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들의 세계 트리플 15
이유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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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상상하지 못한 세계로 나를 이끌기 때문이다. 명확하게 장르를 구분할 수 있는 SF나 판타지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했으나 확장되지 못하고 사그라든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좋다. 이유리의 소설엔 그런 게 있다. 그러니까 뭐냐, 이 황당한 상상이 아니라 나도 그 상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품게 된다고 할까.


『브로콜리 펀치』에서 그랬듯 『모든 것들의 세계』에 수록된 세 편의 단편도 다르지 않다. 그런 기운 때문이었을까. 이유리의 소설에는 모든 것들이 가능한 세계가 숨겨진 것만 같다. 트리플 시리즈인 이 소설집을 ‘모든 것들의 가능한 세계’로 부르게 만든다. 


표제작 「모든 것들의 세계」의 화자 ‘고양미’는 죽은 사람이다. 귀신이라고 해야 맞겠다. 그러나 무섭거나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저승차사를 부모가 ‘천주안’이란 남자와 영혼결혼식을 올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곧 천주안을 만나 서로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고양미는 취직과 결혼을 하라는 부모님의 소망과는 다르게 게임을 하다 옆집에 난 불로 죽었다. 게임에 빠져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죽은 거다. 천주안은 부모님과 결혼 문제로 다투다 20층에서 떨어져 죽었다.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리지도 못하고 죽기를 작정한 건 아닌데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이승에 먼저 온 고양미는 천주안에게 사후 세계에 대해 설명한다. 부모나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자신을 그리워하면 소멸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래서 PC방에서 게임 동호회에 접속해 자신의 닉네임을 검색한다고. 천주안의 애인이 사는 곳까지 동행한다. 고양미는 이승의 게임에서 힐러였던 것처럼 저승에서도 천주안을 달래고 위로해 준다. 


다만 잊히고 싶지 않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건 싫고 무서웠다. 꼭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가 아니어도 좋으니, 내 세계는 끝나 없어지더라도 다른 누군가의 세계 어느 한구석에는 끝내 남아 있고 싶었다. (「모든 것들의 세계」, 30쪽)


소설을 읽으면서 존재하지도 않을 양미가 잊히지 않기를 바랐다. 발랄한 귀신으로 여전히 좋아하는 카페에서 빵 냄새를 흠씬 맡으며 지내기를. 이런 마음을 갖게 만드는 게 이유리 소설의 힘이다. 허구의 존재에 대한 동경과 응원을 하게 되니까 말이다. 자신의 마음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발한 설정의 「마음소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차성징처럼 때가 되면 누구나 ‘마음소라’를 갖게 되는데 만약 누군가에게 주게 된다면 그 한 사람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진심을 고스란히 들을 수 있다. 그러니 고미는 도일의 마음소라를 선뜻 받을 수 없다. 결국 그것을 받으면서 둘은 7년의 연애를 시작한다. 고미와 도일의 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졌으면 문제가 없게지만 둘은 헤어졌다. 각자 다른 이과 결혼을 했다. 시간이 지나 도일의 아내 양희는 고미에게 마음소라를 돌려달라고 한다. 가출한 상태의 양희는 자신은 들을 수 없는 도일의 마음을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고미는 도일의 마음에 양희에 대한 생각과 걱정이 없음에도 그녀를 걱정하고 있다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진심을 안다는 건 마냥 기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간절하게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 궁금하고 알고 싶다. 


마지막 「페어리 코인」에는 요정이 등장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름이 요정인 반려동물인 줄 알았다. 전세사기를 당한 ‘나’와 ‘우진’과 함께 산다. 말 그대로 요정이라 늙지도 죽지도 않는 존재로 키우는 데 어려움은 없다. 요정은 고조모가 발견하고 그 뒤로 증조모, 할머니, 엄마, ‘나’가 물려받은 가족으로 언제나 곁에 있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에 우진의 친구 ‘현철’은 요정으로 ‘페어리 코인’ 사기극을 벌이자고 제안한다. 현철의 계획대로라면 모든 게 완벽했다. 사기를 친 집주인과 부동산,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는 변호사와 세상 모두에게 복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과거 현철이 우진을 배신한 일이 떠오르며 흔들린다. 요정의 존재를 제외하면 너무도 현실적인 설정이다. 어떤 방법으로 가상화폐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지, 작정하고 전세 사기를 치는 이들의 모습까지. 


