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그인 2004-10-19  

방황은 방황일 뿐 고통은 고통일 뿐
오늘 땀나게 일하던 중 우체부 아저씨의 등기 소식을 전화로 받았습니다.
그러곤 도무지 제대로 일이 안 되더군요. 그 꼭, 무슨 데이트 약속이라도
있는 것 같이 두근거리는 마음이랄까...^^
퇴근길에는 절로 걸음이 빨라지더군요.
지하 골방 앞 창고문을 열고 소포를 찾았습니다. 그 누런 소포봉투, 대체
얼마만에 받아보는지, 너무도 반가워 저는 약간 휘청거렸더랬죠.
뭐랄까, 까닭없는 그리움이 왈칵 밀려든...
알 수 없는 감정을 잠시 물리고 간신히 가위를 찾아 조심조심 봉투를 여는데,
으...ㅜ.ㅜ
[로빈슨 크루소 따라잡기]!! 그땐 도무지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로드무비님의 그 귀여움이란....이, 이, 알 수 없는 웃음에, 그리움(?)에, 묘하게
섞여든 오만 가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전 사람의 정이 몹시도 그리웠나 봅니다.
이게 뭐지..하며 그 책을 뒤져보는데 단박에 영화 [캐스트 어웨이]가
떠오르지 뭡니까. 언젠가 무심코 봤던 영화라 이름을 잊어버린
그 배구공 말이죠. 이 섬에서 살아나가기 위해선 진작 이런 책을 사두어야
했는데, 님께서 무슨 두레박에 담긴 선물처럼 그걸 보내주시다니...

그리고 그 속에 든 엽서, 게다가 짐 모리슨의 엽서라니...대체 이 아줌씨는
사람을 왜 이리도 황망하게 만드는 거지...참말로...ㅜ.ㅜ
그 엽서에 담긴 로드무비님의 세심한 글까지...겨우 저녁을 먹으면서도 내내
님의 서재 구석구석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서재 지붕 오르쪽에 터덜터덜
걷는 소년의 모습이 눈에 걸렸죠. 그래, 로드무비님은 저렇게 세심한
사람이군. 그러니 그렇게 이쁜 딸도 낳았지.

국악방송을 켜두고 조용히 [광야]를 보았습니다.
물론, 이따금 담배도 한 개비씩 피워올리며 말이죠.
아, 녹차(블루님의 충고!!)도 마셨군요.
아...소중한 추억 한 점을 님 때문에 다시 만난 듯 했습니다.
글쎄요, 그건 딱히 추억이랄 것도 없는 저만의 어떤 느낌일지 모르지만,
왠지 추억이라 해 두고 싶군요. 님과 함께 한 추억이라고 말이죠.
약 두어 시간에 걸쳐 다 읽고 난 후, 정옥의 이 말은 도무지 잊히지가 않네요.
"조선 남자들이 여자에게 해준 게 뭐예요?"
석이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죠.
제가 유니섹스니, 뭐니 떠들어도 남자인 건 분명하겠죠?
그래서 결혼을 애써 피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정옥, 고통스럽더라도 남자를 믿지 말라.
믿을 건 너 자신 뿐.
'방황은 방황일 뿐
고통은 고통일 뿐'

책을 덮고 그대로 잠으로 떨어졌나 봅니다. 재우가 만주 벌판에서 야학을
열며 고생하고 있는데 말이죠. 일본 경찰을 죽이고 어머니의 무덤에
풀도 자라기 전에 도망치는 재우의 모습이 인상에 남았는지 꿈 속에서
저는 자꾸만 어디론가 도망치는 듯 달렸습니다.

로드무비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어찌해야 제가 이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을지...꾸벅.
 
 
urblue 2004-10-19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굉장한 일이 있었던 듯...
흠, 저 모르게 두 분이서 뭐 하시는 거에욧!!
'대체 이 아줌씨는 사람을 왜 이리도 황망하게 만드는 거지...참말로...ㅜ.ㅜ'
요 구절 맘에 쏘옥~
노웨이브님 좋으시겠어요. ^^

비로그인 2004-10-1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클.
블루님...굉장한 일이죠, 제겐.
도시 볼 수 없던 [광야]를 로드무비님이 보내주셨으니...
제가 그만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횡설수설 긴 방명록을 남겼네요. ^^

로드무비 2004-10-20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이런, 너무 늦게 봤네요.
nowave님은 다 낡아빠진 만화 두 권에 웬 호들갑을......
짐 모리슨 엽서는 이번에 남편이 출장갔다오면서 영국에서 사온 엽서들 중에
한장 있던 거라구요.흥=3 아줌씨가 뭐가 어쩌고 어째요?
책이 잘 갔다니 다행입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기분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