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마종기

내가 어느덧
늙은이의 나이가 되어
사랑스러운 것이 그냥
사랑스럽게 보이고
우스운 것이 거침없이
우습게 보이네.

젊었던 나이의 나여.
사고무친한 늙은 나를
초라하게 쳐다보는 젊은이여,
세상의 모든 일은 언제나
내 가슴에는 뻐근하게 왔다.
감동의 맥박은 쉽게 널뛰고
어디에서도 오래 쉴 자리를
편히 구할 수가 없었다.



새해는 세 권의 시집으로 시작하였다.
송경동 시인의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최승자 시인의 <쓸쓸해서 머나먼>
그리고 <마종기 시전집>.

언제부턴가 가슴 뻑적지근한 시를 읽고 나면 시인의 나이가 몇 살인가
확인해 보는 버릇이 붙었다.
이것도 나이 들어가는 징조.
'사랑스러운 것이 그냥 사랑스럽게 보이고
우스운 것이 거침없이 우습게 보'인다는 시인의 말을 콩떡같이 알아먹겠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최승자 시인의 다음 시는 쓸쓸하면서도 참 유쾌하다.
시인의 건재함이 반가워서 몇 번을 되풀이 읽은 시편들.



<참 우습다>
           
              최승자

작년 어느 날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
내 나이가 56세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나는 아파서
그냥 병(病)과 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은 나는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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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0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0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0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0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0-01-20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곧 최승자님 시처럼 될 것같아서 조금 마음이 아프네요

로드무비 2010-01-20 15:23   좋아요 0 | URL
저런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이 부러운데요, 저는.^^

글샘 2010-01-21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르르 흐르르...

로드무비 2010-01-21 10:59   좋아요 0 | URL
호르르호르르...

2010-01-21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4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iny 2010-01-21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로 할 수 없이 반가워요.
최승자 시인도, 로드무비 님도^^

로드무비 2010-01-24 12:21   좋아요 0 | URL
rainy 님, 반갑습니다.
님 방에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이렇게 만난 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