현실에서 요정처럼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는 누구일까. 어쩌면 이유리는 힘들고 지친 우리네 삶에 소설로나마 그런 존재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위로하는 귀신 양미, 때로 상대를 위해 가짜 마음소리를 전달하는 고미, 존재만으로 든든한 요정처럼. 이유리는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통해 현실의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고, 사랑하고, 지지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그리하여 모든 것들의 가능한 세계를 꿈꿀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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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환대
장희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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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였던 이들은 영원히 우리일까.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리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혼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 중 하나가 사라지거나 완전히 떠났을 때에도 그는 우리 곁에 머문다. 조금씩 잊히겠지만 말이다. 상실과 부재를 채우는 건 우리였던 시절의 기억이다. 함께였던 시간의 기억, 머물렀던 공간. 좋았던 것은 좋았던 대로, 나빴던 것은 나빴던 대로 우리로 남는다. 


장희원의 첫 소설집 『우리의 환대』는 우리였던 이들의 기억인 동시에 남겨진 자의 상실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다. 부재를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할까. 누군가를 애도하고 그리워하는 일에 대해 담담하고 차분하게 들려준다. 떠난 이에 대해 말할 때 그를 아는 이가 있다면 감정은 뜨겁고 솔직해진다. 사고로 죽은 친구 여정의 아버지의 초대를 받은 「폭설이 내리기 시작할 때」 속 ‘나’와 ‘재희’는 여정의 아버지에게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사고로 죽은 여정, 여정 없이도 남겨진 우리는 살아간다. 언제나 있던 그 자리에 여정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부재는 그런 기이한 순간을 불러온다. 떠났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살아가다 불쑥 그의 부재를 확인한다. 삶이란 원래 그런 거였다는 듯이. 상실은 온전한 부재를 통해서만 다가오는 건 아니다. 표제작 「우리〔畜舍〕의 환대」에서 자식이 부모의 품을 떠나는 일, 그것을 인정하는 일을 부모에게 거대한 상실감을 안겨준다. 부모가 알고 기대를 품었던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모습이라면 상실감은 이루할 수 없이 크다. 어쩌면 건널 수 없는 하나의 경계선을 두고 바라만 보는 일은 다른 이름의 상실이자 부재인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번대로 조금씩 소멸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는 혜주와 ‘나’보냈던 여름을 들려주는 「혜주」는 익숙함에 대한 부재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픈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우고 산책을 하던 혜주, 간병을 하는 딸에게 짜증을 내고 고집을 부리던 아버지에 대한 속상함을 토로하던 혜주와의 익숙했던 통화가 점점 줄어들고 ‘나’의 이직으로 혜주와 조금씩 줄어들고 끝난다. 이처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멀어지는 것들은 모두 결국 부재이며 상실이구나 싶다.


상실의 쓸쓸함이 유독 진하게 느껴진 단편은 「남겨진 사람들」과 「기원과 기도」였다. 「남겨진 사람들」 속 유진은 과거 연인이었던 상주와 같던 강원도로 떠난다. 연인 재우의 배웅을 받으며 혼자만 왔다. 유진이 마주하고 싶었던 풍경은 무엇일까. 죽은 상주와의 기억을 더듬으며 유진은 상주가 아주아주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을 가고 싶어 했다는 걸 생각한다. 그리고 그 풍경을 상주가 유진과 함께 보고 싶어 했다는걸. 유진은 상주가 올라와서 보았던 곳까지 힘들게 올라간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전 그녀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서서 자신 쪽으로 돌아봐주기를, 안타깝게 그녀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깐이라도 자기를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 왜 자꾸 그런 간절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남겨두고 온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을 때는 혼자 남겨진 것 같기도 했다. (「남겨진 사람들」, 164~165쪽)


현재의 유진에게 우리는 상주가 아닌 재우일 것이다. 하지만 죽은 상주를 향한 애도는 다른 일이다. 어쩌면 혼자 강원도를 여행하는 일이 남겨진 유진이 상주를 애도하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유진이 남기고 온 것은 무엇일까. 그 마음을 헤아리고 싶은 건 나 역시 남겨진 사람들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원과 기도」는 남겨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떠난 자의 시선이다. 소설 속 화자인 ‘현주’는 떠난 사람이다. 그러니까 엄마보다 먼저 죽은 딸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지방의 도시를 떠나기 위해 공부했고 대학 진학과 동시에 서울에서 살게 된 현주는 병에 걸려 죽었다. 죽은 현주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남동생 현수와 엄마는 산속의 어떤 집으로 향한다. 거기에 있는 이들이 축문을 읽고 같이 기도를 드리고 장만한 음식을 먹고 돌아온다. 이 모든 과정에 죽은 현주가 동행한다. 그토록 완전히 떠나고 싶었던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마음을 나는 짐직할 수 없지만 불현듯 큰언니나 엄마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 목이 메어왔다.


