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시대에 어떤 생활양식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단일한 기준을 제시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름을 틀림으로 억압하지 않는 문화라면 그 가치를 인정하고, 평가보다 만남과 소통을 강조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현대인에게 다른 문화에 대한 앎과 체험은 문화적 삶의 조건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세계 모든 문화도시에 가보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관광만 하고 싶은 도시가 있는가 하면, 여행도 하고, 살고도 싶은 도시가 있다. 관광은 말 그대로 다른 지역문화의 빛만을 보는 것이라면, 여행은 그곳 문화의 빛과 어둠을 ‘따라체험’하는 것이다. 아마도 여행 후 살고 싶은 도시가 진정한 문화도시일 것이다. 문화는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생활양식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광주는 어떤가?
광주를 관광하고 싶은 손님이 오면 나는 언제나 소쇄원과 운주사로 안내한다. 담양 소쇄원이 한국 민간정원의 원형을 간직한 문화유산이라면, 화순 운주사는 불국정토의 이상세계를 천불천답으로 승화한 민중미학의 고귀한 자산이다. 그런데 나는 광주를 여행하고 싶은 손님에게는 5·18 국립묘지와 함께 광주극장을 소개한다.
광주극장은 광주읍이 광주시로 승격된 1935년 10월1일 개관한 이후 광주의 빛과 그림자를 동행한 영화관이다. 그 당시 일본인이 설립한 광주좌나 제국관은 일본 영화와 연극만을 상영하고 있었는데, 광주극장은 한국 고유의 공연 형태였던 악극단과 판소리 등을 극화한 창극단을 중심으로 상영했다. 해방 후 광주극장에서는 전남지역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결성식, 김구 선생의 강연회, 시민단체들의 집회, 음악회, 연극제, 심지어 졸업식까지 열렸을 뿐만 아니라 야학도 운영되었다. 광주극장은 한국 문화의 자존심과 자율성을 위한 문화교육운동의 전당이었으며 시민문화예술이 새롭게 형성되는 공간이었다.
광주극장은 현재 단관극장으로서 862석을 갖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예술영화전용관이다. 전국에 걸쳐 거대한 멀티플렉스들이 즐비하지만 서울, 부산, 대구, 인천 어디에도 광주극장 규모의 단관극장은 없다. 하루에 3∼5편, 1년에 100편 이상의 영화를 상영하는 광주극장에서 우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거의 모든 문화와 만나서 소통할 수 있다.
문화 간 만남과 소통의 장소인 광주극장이 자생력을 가지려면 하루에 최소한 150명이 영화를 관람해야 한다. 그러나 광주극장으로 문화여행을 오는 사람은 하루 평균 60명 정도다.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예술영화관으로 선정되어 지원을 받고 있다지만, 아시아 문화중심 도시를 지향하는 광주가 자랑할 일은 아니다. 자기가 사는 마을의 골목길도 돌아보지 않고 세계 일주 관광을 떠나는 사람들, 자기가 사는 도시의 영화관도 모르면서 고흐, 세잔, 피카소, 마그리트 그림 해석에 우쭐대는 사람들이 키 재기를 하느라 분주한 곳이 문화도시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초자연적인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제7의 예술, 예술과 철학을 연결하는 사잇길, 혹은 문화 민주주의의 전사로 규정하는 학자가 많지만, 모든 영화가 그런 것은 아니다. 자본에 의해 조정되는 제작사, 매니지먼트사, 배급사,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예술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순진한 것이 아니라 무지한 것이다. 이들의 논리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예술영화가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만, 실제로 예술영화가 상업영화보다 재미있다. 상업영화가 감각만을 즐겁게 해주는 영화라면, 예술영화는 몸과 마음, 가슴과 머리를 즐겁게 한다. 광주극장으로 가는 여행이 언제나 즐거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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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땅의 소녀와>, <당시>, <경계>......
검색해 보니 내가 지금 꼭 보고 싶은 영화들은 어쩌라고 전부
광주극장에서만 상영하고 있다.
소쇄원과 담양 떡갈비를 엮어서 떠나는 여행.
언젠가 하루 광주극장에 종일 죽칠 것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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