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주의자 고희망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7
김지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말주의자 고희망』 이란 반어적 표현의 제목을 보고 누군가는 종말에 머물고 누군가는 희망에 머물 것이다. 종말에 시선이 닿았더라도 종말을 원하기보다는 희망을 바라는 게 진짜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주인공 희망이 어쩌다 종말주의자가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희망은 인터넷 플랫폼에 소설을 쓰는 중학생 작가다. 10대들이 좋아할 달달한 로맨스나 판타지 같은 건 쓰지 않는다. 희망의 소설 속 주인공은 항상 죽는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도 모두가 사라진 종말의 세계에 남겨진 아이들 H, J, D가 주인공이다. 그러니까 『종말주의자 고희망』는 액자소설이다. 중학생 고희망의 일상과 희망이 그려낸 종말에 대한 이야기.


희망이는 모범생이다. 부모님 말도 잘 듣는 아이다. 친구는 단짝 지우와 동네 친구 도하가 있다. 부모님은 할머니를 도와 국밥집에서 일한다. 아래층에 사는 삼촌은 대기업에 다닌다. 문제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중학생의 모습이다. 그러나 가족에게는 상처가 있다. 5년 전 희망의 동생 소망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희망은 동생을 돌보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동생의 죽음 이후로 할머니가 희망이네 가족을 불러들였다. 소망이의 죽음에 슬퍼서 엄마나 아빠는 희망이를 살피지 못했다. 엄마는 여전히 약을 먹고 아빠는 표정이 사라졌다. 그런 희망이를 유일하게 챙긴 사람이 요한 삼촌이다. 삼촌은 희망이를 위한 책을 골라주고 희망이는 서재에서 삼촌의 책을 읽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희망이네 집에서 소망은 금기시된다. 소망이가 떠난 날에 엄마는 소망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지만 소망이를 추억하거나 기억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희망이는 엄마와 아빠를 이해할 수 없다. 희망이가 1등을 해도 아무도 모른다. 시험이 끝난 후 맛있는 걸 먹고 후련함을 즐기는 것도 삼촌과 함께다. 우연히 삼촌이 게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괜찮았다. 퀴어 축제에 참가해 삼촌을 응원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희망이네 집은 흔들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할머니는 가게에 나오지 않았고 삼촌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희망이네 가족에게는 소망이의 사고와 삼촌이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희망이는 어른들이 이상할 뿐이다. 삼촌의 일에 대해서도 부모님은 희망이에게 알려주거나 생각을 묻지 않는다. 퀴어 축제에 간 사실과 뒤늦게 기말고사 1등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혼낼 뿐이다. 그런 엄마와 말다툼 끝에 희망이는 집을 나오지만 갈 곳이 없었다. 희망이가 찾아간 곳은 5년 전 살았던 동네, 소망이가 사고로 죽은 장소였다. 그곳에서 희망이는 소망이한테 사과를 하고 제대로 된 이별을 한다. 소망이의 사고에 대해 희망이의 솔직한 마음을 들은 엄마는 희망이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엄마도 일을 그만두고 소망이 곁에 있었더라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 자책한다고. 


『종말주의자 고희망』 는 제목처럼 무겁거나 우울한 소설은 아니다. 청소년 소설답게 풋풋함과 발랄함이 곳곳에 묻어난다. 아이돌에 열광하는 지수(J), 희망이(H)와 도하(D)의 로맨스, 어긋나는 우정으로 고민하는 십 대의 모습이 싱그럽다. 거기다 희망의 소설을 읽는 재미도 남다르다. 종말의 순간에 살아남은 아이들의 공통점이 눈물이라는 점도 흥미롭고 남겨진 아이들이 서로를 지키며 종말을 기록하는 모습은 기특할 정도다. 특별한 건 종말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종말을 통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기대를 한다는 점이다. 희망의 목소리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아무리 소중해도, 어려도, 건강해도, 한순간에 죽을 수 있잖아. 그런 애길 하고 싶은 거야.” (158쪽)


