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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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거창한 질문인가. 생각해 보면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향하는 쪽의 끝에는 행복과 구원이 있다. 오롯이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이에게 세상과 다른 사람의 삶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가족, 이웃, 사회와 적당히 어울리며 살아야 한다. 사는 건 이렇게 어렵다. 나쓰메 소세키의 『문』에 등장하는 소스케와 오요네 부부가 바라는 삶도 그게 다르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지만 일요일에 늦잠을 자고 목욕탕에 다녀오고 동네를 산책하는 일만으로 충분했다. 바느질하는 아내와 한가롭게 누워 잡지를 읽는 남편의 모습. 비 오는 출근길엔 남편 소스케의 구멍 난 구두를 보며 하나 장만해야 한다고 거드는 아내. 모든 게 평화로워 보인다.


소스케의 일상은 단조롭다. 출근과 퇴근 후 오요네와 저녁 식사와 짧은 대화. 부족한 게 없는 듯 보이지만 허전함이 느껴진다. 주인집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소리에 허전함의 원인이 바로 아이였다는 걸 알았다. 소설 초반에 아이에 대한 계획이나 언급이 없어 혼자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복선처럼 깔리는 작은 집과의 문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소스케의 태도는 『산시로』와 『태풍』 속 등장인물과 비슷하다. 어떤 다급함이나 간절함은 찾기가 어렵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다르게 흘러가는 게 삶이라는 걸 아는 것처럼.


고요한 풍경 같았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부부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소스케의 남동생 고로쿠의 거처였다. 고로쿠는 아버지의 죽음 후 숙부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집과 유산을 숙부가 관리했고 소스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숙부가 죽었고 숙모는 더 이상 고로쿠의 학비를 지원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고로쿠는 형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기를 바랐지만 소스케는 차일피일 작은집 방문을 미루고 있었다. 고로쿠가 자신처럼 대학을 그만두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딱히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오요네도 다르지 않았다. 소스케를 채근하는 대신 남편의 의견에 동조할 뿐이다.


고로쿠는 오요네가 화장대를 놓고 쓰는 방으로 옮겼고 당분간 숙모가 학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자신의 공간이 사라졌지만 오요네는 불만을 말할 수 없다. 고로쿠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결석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일이 잦다. 그런 고로쿠에게 형과 형수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 모습은 뭐랄까 선을 긋는 것처럼 보인다. 지루하다 정도는 아니지만 평탄하게 흐르는 일상에 작은 변화가 찾아온다. 주인집에 든 도둑이 소스케의 집 뒤꼍에 서류함을 버리고 간 것이다. 물건을 돌려주는 일을 계기로 주인인 사카이와 교류가 잦아진다.


사카이의 풍족한 삶,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모습과 소스케와 오요네의 단출함을 비교하면서 그들 부부의 과거를 들려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부유한 대학생이었던 소스케, 친구의 누이로 만난 오요네. 둘은 점차 친밀해지고 친구가 병을 얻어 요양을 떠난 곳까지 소스케는 찾아간다. 그 이후 소스케는 친구를 배신하고 학교에서 퇴출당하고 부모를 버렸다. 짐작했겠지만 오요네는 누이가 아닌 아내였다. 그들은 그렇게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유산과 아기의 죽음. 오요네는 그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 믿었다.


그들의 생활은 폭이 좁아질수록 더 깊어져갔다. 그들은 육 년 동안 세상과 산만한 교섭을 하지 않은 대신 육 년의 세월에 걸쳐서 서로의 가슴을 파냈다. 그들의 생명은 어느새 서로의 밑바닥에까지 파고들었다. 두 사람은 세상에서 본다면 여전히 두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볼 적에는 도의상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였다. (172쪽)


육 년이라는 시간을 둘만을 바라보며 하나로 살아온 그들에게 고로쿠의 미래와 사카이와의 교류는 뿌리를 흔들 정도의 어려움은 아니었다. 사카이의 입에서 몽골에서 온 동생과 동생의 친구 이름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친구는 바로 오요네의 전 남편이자 소스케의 친구였다. 그들을 소개해 준다는 사카이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없었던 소스케는 전전긍긍한다. 관청 일도 집중할 수 없고 오요네에게 말할 수도 없다. 소스케는 병가를 내고 산사로 도망친다. 소스케의 행동은 비겁하다. 소세키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어쩌면 삶의 위기는 가능하다면 모면하는 게 좋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산사에서 지내는 동안 소스케가 얻은 건 무엇이고 깨달은 건 무엇일까.


