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예술 - 포스터로 읽는 100여 년 저항과 투쟁의 역사
조 리폰 지음, 김경애 옮김, 국제앰네스티 기획 / 씨네21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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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과 모든 사회는 저항과 거역의 문화가 필요하다. 자본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비폭력 저항주의자를 통틀어 국가기관을 운영하는 이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 아룬다티 로이, 맨부커상 수상자, 사회운동가 (113쪽)


투표권이 있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정치적 견해를 낼 수 있다. 현재의 나는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영위한다. 내 어머니와 할머니는 경험하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 것들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내게 도달했을까. 아니다. 투쟁과 저항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내가 존재하기 전부터 현재까지 세상 곳곳에서 부당과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 감옥에 갇히고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서도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애쓴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기구 국제앰네스티 기획하고 작가이자 편집자인 조 리폰이 지은 『저항의 예술』에 그들의 뜨거운 함성과 목소리가 담겼다. 포스터로 읽는 100여 년 저항과 투쟁의 역사란 부제답게 이 책을 읽는 건 포스터를 읽는 일이고 그 안에 담긴 저항정신과 투쟁을 마주하는 것이다. 7개의 섹션(‘난민과 이민자, 모든 지구시민이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여성의 해방과 자유, 참여를 위해’, ‘성 정체성이 금지와 장벽이 되지 않는 사회를 위해’, ‘전쟁과 핵무기로부터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사상과 이념이 감옥이 되지 않는 사회를 위해’, ‘피부색으로 우열을 가리지 않는 세상을 위해’, ‘생태계 파괴, 기후 위기, 각종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으로 모두 140 여개의 포스터에 담긴 메시지를 만날 수 있다. 과거 계몽을 위한 수단으로 여겼던 단순한 포스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되고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지녔다.


정치적 구호, 포스터, 운동, 그룹의 상징을 통해 우리는 단결한다. 개인의 목소리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다수의 목소리를 포식하고 때에 따라 한 세대 전체의 목소리를 담기도 한다. 목소리를 담은 이미지는 모두 중요하며, 우리의 영혼에 존재하는 불안을 담고 자유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순응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담는다. (서문 중에서, 9쪽)


하나의 예술작품인 포스터는 천천히 오래 보아야 한다. 이미지와 문구는 물론이고 각각의 포스터에 대한 시대적 배경과 상황 설명을 통해 간절하고 절실한 메시지를 보고 들을 수 있다. 폐허가 된 도시의 난민을 보여주는 <프랑스는 격렬한 전쟁에 휘말려 있습니다>란 포스터는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이 포스터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부족한 식량에 대해 초점을 맞췄지만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삶이 파괴되고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난민이 발생하고 난민에 대한 차별은 심각하다. 1993년 유엔 난민기구에서 레고 미니 피겨를 활용해 만든 포스터 <어디가 다른 가요?>는 아이들의 교육용으로 좋을 듯하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과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한 이해와 그들을 향한 환대와 연대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다. 접근 방식이 친근하고 훌륭하다. 피부색이 다르고 사용 언어가 다르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가 다른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교육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접하는 이들은 저마다의 관심사를 다룬 포스터에 더욱 집중할 것이다. 여성인 나는 특히 ‘여성의 해방과 자유, 참여를 위해’란 섹션을 자세히 보았다. 여성 고유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낙태에 대한 자유, 그것은 자신의 몸을 지키고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닿았기 때문이다. 3대에 걸친 여서의 옆모습을 제시한 <자녀… 내가 원한다면… 내가 원할 때>란 포스터의 문구는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유교적 관습이란 틀에 갇혀 있다. 이어진 <잘 가>란 포스터가 지닌 의미는 무엇일까. 옷걸이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설명을 보지 않고서는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참정권 캠페인 이후 여권 단체를 상징하게 된 초록색을 배경으로 위험한 낙태를 연상시키는 우울한 상징물로 여겨졌던 옷걸이가 잘 가라는 단어와 함께 낙태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강력한 뜻을 전한다. 부끄럽지만 옷걸이가 낙태 합법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록된 140여 개의 포스터를 읽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간결한 색상과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그 표현방식도 다양해 훌륭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이다. 내가 모르고 있던 세계 각국의 저항의 현장에 대해 알 수 있고 시대별 포스터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지난 시대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저항의 물결을 확인할 수 있다. 촛불을 들고 함께 외치고 소리쳐 변화시켰던 우리의 모습을 그들에게서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는 여전히 저항해야 한다. 자유를 향한 외침을 듣고 동참해야 한다. 그 외침은 개인을 위한 외침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내가 누리는 자유는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것이기에. 한 장의 포스터로 시작되는 저항은 멈추지 않고 진행 중이다. 이 책을 만나는 작은 일로 우리는 그 저항에 동참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본 포스터, 그 문구를 알리고 기억하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외침일지도 모른다.


불법인 사람은 없다. 불법한 행위를 했다고 해서 사람마저 불법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모순이다. 사람이 어떻게 불법일 수 있는가? - 엘리 위젤, 노벨평화상 수상자, 홀로코스트 생존자 (13쪽)


인권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인권은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에 뿌리내리고 있는 규칙으로 인간성, 평등, 진실, 정의의 가치를 반영한다. 인권은 법률로 규정하고 보호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권력을 가진 자라도 이익과 힘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특정 권리만을 선별해서 보호해서는 안 된다. (후기 중에서,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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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8-16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룬다티의 저 문장도 그렇고 기억하고픈 문장이 참 많았어요. 옷걸이 포스터는 간명하고 냉정하게 강렬했고요. 아니 에르노의 레벤느망에 코바늘 같은 게 나옵니다. 그 충격이 저 포스터 보는 순간 떠올랐어요.

자목련 2022-08-17 17:34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 님의 말씀처럼 좋은 문장과 포스터가 많았습니다. 몰랐던 것들, 어쩌면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마주하게 만든 책이었어요.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아주 조금 느껴지는 날들, 편안하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