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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phic 그래픽 4호 - 2007
프로파간다 편집부 엮음 / 프로파간다(잡지)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한국 북디자이너 21인의 인터뷰가 실렸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주문했다.
책을 주무르는 사람들의 얼굴과 생각이 궁금했던 것인데
계간 그래픽 4호는 나의 그런 기대를 제법 충족시켜 주었다.
이번 호는 '동시대 한국 책의 초상'이라는 에디터의 짧은 말 이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21인의 인터뷰와 대표작품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북디자인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묻는 것을 시작으로 질문은 총 열다섯 개인데
'최근 한국 북디자인의 트렌드에 대해 저항감을 느끼는 편인가?'라는 항목에는
대부분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
요즘 책 표지에 손글씨가 너무 많이 사용된다는 것과
일러스트레이션의 남용 문제를 지적한 사람이 많았다.
물론 평소 독자적으로 그런 의문을 품고 고민해온 사람도 있겠지만,
'저항감을 느끼는 편인가?'라는 식의 부정적인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이 앵무새처럼 그 문제만 지적하는 것도 실망스러웠고.
'북디자인이 다른 그래픽디자인과 다른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하는 질문에
<통섭>이나 <희망의 밥상>을 디자인한 '사이언스북스'의 정재완은
이렇게 명쾌하게 정리했다.
--잡지가 '초저녁 명동거리'이고 포스터가 '63빌딩'이라면 책은 '중랑구 망우1동 578번지'다.
잡지나 포스터의 세계와 달리 책의 세계는 관찰하고 사유하지 않으면 좀체 열리지 않는다.
(292쪽)
그는 타이포그래피를 자신의 작업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도,
'넘치지 않을 것, 없어도 된다면 없애기, 오해 사지 않기'라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고.
'책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스스로 우러나오는 이미지가 있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요즘 대부분의 책표지들처럼 컬러풀하고 요란해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기형도 전집>(문지刊)과, <치즈와 구더기>라는 인상적인 표지를 디자인한
아트디렉터 조혁준은 '당신을 자극하는 사람은?'이라는 문항에 이렇게 대답했다.
--조나단 반브룩(Jonathan Barnbrook)의 최근작을 자주 접하기 힘들다는 게 아쉽다.
내가 보기에 그는 자신의 작업을 디자인이 자본에 비굴하게 봉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자본에 굽신거리는 디자인에 대한 거부는
자유롭고 건전한 실험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416쪽)
'자본에 굽신거리는 디자인'이라는 표현이 주는 시원함이라니......
세련도 좋고 예술도 좋고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마케팅 차원도 좋지만,
자신의 작업을 좀더 넓고 깊게 고민해 보는 북디자이너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들의 대표작으로 엄선된 책 표지들이 얼마나 근사한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혹은 놓치고 있었던 책들을 무더기로 발견한 건 의외의 수확이라고 해야 하나,
주머니 사정으로 보면 재앙이라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