왜 나는 아직 이곳일까. 왜 이곳에 마음을 두고 있을까. 그리고 왜 그 마음을 항상 저버릴 수 없었을까. 차마. 왜. 이 마음은 대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현수는 이제야 맞는 길을 찾은 것 같았다. 다행이야. 현수는 엄마가 깨지 않도록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잠시 후 저 멀리서 조금씩 익숙한 풍경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그 풍경을 마주할 뿐이었다. (「기원과 기도」, 193~194쪽)


이 소설집에서 죽음은 상세하고 구체적인 묘사가 아닌 사고나 병사로 간단한 상황으로 설명한다. 죽음이라는 건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고 남겨진 이들이 그들의 죽음에 닿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그러나 그들을 향한 마음은 쉬이 멈추거나 사라질 수 없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설명할 수 없는 묵직한 것들과 멍한 시간들, 그것들이 부재와 상실의 자리를 머문다. ‘우리’의 부재를 채운다.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몰려올 때가 있다. 그들과 나는 한 번도 우리였던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 살아가는 데 불편을 주지 않는 감정이 조금은 슬프다. 춥고 쓸쓸한 겨울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이 단편집을 읽어서 그런 거라고 괜찮다고 혼잣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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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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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에 대해 말하는 건 항상 조심스러워야 한다. 어떤 비슷한 경험을 했을지라도 나의 그것과 결코 똑같이 포개질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짐작과 판단은 무서운 것이다. 작가의 산문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황시운의 산문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에 대해 사고 이후의 일상에 대한 글이 아닐까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아무렇지 않은 일상에서 발견하는 작가로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사유를 말이다. 


그러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책을 덮고 말았다. 한참 동안 숨을 고르고 난 후에야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작가에게 일어난 사고가 어떤 사고인지 이제야 정확하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지 말이다. 내가 이렇게 일상이라고 써도 괜찮은 걸까 싶은 일상들. 나는 여러 차례 수술을 한 이력이 있다. 매 수술마다 전신마취를 했고 그것 때문에 기억력이 나빠진다고 친구들에게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첫 문장을 읽고 병실에 누워있던 내가 떠올랐다. 그와 나는 전혀 같은 상황이 아님에도 정신을 차리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랬다. 황시운의 산문은 나는 모르는 이야기,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이 책이 아니면 살아가는 동안 영영 알지 못했을 이야기다. 가장 빛나고 행복했던 순간에 사고를 당한 작가, 그로 인해 척수손상을 입고 하반신 마비가 되고 반복된 수술과 재활을 통해 현재는 휠체어를 타는 삶, 자신의 의지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살아가면서도 한 번씩 모든 삶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 11년이 지난 현재 고통과 동반한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 하루하루 매 순간의 생생함을 낱낱이 들려주는 글 속에서 참을 수 없는 통증에 몸부림치며 그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작가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아진 것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주어진 대로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33쪽)


좋은 이들과 밤 산책을 나간 게 잘못은 아닐 터. 난간이 있어야 하는 다리에 난간은 없었고 작가는 추락했다. 빠른 판단과 이동은 없었고 수술은 미뤄졌다. 그동안에 고통은 온전히 작가 혼자의 몫이었다.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예고하듯이 말이다.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작가를 괴롭히는 당연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작가를 돌보는 엄마가 곁에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게 삶이라는 듯 작가는 다시 시작한다. 수천 번의 움직임으로 균형을 잡고 휠체어에 오르고 소설을 쓰고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간다. 왜 이런 기록을 남겨야 하는지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이 일이 우리(휠체어 장애인)를 세상에 알리는 향한 ‘입’이라는 걸 말한다. 비장할 게 없는 일이 비장하게 전해지는 것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도 일조했을 것이다. 다른 삶이라는 이유로, 잘 모른다는 이유로 말이다.





