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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이 책의 리뷰는 천천히 쓰겠노라고 다짐했다.
첫째 이유가 내 돈 주고 산책이 아니었다. 공짜로 받은 책은 리뷰쓰기 껄끄러울 거라는 지인들의 말을 쌩까고, 직접 저자를 압박했다. 내 이름까지 써준 싸인 본으로 뜯어냈 것 만, 힘들긴 매 한가지다. 저자가 아닌 친구로부터 받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리뷰쓰기가 쉬워질까? 아닌 것 같다.
다른 리뷰들이 너무 잘나주셔 버렸다. 원래 내 리뷰들은 뭘 그리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나도 읽었다는 기록일 뿐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콩쿠르쯤으로 여긴 것은 아니므로 욕먹는다 해도 크게 맘 쓰진 않겠지만, 조금 주눅 든 건 사실이다.
세 번째 이유, 좋은 리뷰까지는 좋은데 나는 그들의 리뷰에 별반 동의 하지 않는 것이 더 문제다. 이럴 땐 일종의 비평리뷰라고 우겨야 한다. 그리고 출판시일이 오래 지난 후, 적들이 조용할 때 기습적으로 뿌리리라.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끝까지 읽었다는 기록이 필요하고, 여전히 성실하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썼던 나의 잡설스런 리뷰가 누군가에게 60원어치 Thanks to 된 적이 있었다. 막 쓰는 리뷰지만 사실은 성실한 독자임을 아시고 하느님께서 적립해 주신 거라 믿는다. 찌질 하지만 성실한 독자, 악의 없이 나불대는 리뷰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외국인 의사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 내용인데, 의사는 본질적으로 절대적 권위를 가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유인 즉, ‘내 앞에서 옷 벗어봐’라고 말할 수 있는 직업은 의사뿐이라는 것이다. 부모 앞에서는 보여주지 못하던 부위도, 의사 앞에서는 보여줘야 살 수가 있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누군가에게 나의 맨 속살을 보여 준다는 것은 상당한 낮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분, 품위까지 날려 버리셨다. 먼저 속살을 보여주시면 어쩌자는 말인가. 대중을 위해 쓴 글임을 알고 있지만 안위가 조금은 걱정된다. 깊이 생각한 얘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의 권위는 있어야 하지 않을 까 싶다. 너무 쉽게 전달하려다 보니, 힘이 너무 빠져 버렸다. 잘못된 의료지식에 옳은 대안을 말해주시는 것까지는 좋지만, 이렇게 왔다갔다 해서야 중심이 없어 보인다. 인용된 책 들을 다 읽어보고 참고한 것이겠지만, 여러 책에서 조금씩 떼어 와서 자기 책으로 얽어 만들었다는 의혹을 받지 않을 까 염려된다. 다른 분들은 가식 없이 쉽게 썼다고 좋다고 하시는데, 난 물 타듯이 쓴 거 아니냐고 충고 해주고 싶다. 전체적으로 밍숭밍숭하게 읽힌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책이 출판되기 전에 블로그를 통해 글의 대부분을 봤기 때문인 것 같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막상 사서 보았을 때 감동이 덜했던 것처럼 말이다.
저자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비해, 책에는 좀 얇게 실린 것 같다. 유머까지 촘촘히 박아 두셨는데, 딱 2% 부족하다.
이렇게 맘먹고 못난 척하고 리뷰 써서 그렇지 사실, 이 책 좋은 책이다. 너무 쉬워서 독자를 우롱하는 수준의 책을 쓴 거 아니냐는 시덥잖은 항의는 나 혼자만 하겠다. 읽어보면 유익한 부분을 많이 찾으시리라 생각한다.
ps. 쓸 권리 주장하며 뻔뻔스럽게 리뷰를 올리는 이 얍삽한 독자도 있습니다. 그러니, 부끄러워하시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