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를 넣은 김치찌개를 끓이고 싶었다. 두부 부침도 하고 싶었다. 두부가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얄팍한 두께의 돼지고기를 김치와 함께 끓였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두부가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우습게도 내일이면 잊어버릴 두부가 이 저녁을 지배한다.

 

 낮에 알라딘에서 머그가 도착했다. 탁상 달력과 다이어리도 도착했다. 내심 기다렸던 파란 머그였다. 다이어리는 노랑이었다.  빨강과 파랑 머그를 하나씩 더 들여야 겠다는 생각을 슬그머니 챙긴다. 빨강과 파랑, 노랑이 존재하는 저녁이다. 좀 전에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거래하는 은행에서 온 전화로 예금 안내에 관한 것이었다. 얼결에 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아직 퇴근을 못하셨냐고 물었다. 따뜻한 집 안에서 전화를 받으며 괜히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주말엔 큰 언니가 다녀갔다. 언제부턴가 언니와 나의 대화엔 농담처럼 죽음이 등장한다. 죽음을 말하는 삶은 죽음을 인식하지 않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 속 생각을 말로 꺼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상실에 대한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최근에 읽어야만 했던 모든 이별에는 끝이 있다란 책 때문인지도 모른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조만간 곁에 두지 않을까 싶다. 2013년, 첫 주문을 위한 리스트로 담아두었는데 보관함으로 옮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책들을 담았다.

 

 

 

 

 

 

 

 

 

 

 

 

 

 

 

 천운영의 소설집 『바늘』, 김연수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아직 읽지 못했다. 장바구니와 보관함을 전전하다 2013년 첫, 주문으로 올 것이다. 강석경의 『신성한 봄』은,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위한 것이다. 읽지 않을 책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D.H  로렌스의 『패니와 애니』도 있다.

 

 2013년 소망 리스트를 적었다. 작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나의 소망은 언제나 같은 소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렇다. 소망이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위안이 된다고 해야 할까. 아니다, 게으른 자의 노력하지 않는 자의 변명일 뿐이다. 친한 동생의 말처럼, 내게는 아직 간절한 그 무언가가 없는지도 모른다. 간절한 그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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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0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1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0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1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1 0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봄을 기다리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그러므로 나의 계절은 겨울, 봄, 여름, 가을인 것이다. 2012년은 내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내게서 파생된 일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었다. 계절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울리는 일들이 많았고 그 핑계로 나는 시원하게 울기도 했다.

 

 

 겨울

 

  큰 언니가 많이 아팠다. 여전히 언니의 삶은 아픈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아프지 않은 삶 보다 많은 것들을 보게 만든다. 내가 그랬듯 언니도 그럴 것이다. 언니의 계절도 겨울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언니는 어제 이사를 했다. 점심을 먹기 전 잠깐 통화를 했는데 집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한다. 흡족함을 너머 충만한 기운이 목소리에 가득한다. 기쁜 일이다. 이 겨울이 끝나기 전에 그 집에 가게 될 것이다. 이 겨울이 아니라 그 겨울에 나는 이 책을 기다렸다. 한국문학과 일상을 다룬 독서 에세이 <치유하는 책읽기>, 부끄럽지만 내가 쓴 책이다. 알만한 사람도 모를 책, 이제서야 이 책과도 이별을 할 수 있다. 겨울이 봄다운 봄의 손을 잡을 무렵 부끄러운 이 책은 세상에 나왔다. 미세한 떨림을 전하기도 전에 봄은 어떤 소식으로 나를 습격했다.

 

 

 봄

 

  그것은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이라 부를 수 없는, 그 이상의 절대적인 슬픔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 것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계절이었다. 다시 그 계절이 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온 몸이 저리고 아플 당신을 생각하니 나는 시간이 두렵다.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진리를 위로로 말하지만 시간은 흉터를 기억하게 만든다. 시간은 그런 것이다.  <열두 겹의 자정> 이 있어 견딜 수 있는 밤도 있었다. 당신의 목소리는 여전히 아프다. 곧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의 생일이다. 당신은 또 울음을 삼킬 것이며, 밤을 낮처럼 우두커니 앉아 다시 아침을 맞을 것이다. 수많은 시간이 지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어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당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름

 

