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시에 알람이 울렸다.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대에 널려 있는 빨래를 갰다. 아침을 먹고 어젯밤에 챙긴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일찍 나섰지만 다시 오지 않을 4월의 주말을 즐기는 이들을 태운 차가 도로에 가득했다. 여행을 위한 길이 아니라 아쉽지만 어쨌거나 떠난 길 위에서 마주한 봄날은 황홀 그 자체였다. 노란 개나리, 분홍 진달래가 가득했다. 차에서 내려 노란 봄을 만져보고 싶었다.

 

 2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이곳은 큰 언니집이다. 언니는 외출 중, 환기를 시키고 냉장고에 먹을 거리를 채운다.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낯익지만 낯선 공간에서 벚꽃 대신 이런 책들을 본다.  어쩌면 이곳에서 주문하게 될 지도 모를 책이다. 매우 착한 가격(5500원)인제 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주말』, 최은미의 『너무 아름다운 꿈 』이다. 

 

 

 

 

 

 

 

 

 

 

 

 

 

 

 

 

 

 

 

 나와 함께 온 책은 벚꽃을 닮은 표지의 박시하의 『눈사람의 사회』, 권여선의 『비자나무 숲』이다.  겨울이 지났으니 눈사람의 사회는 이 시집 속에만 존재할 터. 나는 이 봄에 겨울과 눈사람을 만날 것이다. 겨울이 기다렸던 봄을 살면서, 그 겨울에게 봄을 들려줄 수 있을까? 이 시집 한 권만 제대로 읽어도 완벽한 주말이 될 텐데...

 

 

 

  

 

 

  

 

 

 

 

 

 

 

 

 

 

 베란다에서 보이는 야트막한 동산에는 연두가 자란다. 봄이 세상을 물들인다. 모두가 봄이 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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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
이응준 지음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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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건 쉽사리 망가진다. 모습과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장미라든가 신부처럼. 하지만 슬픔은 영원히 아름답다. 왜냐하면, 우리는 슬픔을 아름다움이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아름답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194쪽

 

 돌아보면 ‘청춘’이라 불리는 시기를 채웠던 모든 것들은 미흡하고 불안하기에 아름답다. 청춘이라서 세상을 부정할 수 있었고 타자를 이해하기에 앞서 이해받기를 간절히 바랐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우리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면 다르게 살 거라 다짐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감정의 결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글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이응준의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는 청춘의 이야기다.

 

 소설은 주인공 문하가 이삿짐을 싸면서 한 권의 노트를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글로 남겨진 건 그의 과거였다. 잊고 있었던, 잊기를 바랐던 기억이었다. 소설은 문하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에게 상처를 남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현재가 아닌 과거로의 여행인 것이다.

 

 문하는 열 살 되던 해에 아버지와 형이 생긴다. 남들에게는 재혼 가정이었지만 문하와 형 인하는 이복 형제였다. 정원이 있는 집에서 문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아버지는 낯설었지만 형 인하는 달랐다. 문하에게 형은 우주와 같은 존재였고 완벽한 사람이었다. 인하가 읽는 책, 인하가 들려주는 세상은 언제나 정의로웠고 빛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하는 인하에게서 더이상 빛을 볼 수 없었다. 인하는 문하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부정과 부패로 가득한 세상을 변화하는 게 아니라 그 세상과 타협하고 있었다.

 

 하나의 우주였던 형의 존재가 허물어지고 문하는 집을 나와 대학가인 가합동에서 생활한다. 그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산타 페를 만난다. 산타 페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예술가는 아니었다. 문하는 그를 형이라 부르며 카페 일을 돕거나 근처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그러다 수인이라는 여대생을 알게 된다. 문하는 왜 이곳에 머무르는지 모른 채 그들과 어울린다. 산타 페와 수인이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만 산타 페와 수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소설은 끝까지 문하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후원했던 정치인에게 배신당하고 병들어 죽은 아버지, 형과 어머니의 묘한 관계가 언급되지만 문하의 감정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가족들에 대한 문하의 분노나 절망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는 말이다. 인하를 사랑한 만큼 그에게 듣고 싶은 변명이 많이 있었을 텐데, 문하는 철저하게 고통의 시간을 선택한 것이다. 다만 산타 페와의 일상을 통해 형 인하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짐작할 뿐이다.

