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김수정의 『감정을 파는 소년』이 그러하다. 감정을 팔다니, 그게 가능할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풍부해서 판다는 걸까, 필요 없다고 느끼는 감정을 판다는 걸까. 만약 이 모든 게 가능하다면 나는 어떤 감정을 팔고 어떤 감정을 사고 싶을까. 감정을 산다면 어떻게 사는 걸까. 가격 책정은 적당할까. 책을 읽기도 전에 이런저런 생각으로 꽉 차있다. 


소설은 제목 그대로 감정을 사고파는 가게의 이야기다. 감정을 팔러 온 이들의 저마다의 특별한 사연과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들려준다. 후미진 곳에 자리한 가게의 사장은 ‘정우’, 하지만 감정을 매입하는 이는 ‘민성’이란 이름의 소년이다. 사장은 정우지만 가게의 모든 일은 민성의 몫이다. 


가정 먼저 만나는 감정은 사랑이다.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게 사장을 사랑하는 여자는 혼자만의 사랑이라고 여겨 그 감정을 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중에 사장도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되지만 사랑을 팔아버려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감정을 팔아버리면 감정은 사라진다는 말이다. 반대로 사랑이란 감정이 필요하면 민성의 가게에서 사랑을 구입할 수 있다. 


집안을 돌보지 않고 가정폭력을 일삼으며 결국에는 도박에 빠진 아버지를 향한 ‘증오’로 가득한 삶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증오를 팔기로 한 손님에게 정우는 누가 증오를 사겠냐며 거부하지만 민성은 달랐다. 증오라는 감정 역시 누군가에게는 필요하다며 구매한다. 그리고 얼마 후 증오를 사겠다고 온 이가 있었다. 7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에게는 증오가 필요했다. 증오를 사러 온 여자의 사연이 그렇다. 여자는 처음에는 남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헤어지지 못한다고 여겨 가게에 와서 사랑을 팔고자 했다. 그러나 민성은 여자에게 남자를 사랑하는 감정이 없다고 말한다. 그동안 7년이라는 시간의 정에 붙들려 살았지만 이제는 끝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떨쳐버리고 싶은 감정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게 필요하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렇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완벽한 감정이란 없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함께 공부를 하는 정우와 종현에게도 마찬가지. 경제적인 지원이 어려워 고시촌 총무를 하는 정우에게는 열등감이 심했고 반대로 너무 편안하게 공부하는 종현에게는 자극이 될 열등감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서로를 격려하며 공부하던 사이였지만 정우는 종현을 의식했고 결국 자신의 열등감을 팔았다.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감정은 어떻게 사라질 수 있을까? 바로 그것이 민성의 능력이다. 민성이 손님의 손에서 그 감정을 추출하는 것이다.


“슬픔과 사랑은 떼어낼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상대방에 대한 사랑 또는 나 자신에 대한 연민, 세상의 모든 슬픔은 누군가를 사랑해서 생기는 감정이니까.” (141쪽)


민성의 말처럼 슬픔과 사랑은 한 몸처럼 붙어있어 누군가 사랑하는 일에는 때때로 큰 슬픔이 동반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시작될 때 이별은 생각할 수 없기에 이별을 감당하기 어렵다. 사랑 때문에 슬프고 사랑 때문에 아파도 우리는 사랑을 놓지 못하는 게 아닐까. 연인을 향한 사랑뿐 아니라 가족, 친구, 세상을 향한 사랑까지도. 


감정이란 참 이상하다. 자신의 감정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객관적이지 못한 게 감정이다. 이처럼 내 안의 감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어렵고 그 과정을 알아가며 성장하는 것이다. ‘사랑’, ‘증오, ‘열등감’, ‘슬픔’, ‘기쁨’, ‘행복’등 다양한 감정을 잘 표현하고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면 상대의 감정에 의해 다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다. 친구와의 관계, 정체성, 여러 가지 감정과 맞닥뜨리는 청소년들에게 이 소설이 자신의 감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감정을 분류하고 정리한다는 소재가 독특하면서도 좋다. 세상에 쓸모없는 감정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저마다 소중하다는 걸 알려준다고 할까. 


