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죽음 -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에 대하여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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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산다라고 말한다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절대 죽음을 갈망하는 게 아니다. 삶의 끝에 죽음이 있기에 쓸 수 있는 보편적인 표현이다. 그러니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맥락이다.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잃었을 때 누구나 한 번쯤 죽음을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생을 저버리는 이들에 대해 타인과 사회는 비난하거나 안타까워한다. 그 심연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장 아메리의 『자유죽음』은 그 심연을 깊게 파고든다. 죽음으로 닿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절박함에 대해, 인간의 자유와 선택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의지와 권리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그는 자살이란 말을 니체를 인용해 ‘자유죽음’이라 칭한다.


죽음이란 경멸받아 마땅한 조건 아래서 벌어진 경우에만 자유롭지 못한 죽음이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음에도 찾아온 죽음, 이는 겁쟁이의 죽음이다.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택한 죽음은 다르다. 아무런 사고 없이 똑똑한 의식을 가지고 택한 죽음, 이것은 자유죽음이다. (61쪽)


누군가 자유죽음을 옹호하는 책이 아닐까 오해할 수 있다. 자유죽음에 대해 논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와 삶에 대한 담론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선택하는 이는 누구인가. 저자가 거론하는 이들은 유명 작가의 작품 속 인물이거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실존 인물이다. 우리 사회에서 접하고 만난 이들처럼 명예나 사랑 때문에, 성적의 압박이나 진로에 대한 두려움 등 자유죽음을 선택하는 이유 저마다 다르다. 그들과 자유죽음에 실패한 이들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동일하다. 그 용기로 살아야 한다고, 그래도 사는 게 낫다는 동정심 같은 말들. 그렇게 말하는 이들 가운데 그들을 대신해 살아줄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저자가 ‘뛰어내리기에 앞서’, ‘손을 내려놓는’으로 정의한 자유죽음의 과정이자 실체를 마주하는 일은 힘겹다. 저자가 설명한 것처럼 ‘에세크’(돌이킬 수 없이 실패하고 만 것)의 위협을 가장 분명하게 느꼈을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생각한다. ‘뛰어내리기에 앞서’, ‘손을 내려놓는’ 상황에 처한 이들의 메시지와 그들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침내 자유죽음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게 시리고 아프게 다가온다. 동시에 지난 삶에서 ‘에세크’를 마주했을 때 나 역시 죽고 싶었다는 걸 나도 모르게 털어놓게 된다.


손을 내려놓으며 우리의 자아가 자신을 스스로 지워버리는 가운데 혹여 처음으로 완전히 자신을 실현하는 기쁨을 맛볼 수도 있다. 이제는 존재의 끝이기 때문이다. 있으므로부터 탈출했기 때문이다. (137쪽)


자유죽음은 모든 존재로부터 해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나로 사는 건 나, 나를 책임질 수 있는 이도 나뿐이니까. 어쩌면 이런 생각은 자유죽음은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건 자유죽음에 대한 변호나 두둔이 아니다. 끊임없이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전쟁을 겪으며 차마 거론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고문과 고통의 시간을 견딘 저자만이 던질 수 있는 물음과 사유다. 인간은 누구에게 속하는 존재인지 묻는 근원적 질문이다. 돌봐야 할 가족, 사랑하는 연인, 집단과 사회 구성원 속의 개인을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 나라는 실존에 대한 뜨거운 고찰이다. 그러니 우리는 자유죽음에서 죽음이 아닌 자유에 집중해야 한다. 자유로운 나, 죽음을 선택하는 자유로운 삶을 보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결정적인 선택을 내려야 할 인생의 순간에 홀로 처절히 외로움을 곱씹는다. 이런 결정은 내가 나와 일 대 일로 마주 본다는 각오로만 내려져야 한다. 그 어떤 단체의 이상, 내가 보기에는 망상일 뿐이지만, 어쨌거나 그 어떤 사회적 이상에 헌신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행동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실존적인 자기 결단의 문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포기하려는 결정조차 그 개인 자신에게만 속하는 것일 따름이다. (186쪽)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없는 삶에 대한 저자의 독보적이고 거침없는 글은 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웅장한 울림으로 전해진다. 우리는 이제 자유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해야 한다. 자유죽음은 부조리하지만, 어리석은 것은 아니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자유죽음을 품은 이거나 실행한 그들의 선택이 최선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선택과 행위에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들의 삶은 모두의 그것처럼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다. 나를 사랑하며 나 자신을 사는 일이 소중하고 중요하듯 말이다. 


나로 살지 못하게 하는 세상, ‘에세크’란 장벽은 여전하다. 그 세상에 나는 존재한다. 죽음이라는 실체와 맞닿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존엄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장 아메리의 말을 심연에 새기며 살고자 한다.


삶이 탄생의 순간부터 죽어감이었던 것처럼, 죽기로 각오한 당당함은 삶의 길을 열어준다.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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