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서둘러 영화를 보러 나섰는데 차창 밖으로
거리 모퉁이 현수막이 눈에 띈다.
-서민 무상보육, 서민 무상교육 한나라당이 책임집니다.
말이 좋아 '서민'이지, 저들의 속내는 '빈민'일 거라.
(서민도 빈민으로 보이지 않겠어?!)
빈민으로 밀려난 지 한참됐는데 혹은 코앞인데, 자신은 서민 혹은 중산층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위하여?
작년에는 겁이 얼마나 많아졌는지, 무서워서 지레 포기한 영화가 있었다.
김곡 감독의 <고갈>.
영화의 스틸컷과 스토리라인을 보니 엄청나게 땡겼지만
본능적으로 나는 위험하다고 느꼈다.
- <고갈>을 보고 나면 아마 나는 제정신을 건사하기 어려우리라!
어느 해 봄날 딱 며칠간 밀착촬영했다는 이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이
'멘탈 Mental'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아무런 수식 없는, 이렇게 단도직입적인 제목이 좋아졌다.)
나이 일흔줄의 야마모토 박사가 거의 무상으로 진료하는
코랄 오카야마 정신건강상담소.
우울과 자살충동과 무력감을 호소하는 환자들과 상담 중 야마모토 박사는
시상詩想이 갑자기 떠오른 하이쿠 시인처럼 메모지에 급히 뭔가를 휘갈긴다.
-갈 곳과 거할 곳이 있는 게
삶의 보람.
참으로 이상한 처방전이다.
진료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실이며 나무의자가 놓인 마당이며
환자들의 자립을 돕기위해 설립된 작은 식당이며 동전 몇 개로 묵을 수 있는 숙소며
코랄 오카야마 정신병동은 우리가 흔히 보는 감옥 같은 정신병원과 거리가 멀다.
단순하고 소탈하며 따뜻하며 열려 있다.
야마모토 박사와 직원들, 재택 도우미, 환자 들은 가족 같다.
섭식장애가 심각한 한 여성 환자는 이 병원의 약 조제실에서 일한다.
야마모토 박사에 의해 발탁되었다는 자부심이 넘쳐나던 그녀의 표정이며 걸음걸이라니!
고등학교 2학년 기말고사 시험지에 답안을 적는 대신
선생님의 점수를 매겨 제출했던 스가노.(당신은 어떤 교사니까 70점, 이런 식).
그는 30여 년 전 자신의 발병 원인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너무 무리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절대 무리하지 않고 대강대강 산다!)
위선에 대한 고찰이라든지 그의 발언은 하나하나 전부 수첩에 받아적고 싶을 정도인데
썩은 이가 한가득인 입속을 활짝 보이며 그는 말끝마다 "컷!"을 외친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세상의 냉대에도
깨끗하게 사는 고통이여.(기억나는 대로 적은 것이라 명확치 않음)
사진과 그림과 시 비슷한 것들로 빼곡한 스가노의 스크랩북에 고무되어
자신이 직접 쓴 시를 앉아서 낭송하던 깊고 우묵한 눈빛의 중년여성 환자를 잊을 수 없다.
영화 촬영 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니, 이 세상을 그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