작가의 일상은 통증에서 시작해 끝나지 않을 통증으로 끝난다. 통증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건 뭔가에 몰입하는 순간인데, 그 순간은 통증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어야 가능하니 악순환인 것이다. 참아내고 견디며 맞이한 그 짧은 순간에 그는 글을 쓰고 소설을 쓴다. 소설만이 자신을 증명하고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존재의 이유였다. 장애인 재택근무를 하고 소설을 쓰고 휠체어를 타고 친구들을 만난다. 이렇게 쓰고 일처럼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반드시 누군가 도움을 받아야만 해결할 수 있는 대소변 처리의 어려움, 휠체어 바퀴가 굴러가기 어려운 도로 상황과 출입이 어려운 가게들까지 차마 다 말할 수 없는 절망이 가득했다. 휠체어가 넘지 못할 턱들처럼 눈에 보이는 어려움뿐 아니라 그를 향한 사람들과 사회의 시선은 냉대 그 자체였다. 빈번하게 마주하는 출입이 불가능한 가게들로 인해 함께 재활 치료를 했던 이들과의 만남이나 친구와의 약속이 미뤄지거나 집에서만 만나야 할 때마다 화 나고 속상했을 마음을 어떻게 달랬을까. 공연 예매 당시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공연장에 도착했지만 주차부터 모든 게 엉망으로 이어졌던 작가의 불편하고 불쾌했던 기억은 현재 우리 사회의 장애인 편의시설과 운영이 어떤지 알려준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작가를 밀어낸 무리 중에 나는 없었을까. 턱을 높이고 틈을 벌여 놓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 모두가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무수한 턱들을 앞세워 사회가 아무리 나를 밀어낸다 해도 나는 여전히 세상 속, 사람들 틈에 있고 싶었다. (95쪽)


절망에서 그를 이끈 건 소설이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든 건 엄마였고 가족이었다. 간병과 돌봄,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희생한 엄마. 모든 엄마가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살을 에는 통증에 울부짖는 작가에게 오늘이 가장 덜 아픈 날이라고 담담하게 위로하면서도 꿈에서는 걷고 뛰고 수영을 한다며 기적을 바라고 재활 치료를 받을 때 두 다리를 절단해 의족을 하면 걸을 수 있을 환자를 부러워하는 걸 이해하고 받아주는 엄마. 암으로 투병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소설집이 나오기를 바랐던 아빠, 휠체어 타는 고모를 사랑하고 그로 인해 불편한 친구와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는 조카들. 같은 병원에서 만나 재활을 하며 인연을 이어간 친구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작가를 사랑하고 아끼는 선후배와 동료 작가들. 


사람들은 종종 감사해야 할 일을 잊고 살아간다. 정작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는 잊은 채 남이 가진 것에만 눈을 반짝이는 것이다. (179쪽)


어쩌면 이 책은 그들에게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이자 고마움과 감사함을 전하는 따뜻하고 다정한 편지일지도 모른다. 하반신 마비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통증을 뇌가 기억해 온몸으로 견디며 그가 어떻게 고통을 참아내며 글을 썼을지 생각하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유난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았던 한 해의 끝자락에서 만난 산문집은 내게도 그러했다. 나의 어려움과 작가의 어려움을 감히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나의 어려움과 작가의 어려움을 감히 비교할 수 없겠지만 돌아보면 모든 게 감사하고 그 덕에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게 만든다.


길을 잃었다면 다시 길이 보일 때까지 질기게 버티는 수밖에. 세상이 동강나기 전부터, 그것 말고는 내가 아는 다른 방법 같은 건 없었다. (240쪽)


우리는 모두 작가처럼 질기게 자신의 삶을 버티며 살아간다. 그러나 혼자만의 버팀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다. 함부로 타인의 삶에 할 수 없지만 타인의 아픔에는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고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의 당신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는 이야기가 되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 귀를 기울여 듣고 당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 어쩌면 당신도 영영 몰랐을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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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스무 살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대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7
최지연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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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라고 착각한다. 지나고 보면 겨우 스무 살이라는 걸 알게 되지만 스무 살에 도착하면 뭔가 대단한 일들을 해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도 괜찮을 것 같도 마음껏 술에 취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스무 살을 향해 살아온 것처럼 말이다. 제1회 성장소설상 수상작인 최지연의 『이 와중에 스무 살』 은 그런 스무 살의 마음을 들려준다. 


주인공 은호는 서울의 강북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났다. 그동안 집안의 장녀로 엄마의 착한 딸이자 동생의 든든한 누나였던 역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대학생 은호로만 지낸다. 학과 공부는 뒤로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선배 윤지가 활동하는 철학 동아리를 들락거렸다. 그러다 상담실 안내 게시물을 보고 상담실을 찾았다. 상담사 앞에서는 이상하게 모든 말이 술술 나왔다. 그러니까 엄마에 대한 은호의 감정들 말이다. 


