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와 나눈 전화 통화에서 가을이니까 책을 더 많이 읽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 때문이겠지만 실은 요즘 나의 읽기와 쓰기는 그저 그렇다. 아주 멋진 소설을 읽었지만 아직 리뷰를 쓰지 못했다. 이러다 쓰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읽고 있는 책에 집중하지 못해 다시 앞으로 나가기도 한다.
책을 구매하는 일도 충동이 아니 신중함으로 한 번 생각하려고 한다. 다른 물건들은 한 번 더,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시간을 갖고 생각하는데 책은 그게 잘 안된다. 그러니 끌리는 대로 사는 편이다. 최소한으로 구매하고 책장의 책을 읽거나 정리하는 게 항상 주된 목표지만 목표는 목표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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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한 권과 시집 한 권, 딱 좋다고 여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편집 『지고 말 것을』의 제목처럼 결국 또 지고 말았다. 진은영의 이번 시집은 제목이 나를 붙잡는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란 제목에서 오래된 거리를 떠올리고 저마다의 너를 찾을 듯하다. 10년 만에 나온 시집이라서 기사도 많고 여기저기 언급도 많다. 그러니 시를 소개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 대신 『지고 말 것을』 속 이런 문장만 살짝 소개할까 한다.
그 밤에 달이 너무나도 밝았던 게 문제였을까요. 모래가 너무나도 하얬던 게 문제였을까요. 보름달은 흰 모래밭을 공기가 없는 색처럼 맑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달빛이 물방울처럼 똑바로 떨어질 만큼 조용했던 탓인지 공기가 움직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내 그림자는 흰 종이에 떨어진 먹처럼 쌔까맸습니다. 내 몸은 흰 모래에 세워놓은 하나의 날카로운 선이었습니다. 모래사장이 사방에서 흰 헝겊처럼 빙글빙글 말려올라왔습니다. (「푸른 바다 검은 바다」 중에서)
아무튼 가을이니 소설도 좋고 시집도 좋다. 나쁠 게 없다. 나쁜 건 나의 태도, 읽는 즐거움을 미루고 사들이는 즐거움에 기대는 나의 태도다. 끌리는 대로 읽어야지. 문제는 끌리는 책이 아주 많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