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식사 - 위화 산문집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몇 달 전, <닥쳐라, 세계화!>를 읽다가 위화의 소설 같은 제목을 만나고,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웅크리고 앉아 다음 재난을 기다린다'.(141쪽 '슬럼과 성채도시' 중)

웅크리고 앉아 다음 재난을 기다린다니,
빈민촌이 성벽처럼 펼쳐져 있다는 필리핀이나 나이로비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 내 눈에 비친 이 세상과 인간 군상의 모습이다.
나 또한 그 대열의 중간 혹은 말미에 끼여 있다.

소설가 이문구는 오래 전 그의 소설 뒤에
'허름해서 좋은 위화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해설을 달았다.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백만원군을 얻은 것 같다고 했던가?
<가랑비 속의 외침>이나 <살아간다는 것>,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를 읽고 나서 내게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구차하고 신산하고 갑갑한 생의 어느 대목에서는
'이건 꼭 위화의 소설 장면 같잖아!'하며 마음을 눙치는 것.
웬만한 마음공부 책보다, 마인드컨트롤보다 더 좋은 것이 그의 글들이다.

위화의 산문집 <영혼의 식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아들 로우로우의 탄생과 성장에 관한 기록과 자신의 어린 시절 회상(제1장),
제2장은 한국 방문기(연극 '지하철 1호선'과 전인권 공연 관람기,
시인 김정환과의 술집 기행 등 무척 흥미롭다)를 포함한  작가의 삶과 문학,
제3장은 자신의 책에 쓴 서문(혹은 발문)을 모은 것이다. 
예를 들어 <허삼관 매혈기>의 독일어판 서문이나 한국어판 서문,
중국어판 재판 서문 들이 제각각 어찌나 다른지,
서문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 작가의 성실성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는)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후의 초연과,
선과 악을 차별없이 보는 사해동포주의,
동정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271쪽)'고.

'영혼의 식사'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흑인노예들의 전통 메뉴로,
아나카스티야 지역에 갔을 때 그 이름의 식당을 물어물어 찾아갔다고 한다.
삶아 으깬 고구마와 소금에 절인 이파리가 전부라는데
위화는 이 소박한 음식과 함께, '흑인노예 무역의 괴수'였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그리고 흑인들과 인디언들을 마음껏 유린했던
아메리카의 활약상(?)을 자세히 펼쳐 보이고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쓰나미처럼 온 세상을 덮친 세계화의 물결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잡아와 노예선에 태우던
500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왕푸징 거리에서 마주친, 맞은편에서 눈물을 쏟으며 걸어오던
노인 이야기로 시작되는
죽음의 성찰('삶의 마지막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꽤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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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10-30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생각보다는 젊은 분이었군요, 허삼관매혈기를 읽을 때는 왠지 20세기 초 정도가 배경이라고 느꼈던 것 같은데, 전인권 공연도 보실만큼 젊다니! 신선한 충격. ^-^

로드무비 2008-10-30 21:25   좋아요 0 | URL
치니 님, 1960년생이니 젊고 말고요.^-^


2008-10-31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31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0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9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