느닷없이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하고 은호의 자취 집에서 함께 살면서 갈등은 심해졌다. 은호는 엄마의 기대와 간섭이 싫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자신을 낳은 엄마의 삶은 은호와 동생을 위한 것으로 채워졌다. 가장의 역할을 하지 않고 밖으로 도는 아빠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졌다. 그런 엄마를 위해 은호는 열심히 공부하고 엄마의 말에 순종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부담스러웠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아니라 좋은 남자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았으면 싶었다.


상담을 하면서 은호는 자신이 잊고 있던, 아닌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와 대면한다. 아빠와 싸우고 집을 나간 엄마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했던 기억, 돌아온 엄마가 또 떠날까 하루하루가 두려웠던 시간, 그 일에 대해 한 번도 엄마에게 묻지 못했던 마음들. 그때 남았던 상처가 자신의 연애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은호는 사귀는 남자친구에게 항상 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했는데 상대가 자신을 떠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상담사는 말한다. 꺼내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스무 살이 된 지금까지 여전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식당 일을 그만두고 친구라고 소개한 아저씨의 일을 도우면서 은호와 엄마는 조금 친해진 것 같았다. 엄마의 지방 출장이 많아지고 은호는 엄마가 아저씨와 재혼을 하기를 은근히 바랐으니까. 그런데 엄마는 아저씨가 자신을 여자로 보자마자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은호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가 매일 욕하고 싸우는 아빠를 잊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공무원 되라고 행정학과를 보냈는데 휴학이나 한 은호에게 화가 난 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만 보고 사는 엄마가 정말 싫었다. 숨이 막힌다고 말하면서 좋은 남자 만나서 편하게 살라는 은호에게 “나는 남자 손끝만 스쳐도 소름이 끼쳐, 알아?”란 말을 하며 빰을 때리며 나가라고 소리치는 엄마. 


집을 나온 은호는 엄마가 아빠와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을 잘 사는 엄마를 바랐으면서도 엄마의 남은 인생을 남자에게 기대 살기를 바랐을 뿐 엄마가 원하는 인생에 대해 알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잠긴 문을 두드리며 소리쳐도 엄마가 나오지 않자 은호는 119에 신고를 한다. 약과 술을 함께 마신 몽롱한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술을 못 마시는 엄마가 왜? 설마 죽으려고 했던 것일까. 자살 소동 후 엄마는 예전처럼 식당에 나가고 쉬는 날에는 핸드폰 게임을 하며 지냈다. 은호에게 공무원 시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은호도 엄마에게 약에 대해 묻지 않았다. 


“엄마의 감정을 은호 학생이 다 헤아리고 떠맡지 않아도 돼요. 엄마에게 너무 많은 마음의 짐을 느낄 필요도 없고요.”

“엄마의 감정과 제 감정을 구분하라는 말씀이신 거죠?”

“맞아요, 은호 학생이 엄마에게 바라는 것처럼, 은호 학생도 엄마를 놓아줘요. 편안하게 힘을 빼면서 건강한 경계를 세우는 거죠.” (205쪽)


우리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서로가 서로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생한 엄마에게 착한 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K 장녀, K 장남의 무게는 이렇게 시작된 게 아닐까. 자신이 삶을 잘 살는 일, 그게 가장 좋은 일이라는 걸 모르고 살아간다. 상담사의 말처럼 은호가 엄마를 놓아주는 일은 적당한 거리를 두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식당 일을 하면서 내 힘으로 먹고사는 일이 좋다고 말하는 엄마를 그대로 인정하는 일 말이다. 


나는 부신 눈을 감으며 엄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감은 눈 아래로 빛의 잔상들이 반짝반짝 어른거렸다. 좋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고, 엄마는 말없이 내 무릎을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 순간 나는 누구의 딸이 아니었고, 엄마도 누구의 엄마가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자유롭게 함께 있었다. (250~251쪽)


스무 살은 그저 스무 살이고 마흔 살, 예순 살도 나이일 뿐이다. 어떤 나이를 살든, 뭔가 대단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뒤늦은 방황과 자아 찾기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엄마와의 적당한 거리를 찾고 서로를 응원하는 결말은 나쁘지 않았다. 엄마와 딸이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제목처럼 이 와중에 스무 살이 된 이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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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12: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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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6 09: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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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15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알라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2-12-16 09:1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려요.
눈이 그치고 여전히 쌀쌀하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안과를 가야 하는데, 아직 일정을 잡지 못했다. 못했다기보다는 안 했다는 게 맞겠다. 치과는 예약을 하면서 안과는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눈이 많이 나빠졌을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들을 게 뻔하다. 안경을 새로 구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 안경 말고 평상시에도 같이 사용할 수 있는 안경.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거나 눈을 찌푸리고 있다는 걸 알기에.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도 안과 진료는 미뤄진다. 우선은 예약된 치과부터 다녀온 후에 결정하자고. 