  수국으로 시작된 나의 여름은 얼음과 냉면의 시간이었다. 휴직을 한 언니와 함께 보낸 계절이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매일 냉면을 먹고 얼음을 얼렸고 서로의 짜증을 증폭시켰다. 밤은 길었고 올림픽의 열기만이 그 밤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포맷하시겠습니까?>란 말처럼 새로운 포맷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그래도 나는 선풍기, 에어컨 없이 그 계절을 견뎠다. 두 대의 선풍기 중 하나는 베란다에게 긴 휴식을 취했고 다른 하나는 거실과 다른 방에 있었다. 올 겨울에는 에어컨을 구매하자는 매년 반복되는 다짐을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수국을 보러갔을 때 잠깐 바다를 만났을 뿐, 오롯이 바다를 위한 바다에는 가지 못했다.

 

 

  가을

 

  가을의 중심에서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예정된 것으로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렇다고 쉬운 결정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한 문장이 끝나고 다음 문장을 쓸 수 있도록 마침표를 찍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해준 당신들이 있어 고맙다. 가을은 특별했다. 내가 몹시도 흠모하는 당신을 만나러 길을 떠날 수 있었고 당신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서로의 목소리를 볼 수 있어 좋았다. 그 날에 마주한 하늘과 낯선 거리의 이정표들과 나무들을 기억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매년 가을, 그 날이 되면 또 당신을 추억할 수 있고 이제 나는 그 계절을 사랑할 수 있다. <입술을 건너간 이름>을 마주할 때마다 나즈막히 그대의 이름을 부르고 다시 당신에게로 갈 계획을 세울 것이다.

 

 

 겨울

 

  뚜꺼운 커튼을 장만하는 것으로 겨울을 맞았다. 다양한 이들의 정성을 먹을 수 있는 김장은 익어가고 오빠표 흰 쌀과 현미도 도착했다. 한 겹으로 모자라 두 겹의 양말을 신는 날도 있고 목에는 스카프가 사라지지 않는 날들이다. 빨간 머그에 커피를 마시고 반가운 지인의 손편지에 놀라는 날들이다. 이 계절은 얼마나 지난한 시간이 될까. 지난 겨울에 계획했던 것들은 잊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리스트를 세워야 할 시간이 시작된다. 아직도 펼치지 못한 <노랑무늬영원>은 책읽기 리스트에 처음으로 들어갈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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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12-3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며칠간 어떤 시를 찾겠다고 시집을 다 뒤졌는데 그때마다 자목련님 페이퍼가 보여서 완전 반가웠어요. 저도 한강 소설집 보고 싶은데 택배기사님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 새해를 넘기고 주문할 생각이에요. 2012년은 안녕하고 2013년에는 우리 더 잘 지내요. 사이좋게요^^

아직 겨울이 두 달이나 더 남았는데도 새해가 되면 꼭 봄이 성큼 다가온 것처럼 좋아요. 자목련님도 올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목련 2012-12-31 23:45   좋아요 0 | URL
찾았던 시는 찾았나요? 사이좋게란 말이 이렇게 예쁘고 다정한 말이군요..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설레요. 우리들의 봄이 환하길 바라요.
아이님도 건강한 새해 맞으세요.^^

2012-12-31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31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루데이지 2012-12-3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자목련님♥새해엔 미소지을일만 있으실거예요^^

자목련 2012-12-31 23:55   좋아요 0 | URL
복을 나줘주셔서 고맙습니다.
블루데이지님, 우리 2013년에 함께 많이 웃어요!!

댈러웨이 2013-01-02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마음은 봄의 글에 오래 머물렀지만, 눈은 첫겨울의 책에 머물고 있어요. 그리고 자목련님 손 잡아 보고 싶어졌어요. 안녕요, 자목련님. 아, 보라보라한 라벤더 머리사진도 다시 환영요.

자목련 2013-01-04 13:43   좋아요 0 | URL
첫겨울의 책은 부끄러움입니다.

내린 눈들이 녹는 날들입니다.녹은 자리에 다시 눈이 내리겠지만 그러한 풍경을 마주하는 일상은 이 계절의 특권이겠지요. 휴대폰으로 그곳의 시간을 찾아봅니다. 분명 닿을 수 없는 먼 거리지만 예전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그.곳.