희망의 말처럼 언제 어디서든 종말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종말은 모양과 형태가 다양할 것이다. 종말을 두려워하는 대신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도망가는 게 정답은 아닐 것이다. 소망이의 죽음을 피하기만 했다면 희망과 엄마 사이에는 오해가 깊어졌을 것이다. 할머니가 삼촌을 인정하기까지 일정한 거리와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종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죽음과 종말에만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곧 삶에 대한 생각이기도 하다는 걸 잘 모르고 있었다. 결국 나는 줄곧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215쪽)


십 대의 등장인물을 내세운 청소년 소설이자 성장소설이지만 모두에게 좋은 소설이다. 가족 간의 갈등이나 말하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방관한 적이 없는지 묻는다. 그랬다면 이제라도 용기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모든 과정이 우리의 삶이라는 걸 알려준다. 삶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몫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10-07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연휴도 즐겁게 보내세요 ~ *^^*

자목련 2022-10-08 13:53   좋아요 1 | URL
미니 님도 신나고 환한 시간 이어가세요^^

서니데이 2022-10-07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자목련 2022-10-08 13:53   좋아요 2 | URL
일교차가 심하니 감기 조심하고요^^

거리의화가 2022-10-08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연휴 잘 보내시길^^

자목련 2022-10-10 10:37   좋아요 1 | URL
거의의화가 님 저도축하드려요.
연휴 마지막 날, 즐겁게 보내세요^^

thkang1001 2022-10-09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자목련 2022-10-10 10:38   좋아요 2 | URL
항상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환한 하루 이어가세요^^

얄라알라 2022-10-10 17: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H, J, D
영문 대문자와, 실제 한국어 이름, 십대 이야기를 다룬 액자소설 리뷰,
자목련님 글 또한 액자소설처럼 ~~
매번 축하드리러 오게 됩니다. 자목련님 계속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2-10-11 14:53   좋아요 2 | URL
얄라 님의 응원과 격려고 힘이 나는 오후, 감사합니다!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
임이랑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로 사는 게 좋은 이가 얼마나 될까. 외모부터 시작해서 성격까지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속상함만 커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을 받아들이고 만족하며 살아간다는 건 평생의 숙제는 아닐까. 감정을 다루는 일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취약한 감정이 있기에 그 감정이 등장하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것에 대해 잘 알고 다스리기 위해 누군가는 상담을 받고 약을 먹기도 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시간을 견딘다. 밴드 ‘디어클라우드’로 활동하며 식물집사인 임이랑은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를 통해 자신만의 방법을 알려준다. 자신의 불안에 대해 그것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누구나 불안을 경험한다. 크게는 세계가 무너질 것 같은 불안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에 휩싸인다. 저마다의 불안은 다르듯 그것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일은 통일된 무엇이 있을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예민한 자신의 상태를 알았던 저자는 열세 살에 자실 충동을 느꼈다. 열세 살짜리가 무슨 그런 생각을 할까 싶다가 무엇이 그토록 그를 불안하고 힘들게 만들었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생긴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나의 약점과 나의 모순, 감추고 싶은 비밀과 굳이 들추지 않는 게 이로운 사실들을 모두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은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증폭된다. 내 보이고 싶지 않은 것들은 아주 힘이 세다. (33쪽)


그가 꺼내놓은 깊고 커다란 상처의 시작은 화상으로 인한 몸의 흉터였지만 어린아이를 향해 내뱉는 어른들의 말이었다. 외할머니의 “저 지지배가 지 애미 잡아먹네”란 말은 평생 그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였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화상 자국이 깊게 남은 발이 얼마나 싫었을까. 자기혐오로 가득했을 시간을 흉터는 그저 흉터일 뿐이라 인정하는 그가 대단하다. 타인과 세상의 시선이 아닌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는 자신의 예민함을 무기로 뾰족해진 삶이 아니라 예민하면서도 안전한 사람으로 살기를 원한다. 예민함 대신에 각자의 상태를 넣어 보면 우리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가 식물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식물이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듯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자신의 세계를 지닌다. 결국 자신을 돌보며 사는 일이다.