그저 12월일 뿐인데 여러 개의 마음이 충돌한다. 정리 차원에서 뭐든 버리고 싶은 마음과 나를 위해 뭔가 들이고 싶은 마음. 올해가 가기 전에 가까이 지내는 이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핑계로 긴 수다를 나누고 싶은 마음과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으니 별일 없다고 그냥 짧은 문자 정도로 끝내야 한다는 마음들. 


가족을 위한 맨투맨 티셔츠를 구매하다 같은 걸로 나도 하나 살까 하다 관두고 책을 샀다. 티셔츠보다 책이 더 비쌌다. 조만간 티셔츠를 구매할지도 모르지만 나의 12월을 위한 선물은 책이다. 에세이 한 권과 단편집 한 권과 장편소설. 대단하거나 근사한 선물이 아니지만 연말의 나를 가득 채워줄 이야기들이니 충분하다. 나는 충분히 충만해질 수 있을 것이다.





황시운의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는 읽기도 전에 괜히 마음이 뜨겁다. 황시운이라는 작가의 이름 때문이다. 작가의 등단작을 프린트했던 내가 생각났고 사고 소식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후의 근황에 대해서는 자세하게는 몰랐고 이후에 발표한 소설이 무척 반가웠다. 그는 나 같은 독자가 있다는 걸 모르겠지만 말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은 절판을 만날 수 없었던 단편과 국내 초역작이 담긴 책이라고 한다. 단편 읽는 즐거움을 안겨줄 소설집, 읽기도 전에 기대가 앞선다. 짧은 이야기에 강하고 진한 울림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게 단편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삶을 살아가다 어느 순간 전율을 느끼는 것처럼. 좋은 소설을 읽고 그에 합당한 좋은 리뷰를 쓰고 싶다. 


김혜진의 소설은 첫 장편인 『중앙역』으로 만났다. 그 소설은 인상적이었고 좋았다. 그리고 나는 곧 그녀의 소설을 기다렸고 읽었다. 발표하는 작품과 출간되는 소설집과 장편들이 하나같이 다 좋았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느낄 수 있는 어떤 아쉬움이나 반복적인 느낌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소설을 언제나 기다리고 기대한다. 이번 장편소설 『경청』도 마찬가지다. 출판사의 브이로그를 통해 조금 더 기대가 상승했다. 


소설을 읽은 일은 내가 몰랐던 마음을 알아가는 일이다. 소설을 읽는 일은 내가 보지 못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일부를 만나 그곳으로 더 깊숙이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는 일이다. 소설에서 만난 삶은 결코 나와는 상관없는 딴 세상의 일이 아니기에 소설을 통해 다른 삶을 생각한다.


어제보다 훨씬 더 추운 날이다. 눈보라는 치지 않지만 눈이 내리고 쌓인다. 쌓였던 눈이 녹는 모습과 단단하게 얼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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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4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ㅋㅋ 이번 책장샷은 왼쪽 제 소설 책장인 줄 🤣🥹

자목련 2022-12-15 09:25   좋아요 1 | URL
아, 정말요? 반갑고 신기해라~

새파랑 2022-12-14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으려면 눈건강이 필수이신데 ㅜㅜ
진료받으시고 나아지시길 바라겠습니다~!!

자목련 2022-12-15 09:26   좋아요 2 | URL
새파랑 님, 감사해요!
읽기에 어려움이 깊어지기 전에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네요. ㅎ

청아 2022-12-14 21: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개해 주신 책들도 궁금하고 저 북앤드 볼때마다 탐납니다. ㅎㅎ
어제 눈보라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두려웠어요.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처럼 예측할 수 없는 바람의 방향들..

자목련 2022-12-15 09:27   좋아요 2 | URL
제가 북앤드를 좀 좋아합니다. ㅎㅎ
이곳은 연일 눈이 내립니다. 지금도 소복소복 쌓이는 중이에요.
이 맘때 마음이 그런 것 같아요, 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