제목인 『문』이 의미하는 건 내면의 ‘문’이었다. 저마다 하나씩 간직한 자신만의 문. 그 문을 열 용기와 힘은 결국 스스로에게서 나온다. 누군가 문을 열고 지나갈 것이고 누군가 문을 외면할 수도 있다. 소스케처럼 처량하게 그 옆을 지킬 수도 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문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나는 문을 열어달라고 왔다. 그렇지만 문지기는 문 안쪽에 있어서 아무리 두드려도 끝내는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 단지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힘으로 열고 들어오너라”라는 목소리만 들려왔을 뿐이었다. (264쪽)


그는 그 문을 통과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문을 통과하지 않고 끝날 사람도 아니었다. 결국 그는 그 문 아래에 꼼짝달짝 못하고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265쪽)


『산시로』와 『태풍』보다는 좋았던 소설이다. 담담하고 슴슴한 매력을 지닌 소설이다. 가을의 풍경으로 시작하는 『문』은 가을에 읽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가을을 지나 겨울에 접어들어 새해를 맞이하고 봄을 기다리는 일의 반복이 인생이라는 걸 알려준다고 할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말로 기뻐요. 이제 봄이 되어서” 오요네의 말에 “응, 그렇지만 또 겨울이 올 거야”라고 대답하는 소스케의 말은 묘한 여운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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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4-28 0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을에 읽으면 좋을 소설!
기록해 둡니다^^

자목련 2023-04-28 09:05   좋아요 2 | URL
네,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읽어도 좋을 것같아요!
 

커피와 시는 제법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시는 어렵고, 커피는 쓰다. 둘 다 뭔가 첨가하면 달콤해진다. 시에는 무얼 첨가해야 달콤해질까. 커피에 대해 모르지만 로스팅의 단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시는 어떤 단계를 거쳐야 조금 더 친근하고 조금 더 쉽게 만날 수 있을까.


알라딘 택배비 인상으로 책을 구매할 때, 그러니까 한 권의 책을 사고 싶을 때 주문을 고민하고 신중하게 생각한다. 박소란의 시집을 고르면서(고른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커피 쿠폰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 알라딘에서 지급하는 커피 쿠폰과 영화 쿠폰.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는걸. 코로나 이후로 영화관에 갈 용기를 내지 않으므로 커피를 주문하기로 했다. 현대문학 PIN 시리즈 시집과 드립 백 커피를 말이다.





커피는 아직 마시기 전이고 시집은 조금 읽었다. 슬픔, 그림자, 어두움, 우울이 있다. 시집의 제목인 있다는 그런 의미인 것 같다. 시의 제목마다 아는 있다를 붙여 읽었다. 어렵지만 내 마음을 더하면 시는 조금 더 친절해지지 않을까 싶다. 어제 비가 온 탓으로 이런 시를 골라본다.


움푹 팬 곳에 생긴 웅덩이,

거기 사는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그럴 리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벽을 만든다

벽 뒤편 얼기설기 이어진 골목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벽돌 하나가 쫓아온다 어깨를 툭툭 치더니

금세 앞질러 가버린다 보란 듯 멀리 날아가버린다


이상하다 생각할 틈도 없이


풀이 말을 건다


풀과 말을 한다

요즘은 좀 어때? 물으면 그냥 그렇지 뭐, 적당히 얼버무린다


얼버무린 게 나인지 풀인지

풀은 자란다 별일 아니라는 듯


다음 날이면 벌써 바싹 시들어 있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것들, 거기 사는 누군가