하나의 식물은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식물은 이파리마다 각자의 역사와 기억을 기록한다. 나는 그 세계를 목격하고 관여하며 식물의 세계와 나의 세계를 연결하고 분리한다. (68쪽)


어쩌면 불안과 함께 지낸 시간이 없었더라면 그는 식물과 글쓰기가 주는 기쁨과 위로를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불안이 꼭 나쁜 건 아니다. 불안을 알면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통화를 해야 하거나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생긴 불안은 연습을 하게 만든다. 혹여 실수하지 않을까 두려움 마음을 키우는 대신 연습을 하고 준비를 하며 불안과 마주하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부분은 글에 대한 애정을 갖는 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쓰려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처음에는 너무 어렵지만 이상하게도 한 글자 한 글자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기쁨을 느낀다.


글쓰기는 즐겁다. 책상 앞에 앉아 한 글자씩 쓰기 시작하면 비밀스러운 짜릿함을 느낀다. 무의식 저 끝에 잠들어 있던 단어와 마음을 연결해 새로운 문장을 만들고 문장과 문장을 엮으며 이야기는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나를 데리고 간다. (125쪽)


에세이는 자신을 보여주는 글이다. 한없이 쉽게 여겨지면서 한없이 어려운 것이다. 임이랑은 그것을 잘 안다. 적절하게 보여줄 것과 감추어야 할 것의 균형을 맞춘다. 자신의 불안과 상처를 통해 자신이 느낀 예민한 일상과 감정을 공유한다. 자신과 같은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라는 걸 알기에. 힘들게 하는 게 무엇이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처하려는 그의 태도는 단시간에 만들어진 게 아니며 삶을 살아가는 내내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사람은 어렵다. 어떤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려워진다. 함께 지내온 시간과 역사가 쌓일수록 서로에게 더 복잡한 마음을 적립하고 만다. 이타적인 줄 알았던 사람이 한없이 이기적인 모습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나쁜 사람도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좋은 사람의 가면을 쓴 채로 곁에 머무르기도 한다. 어차피 계속 모양을 바꾸는 게 인간관계라면 나는 누군가를 판단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변화 앞에 유연하게 대처하려고 한다. (204쪽)


저마다 지닌 불안의 형태는 다르다. 하나의 불안이 사라진다고 해서 바로 평온의 상태가 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온통 불안으로 가득한 세상이라고 해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그래도 불안이 엄습할 때마다 이 책을 떠올리는 일도 좋을 것이다. 그 누구의 불안도 아닌 나의 것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불안을 만지고 주무를 수 있다는 생각과 믿음을 안겨줄 테니까.


거대한 바위 같은 불안 앞에 능동적인 마음을 갖고 싶어서 불안을 형상화하며 단단한 바위가 아니라 쉽게 잘라 옮길 수 있는 두부 같다고 상상한다. 무기력한 상태로 거대한 모판에 담긴 불안이 나의 중심에 머무르게 두지 않고 적당한 크기의 조각 두부로, 조각난 두부를 젓가락으로 집어야 할 정도로 잘게 잘라 마음속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가며 하나씩 처리한다. (209~21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유죽음 -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에 대하여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음을 산다라고 말한다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절대 죽음을 갈망하는 게 아니다. 삶의 끝에 죽음이 있기에 쓸 수 있는 보편적인 표현이다. 그러니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맥락이다.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잃었을 때 누구나 한 번쯤 죽음을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생을 저버리는 이들에 대해 타인과 사회는 비난하거나 안타까워한다. 그 심연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장 아메리의 『자유죽음』은 그 심연을 깊게 파고든다. 죽음으로 닿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절박함에 대해, 인간의 자유와 선택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의지와 권리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그는 자살이란 말을 니체를 인용해 ‘자유죽음’이라 칭한다.