보라보라한 대문으로 쭉~~
 
이날을 위한 우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5
빌헬름 게나치노 지음, 박교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삶은 때때로 경이롭다. 예측할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기이한 정도로 불행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하고 놀라운 반전으로 회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경이로움을 누구나 겪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제외한 삶에만 적용되는 듯 보여 절망스러울 때가 많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같은 행위일 뿐인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은 하루는 행복한 것이며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소망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빌헬름 게나치노의 『이날을 위한 우산』속 인물들도 그렇다.

 

 소설의 화자인  ‘나’ 는 마흔 여섯 살의 남자로 수제화를 신고 걸으며 테스터를 하는 직업을 가졌다. 과거에는 인터뷰 진행자로 활동했고 신문에 글을 쓰기도 했지만 모두 과거일 뿐이다. 현재는 구두 테스터로 받는 비용이 긴축재정이라는 이유로 줄어들고 일자리를 잃을 위기며, 진정 사랑하는 연인 리자는 약간의 생활비를 남기고 떠났다.

 

 내가 하는 일은 그저 구두를 신고 거리를 걸으며 이웃을 관찰하는 일이다. 같은 시각에 만나는,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 옛 친구나 동료가 전부다. 거리를 청소하는 내외, 말의 털을 빗질하는 여자, 베란다에 빨래를 너는 노무자의 아내나, 유모차에서 잠든 아이를 보며 행복해하는 부모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제와 다른 어떤 사소한 변화나 발견에 놀라고 감탄하기도 한다. 나와 마주하는 그들도 역시나 유명했던 과거 이력을 지녔을 뿐이다. 그들은 모두 새로운 삶을 꿈꾼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오랜 친구 수잔네는 여전히 연극 무대를, 한때 사진작가였던 힘멜스바흐는 재기를 원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두 현재 자신의 삶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수잔네의 말처럼 말이다.

 

 ‘대중의 고통은 말이야, 수잔네는 말한다(그녀가 정말로 대중의 고통이라는 말을 쓰다니 놀랍다),불쌍하기 그지없는 그들 모두가 일생 동안 중요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기인해, 이해하겠어?’ 78쪽

 

 정말 중요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고통스러울까? 어쩌면 그런 생각으로 위안을 받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와 인연을 맺는 사람이 모두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 누구와 마주하게 될지 모르니까. 소설에서 어쩔 수 없이 구두 테스터를 계속해야 하고, 벼룩시장에 구두를 팔아야 하는 주인공이 힘멜스바흐의 부탁으로 신문사에 연락을 했다가 다시 일을 하게 되고 수잔네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난 실패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한동안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리고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삶을 계속 이어간다.’  158쪽

 

 우리는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산다. 그러니까 내일을 살 수는 없다는 말이다. 과거의 화려한 시절에 발을 담그고 살기도 할 것이다. 때로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넘어졌기에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고 뛸 수 있다는 걸 모른다. 그럴 때 누구나 삶을 원망할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기 전까지 말이다. 『이날을 위한 우산』은 그런 멋진 풍경을 선물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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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2-17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삶은 결코 순수한 우리 자신만의 작품은 아니겠지요...
* * *
삶의 궤적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이켜볼 때 아깝게 놓쳐버린 여러 번의 행운과 스스로 불러왔던 여러 번의 불행을 떠올린다면, 그것이 '미로를 헤매듯 잘못 거쳐온 삶의 행로'(괴테, 《파우스트》1부, 헌사)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자칫 자신을 지나치게 질책하기 쉽다.

삶은 결코 순수한 우리 자신의 작품이 아니다. 삶은 두 가지 요인, 즉 일련의 사건과 우리가 내린 결정의 산물이다. 게다가 두 요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일찌감치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예견하기는 더욱 불가능하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저 눈 앞의 사건과 현재의 결정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목표가 아직 멀리 있는 한, 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똑바로 나아가지 못한다. 다만 짐작으로 대충 방향을 잡을 뿐이다. 우리가 내린 결정이 목표점에 더 가까이 데려가주기를 바라면서, 주어진 상황에 따라 순간순간 결정내릴 뿐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상황과 우리의 기본 의도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주어지는 두 가지 힘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생겨나는 대각선이 바로 삶의 궤적이다. (쇼펜하우어)

자목련 2012-12-18 21:01   좋아요 0 | URL
전 <파우스트>를 읽지 못했는데, 장바구니에 담아둡니다.
oren님은 정말 깊은 독서를 하시는 듯해요.
 