 

 문하가 혼자서 보낸 그 시절을 우리는 뭐라 불러야 옳을까? 나를 찾는 시간이라 해야 할까. 가장 사랑했던 이를 용서하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간이라면 맞을까. 15년이 지난 후 문하가 다시 찾은 가합동의 카페는 여전하지만 산타 페의 소식은 없었다. 그 시절은 끝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진정 일생을 두고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면 그건, 과연 저마다의 인생 가운데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곰곰이 살피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중심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별자리를 만든다 하더라도, 이제는 서로를 덩그러니 수억 광년 밖에 두지 말자. 하여, 전속력으로 달려가 산산이 부서지는 밤하늘 별들의 섬광처럼 우리 지난날 아파했단 말도 쉽사리 하지 않도록, 그대는 내게로, 나는 그대의 인력 안으로 무모하게 손 내밀 순 없는지.’ 270~271쪽

 

 이응준이 스물여섯 살에 쓴 이 소설은 상처로 얼룩진 시절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삶을 뒤흔들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상처는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채우는 하나의 과정은 아니었을까. 열 살 소년이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 말이다. 아름답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은 내가 청춘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청춘들을 위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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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것들은 한꺼번에 온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렇다. 예고된 것들이 아니기에 감당하기 어렵다. 좋은 일인 경우에는 내 기쁨에 취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나쁜 일인 경우에는 절망하느라 나를 돌아보지 못한다. 한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계획되지 않았기에 내가 가진 능력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고 처음 당하는 일이기에 나중에는 누군가에게 경험자로서 위로하고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조언을 할 수 있다. 그런 것이다, 삶이란.

 

 내가 좋아하는, 사랑하는 4월이 되었다. 4월에는 집을 비우는 날들이 많을 것이다. 실지로 나는 어젯밤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나무를 심는 식목일, 책을 심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이런 책들을 기다린다. 집에 있는 날들, 읽는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겠지만 매만지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황혜경의 첫 시집 『느낌 氏가 오고 있다』 와 김충규의 『라일락과 고래와 내사람』 이다.  두 권의 시집이 나의 4월을 채워줄 것이다.

 

 

 

 

 

 

 

 

 

 

 

 

 

 

 

 

 집을 떠나 있던 날, 나를 기다린 책들은 이렇다. 적확하게 말하자면 내 눈길과 내 손길을 기다렸을 책이다. 웅진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곰에서 나온 첫 책 김다은의 『금지된 정원』,  제 3회 문지웹진 수상작 『소설작법』, 읽고 싶었던 책이지만 읽게 될 날을 기약할 수 없는 황현산의 『잘 표현된 불행』, 아이 키우기의 새로운 혁명을 보여줄 『벌집혁명』이다. 읽겠다고 다짐했고 읽어야 할 책들이다.

 

 

 

 

 

 

 

 

 

 

 

 

 

 

 

 

 4월, 꽃들은 피기 시작하고 무거웠던 감정들은 조금씩 가벼워진다.  새소리는 더 가까이서 들려오고 창에 기대어 가만히 바깥을 바라보는 시간도 길어진다. 봄이라는 계절을 앓기도 좋을 4월이다. 어쩌면 올 4월 앓을지 모르겠다. 4월을 잃을지 모르겠다. 한 번이니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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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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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는 뜨고 진다. 아침과 낮은 사라지고 밤이 된다.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진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과 자연들이다. 그저 평이한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었다는 걸 나는 꽃이 아닌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소리로 느낀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리는 청량한 새의 지저귐은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 새는 어디서 겨울을 보내고 이곳으로 날아왔을까?

 

 길고 긴 겨울잠에 빠져드는 동물,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긴 여정을 떠나는 바다거북, 우리는 알 수 없는 그들만의 몸짓으로 번식하는 식물들, 모든 것은 경이롭고 신비하다. 다만 관심을 갖지 않았을 뿐이다.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은 이런 자연을 이야기 한다. 항구도시인 프로빈스타운에서 자연과 함께 살며 느끼는 일상을 들려준다. 그러니까 시인의 눈으로 바라 본 세상을 그려낸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꾸미지 않고 고스란히 기록하고 전한다. 그림을 그리듯 아름다운 자연을 글로 섬세하게 스케치한다.

 

 특별하거나 놀랄만한 일상이 아니다. 그저 눈에 닿는 풍경들, 손에 잡히는 자연들이다. 동반자인 몰리 멀론 쿡과 기르는 개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고 지난 시절을 추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글을 통해 내게로 온 그것들은 매우 놀랍고 특별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것들을 나는 왜 몰랐을까.