문 앞에 서 있다

새까만 먼지를 뒤집어쓴 채

수건을 들고 달려갈 나를 기디라고 있다


기다리지 마

심통 부리듯 나는 괜히 동네 마트나 기웃거리고

늦게

되도록 늦게


문을 연다


눈을 감고 조용히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들

그러나 아무것도 불타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어느 날부턴가

불이 말을 건다 (「비 온 뒤」, 전문)


비 온 뒤, 당신의 아침은 어떤가 궁금하다. 봄이라고 꽃들은 지고 연두가 가득한데 날씨는 심란하다. 춥다고 쌀쌀하다고 말하는 이들.이상한 게 어디 날씨뿐일까. 그래도 봄이니 봄비가 내렸으니 뭐든 그 비를 맞고 더 쑥쑥 자라겠지. 나도 끝을 알 수 없는 곳까지 자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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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울지 않는 밤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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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바닥이라고 이제 일어서면 된다고 나를 안심시키며 살았다. 한 번에 온전하게 설 수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천천히 일어서다 넘어져도 괜찮다고. 툭툭 손을 털고 기지개를 켜면 될 거라고 나를 위로했다. 그런 날들이었다. 울지 않으려고 절망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 시간이 나를 성장시켰고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제 도무지 모르겠다. 바닥이라 여겼던 시간은 바닥이 아니었고 곡선의 마음은 어디론가 튕겨나가기 일쑤다. 삶이 쉽지 않다는 건 오래전에 알았지만 사는 게 버거워 모든 걸 놓아버리고 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둘러보면 나의 삶은 오히려 평온한다는 게 어디론가 숨고 싶게 만든다.


김이설의 단편집 『누구도 울지 않는 밤』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나는 아직은 괜찮다고 그러니 푸념이나 절망은 잠시 넣어두라고 말이다. 물론 고통과 절망은 개인적이어서 평균을 찾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김이설의 소설 속 인물은 저마다 시련을 안고 살아아간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이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고통과 시련의 시작이 가족이라면 말이다.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원가족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사느라 바빠 자녀를 돌보기 어려운 경우,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 가까운 형제나 돌봄이 필요한 자녀 중 첫째. 이모나, 언니 누나가 그 대상이 된다. 「모면」의 ‘소영’도 엄마보다는 이모와 친했다. 이모가 된 지금 형부의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육아에 지친 언니를 도와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봄의 주체가 돼버렸다. 부모인 언니와 형부 대신 퇴근 후 조카를 돌보며 이모와 엄마의 관계를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몹쓸 짓을 당한 이모, 그 모습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투영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비밀을 공유한 사이라는 이유를 대며 모면하는 건 아닌지.


가족은 쉽게 끊어낼 수 없기에 더욱 힘들다. 그런 이유로 가족이 되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영원한 결속을 바라며 이별을 원하지 않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막상 가족의 형태를 갖추고 살아가지만 그것이 완전한 해답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내일의 징후」 속 동성 연인 ‘소혜’와 ‘성은’은 마주한 현실과 「가족의 일생」에서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은주’와 가족이 된 ‘정균’이 짊어진 가장의 무게는 너무 힘들었다. 이유 없이 가출을 하는 은주를 기다리는 정균 곁에는 딸 예령만이 남았다. 회피한 대화의 부족일까, 아니면 무엇이 가족을 해체하게 만들었을까.


처음엔 그랬다. 같이 살게 되면 같은 걸 꿈꿀 줄 알았다. 같이 있으면 같은 열망을 품을 줄 알았다. 같이 사는 것이 완결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내일의 징후」, 53쪽)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그게 가능한 사람인 얼마나 될까. 어린 시절 가정을 버리고 떠나 늙고 약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환기의 계절」 속 엄마를 자매는 납득할 수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엄마를 보면서 큰 딸인 ‘나’는 자신의 상황을 돌아본다. 외도를 당당하게 밝히고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 자신과 같은 처지로 딸을 키우고 싶지 않기에 부정하고 외면한다. 아버지의 정체성과 오랜 시간 친구로 지냈다는 엄마의 사정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족은 무엇일까.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형태만이 가족일까.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자신의 성장의 결핍이 큰 잘못도 아닌데 말이다. ‘나’에게 닥친 시련은 쉽게 치유되지 않겠지만 ‘나’는 조금 더 유연해질 것이다. 계절은 순환하고 삶은 멈추지 않으므로.


