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너무 되어버린 사람
어딘가 가까워지지 않는 구석이 있다.

--가장 무관심한 듯한 미소, 무비판적인 미소.
세상만사를 다 경험한 듯한 초연한 미소, 거의 조소에 가까운 미소...
그것은 기실 하나의 느낌에 불과하면서 달관으로 가장한 부도덕한 미소.

--하나하나의 사물이 참된 제 얼굴 그대로 마음에 비칠 때,
비로소 그 각각의 사물은 우리 마음속에서 각기 '자신의 장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외계의 사물 각각이 우리 마음속에서 '각자의 장소를 갖는다'는 것은
우리가 진실함과 아름다움과 영원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무목적의 달리기가 진보로, 칠면조의 볏 같은 변화가 개선으로,
잡무와 외적 의견의 여파 속의 생활이 활동으로, 복종적이고 충실한
환경의 노예가 적응으로, 무례한 산만함이 쾌활로......가장되고, 오해되고......
모름지기 좀 더 후퇴, 후퇴하라.
좀 더 물러나서 바라보라.

                          <現代詩學> 1989년 8월호, 김달진 미발표 유고 단상 중에서







뜬금없이, 옛날 묵은 잡지를 갑자기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오래 전의<현대시학> 몇 권을 간직하고 있는데
좀 전 그 중 한 권을  펼쳤더니 1989년 6월 2일에 작고한
김달진 시인 추모특집 기사가 실려 있다.

김달진 시인의 시를 유념해서 읽어본 기억은 별로 없다.
현암사 刊 <장자>와 <법구경>의 빼어난 역자로 그는 내게 뚜렷이 입력되어 있을 뿐.

1990년 6월 초, 정릉 언덕배기 상정사라는 절에서 제1회 '김달진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햇살이 눈부신 날이었다.
수상자는 박태일 시인.
평소에도 기교와 장식이 배제된 그의 덤덤한 시들을 좋아했는데
먼 발치에서 지켜보니 선선한 시인의 얼굴은 더  좋았다.
유족(사위는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고려대 최동호 교수)의 부탁으로 절에서 마련한
점심이 맛있었던 기억도 나고.

불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금강산의 한 절에서 수도생활을 직접 했던 
김달진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올 6월 초 책이 발간되었다.
<큰 연꽃 한 송이 피기까지>.
올해 제18회 김달진 문학상 시 부문은 엄원태 시인이 수상했단다.
얼마전 내 페이퍼 카테고리 '오늘 읽는 시'로 소개한 적이 있는 시인이다.

짧고 긴 서른 몇 편의 미발표 단상 중에서 특히 입에 착착 감기는 넷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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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6-29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도생활의 하셔서 그런지 4편의 시 내용이 사람의 마음 속을 통찰하는 느낌이
드는군요..

로드무비 2007-06-2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 님, 당시엔 제가 너무 어려서 그런지 노승 같은 이 시인의 시들이
눈에 잘 안 들어오더군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3=3=3
이상하게 시보다 단상이, 우리 말로 옮긴 글들이 더 좋아요.
글고, 단상에서 통찰 빼면 남는 게 있나요!.^^*

비자림 2007-06-29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름지기 좀 더 후퇴, 후퇴하라.
좀 더 물러나서 바라보라.


이 문장을 몇 번 읽어 보고 갑니다. 로드무비님, 예전에 님의 페이퍼 정말 좋았어요^^

네꼬 2007-06-2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름지기 좀 더 후퇴, 후퇴하라.

저도 이 구절이 좋아서 댓글에 쓰려고 했는데. (비자리님, 저 베낀 거 아니에요. ㅠㅠ)

로드무비 2007-07-03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 님, 비자림 님, 컴이 자주 다운되어 댓글 달기도 힘들어요.
전 뭐 이이상 더 후퇴할 것도 없답니다.=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