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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싸이코지?
싸이코 짱가 지음 / 자유로운상상 / 2004년 12월
평점 :
나는 미녀였어.
한동안 우울했다. 엄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 지다보니, 엄마의 우울이 전염되어 버린 것이다. 감정조절장애는 다른 정신과 질환에 비해 쉽게 전염되고, 쉽게 치유되어 편히 흘러간다. 그 점을 잘 인지하고 있음에도, 막상 덮쳤을 때는 정신을 못 차렸다. 비관 그 자체를 끌어안고 울었다. 책을 좋아하는 고로, 이럴 때는 유쾌하거나 가벼운 책을 읽으면 좀 살만해진다. 안타깝게도 그 때는 이 책이 안보였다. 시간이 약인지, 우울의 바닥을 치고 나서야 사흘 만에 평상심을 찾았다.
일반적으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서도 정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p.191)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흔들리나 보다. 오히려 그 점이 정신ㆍ심리학의 필요충분조건 일 것이다. 책에는 이런 말을 써놓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집착, 의심, 공격성, 자신감, 우울함, 이기심, 변덕, 현실 왜곡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특성들이다. 만약 그것들이 불필요했다면 오랜 인류의 진화 과정 속에서 사라졌어야 한다.(p.205) 안심했다. 그동안 나는, 선량인의 범주에서 조금 벗어난 줄 알았다.
한 가지 더 안심됐던 것이 있다면 밑의 문장이다. 성격을 뜻하는 영어 단어 Personality의 어원은 그리어 Persona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원래 고대 그리스의 축제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쓰고 나오는 신의 얼굴 가면을 뜻했다. (중략) 우리는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가면을 써야 한다. (중략) 실제로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성격은 일관적이지 않다. (p.95) 서재 속의 나와 현실 속의 나는 심각하게 괴리되어 있는 것이다.
연쇄살인범 에디 게인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흥미로웠다. 그는 <양들의 침묵>에 실제 모델이라고 한다. 반사회적 인격을 설명할 때 나오는데, 거기에 유영철도 따라 나온다. 반사회적 성격장애자들은 겉보기에는 매우 밝고 명랑한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양심의 가책이나 부담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유영철도 자기가 토막 낸 시체를 택시를 타고서도 천연덕스럽게 택시기사와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p.84) 이런 살인마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다니, 나도 너무 천연덕스러운 것 같긴 하다.
서재인들에게 부탁고자 하는 바가 있다. 내가 우울한 페이퍼를 쓰더라도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시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정신의학자들은 ‘우울증’은 감기와 같다고 한다. 감기에 거리지 않는 사람이 드문 것처럼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감기에 걸렷다가도 쉽게 낫는 것처럼 우울증 역시 언제 그랬나 싶게 나아 버린다. (p.191)
그동안 써뒀던 서재 글을 읽다보면, 내가 순환성 우울장애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난 이 시대의 미녀였다. 완역하자면 나는 정신 건강 미녀(?)였던 것이다.
평상심 상태에서 읽으니, 이 책이 무척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학술적인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전공 책의 설명 10줄보다 더 없다. 저자가 블로그에 연재했던 것을 출판해서 그런 것 같다. 너무 술술 넘어간다.
그래도 저자의 정신과 질병에 대한 비유에는 후한 점을 주고 싶다. 이 책은 내 속에 숨겨진 괴상한 내 모습들에 대한 자폐적 관찰기(p.5)라고 했으니까.
ps. 원래 제목은 '나, 싸이코 아니야.' 였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