이제는 예전의 일상을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다음 계절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환기의 계절」, 154쪽)


이처럼 가족은 다양한 이유로 해체될 수 있다. 해체가 잘못도 부족도 아니다. 그 자리를 채울 누군가가 있기 마련이다. 삶이란 참 신기하다. 앞서 언급한 「모면」에서 엄마의 자리를 채워준 이모나, 「가족의 일생」과 「환기의 계절」에서는 자녀가 있다. 온전하게 영원할 수 없지만 내 곁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일이 삶이기도 하다. 자녀에게만 기대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원가족과 분리를 원하는 자녀를 바라보는 안타까움은 살아온 시간이 가져다준 경험 때문이다. 「긴 하루」에서 ‘유순’은 딸 ‘혜서’가 연극을 하는 남자를 사귀는 일이 그러했다. 집을 나간 혜서가 맞닥뜨릴 고단한 삶이 훤히 보인다. 자꾸만 어긋나는 딸과의 관계는 독립했던 딸이 자신의 모든 걸 정리하고 부모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계절이 바뀌는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버섯농장을 하는 엄마 곁으로 돌아온 ‘유경’은 적응이 어렵다. 경찰이 된 동창생 ‘민수’가 도와주고 있지만 버섯을 키우는 일도 헤어진 연인에 대한 마음도 힘들다. 농장을 넘기라는 민수의 부모와 그러면서도 민수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민수의 어머니.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지만 ‘유경’은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는 끝이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것이었다. 아직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계절이 바뀌는 곳」, 219쪽)


『누구도 울지 않는 밤』 속 인물을 통해 김이설이 전하고 싶은 바람이 그렇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 절망의 순간도 지나갈 거라는 믿음을 심어준다고 할까. 「「반 뗀 라 지?」속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를 기다리며 고모의 학대와 친족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임신까지 한 열여덟 ‘두연’이 다른 삶을 찾아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마지막 장면이 그렇듯, 「치유정원에서」에서 ‘나’는 아무런 설명 없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동생과 그로 인해 정신을 놓아버린 엄마와 위로가 되었고 사랑했던 연인마저 떠나고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지만 삶이 끝났지 않았다는 걸 안다.


나쁜 일을 잊을 수 있다면, 어둔 기억을 지워버릴 수 있다면, 차라리 그럴 수만 있다면, 하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언제든 나쁜 기억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어두운 상처를 피하지 않는 일이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끝에 대해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엄마가 온전치 않다고, 석우는 떠났다고, 나는 아직 연약하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치유정원에서」, 177쪽)


모든 걸 삭제하고 리셋할 수 없는 게 삶이다. 빠른 속도로 회복되거나 치유되지 않더라도 천천히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는 동안 천천히 나아지려 노력하며 살아갈 뿐이다. 김이설은 가족 안에서의 여성의 위치, 돌봄, 희생, 폭력에 대해 말하지만 날카롭고 불편한 묘사를 통해 혹독하게 각인시키는 것이 아닌 고달픈 삶을 어루만지는 연대의 손길과 마음을 들려준다. 실패, 좌절, 시련, 고통은 여전하더라도 말이다. 아직은 괜찮다는 다짐과 그게 무엇이든 할 수 있이 있다는 걸 받아들여도 된다고. 그러면 조금 괜찮아지고 나아진다고.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이 찾아 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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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즐거움에 이어 아는 즐거움이다. 한국문학을 좋아하니, 한국소설은 언제나 반갑다. 요즘 소설에서 다루는 주제나 소재가 비슷(돌봄, 여성, 연대) 하지만 읽는 일은 즐겁다. 작가마다 선택한 주제는 닮았어도 표현이나 인물의 환경 설정은 다르니까.


곧 세계 책의 날도 다가오니 아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드는 일도 좋다. 안다고 했지만 아는 즐거움은 크지 않다. 한국 문학의 젊은 작가는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고 그 소설을 이해하는 일은 버겁다. 그래도 소설은 좋고 이런 작가는 더욱 반갑다.