“사랑은 플라스틱 통에 담아서 따뜻하게, 증오는 캔에 담아서 차갑게, 열등감은 나무 그릇에 미지근하게, 슬픔은 머그에 담아 실온보다 조금 따뜻하게.” (141쪽)


따뜻한 사랑과 슬픔, 차가운 증오, 미지근한 열등감, 차별적인 감정을 상상한다. 그리고 현재 나의 감정 상태는 어떤지 생각한다. 넘치는 감정은 무엇일까. 다채로운 감정 이야기, 그 안에서 솔직한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는 순간, 조금 편안해지는 쪽으로 감정을 다스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미래에는 정말 이런 소설처럼 감정을 파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소설 적 상상으로는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무섭다. 필요에 의해 직접 경험하지 않는 감정을 사고 파는 일,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감정을 구매해서 대체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공감이 사라진 시대라고 하면 맞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아픔이나 상처를 알지 못하고 위험에 빠진 이를 구하려면 그 경험을 구매한 사람만이 가능한 시대.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란 제목이 쓸쓸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가 정녕 감정이 사라진 무미건조한 그런 미래가 될까 두렵다. 감정만 파는 게 아니라 도덕, 사랑도 파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이주혜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을 읽을 때 어느 순간 글에 나를 대입하고 있다는 걸 발견할 때가 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상관없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인물이 처한 상황과 쉽게 바꿀 수 없는 환경을 경험했을 때 모든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된다.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에 가려 다른 것은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독자는 비평가가 아니기에 그저 작가가 원하는 바를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쩌면 그게 더 나은 독서 일지도 모른다. 모든 책의 마지막에는 독자가 있으니까.


이주혜의 단편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를 읽으면서 여성 독자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입장에서 소설 속 인물이 놓인 어려움이 고스란히 내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주혜는 장편소설 『자두』에서도 간병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림자 노동의 현실을 보여주고 돌봄의 주체인 여성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여전히 차별적인 여성의 지위에 대해 들려준다. 첫 단편집에서 수록된 9편의 단편에서도 여성의 삶을 다룬다.


가족 안에서 딸, 아내, 어머니라는 자격을 부여받은 여성의 위치와 감당해야 하는 역할은 여전히 불편하다. 세 자매가 아버지의 사십구재를 치르고 모인 「오늘의 할 일」에서 자매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버지를 기억한다. 그 기억은 세 딸을 둔 아버지가 밖에서 낳아 온 아들로 이어진다. 어린 동생을 향한 자매의 감정을 충분히 알 것 같은 건 오빠를 두고고 아들 하나를 더 낳기 위해 딸 셋을 낳은 엄마가 생각나서다. 엄마는 내 밑으로 남동생을 낳았다. 우리 자매에게도 남동생을 돌봄과 동시에 미움의 대상이었다. 아들만 대우를 받았던 시대는 지났지만 많은 여성이 그 상처와 함께 살아간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엄마 되기를 강요받는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해부학자 ‘녕’과 결혼한 산부인과 의사 ‘규’도 다르지 않다. 산부인과 의사이기에 낙태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규’는‘원’을 출산 후 엄마라는 자신의 존재와 역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집을 떠나 아프리카 난민 봉사활동에 전념한다. 친정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열여섯 ‘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을 때에도 곁에 없었다. ‘원’의 죽음을 두고 ‘녕’이 ‘규’를 비난하는 건 옳은 것일까. 누가 엄마의 역할을 규정할 수 있는가.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에서 한 번 더 묻는 질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시작된 시점, 아이들을 통해 맺어진 세 엄마의 우정이 흔들리는 과정을 통해 엄마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나’,‘수라 언니’,‘미예’는 엄마라는 이유로 친해졌다. 기혼 여성이 학부모로 만나 이어지는 유대관계는 친밀 그 이상을 지닌다. 셋 역시 그러했다. 팬데믹의 상황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미예를 위로하는 자리가 코로나 확진으로 이어졌다. ‘수라 언니’의 확진으로 밀접 접촉자인 나’와 ‘미예’는 물론 가족까지 검사를 받는다. 가족 일부가 확진되고 치료를 위해 생활치료센터로 떠나거나 자가 격리를 한다. 코로나 확진의 모든 책임은 엄마에게도 쏟아진다. 아이를 키우는 고충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맘충’이나 ‘유한부인’이라 비난을 받아야 했다. 3년 차인 현재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걸 알지만 3년 전으로 돌아가면 사회 전반의 시선이 소설과 다르지 않다.