몰락하는 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8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박인원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살아가면서 나를 알아주는 이를 만나는 건 행운이다. 그 행운의 존재를 우리는 친구라 부르기도 한다. 그 친구가 같은 분야에 있다면 인생의 경쟁자가 될 것이다. 한데 그 분야의 최고자라면 어떨까. 누군가는 계속 경쟁을 하며 지내겠지만 누군가는 다른 궤도로 수정할 것이다. 예술이라는 장르는 특히 그렇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지만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몰락하는 자』속 화자와 친구가 천재 피아노 연주자 글렌 굴드를 단 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은 천재적인 예술가의 등장으로 예술을 포기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예술가의 길을 선택했지만 글렌 굴드와 만나면서 한 사람의 생이 어떻게 비참하게 몰락하는지 그 과정을 설명한다. 화자의 독백 형식으로 반복적인 문장들로 강조하며 이어진다.

 

 쉰한 살의 화자는 친구 베르트하이머의 장례식에 참여 한 후 친구의 마지막 여정이었던 별장 근처 여관에 투숙한다. 베르트하이머의 자살이 28년 전 함께 피아노를 공부했던 글렌 굴드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 시절을 회상한다. 불친절한 화자는 세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시간의 순서없이 들려준다. 부유했지만 예술에는 무지했던 가정에서 자란 화자와 베르트하이머는 피아노의 대가가 되기를 꿈꿨다. 글렌 굴드를 알기 전까지 말이다. 글렌 굴드와 함께 피아노를 배우고 친구가 되었지만 예술가가 되기를 포기한다.

 

 베르트하이머는 아버지의 기업을 이어받을 수도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피아노만이 전부였고 글렌 굴드를 의식하는 삶이 전부였던 것이다. 불행을 자초한 것이다. 때문에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여동생을 괴롭히고 친구인 화자에겐 권태로운 삶을 자살로 마감할 것이라 비아냥 거렸다.

 

 첫 눈에 서로를 알아 본 세 명의 친구 중 둘은 죽었고 화자는 살아남았다. 예술과 피아노라는 공통 분모가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 달랐다. 한 사람은 평생을 예술가로 살았지만 나머지 둘은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화자는 베르트하이머처럼 자살하지 않았기에 몰락하지 않은 자라 할 수 있지만 그 역시 글렌 굴드의 주변을 맴돌며 살았다. 

 

 베르트하이머는 글렌 굴드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피아노를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생은 글렌 굴드로 인해 수정된 것이다. 화자 역시 피아노를 포기하지만 베르트하이머의 절망과는 달랐다. 한 사람의 등장으로 인해 삶의 기반이 흔들릴 수있다는 건 가능할 것일까? 만약 글렌 굴드가 심장마비로 죽지 않았다면 베이르트하이머는 자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것이 불행이든, 패배자든, 몰락하는 자이든 말이다.

 

 ‘사람은 그 누가 됐든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난 끊임없이 혼잣말로 중얼거렸고 그렇게 함으로써 살아남았다. 베르트하이머한테는 그런 정식적 지주가 없었다. 즉 자신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바라볼 생각조차 못 했던 건 그런 조건을 조금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야, 모든 사람은 유일무이하며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인간은 유례가 없는 최고의 예술작품이야, 라고 난 생각했다. 베르트하이머에게는 그런 생각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항상 글렌 굴드이기를 원했거나 구스타프 말러나 모차르트 혹은 다른 친구이기를 원했던 거야, 난 생각했다. 그게 베르트하이머를 계속해서 불행하게 만들었어, 꼭 천재여야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것도, 자기가 유일무이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난 생각했다.’ 92쪽

 

 소설은 글렌 굴드의 등장만으로도 흥미로우나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냉소적이고 독단적인 독백의 반복만으로도 충분하게 독자를 이끈다. 예술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얼마나 집요한지 잘 보여준다. 더불어 인간에게 절망이라는 게 얼마나 견디기 힘들고 빠져 나오기 어려운 늪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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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뒤락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9
애니타 브루크너 지음, 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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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이나 날씨 변화에 민감한 편이다. 비가 오면 비에 관련된, 눈이 오면 눈에 관련된 노래를 찾아 듣거나 시나 소설을 떠올린다. 이런 감성을 알아주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빨리 친해지거나 더 알고 싶어진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없이 강하게 끌리는 사람이 있다. 사람뿐 아니라 음악이나 책도 그렇다. 내게 애니타 브루크너의 『호텔 뒤락』은 그런 책이다.

