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무논에는 떨어진 볍씨도 있지만 풀씨도 많다.
이런 것들은 물에 뜨면 새들에게 좋은 먹이가 된다.
가을걷이 끝난 논에 '올미'라는 다년생 풀의 알뿌리가 있는데
청둥오리와 큰기러기가 이것을 아주 좋아한다.
겨울철새들이 무논 상태에서 잡초의 씨앗과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다.
물이 있으면 풀이 자란다.
먹을 것을 찾아 새들이 부지런히 자맥질한다.
새들이 똥을 싸면 천연비료가 된다.
자연의 순환이 힘을 쓰면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도 된다.
논습지는 평생을 두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였다.
-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315쪽, 돌베개 刊
집 앞에도 나가지 못하고 칩거에 들어갔을 때 노 대통령은 사람이 없는 새벽에
잠깐씩 무논에 나가보았나 보다.
람사르 환경재단 지원을 받아 논습지 체험캠프를 스무 차례 넘게 열었다고 한다.
그는 자연생태계가 복원된 농촌에 아이들이 찾아와 할아버지 할머니와
지내다 가는 날을 꿈꾸었다.
'볍씨' '풀씨' '올미' '자맥질' 같은 단어들이 어울려서
한 편의 시 같기도 하고 잠언 같기도 한데 이상하게 '4대 강'이 자꾸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며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
책 뒤에 실린 연보 중 눈에 띄었던 게 1966년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어망회사 삼해공업에 입사한 사실.
어제 오후 아이가 학교에서 빌려온 책(<마사코의 질문>)을 읽는데
윤동주 시인 이야기('잎새에 이는 바람')에 시인이 어망을 짜는 장면이 나온다.
감옥 안의 노역이 다름아닌 한 올 한 올 어망을 짜는 것.
"푸른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아,
너희는 이 투망에 한 마리도 잡히지 말거라."
시인은 방금 뜬 투망을 풀어버립니다.
(손연자 동화집 <마사코의 질문> 118쪽)
윤동주 시인의 시들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
동화 속에서 사무치게 다가온 그의 삶과 시 몇 편...
시詩든 경치든 사람이든 좋은 것들을 볼 때마다 자꾸 '그'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