우선 오랜만에 만나는 김이설의 단편집이다. 연작이 아니 『누구도 울지 않는 밤』에는 단편 10개가 수록된 작품이다. 오늘 출간 기념 북토크가 있다고 한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색다른 북토크인 듯하다. 누군가의 참석 후기를 기다린다.






올해도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을 곁에 두었다. 이미상, 이서수, 김멜라의 이름이 반갑고 처음 만나는 작가의 이름으로 채워진 『소설 보다 : 봄 2023』, 묘하게 끌리는 시집 『소멸하는 밤』를 읽는 밤을 기대한다. 소설과 시를 읽는 것으로 4월을 마지막을 보낼 것 같다.














4월인데, 내가 좋아하는 4월이 이렇게 흐른다. 언제부터인가 4월에는 노영심의 『4월이 울고있네』를 듣는다. 발매 당시에는 몰랐던 노래. 세월이 흘러 이제야 듣게 되는 노래. 가사를 따라 읽으면 흥얼거린다. 봄비가 내리는 4월, 청벚꽃을 바라보며 그 아래서 사진을 찍었던 봄을 생각한다. 그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4월이 흐른다.



봄비가 내려오는데 꽃잎이 흩날리는데

나의 눈에는 4월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

봄비가 내리는 소리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

나의 귀에는 4월이 울고 있는 것처럼 들리네

창문열고 봄비 속으로 젖어드는

그대 뒷모습 바라보면은

아무리 애써 보아도 너를 잊을 순 없어라

내일을 기다려도 될까

내 사랑을 믿어도 될까

내가 딛고 가는 저 흙이 마르기 전에

내 눈물이 그칠까

창문열고 봄비 속으로 젖어드는

그대 뒷모습 바라보면은

아무리 애써 보아도 너를 잊을 순 없어라

내일을 기다려도 될까

내 사랑을 믿어도 될까

내가 딛고 가는 저 흙이 마르기 전에

내 눈물이 그칠까

내 눈물이 그칠까(내일을 기다려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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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연보를 읽는 것으로 『디 에센셜 김수영』를 시작했다. 한 사람의 삶을 시간순으로 순차적으로 정리한 글 안에서 김수영은 태어났고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랐다. 총명하고 아픈 아이로 시작한 연보는 가장 들끓던 지식인, 쓰기를 멈추지 않던 젊은 시인에게 찾아온 죽음으로 끝났다.


나와는 한 줄의 시간도 겹치지 않은 시간을 살다간 시인의 시를 언제 만나고 알게 되었던가. 만났다는 말은 우습다. 김수영의 시는 솟대같이 우뚝 서 있었고 어디서든 우리는 그의 시를 읽을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풀」은 뭐랄까. 어떤 상징으로 이해했고 잘 모르면서도 중얼거렸다. 아마도 학창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저 암기의 수순으로 기억한 시구절. 『디 에센셜 김수영』에서 천천히 다시 읽은 그의 시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웠고 사실적이면서도 풍부한 은유로 가득했다.


우리의 음악은 어디로 흐르는 것일까. 음악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 시를 배우던 시절로 돌아가 하나하나 그것을 파헤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가도 ‘음악은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자’나 ‘나의 음악이여 지금 다시 저기로 흘러라’ 같은 구절에서 뭔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건 무엇일까. 시로 말하고 외치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음악은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자

저무는 해와 같이

나의 앞에는 회색이 뭉치고

응결되고

또 주먹을 쥐어도 모자라는

이날에 또 어느 날에

나는 춤을 추고 있었나 보다

불이 생기어도

어젯날의 환희에는 이기지 못할 것

누구에게 할 말이 꼭 있어야 하여도

움직이는 마음에

형벌은 없어져라

음악은 아주 험하게

흐르는구나

가슴과 가슴이 부딪치어도

소리는 나지 않을 것이다

단단한 가슴에 음악이 흐른다

다리도 없이

집도 없이

가느다란 곳에는 가시가 있고

살찐 곳에는 물이 고이는 것이다

나의 음악이여

지금 다시 저기로 흘러라

몸은 언제나 하나이었다

물은 나의 얼굴을 비추어 주었다

누구의 음악이 처참스러운지 모르지만

나의 설움만이 입체를 갖고

떨어져 나간다

음악이여 ( 「음악」, 전문)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자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 「봄밤」, 일부)