죽음이란 경멸받아 마땅한 조건 아래서 벌어진 경우에만 자유롭지 못한 죽음이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음에도 찾아온 죽음, 이는 겁쟁이의 죽음이다.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택한 죽음은 다르다. 아무런 사고 없이 똑똑한 의식을 가지고 택한 죽음, 이것은 자유죽음이다. (61쪽)


누군가 자유죽음을 옹호하는 책이 아닐까 오해할 수 있다. 자유죽음에 대해 논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와 삶에 대한 담론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선택하는 이는 누구인가. 저자가 거론하는 이들은 유명 작가의 작품 속 인물이거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실존 인물이다. 우리 사회에서 접하고 만난 이들처럼 명예나 사랑 때문에, 성적의 압박이나 진로에 대한 두려움 등 자유죽음을 선택하는 이유 저마다 다르다. 그들과 자유죽음에 실패한 이들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동일하다. 그 용기로 살아야 한다고, 그래도 사는 게 낫다는 동정심 같은 말들. 그렇게 말하는 이들 가운데 그들을 대신해 살아줄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저자가 ‘뛰어내리기에 앞서’, ‘손을 내려놓는’으로 정의한 자유죽음의 과정이자 실체를 마주하는 일은 힘겹다. 저자가 설명한 것처럼 ‘에세크’(돌이킬 수 없이 실패하고 만 것)의 위협을 가장 분명하게 느꼈을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생각한다. ‘뛰어내리기에 앞서’, ‘손을 내려놓는’ 상황에 처한 이들의 메시지와 그들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침내 자유죽음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게 시리고 아프게 다가온다. 동시에 지난 삶에서 ‘에세크’를 마주했을 때 나 역시 죽고 싶었다는 걸 나도 모르게 털어놓게 된다.


손을 내려놓으며 우리의 자아가 자신을 스스로 지워버리는 가운데 혹여 처음으로 완전히 자신을 실현하는 기쁨을 맛볼 수도 있다. 이제는 존재의 끝이기 때문이다. 있으므로부터 탈출했기 때문이다. (137쪽)


자유죽음은 모든 존재로부터 해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나로 사는 건 나, 나를 책임질 수 있는 이도 나뿐이니까. 어쩌면 이런 생각은 자유죽음은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건 자유죽음에 대한 변호나 두둔이 아니다. 끊임없이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전쟁을 겪으며 차마 거론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고문과 고통의 시간을 견딘 저자만이 던질 수 있는 물음과 사유다. 인간은 누구에게 속하는 존재인지 묻는 근원적 질문이다. 돌봐야 할 가족, 사랑하는 연인, 집단과 사회 구성원 속의 개인을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 나라는 실존에 대한 뜨거운 고찰이다. 그러니 우리는 자유죽음에서 죽음이 아닌 자유에 집중해야 한다. 자유로운 나, 죽음을 선택하는 자유로운 삶을 보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결정적인 선택을 내려야 할 인생의 순간에 홀로 처절히 외로움을 곱씹는다. 이런 결정은 내가 나와 일 대 일로 마주 본다는 각오로만 내려져야 한다. 그 어떤 단체의 이상, 내가 보기에는 망상일 뿐이지만, 어쨌거나 그 어떤 사회적 이상에 헌신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행동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실존적인 자기 결단의 문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포기하려는 결정조차 그 개인 자신에게만 속하는 것일 따름이다. (186쪽)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없는 삶에 대한 저자의 독보적이고 거침없는 글은 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웅장한 울림으로 전해진다. 우리는 이제 자유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해야 한다. 자유죽음은 부조리하지만, 어리석은 것은 아니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자유죽음을 품은 이거나 실행한 그들의 선택이 최선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선택과 행위에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들의 삶은 모두의 그것처럼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다. 나를 사랑하며 나 자신을 사는 일이 소중하고 중요하듯 말이다. 