 

 소설은 필명으로 책을 쓰는 이디스라는 여자의 이야기다. 스스로 버지니아 울프를 닮았다고 말하는 그녀는 휴가철이 지나 조용하고 쓸쓸한 호텔 뒤락에 머문다. 그곳에서 다양한 부류의 여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시간을 보낸다. 화려한 외모의 퓨지 부인과 그녀의 딸 제니퍼,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모니카, 늘 혼자인 노년의 보뇌이유 부인, 그들의 일과는 단조롭다.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으며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쇼핑을 하고, 호텔 근처를 산책하다. 그들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적극적으로 서로를 탐하며 알아간다.

 

 이디스는 작가라는 사실을 숨긴 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곳에 왔다. 호텔 뒤락을 도피처로 삼은 것이다. 퓨지 부인은 남편이라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여행과 쇼핑을 낙으로 여긴다. 혼기가 지난 딸을 자신의 부속물처럼 여기며 모두에게 주목받기를 바란다. 거식증에 걸린 모니카는 아이를 갖지 못해 남편에게 유배를 당한 격이다. 보뇌이유 부인은 며느리에게 집을 빼앗겨 호텔을 전전한다.

 

 주인공 이디스의 사연은 연인인 데이비드에게 쓰는 편지를 통해 들려준다. 로맨틱한 삶을 꿈꾸던 어머니와 그런 아내를 견디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이디스에게 결혼은 망설임이다. 작가라는 직업도 결혼을 주저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만이 요구되는 시대였기에 글쓰기를 보장받을 수 없다. 때문에 자신의 결혼식에 다른 곳으로 차를 돌린 것이다. 모든 비난을 피해 호텔 뒤락으로 도망쳤다. 어쩌면 이디스에게 사랑은 불륜 관계인 데이비드 뿐인지 모른다.

 

 소설은 호텔 뒤락이라는 제한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단순한 일상 속에 숨겨진 여자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가득하다. 애니타 브루크너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서로를 질투하고 험담하고 은밀하게 누군가를 유혹하는 그들의 생생하게 묘사한다. 더불어 그들에게 결혼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말한다.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여자들의 삶을 퓨지 부인, 모니카, 보뇌이유 부인을 통해 보여준다. 남편과 아들에 의해 결정되는 삶은 진정 행복한 것인지 묻는다. 이디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호텔에서 만난 사업가 네빌은 이디스에게 결혼을 제안한다. 사랑이 아니라 누구나 꿈꾸는 완벽한 결혼이라는 게 문제였다. 이디스는 결혼이 아니라 자신을 인정하고 존중해 줄 사랑을 원했다.

 

 애니타 브루크너는 무엇이 여자을 살게 하는지 이디스의 말을 통해 전한다. 여자에게 사랑은 그런 것이다. 단순한 애정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랑 말이다. 여자에게 필요한 건 일을 포기해야 하는 사랑이 아니라, 희생을 강요하는 사랑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랑이라고.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내 말은 사랑 때문에 망가지고 괴상한 징후가 생기고 우스꽝스러워진다는 뜻은 아니에요. 내가 말하는 건 그것보다 훨씬 진진해요. 내 말은 난 사랑 없이는 잘 살아낼 수가 없다는 뜻이에요. 다른 어떤 힘이 있어도 사랑 없이는 생각할 수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글을 쓸 수도 없고 심지어 꿈도 꿀 수도 없어요. 살아있는 세상에서 배제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차가운 피가 흐르는 물고기 같은, 움직이니 않는 존재가 되어버려요. 안에서부터 파멸해버리는 거죠. 내가 생각하는 완전한 행복이란 저녁이면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올 걸 알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온종일 햇볕 따가운 정원에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는 거예요. 매일 저녁 그 사람이 올 거라고요.” 114~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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