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름호>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Asia 제17호 - Summer, 2010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지난주, 여름 휴가의 말미에 잠시 통영에 들렀다.
(남편과 나는 사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하하>를 각자 보고 나서
무언 중에 통영을 마지막 피서지로 선택했다.)

숙소에 짐을 부리고, 우리 가족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금년 5월에 문을 열었다는
박경리 기념관이었다.
선생의 시집에서 감명깊게 읽은 <사마천>이라는 시의 전문이
제주 올레길 곳곳의 노랑리본처럼, 기념관 내에도, 묘소 가는 길에도 사람의 시선을 붙들었다.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멀미 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 로 시작하는 시.)


다음날 우리가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오미사 꿀빵집.
'동피랑' 꼭대기 매점에서 누군가 먹고 있는
꿀이 자르르 흐르는 먹음직스런 빵을 보고 침을 삼킨 나머지
남편과 몇 상자를 사서 누구누구에게 선물할 것인가 차 안에서 설전을 벌였는데
오전 열한 시를 막 넘긴 시간임에도 빵은 이미 다 팔리고 없었다.

나는 최근, 텔레비전 맛집 프로그램에 우연히 소개된 후 손님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어느 식당과
사실은 정말 좋은 재료를 쓰며 음식 맛도 훌륭한데 파리를 날리는 인근 식당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세계인과 함께 읽는 아시아 문예 계간지' <ASIA - 팔레스타인 특집호>를 전해 받은 건
휴가를 떠나기 바로 이틀 전.
이런 계간지가 있다는 것도 사실 처음 알았다.
소설가 오수연이 진행한 '팔레스타인 문학을 빛낸 별들'이라는 제목의 좌담회는  꽤 흥미로웠지만,
세계인과 함께 읽는 잡지를 표방하다 보니, 글마다 영어 번역은 필수!
당연히 내 여행가방엔 끼지 못했다.
("이런 말하기 죄송합니다만 전 에드워드 사이드의 자서전 <아웃 오브 플레이스>를 읽으며
팔레스타인에도 상류층이 있었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오수연)

<ASIA>를  어떻게 소개할까?
오래 전부터 나는 제3세계 문학과 아시아의 문학에도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챙겨 읽어온 편이다.
찻 껍찟의 <무지에 의한 단죄>는 십몇 년 전 제목에 끌려서 내가 사서 읽은
태국문학으로, 오매불망 믿었던 교장 선생에게 사기를 당하고 죽음을 맞이한
'확'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인 소설이었다.
그 빌어먹을 교장은 확의 죽음마저 자신의 인품을 공고히 하는 데 이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오래 전 읽은 그 소설 속의 교장이 낯설지만은 않다.)

이 책에서 <여권>이라는 시로 소개되는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는 자신이
'팔레스타인 민족시인'으로만 기억되는 것을 경계했다고 한다.
'인권과 인간성을 말살하려는 억압세력은 세계 도처에 존재하기 때문에
다르위시는 자신의 시가 인류 전체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시로 감상되기를 원했다.'(131쪽)

나 자신을 본다
아무 문제 없다
나는 그럴듯해 보이고,
어떤 여성에게는,
회색 머리카락이 매력적이기도 할 것이다.
(무리드 바르구티 詩, '아무 문제 없다" 중)

키파 판니의 산문 'Writing the Water 액체적 글쓰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거의 모든 구절에 밑줄을 쳤다.

- 존재에 대한 불안감이 더이상 나를 희롱하지 않게 되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는 인간으로서의 내 경험이 더이상 나 혼자에게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는 인류의 자서전의 매우 작은 일부분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179쪽)

마흐무드 하부 하시하시의 <순교자의 잉크>를 읽으면서는 정신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자살 테러'의 주인공을 '순교자'로 연결시키는  
저들의 태도에는 의문과 반감이 일었는데, 거리의 벽 위에 더 이상 붙일 자리가 없어
더께더께 붙여져 있다는 팔레스타인 순교자들의 포스터를 보면서
'집단적 자기방어든 뭐든... 개인적 이야기는 억제되고 집단 역사에 징발 당한 '
한 개인의 무구한 눈빛들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모르고 있었던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시나 소설 등 농밀한 글들도 좋지만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단편으로 데뷔하는 이호빈의 소설도 유쾌하기 짝이 없다.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생각나게 하는 그의 재미있지만 구중중한 소설 앞에 소개된
'신인의 말'을 소개한다.

- 다만 우리가 눈으로만 화려한 것을 쫓기 때문에  낡은 것들이 빈털터리로
보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257쪽)

오랜만에 읽는 안도현의 시도 흡족했다.

그리하여 움푹한 숟가락으로 매일 국물을 떠먹으면서도
내 숟가락은 망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때로는 빈병에 꽂으면 마이크가 되고 술상을 두드리면
북채가 되는 숟가락을 내 아이의 손에 쥐어줄 때가 되었다.
아이가 칭얼거리기 전에 우선 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일로 나는 조바심을 내고 있다.
요즘 아이들 그 누구도 달을 따달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나부터 지붕에 오르는 일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349쪽, 詩 <사다리와 숟가락> 중에서)

'아시아를 마주할 때마다,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 마지막에 소개된  알리 바데르의 글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삶은 요즘 들어서가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도스토예프스키적으로 잔인하게 변했'는데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광팬이었다는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사람들에게 행한 그의 소설과
다르지 않은 세부적인 상황 묘사는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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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6 19: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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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7 16: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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