나로 살지 못하게 하는 세상, ‘에세크’란 장벽은 여전하다. 그 세상에 나는 존재한다. 죽음이라는 실체와 맞닿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존엄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장 아메리의 말을 심연에 새기며 살고자 한다.


삶이 탄생의 순간부터 죽어감이었던 것처럼, 죽기로 각오한 당당함은 삶의 길을 열어준다. (26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면을 보는 일은 중요하다. 정면에 드러난 결과나 성과에 치중하다 보면 잃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 시작이 어떠했는지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살펴야 정면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단순한 진리를 떠나서 삶에는 검증이 필요하다. 그래서 종종 혼란스럽다. 내가 아는 것,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의 실체가 나를 실망시킬까 봐. 


벵하민 라바투트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를 읽으면서 소설 속 과학자의 마음도 어떻게 보면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류의 역사에 기록되고 세상을 변화시킨 위대한 인물이라는 점은 완전히 다르지만 말이다. 자신들이 연구하고 발명한 것들에 대한 확신과 그것을 증명하기까지 그들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은 얼마나 컸을까. 그로 인해 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에 막중한 변화를 가져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때문에 소설이라는 걸 인지하고 읽으면서도 역사의 기록을 읽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수식, 암호, 공식, 해제로 알았던 것들이 그들을 탄생시킨 과학자들과 함께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느낌이라고 할까. 


프리츠 하버, 슈바르츠 실트, 아인슈타인, 모치즈키 신이치, 알렉산더 그로텐디크,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등 책에서 만난 과학자들이 발견하고 증명한 것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이롭게 하는 선의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와는 다르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세상을 파괴시키고 갈등과 대립을 조장한다. 환상적인 색채로 모두를 매혹시키는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 속 푸른 색인 프러시안 블루의 이면에는 잔인한 죽음의 있다는 걸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화학적 반응으로 얻어진 결과를 수많은 이를 살리는 대신 죽이는 쪽으로 택할 수도 있다는 건 안다는 것의 공포를 증명한다.


구체적인 화학 구조물이나 수식을 알지 못하는 일반인은 그것을 창조해낸 과학자의 피나는 연구와 노력, 절망, 고독을 알 수 없다. 어떤 시간을 살고 어떤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텼는지 모른다. 하나의 수식이 완벽해질 때까지 그들에게 인간의 삶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소설을 통해서나마 짐작한다. 과학자에게 연구의 삶은 태생적 운명적이었을까. 아이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의 해를 구한 슈바르츠 실트의 연구는 죽음을 압도할 정도였다. 소설 속 슈바르츠 실트가 이론을 완성시키는 설명을 1%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로 인해 얻는 성찰로 조국 독일에서 나타날 현상에 대한 염려(‘인간 의지가 충분히 집중되면, 수백만 명의 정신이 하나의 정신 공간에 압축되어 하나의 목적에 동원되면 특이점에 비길 만한 일이 벌어질까?’, 71쪽)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천재 과학자나 수학자의 연구와 발전은 궁극적으로 세상을 훌륭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때문에 많은 업적과 명성에 눌려 인류를 선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걸 놓칠 수 있다. 아우비치 수용소에서 사망한 아버지와 프랑스 난민 수용소에서 어머니와 지내야 했던 수학자 알렉산더 그로텐디크는 그것을 인지했다. 그리하여 모든 연구활동을 멈추고 은거하며 은자처럼 지냈다. 학계에서는 안타까운 일이었겠지만 알렉산더 그로텐디크는 자신을 지키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소설은 실존하는 과학자를 등장시켜 과학의 원리나 분석을 설명하고 그들이 업적을 높이사려는 게 아니다. 앞선 과학자들의 이야기와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의 논쟁을 다루면서 그가 전하고자 하는 건 하나의 대상에 대해 알려고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마침내 이해하여 인간의 심연에 닿고자 하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이해하려는 태도에 대한 철학적 고민 말이다.