 

 ‘3월이다. 파랑새들이 하늘에서 미끄러지듯 날아다닌다. 4월이다. 고래들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긴수염고래, 혹등고래, 희귀한 참고래가 해안에 도착한다. 만으로 들어오고, 가끔 항구로 들어오기도 한다. 그들도 우리처럼 장난을 아는지 거대하고 육중한 몸을 뒤채고, 물 위로 뛰어오른다.’ 23쪽 「흐름」 중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 밀과 백합이 자라거나 자라지 못하는 건 비에 달려 있다. 그 해에 비가 넉넉히 내리면 가을에 나무들은 고운 단풍 빛깔로 우리를 눈멀게 한다. 비의 양에 따라 연못도 신선해지거나 물이 말라 늪지로, 심지어 사막으로 변하기도 한다.’ 132쪽 「위안」 중에서

 

 계절이 바뀌고 장마나 가뭄에 따라 우리 삶이 달라진다는 생각만 했을 뿐 나무와 숲, 시내와 강을 따라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은 잊고 있었다. 세상이 그들을 주목하는 동안 잠시 그들을 생각했다. 시인이기에 그녀는 모든 것을 면밀하게 관찰한 것일까. 아니다, 그녀는 은밀하게 변화하는 경이로운 우주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책엔 산문 외에도 시와 그녀가 읽은 ‘랠프 월도 에머슨’과너새이얼 호손’에 대한 글도 있다. 시인이 소개하는 문학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의 문학작품은 특별하게 다가왔고 특히 호손이 그랬다. 호손의 작품 속에 녹아 든 그의 생과 불운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졌다.

 

 천천히 읽어야 좋을 책이다. 한 문장을, 한 문단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도 좋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우리 생에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책의 제목처럼 우리가 사는 날들 중 완벽한 날들이라 꼽을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완벽한 날들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완벽한 날들은 우리 곁을 지나간다.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짧은 순간처럼 말이다.

 

 ‘겨울 아침, 나는 5시나 그 전에 계단을 내려온다. 하늘은 검지만 오래가진 않는다. 나는 커피를 끓이고 창문마다 다니며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내다본다. 분홍, 귤색, 라벤더색 빛이 동쪽 수평선을 따라 돌진하다가 안개처럼 하늘로 기어올라 어둠의 안쪽 모퉁이에서 바르르 몸을 떤다. 우주의 은밀한 곳! 색깔들이 물 속으로 흘러들고 모든 것이 푸르게 변한다.’ 122쪽 「먼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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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에 만나는 책 제목이 『일요일의 철학』이다. 조경란의 신간 소설집이다. 일요일을 어떻게 보내는 게 철학적일까. 저마다의 일요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하다. 기다렸다고 말할 수 없지만 반가웠다. 그러니까 조경란은 신간 알림 문자를 설정하지 않는 작가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소설집을 구매할 것이고 읽게 될 것이다.  내 책장에는 그녀의 소설들이 있다.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국자 이야기』, 『움직임』, 『혀』, 『풍선을 샀어』, 『복어』. 『복어』는 언니 집 책장에 있다.

 

 

 

 

 

 

 

 

 

 

 

 

 

나는 조경란의 소설을 좋아하는 걸까? 좋아한다는 쪽에 속하지만 그 크기는 얼마나 될까? 좋아한다고 정말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권여선의 소설집 『비자나무 숲』도 곧 나올 것이다. 장편이 아닌 단편이라 더 기대가 크다. 고백하지면 나는 그녀의 장편 『레가토』를 읽지 못했다. 읽기 시작했지만 그게 끝이었다는 말이다. 나는 권여선의 장편 보다 내 정원의 붉은 열매『분홍 리본의 시절』을 더 좋아한다.

 

 

 

 

 

 

 

 

 

 

 

 

 

 

 

 

 

 좋아하는 한국 문학을 알라딘에서 3월에 주목해줘서 좋다. (12달 내내 주목했는데 나만 몰랐더라도.) 조경란, 권여선, 정미경의 소설을 차례로 만나는 봄날이면 좋겠다. 짧은 봄이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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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3-03-25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작가의 소설집이 출간되면 항상 문예지를 구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따끈따끈할 때 읽었으면 좋았을텐데 싶어서요. 예전에는 자주 서점에서 단행본으로 사읽었는데 구독은 너무 벅찼던 것 같아요. 받는데에 의의를 스스로 두게 될까봐, 청개구리라서 뭐 시키면 잘 안하거든요-_- 그나마 하는 게 유일하게 서평도서 서평쓰는 일 같아요. 국내소설은 읽더라도 리뷰 안썼었는데 써야할 경우에는 온갖 것들을 끌어올리게 돼요. 작가가 보면 창피할 것 같아서요. 조경란 소설 중에 뭐가 제일 좋았어요? 사실 요즘에는 여작가중에 누가 제일 좋다고 말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 같아요. 읽지를 않았으니 앞으로 열심히 읽어서 자목련님 따라잡아볼게요!

자목련 2013-04-05 13:15   좋아요 0 | URL
늦어도 너무 늦은 답글이네요.
문예지를 구독해도 나중에 책으로 나오면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커요, ㅎ
조경란의 소설은 초기 소설집<나의 자줏빛 소파>, <불란서 안경원>이 좋았어요. 장편으로는 <복어>가 좋았구요.

아이님이 올려주실 한국소설의 리뷰,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