오랜 시간 손에 잡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속도가 나지 않는 책이었다. 어쩌면 집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특히 산문에서 김수영이 느꼈을 시에 대한 고민과 그가 살았던 시대에 학인의 역할로 고뇌하는 그 심경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어찌 알겠냐만 그래도 솔직하게 건네는 산문으로 그가 글 쓰는 일을 어떻게 여겼는지 미세한 떨림의 깊이 정도는 가늠하고 싶었다. 그의 내면을 흔들고 부서졌다가 채우기를 반복하는 그 마음의 조각, 혁명의 시대에 폭발하듯 써 내려간 시와 그 안에 담고자 했던 자유를 말이다. 읽기의 한계는 언제나 빨리 도착한다. 산문에서 한 번씩 멈추고 말았다. 포로수용소의 기록, 닭을 키우던 일, 박인환의 마리서사, 번역에 대한 생각들을 읽으면서 자꾸만 나는 알 수 없는 그 시대와 현재를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김수영이란 시인이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들.


수동적으로 불안을 받아들이느니 보다는 불안 속에 뛰어 들어가 불안과 운명을 같이하는 것이 괴로움이 적은 일이요 떳떳한 일같이 생각이 들었다. (산문 「내가 겪은 포로 생활」중에서)


유명이 유명을 먹고, 더 유명한 것이 덜 유명한 것을 먹고, 덜 유명한 것이 더 유명한 것을 잡아 누르려고 기를 쓴다. 이쯤 되면 지옥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회의 대제도(大制度)는 지옥이다. 이 지옥 속의 레슬러들이 속물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속물이다. (산문 「이 거룩한 속물들」중에서)


젊은 층의 전면적인 불신임을 받아야 할 것은 정치계에만 한한 일이 아니라 문학계도 마찬가지이고, 이러한 각성의 시기는 빨리 오면 빨리 올수록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산문 「독자의 불신임」중에서)


읽는 것도 어렵고 이해하기란 더욱 어렵겠지만 이런 따뜻하고 좋은 시 앞에서는 멈추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기를 반복한다. 그 파밭의 푸른색이 눈앞에 펼쳐진 것 같다. 붉고 푸른 이미지가 전하는 게 반복되는 사랑과 상실이라고, 우리네 삶이라고 믿고 싶다.


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먼지 앉은 석경 너머로

너의 그림자가

움직이듯

묵은 사랑이

움직일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다는 것이다


새벽에 조로의 물이

대낮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고

젖어 있듯이

묵은 사랑이

뉘우치는 마음의 한복판에

젖어 있을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 「파밭 가에서」, 전문)


김수영을 읽는 일은 그의 생애를 알고 그의 문학세계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서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 산문, 일기, 미완성의 소설을 읽는 읽은 우리가 보지 못한 지난 시대를 읽는 일이고 현재의 삶을 돌아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같은 듯 다른 시대가 풀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같다. 그것이 정치든 문학이든 말이다. 반복되는 시행착오, 고뇌하는 이들, 영혼을 탐구하고 균형과 조화가 아름다운 시대를 바라고 소망하는 마음은 한결같아서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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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4-21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 계란 먹고 싶.. 따끈한 거 호호 불어서 ㅋㅋ 이제는 넷플릭스에서보는 지구 반대편 이야기가 김수영의 시절보다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네요. 디 에센셜 좋은 기획같아요! 😀

자목련 2023-04-21 12:24   좋아요 0 | URL
바글바글 냄비에 계란 삶아 공쟝쟝 님께 보내고 싶네요. 어렵지만 디 에센셜, 저도 좋은 기획 같아요. 맞아요, 화면에서 처음 보는 사람도 반갑게 느껴지는데 정작 현실의 사람들은 왜 이리 멀까 싶고요. 코로나 19로 멀어진 마음과 관계가 회복되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맛난 점심 드시고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