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두 권을 모두 읽고 컴 앞으로 달려와 리뷰를 쓰다보니, 빨래가 끝났다.
그런데 세탁조에서 꺼내 보니 빨래 전체에 푸르둥둥한 물이 들어 있다.
새로 산 딸아이의 청바지에서 물이 빠진 듯하다.
제일 문제가 되는 건 체육복 상의.
4년을 내리입어 안 그래도 본래의 흰빛을 잃었는데
거기다 퍼런 물까지 들었으니......

앨리스의 드레스만큼은 아니지만 겨울방학이 끝나고 엄청나게 작아져버린
딸아이의 체육복.
제일 큰 걸 사서 소매를 둥둥 걷어가며 입혔는지라 4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딱 8부 소매가 돼버렸다.
체육복을 입고 상체를 숙이면 허옇게 등허리가 드러나는 건 기본.

그런데도 나는 6학년 1년을 이 체육복으로 버티자고 딸아이를 꼬셨다.
옷에 도무지 욕심이 없는 아이는 순순히 그러자고 했는데.
과연... 이렇게 우중충해진 체육복을 입으려고 할까?

며칠 전엔 조조로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를 보러나갔다가
시간이 남아 상가에 들렀다.
(영화 속 그녀의 세련된 옷차림에 마음이 좀 동했던 것 같다.)
가끔 들러보는 가게에 마침 마음에 쏙 드는 바지가 눈에 띄었다.
아이보리 색의, 면과 나일론이 섞인 봄바지.

고무줄 면바지 빼고 바지를 안 산 지 몇 년이 된다.
허리 사이즈를 확인하는 일이 괴롭고 성가셨던 것.
그런데 더이상, 더이상은 버틸 수가 없다!

딱 보아하니 내가 입는 것보다 한 치수 크다.
한 사이즈 작은 것 없냐고 물어봤더니  없단다.
"바지가 클 것 같은데......"  하고 끝까지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무려 오천 원을 깎는데 성공.

나 같은 경우 '결심'이라는 것 자체를 좀 우습게 여기고 결심을 하는 경우가 무척 드문데,
엉뚱하게도 '멋을 부리지 않겠다!'라는 결심을 한 적이 있다.
그것도 젊어서 한창때!
멋을 잔뜩 부려도 평균이 될까말까 한 판국에 그런 마음으로 살았으니
내 인생이 오죽했겠는가!
몇 년 전 어느 출판사와 연결되어 유명한 저술가의 자기계발서들을 리라이팅 했는데
'인맥관리'와 '자기관리' '처세술' 등에서 나는 거의 빵점에 가까운 인간이었다.
(봄이 다가와서 그런가, 요즘은 '회한' 비슷한 감정을 자주 느낀다.)

아무튼, 영화를 보고 나오다 우연히 들른 가게에서 새 바지를 샀으니 
다소 창피한 옛 결심은 가볍게 던져버릴 수 있었는데.

-- 그런데 한 치수 큰 바지가 허리에 꼭 맞기를 기대해야 하나,
아니면 커서 수선집에 기길 바라야 하나?!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다행히도  바지는 허리에 꼭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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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4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4 2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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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4 2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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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4 2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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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4 2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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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4 23: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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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0-03-15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이렇게 귀여운 로드무비님이 멋이 없을 리가요.

로드무비 2010-03-15 11:12   좋아요 0 | URL
뭐라고 뭐라고 썼다가 지우고...
뭐시라 댓글을 달아야 할지 모르겠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