우리가 이해하려는 대상이 복잡할수록 다른 관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래야 이 광선들이 수렴하여 우리가 많음을 통해 하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참된 시각의 본질이다. 이미 알려진 관점들을 합치고 지금껏 알려지지 않는 것을 보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이 실제로는 같은 것의 일부임을 이해하게 해준다. (105쪽)


하나를 더 정확히 파악할수록 다른 하나는 더 불확실해졌다. (215쪽)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세상은 불확실한 혼란으로 빠져들 것이다. 저마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르고 누군가는 곡해를 이해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니 하나의 현상이나 사건의 이면을 보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말할 수 없이 복잡하고 어려운 소설, 분명 경이롭고 아름답지만 엄중한 무게감이 전해진다. 어쩌면 이 소설을 읽는 일이 나에게는 세상을 이해하려는 나만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2-08-17 22: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짝짝짝입니다. 같은 책을 읽고 비슷한 듯 조금 다른 지점들을 느낀 걸 확인하는 과정은 늘 흥미로워요!

자목련 2022-08-19 09:13   좋아요 2 | URL
맞아요, 같은 책을 읽었지만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들과 놀라운 생각을 안겨주지요^^

그레이스 2022-08-20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는 말이 생각나는 리뷰입니다~!

자목련 2022-08-21 17:52   좋아요 1 | URL
좋았던 만큼 어려운 소설이었어요. 리뷰 쓰기도 너무 힘들었고요. ㅎ
 
저항의 예술 - 포스터로 읽는 100여 년 저항과 투쟁의 역사
조 리폰 지음, 김경애 옮김, 국제앰네스티 기획 / 씨네21북스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사람과 모든 사회는 저항과 거역의 문화가 필요하다. 자본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비폭력 저항주의자를 통틀어 국가기관을 운영하는 이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 아룬다티 로이, 맨부커상 수상자, 사회운동가 (113쪽)


투표권이 있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정치적 견해를 낼 수 있다. 현재의 나는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영위한다. 내 어머니와 할머니는 경험하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 것들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내게 도달했을까. 아니다. 투쟁과 저항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내가 존재하기 전부터 현재까지 세상 곳곳에서 부당과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 감옥에 갇히고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서도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애쓴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기구 국제앰네스티 기획하고 작가이자 편집자인 조 리폰이 지은 『저항의 예술』에 그들의 뜨거운 함성과 목소리가 담겼다. 포스터로 읽는 100여 년 저항과 투쟁의 역사란 부제답게 이 책을 읽는 건 포스터를 읽는 일이고 그 안에 담긴 저항정신과 투쟁을 마주하는 것이다. 7개의 섹션(‘난민과 이민자, 모든 지구시민이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여성의 해방과 자유, 참여를 위해’, ‘성 정체성이 금지와 장벽이 되지 않는 사회를 위해’, ‘전쟁과 핵무기로부터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사상과 이념이 감옥이 되지 않는 사회를 위해’, ‘피부색으로 우열을 가리지 않는 세상을 위해’, ‘생태계 파괴, 기후 위기, 각종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으로 모두 140 여개의 포스터에 담긴 메시지를 만날 수 있다. 과거 계몽을 위한 수단으로 여겼던 단순한 포스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되고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지녔다.


