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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아 네가 태어나던 해에 아빠는 이런 젊은이를 보았단다
신문「청년의사」편집국 엮음 / 청년의사 / 2003년 9월
평점 :
졸업 후, KBS 병원 24시 같은 의료 건강 프로는 보지 않게 됐다. 르포 성격인 병원 24시는 의료진과 환자를 초점으로 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너무 한쪽으로만 편집됐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선, 병원사람들은 단지 의료기술을 하는 기술자일 뿐이고 환자만이 온갖 상념과 고민을 안아야 하는 것처럼 비친다.
환자가 힘든 만큼 병원에 함께 있는 사람들도 힘이 든다. 그들도 흔들릴 때가 있다. 환자의 기구한 사연에 흔들릴 때도 있고, 안타까운 치료결과에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 때도 있다. 환자와 같이 울 때가 많은데, 방송에선 메스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을 가진 자와 주사바늘 하나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자를 대비시켜 버린다.
병마의 싸움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만은, 환자만 너무 흔든다. PD로써는 환자들을 흔들어 보는 쪽이 높은 시청률 쪽이라 생각한 것 같다. 오늘 내가 잡은 책은 의사들이 스스로를 흔들었다. 한 발짝 흔들거렸으므로, 한 발 더 내 딛는 균형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한 발짝 흔들거리며, 낡은 먼지도 털어내는 모습은 <청년의사의 눈물>과 <114병동에서>로 봤다. 수련과정중에 만난 어려운 환자들을 보면서 아쉬워하는 것이 와 닿는다.
‘각혈로 기도가 막혀 숨이 끊어져가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그 환자의 눈을 잊을 수가 없다. (p.108) 벌서 10년이 더 된 일이다. 어차피 돌아가실 분이었는데, 하는 생각을 애써 해봐도 묵직한 마음 한 구석이 가벼워지지 않는 것은 왜 일까?(p.112)’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유진아 네가 태어나던 해에 아빠는 이런 젊은이를 보았단다.>는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서해 교전에서 부상당한 의무병 이야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듣자 울컥했다. 멋진 놈..... 그런데, 이게 뭐냐.(p.45) 너는 반드시 살려낸다(p.46)’고 읊조리는 필자를 보면서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한 우리 젊은이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 같은 불량 의료인에게도, 증에 찍힌 면허자격으로 대하시는 친척들이 많아 내심 부담스럽던데, <명의>와 <병원놀이>, <출산, 아름다운 고통>은 그 의사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의사 아닌 하루, 이틀>, <꼽추물고기>에서는 의사들의 사회참여에 관한 부분이 보인다. 의약분업 이후, 의사들이 사회참여에 소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다행이다 싶다.
개인적으로는 <두 남자가 가슴을 부둥켜안고>가 좋았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제 아내를 살려주시다니......(p.149)
방사선학적 중재 수술을 시행하거다 영상 진단법으로 질병을 진단한 환자 혹은 그 보호자 중에서 나를 꽉 껴안으며 감사의 뜻을 전한 사람은, 20여 년이라는 의사 생활 중에서 이 50대 남자가 처음 이었다. (p.150) 병든 아내를 귀하여 여겨 나처럼 별 볼일 없는 의사에게 매달리는 50대 중년 남자의 모습(p.155)'이 나에게도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심사평에서 보면 ‘의사가 바라본 환자 얘기가 아니라 인간이 대하는 인간의 이야기(p.280)’란 말이 나온다. 병원이라고 뭐 특별한 사람들만 일하는 곳이 아니다. 사실은, 모두 같은 사람임을 담담히 전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외과의가 직접 쓴『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보다 극적이진 않다. 시골의사님의 글이 사건을 중심에 두고 솔직한 감정을 엮었다면, 이 책은 작은 사건에도 자기반성과 자아성찰이 일정량 할당되어야 있다. 내가 예상한 대상작과 심사위원들이 뽑은 대상작은 그래서 차이가 심한 것 같다.
다분야 전문의들이 쓴 수기라, 더 다양하고 극적일 것으로 기대한다면 이하가 된다. 그러나 기대이하로 말하기엔, 나 먼저 반성해야 할 점들이 눈에 보여 안되겠다.
의사들이 인문학에 약하고, 글재주 없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다. 적어도 이 책의 필자들은 작은 체험에도 깊은 사유를 했으며 읽는 이에게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병원이란 곳은 누구나 갈 수는 있지만, 누구나 가고 싶어 하지 않은 곳이다. 그 곳에 의사라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냉정한 이성을 가져야 되는, 따뜻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 오늘도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