무엇이 자꾸 우리를 겁쟁이로 만들까? 우릴 자꾸 고립시키고, 왜 저러고 사나 싶게 만들고, 경멸하기 좋은 얼굴로 변모시키고, 끊임없는 자기 증명의 압박을 가하는 이 병의 이름은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재난의 한복판에서 천근만근이 되어버린 아이를 업고 달리는 (그러나 달리지 못하는) 꿈을 반복해서 꾸는 걸까? 이 바이러스의 진짜 이름은 무엇일까? (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 120~121쪽)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엄마의 역할뿐 아니라 가장의 역할도 맡았다. 표제작인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속 주인공 ‘은정’이 그러했다. 자궁 적출을 위한 수술대 위에 오른 몸에서 유체이탈한 영혼이 지난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는 쓸쓸하다. 결혼하지 않은 않고 일하는 여성을 향한 온간 소문과 추문은 한결같다는 게 창피할 정도다. 


이주혜가 보여준 소설 속 인물은 허구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실재하기에 생생하게 담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엄마와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제시하는 「봄의 왈츠」는 가까운 미래에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반갑다. 봄이 여자친구인 ‘나’에게 세 명의 엄마를 소개한다. 혼자 봄이를 낳은 ‘선남’, 선남의 오랜 친구 ‘리온’, 리온의 연인 ‘미호’는 모두 봄의 엄마다. 그들은 각자 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고 무시와 학대를 받았다. 선남, 리온 , 미호는 봄의 가족으로 자신이 잘 하는 일로 봄을 돌보며 봄의 엄마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한,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들. 오래전 한 어린 사람을 이 세상에 환대해주어 내가 사랑할 수 있게 해준 여자들을 만나서, 내가 오히려 고마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다만 봄을 한번 와락 안아주었다. (「봄의 왈츠」, 243쪽)


「그 시계는 밤새 한번 윙크한다」 속 ‘나’와 ‘온’과 ‘율’도 다르지 않다. 이혼한 ‘나’가 딸인 ‘율’에게 미처 챙기지 못하고 알려주지 못하는 부분을 나의 친구인 ‘온’이 채워준다. 과거 ‘나’와 ‘온’이 각자의 엄마에게서 받지 못하 애정과 사랑을 ‘율’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되어서야 자신이 알지 못한 엄마의 상실과 외로움을 알게 된다. 


이주혜의 단편집은 여성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마나 아내가 아닌 여성으로 사는 일은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따뜻한 배려와 연대에 대해 말한다. 다양한 가족 형태, 과거의 상처를 안아줄 수 있는 다정한 시선, 나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아름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며칠 전 친구와 나눈 전화 통화에서 가을이니까 책을 더 많이 읽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 때문이겠지만 실은 요즘 나의 읽기와 쓰기는 그저 그렇다. 아주 멋진 소설을 읽었지만 아직 리뷰를 쓰지 못했다. 이러다 쓰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읽고 있는 책에 집중하지 못해 다시 앞으로 나가기도 한다. 


책을 구매하는 일도 충동이 아니 신중함으로 한 번 생각하려고 한다. 다른 물건들은 한 번 더,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시간을 갖고 생각하는데 책은 그게 잘 안된다. 그러니 끌리는 대로 사는 편이다. 최소한으로 구매하고 책장의 책을 읽거나 정리하는 게 항상 주된 목표지만 목표는 목표에 그친다.






단편집 한 권과 시집 한 권, 딱 좋다고 여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편집 『지고 말 것을』의 제목처럼 결국 또 지고 말았다. 진은영의 이번 시집은 제목이 나를 붙잡는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란 제목에서 오래된 거리를 떠올리고 저마다의 너를 찾을 듯하다. 10년 만에 나온 시집이라서 기사도 많고 여기저기 언급도 많다. 그러니 시를 소개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 대신  『지고 말 것을』 속 이런 문장만 살짝 소개할까 한다.


그 밤에 달이 너무나도 밝았던 게 문제였을까요. 모래가 너무나도 하얬던 게 문제였을까요. 보름달은 흰 모래밭을 공기가 없는 색처럼 맑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달빛이 물방울처럼 똑바로 떨어질 만큼 조용했던 탓인지 공기가 움직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내 그림자는 흰 종이에 떨어진 먹처럼 쌔까맸습니다. 내 몸은 흰 모래에 세워놓은 하나의 날카로운 선이었습니다. 모래사장이 사방에서 흰 헝겊처럼 빙글빙글 말려올라왔습니다. (「푸른 바다 검은 바다」 중에서)


