상태를, 그 이유와 치유책을 안다고 그토록 자부했던 그녀는 이전의 발작적인 불안 증세와 너무나 비슷하면서도 너무나 다른 이번 경우를 이해할 수도, 규정할 수도 없었다. - P116

"내 생각에." 거울 속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말했다. "너는 어딘지--아, 아주 몹시--지독한 바보였어." - P122

"그 잔 봤죠? 운이 좋았어요. 그건 당신의 친애하는 조상들인 남부군이 소유했던 것 중에서 가장 볼품없는 것 중 하나였어요. 브라이언의 몇천 년 전 증-증-종조부 것이었는지 생각도 안 나네요. 유구한 역사가 담긴 거죠. 아니 담겨 있었죠. 지하철도로 운반된 거예요. 아, 그래요! 원한다면 영국 언더그라운드라고 하죠. 아무튼 난 오 분 전까지만 해도 그걸 없앨 방법을 알지 못했어요. 이제 영감을 얻었네요. 그냥 깨버리면 되는 거였어요. 그러면 영원히 없앨 수 있는 거죠. 그렇게 간단하게! 그 생각은 못해봤네요." - P128

아이린은 그들 옆에 서서 하얗게 눈이 내린 안뜰 사이로 난 좁은 시멘트 길을 걸었다. 그녀는 공기 중에서, 그들 둘 사이에 일어났고 다시 일어날 뭔가를 느꼈다. 살아 있는 실체가 그녀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흘낏 돌아보니 클레어가 브라이언의 다른 팔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는 도발적인 눈길로 그를 올려다보았고, 그의 눈은 애타는 열망을 드러내며 클레어의 얼굴에 못박혀 있는 듯 보였다. - P149

사라졌다! 부드럽고 하얀 얼굴, 밝게 빛나는 머리카락, 불온한 주홍색 입, 꿈꾸는 눈동자, 어루만지는 듯한 미소, 견디기 힘든 사랑스러움, 클레어 켄드리였던 것들이, 아이린의 평온한 삶을 뒤흔든 그 아름다움이, 사라졌다! 조롱기 섞인 대담함, 그녀의 농염한 자세, 종이 울리는 듯한 웃음소리.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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