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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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는 뜨고 진다. 아침과 낮은 사라지고 밤이 된다.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진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과 자연들이다. 그저 평이한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었다는 걸 나는 꽃이 아닌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소리로 느낀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리는 청량한 새의 지저귐은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 새는 어디서 겨울을 보내고 이곳으로 날아왔을까?

 

 길고 긴 겨울잠에 빠져드는 동물,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긴 여정을 떠나는 바다거북, 우리는 알 수 없는 그들만의 몸짓으로 번식하는 식물들, 모든 것은 경이롭고 신비하다. 다만 관심을 갖지 않았을 뿐이다.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은 이런 자연을 이야기 한다. 항구도시인 프로빈스타운에서 자연과 함께 살며 느끼는 일상을 들려준다. 그러니까 시인의 눈으로 바라 본 세상을 그려낸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꾸미지 않고 고스란히 기록하고 전한다. 그림을 그리듯 아름다운 자연을 글로 섬세하게 스케치한다.

 

 특별하거나 놀랄만한 일상이 아니다. 그저 눈에 닿는 풍경들, 손에 잡히는 자연들이다. 동반자인 몰리 멀론 쿡과 기르는 개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고 지난 시절을 추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글을 통해 내게로 온 그것들은 매우 놀랍고 특별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것들을 나는 왜 몰랐을까.

 

 ‘3월이다. 파랑새들이 하늘에서 미끄러지듯 날아다닌다. 4월이다. 고래들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긴수염고래, 혹등고래, 희귀한 참고래가 해안에 도착한다. 만으로 들어오고, 가끔 항구로 들어오기도 한다. 그들도 우리처럼 장난을 아는지 거대하고 육중한 몸을 뒤채고, 물 위로 뛰어오른다.’ 23쪽 「흐름」 중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 밀과 백합이 자라거나 자라지 못하는 건 비에 달려 있다. 그 해에 비가 넉넉히 내리면 가을에 나무들은 고운 단풍 빛깔로 우리를 눈멀게 한다. 비의 양에 따라 연못도 신선해지거나 물이 말라 늪지로, 심지어 사막으로 변하기도 한다.’ 132쪽 「위안」 중에서

 

 계절이 바뀌고 장마나 가뭄에 따라 우리 삶이 달라진다는 생각만 했을 뿐 나무와 숲, 시내와 강을 따라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은 잊고 있었다. 세상이 그들을 주목하는 동안 잠시 그들을 생각했다. 시인이기에 그녀는 모든 것을 면밀하게 관찰한 것일까. 아니다, 그녀는 은밀하게 변화하는 경이로운 우주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책엔 산문 외에도 시와 그녀가 읽은 ‘랠프 월도 에머슨’과너새이얼 호손’에 대한 글도 있다. 시인이 소개하는 문학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의 문학작품은 특별하게 다가왔고 특히 호손이 그랬다. 호손의 작품 속에 녹아 든 그의 생과 불운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졌다.

 

 천천히 읽어야 좋을 책이다. 한 문장을, 한 문단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도 좋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우리 생에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책의 제목처럼 우리가 사는 날들 중 완벽한 날들이라 꼽을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완벽한 날들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완벽한 날들은 우리 곁을 지나간다.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짧은 순간처럼 말이다.

 

 ‘겨울 아침, 나는 5시나 그 전에 계단을 내려온다. 하늘은 검지만 오래가진 않는다. 나는 커피를 끓이고 창문마다 다니며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내다본다. 분홍, 귤색, 라벤더색 빛이 동쪽 수평선을 따라 돌진하다가 안개처럼 하늘로 기어올라 어둠의 안쪽 모퉁이에서 바르르 몸을 떤다. 우주의 은밀한 곳! 색깔들이 물 속으로 흘러들고 모든 것이 푸르게 변한다.’ 122쪽 「먼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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