아무튼 가을이니 소설도 좋고 시집도 좋다. 나쁠 게 없다. 나쁜 건 나의 태도, 읽는 즐거움을 미루고 사들이는 즐거움에 기대는 나의 태도다. 끌리는 대로 읽어야지. 문제는 끌리는 책이 아주 많다는 거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22-09-26 1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들이는 즐거움에 더 끌리는 저도 반성하며 ㅎㅎ 자목련 님 저도 요즘 뭔가 집중이 안 되고 중구난방입니다. 가을탓이라고 해둘까요. 가을에도 좋은 시집과 선별하신 독서로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자목련 2022-09-27 19:18   좋아요 2 | URL
가을이니 가을탓을 해도 괜찮겠지요. 프레이야 님이 포스팅 하신 김연수 신간도 조만간 사들이는 즐거움에 속할 것 같아요~~

scott 2022-09-26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진은영 시집 자목련님도 ^^

이번에 첫판 완판!
1만권 팔렸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 여전히 시를 읽고 사릉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서

저도 시집 찾아 ~~@@

자목련 2022-09-27 19:17   좋아요 2 | URL
1만권이 팔렸다니 대단하네요.
아마도 10년 만에 나온 시집이라 마케팅이 더 성공한 것 같기도 해요. ㅎ

책읽는나무 2022-09-26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궁금한 자목련님 책장 속 시집들은 꼭 자목련님 글 분위기와 많이 닮은 듯 합니다.
정갈하네요~
선택하신 두 권의 책들 제목.
가을에 잘 어울려 보입니다.^^

자목련 2022-09-27 19:16   좋아요 3 | URL
시집에 어울리는 분위기로 애써보겠습니다. (정갈함과 거리가 멀지만, ㅎ)
이 두 권으로 가을을 잘 버티고 싶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9-26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리뷰 써야 할 것이 있는데 계속 미뤄지네요. 벌써 2주가 넘었는데 흑흑.
두 책도 아름답지만 뒤쪽에 가지런히 정리된 책들이 눈에 띕니다!^^
가을은 시의 계절이지요. 시를 잘 읽지는 않는데 사둔 시집이나 좀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목련 2022-09-27 19:14   좋아요 2 | URL
사진은 위장인 거 아시지요? 책장은 가장 어수선한 곳입니다. 화가 님이 사둔 시집, 궁금합니다!

mini74 2022-09-26 17: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는 즐거움을 미루고 사들이는 즐거움 ㅠㅠㅠ 저 막 찔립니다 자목련님 ㅎㅎ 시집들 보니 오랜만에 시집 읽고싶어집니다 *^^*

자목련 2022-09-27 19:13   좋아요 2 | URL
사들이는 즐거움도 필요합니다. 사실, 요즘 제일 간절합니다. ㅎㅎ
가을을 핑계 삼아 시집을 읽어볼까요?
 
방어가 제철 트리플 14
안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여 있는 슬픔을 덜어낼 수 있는 가장 큰 그릇은 존재할까.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저 그 슬픔이 다 마르거나 증발해버려서 덜어낼 필요가 없는 순간을 기다리는 일이 현명하다. 애도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시간은 없다. 일정 기간이 지났다고 해서 상실과 애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들과 함께 살아갈 뿐이다. 처음 만나는 작가 안윤의 『방어가 제철』 은 그런 애도의 기록이다. 그래서 수록된 세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죽음은 낯설지 않다. 


우리 생에는 발작처럼 대응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온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후회를 몰고 온다. 뭔가 나의 잘못으로 기인한 일이 아닐까 싶은 마음과 상대를 향한 애정이 부족했다는 안타까움에 책망의 시간이 시작된다. 화자가 ‘소애’의 생일상을 차리는 장면을 천천히 묘사하면서 그 모든 과정을 ‘은주’ 언니에게 들려주는 형식의 「달밤」 속에서 그녀의 부재를 직감할 수 있다. ‘소애’의 생일과 ‘은주’의 기일이 같은 날이라는 게 애석하지만 누군가 죽는 날 누군가 태어나는 게 삶이라는 자명한 사실이다. ‘은주’의 장례식장에서 돌아와 화자가 수첩에 쓴 것처럼 결국 남겨진 이들의 몫은 살아가는 일이다.