정치적 구호, 포스터, 운동, 그룹의 상징을 통해 우리는 단결한다. 개인의 목소리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다수의 목소리를 포식하고 때에 따라 한 세대 전체의 목소리를 담기도 한다. 목소리를 담은 이미지는 모두 중요하며, 우리의 영혼에 존재하는 불안을 담고 자유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순응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담는다. (서문 중에서, 9쪽)


하나의 예술작품인 포스터는 천천히 오래 보아야 한다. 이미지와 문구는 물론이고 각각의 포스터에 대한 시대적 배경과 상황 설명을 통해 간절하고 절실한 메시지를 보고 들을 수 있다. 폐허가 된 도시의 난민을 보여주는 <프랑스는 격렬한 전쟁에 휘말려 있습니다>란 포스터는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이 포스터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부족한 식량에 대해 초점을 맞췄지만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삶이 파괴되고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난민이 발생하고 난민에 대한 차별은 심각하다. 1993년 유엔 난민기구에서 레고 미니 피겨를 활용해 만든 포스터 <어디가 다른 가요?>는 아이들의 교육용으로 좋을 듯하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과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한 이해와 그들을 향한 환대와 연대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다. 접근 방식이 친근하고 훌륭하다. 피부색이 다르고 사용 언어가 다르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가 다른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교육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접하는 이들은 저마다의 관심사를 다룬 포스터에 더욱 집중할 것이다. 여성인 나는 특히 ‘여성의 해방과 자유, 참여를 위해’란 섹션을 자세히 보았다. 여성 고유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낙태에 대한 자유, 그것은 자신의 몸을 지키고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닿았기 때문이다. 3대에 걸친 여서의 옆모습을 제시한 <자녀… 내가 원한다면… 내가 원할 때>란 포스터의 문구는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유교적 관습이란 틀에 갇혀 있다. 이어진 <잘 가>란 포스터가 지닌 의미는 무엇일까. 옷걸이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설명을 보지 않고서는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참정권 캠페인 이후 여권 단체를 상징하게 된 초록색을 배경으로 위험한 낙태를 연상시키는 우울한 상징물로 여겨졌던 옷걸이가 잘 가라는 단어와 함께 낙태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강력한 뜻을 전한다. 부끄럽지만 옷걸이가 낙태 합법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록된 140여 개의 포스터를 읽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간결한 색상과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그 표현방식도 다양해 훌륭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이다. 내가 모르고 있던 세계 각국의 저항의 현장에 대해 알 수 있고 시대별 포스터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지난 시대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저항의 물결을 확인할 수 있다. 촛불을 들고 함께 외치고 소리쳐 변화시켰던 우리의 모습을 그들에게서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는 여전히 저항해야 한다. 자유를 향한 외침을 듣고 동참해야 한다. 그 외침은 개인을 위한 외침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내가 누리는 자유는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것이기에. 한 장의 포스터로 시작되는 저항은 멈추지 않고 진행 중이다. 이 책을 만나는 작은 일로 우리는 그 저항에 동참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본 포스터, 그 문구를 알리고 기억하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외침일지도 모른다.


불법인 사람은 없다. 불법한 행위를 했다고 해서 사람마저 불법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모순이다. 사람이 어떻게 불법일 수 있는가? - 엘리 위젤, 노벨평화상 수상자, 홀로코스트 생존자 (13쪽)


인권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인권은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에 뿌리내리고 있는 규칙으로 인간성, 평등, 진실, 정의의 가치를 반영한다. 인권은 법률로 규정하고 보호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권력을 가진 자라도 이익과 힘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특정 권리만을 선별해서 보호해서는 안 된다. (후기 중에서, 171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22-08-16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룬다티의 저 문장도 그렇고 기억하고픈 문장이 참 많았어요. 옷걸이 포스터는 간명하고 냉정하게 강렬했고요. 아니 에르노의 레벤느망에 코바늘 같은 게 나옵니다. 그 충격이 저 포스터 보는 순간 떠올랐어요.

자목련 2022-08-17 17:34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 님의 말씀처럼 좋은 문장과 포스터가 많았습니다. 몰랐던 것들, 어쩌면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마주하게 만든 책이었어요.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아주 조금 느껴지는 날들, 편안하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