살아 있는, 살아 있으니 살아. 살아서 기억해. 네 몫의 삶이 실은 다른 삶의 여분이라는 걸 똑똑히 기억해. 그렇다고 너무 아끼지도 말고 너무 아까워도 말고, 살아 있는 나를 아끼지 말고 살아. (「달밤」, 30쪽)


알고 있지만 나를 아끼지 말고 살아가는 게 불가항력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오빠의 친구인 ‘정오’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방어가 제철」 속 ‘나’가 그러하다. 미대에 가고 싶어 하던 나를 위해,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간 오빠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삼십 대가 된 ‘나’는 지병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반찬가게를 하고 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정오’는 엄마의 죽음을 통해 재회했다. 그리고 방어가 제철인 계절에 둘은 만난다. 오빠 ‘재영’과 ‘정오’, 화자까지 셋이서 하나처럼 지냈던 시절, 이제는 남은 둘이 의식처럼 ‘재영’을 기억한다. 그러나 시시콜콜 일상을 나누면서도 ‘재영’을 언급하는 일은 없다. 서로를 통해 ‘재영’의 부재를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것을 모른 척 위장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더는 내게 묻지 않는다. 언제부터 묻지 않게 되었는지조차 묻지 않는다. (「방어가 제철」, 70쪽)


「달밤」과 「방어가 제철」이 가까운 이를 애도하는 기록이라면 「만화경」은 우리 주변의 고독사에 대한 애도라 할 수 있다. 이혼 후 한 빌라의 세입자로 들어온 ‘나경’은 집주인 ‘숙분’ 때문에 불편하다. ‘나경’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할머니라 여기고 거리를 두었는데 ‘숙분’의 친구 ‘단심’이 빌라로 이사를 오면서 오해가 풀렸다. ‘나경’이 살던 집의 전 세입자가 혼자 외롭게 생을 마감한 일이 있어 ‘숙분’이 그렇게 살폈던 것이다. ‘미리내’란 이름을 알게 된 후 그녀를 애도한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여겼던 사람의 죽음과 그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 일상에서 스치듯 그 이름과 마주했을 때 그 이름이 갖는 슬픔까지 마주할 수밖에 없다. 알게 된 이상 그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불행한 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을 애도하는 방식이다. 소설은 우리를 그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차오르는 분노와 함께 신당역 역무원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처럼 저마다 담담하면서도 차분하게 일상을 살아가면서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하며 살아가려고 애쓴다. 때로는 그리움에 울부짖고 때로는 부정하며 곁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생활한다. 특정한 물건을 볼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선명하게 확보된 부재에 절망한다. 하나같이 차분한 안윤의 소설은 에세이까지 한결같다. 나는 소설보다 에세이에 마음이 기운다. 애도는 구멍이 뚫린 가슴으로 살아가는 일이다. 걷잡을 수 없이 점점 커지는 구멍을 그저 내버려 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없이 쓸쓸하고도 다정한 애도가 나를 떠난 이들의 이름을 불러온다.


당신에게는 더는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이름들이 있다. 서서히 멀어졌거나 뒤돌아 떠났거나,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이름들. 대답을 들을 수 없다고 부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자주 그 이름들을 부른다. 묵독을 할 때처럼,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을 때처럼 호명한다. 그 이름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지만 당신은 선명하게 듣는다. 고유한 말투, 희미한 미소, 가만가만히 고갯짓을 본다. 때때로 그 이름들이 당신들의 일상에 출몰하기도 한다. (「없는 것들이 있는 자리」, 126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9-23 19: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없이 쓸끌하고 다정한 애도가 나를 떠난 이들의 이름을 불러온다. ㅠㅠ 자목련님이 소개해주시는 책내용도 좋지만 자목련님이 쓰신 문장에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쓸쓸하고 다정한 이름들을 가끔 꺼내보고 쓰다듬으며 그렇게 사는거겠지요.

자목련 2022-09-25 15:39   좋아요 2 | URL
나도 어떤 이들에게 그런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미니 님, 맑고 빛나는 오후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9-24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어회 맛있지...
하고 보다가, 다시 방어가 제철이란 제목에 쓸쓸함으로 다가오네요

자목련 2022-09-25 15:38   좋아요 2 | URL
전체적으로 쓸쓸한 소설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쓸쓸함이 좋았습니다.
그레이스 님, 맛있는 가을 이어가세요^^
 

아침 일찍 가을이 도착했다. 도착 시각은 7시 48분, 나는 그때 커피와 배를 먹고 있었다. 한 손으로 들기 어려운 큰 배는 제법 달았다. 입안에 단 맛이 가득 고였다. 집 안에 있던 나에게 집 밖의 가을이 들어왔다. 친한 언니가 보내준 한 장의 사진에 가을 전부 들어 있었다. 이런 감성을 지닌 언니가 나를 생각해 준 게 고마웠다. 언니가 마주한 가을이 내게 들어왔다. 

아침 일찍 가을이 도착했다. 도착 시각은 7시 48분, 나는 그때 커피와 배를 먹고 있었다. 한 손으로 들기 어려운 큰 배는 제법 달았다. 입안에 단 맛이 가득 고였다. 집 안에 있던 나에게 집 밖의 가을이 들어왔다. 친한 언니가 보내준 한 장의 사진에 가을 전부 들어 있었다. 이런 감성을 지닌 언니가 나를 생각해 준 게 고마웠다. 언니가 마주한 가을이 내게 들어왔다. 


아마도 쪼그리고 앉아서 가을이라는 글자를 만들었을 언니의 모습을 상상한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오감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받아들였을 언니의 마음은 커다란 동그라미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모든 잡념을 버리고 언니의 내면과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과정에 나를 데리고 간 것 같은 기분이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기쁨과 설렘, 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가! 삶에는 이처럼 아름다운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를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라는 계절을 함께 느끼고 나누는 마음이 고맙고 좋다. 나도 언니가 보내준 마음을 이렇게 나눌 수 있어 기쁘다.


가을을 선물 받은 아침, 가을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라고 할까. 이 사진을 보면서 나는 이런 시를 찾았다. 왠지 잘 어울릴 것 같다. 자연으로의 초대, 혹은 사귐의 시간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은 시다. 시의 제목은 「소로의 오두막」이다. 제목만으로 자연의 일부가 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월든 호수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오두막에는

의자가 세개 있었다고 합니다


친구가 찾아오면 의자 두개를 마주 놓고

나그네들이 오면 의자 세개를 다 내놓았다고 합니다

홀로 고독을 즐길 때는 의자가 하나만 필요했겠지요


미루어 짐작건대

소로가 혼자 앉아 있을 때에도

의자 두개가 비어 있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월든 호숫가 숲속

소로가 혼자 들어가 손수 짓고 살던

한칸 오두막에는 침대 하나에 책상 하나

그리고 의자가 세개 있었다고 합니다 ( 「소로의 오두막」, 전문)


가을을 선물 받은 아침을 당신에게도 선물하고 싶다. 잠시 고개를 들어 높은 하늘과 먼 풍경을 바라보는 그런 하루가 시작되었으면 한다. 마음에도 가을 한 자락, 담아두고 가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그런 하루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당신에게 가을을 허락하면 좋겠다. 가을이 당신 곁에 잠시 머물도록 말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리의화가 2022-09-22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런 풍경을 근처에서 마주하기는 어려운 곳에 살지만 매일 아침 높아져가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매일 다른 구름 모양을 바라보는 것으로 가을을 느낍니다. 물론 변덕스러운 기온도 그렇구요. 가을 아침 선물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자목련 2022-09-23 15:5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요즘 하늘이랑 구름이 정말 예뻐요! 기쁘게 받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무 님, 선물 같은 일상으로 가득하길 바라요^^

책읽는나무 2022-09-22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을이 그렇게 다가왔군요?
곱고 따뜻한 기운의 가을입니다.^^
순간 멈추고 고요해지기도 하구요.
자목려님도 이 가을,
늘 건강하시고 복된 가을 되시길 바랍니다^^

자목련 2022-09-23 15:57   좋아요 2 | URL
네, 따뜻하고 포근한 가을이에요. 조만간 또 바람이 사나워지는 겨울이 오겠지 생각하면 아쉬워요.
나무 님도 행복하고 평온한 가을 이어가세요^^*

mini74 2022-09-22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예쁘네요. 다람쥐가 우와! 대박이다 하며 주워갔을 상상도 합니다. 다람쥐는 자신도 모르게 가울을 주워갔네요. 사진도 글도 넘 좋아요 *^^*

자목련 2022-09-23 15:57   좋아요 2 | URL
귀여운 다람쥐까지 초대하는 미니 님의 센스!
하늘처럼 맑은 가을로 채우세요^^

프레이야 2022-09-22 1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배가 엄청 달아요. 도토리 넘 귀여워요.
가을 한 자락 어디다 담아둘까요 오늘^^

자목련 2022-09-23 15:55   좋아요 3 | URL
짧아서 아쉬운 가을, 잘 담아두셨을까요?
프레이야 님의 가을이 풍성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