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끌 무언가를 원한다. 아니 원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이 상태를 즐기는 것 같다. 그렇다. 그게 정답이다. 주말 내내 넷플릭스와 함께 보냈다. 우연히 본 드라마는 할렌 코벤의 소설이 원작이었다. 나는 그 작가의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다. 혹시나 해서 블로그를 검색했지만 없었다. 가까운 이가 실종되고 그들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당연 죽음도 있었다. 두 편을 넘기기 비슷한 구성이고 가장 먼저 누구를 의심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소설로 읽을 것 같지는 않은데 시간이 되면 나머지 드라마도 다 볼 것 같다.


주말에는 3월에 결혼하는 조카의 피로연이 있었고 다른 조카가 찍은 사진을 받아보았다. 조금 긴장한 것 같은 양복 차림의 오빠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올케언니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추웠던 날씨가 풀려 다행이었다. 3월 결혼식 당일에도 날씨가 좋기를 바란다.


계획한 대로(정말 그런가?) 책을 덜 사고 있다. 그러나 더 많이 읽지는 못한다. 최근에는 아예 책을 읽지 못했다. 일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읽지 않았다.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궁금하지 않고 읽고 싶지 않다. 그러니 그런 마음을 돌려줄 책이 필요하다.


그래서 책을 샀다. 2월의 소설이다. 지난 번 주문을 하면서 배송지를 다른 곳으로 보냈다. 커피와 책은 내가 없는 곳에 도착했다. 2월이 정말 엉망진창이다. 이번엔 내가 있는 곳으로 제대로 주문했다. 한 번 실수를 하니 꼼꼼하게 살핀다. 결제를 하기 전에 배송지를 확인하고 쿠폰 결제를 확인했다. 좋은 일이다. 한국 소설 2권, 외국 소설 1권이다.






김지연의 단편집『조금 망한 사랑』은 김연수의 추천사가 있었지만 궁금하지 않았는데 어떤 글을 읽고 단편집이 읽고 싶어졌다. 예소연의 장편 『영원에 빚을 져서』는 읽고 싶어서 샀다. 김지연과 예소연은 모두 편집자라고 한다. 편집자이면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많은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작가도 있을 것이다. 나머지 한 권은 알바 데 세스페데스의 장편소설 『금지된 일기장』이다. 독서괭 님의 리뷰를 보고 구매했다. 제목의 의미도 궁금하다.


2월의 절반은 흘려보냈다. 남은 절반은 뭔가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잡고 싶다고 해서 잡힐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대단한 게 잡히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도 뭔가 쥔 느낌이 들면 좋겠다. 가느다란 무언가, 아주 작디작은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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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5-02-17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할렌 코벤 원작 드라마 몇 편 봤어요 한번 보면 주르륵 연달아 보게 되더라고요ㅋㅋㅋ
자목련님 남은 2월도 화이팅😄

구단씨 2025-02-17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책을 읽고 싶지 않은, 책을 읽을 수 없는 마음을 돌려줄 책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에게도...

괜찮아지겠지 하면서도 자꾸만 책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으니까,
쌓여 있는 책들이 괜히 야속하기만 하고,
햇살은 따뜻해졌고 여전히 바람은 차갑고, 가을과 봄 그 어디 쯤에서 왔다 갔다 하는 날씨마저 마음에 안 드네요. ^^
 
우리말 나들이 어휘력 편 - 신뢰와 호감을 높이는 언어생활을 위한
MBC 아나운서국 엮음, 박연희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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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마다 맞춤법 검사기를 사용한다. 맞춤법이 틀렸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최근 카톡을 보내면서 맞춤법 기능이 추가되었다는 걸 알고 반가웠다. 매일 사용하는 우리말인데도 매번 맞춤법은 어렵다. 어디 맞춤법 뿐인가. 우리말을 배우고 쓰기 시작하면서 점점 어렵다고 느끼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우리말 맞추기 퀴즈인 <우리말 겨루기>를 시청하면서도 맞추는 것보다는 틀리는 게 훨씬 많다. 시청할 때마다 우리말의 세계에 놀라곤 한다.

잘 모르고 사용하는 우리말은 얼마나 많은가. MBC 아나운서국에서 엮은 『우리말 나들이 어휘력 편』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세상에나, 내가 사용하는 말들이 이렇게 틀렸다고. 그런데도 틀린 줄도 모르고 그냥 사용했다는 게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몇 년 전 논란이 되었던 ‘명징하게 직조한’ 이란 영화평이나 ‘심심한 위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간단하게 줄이는 말, 기존과는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말, 변화하는 말들 속에서 우리말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우리말 나들이 어휘력 편』은 가장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책을 살펴보면 이렇다. 일상에서 쉽게 사용하는 말들이지만 헷갈리는 맞춤법, 잘못된 발음에서 이어져 틀린 상태로 굳어져 사용하는 표현, 익숙해진 외래어를 바르게 쓰는 표기법, 제대로 알고 올바르게 쓰도록 순화어 안내까지 모두 4장으로 구성되었다. 목록을 따라 사용하는 말들을 보면 이게 맞는 거라고 하며 놀라는 말들이 많다. 내가 알고 사용한다고 여겼던 우리말이 잘못된 거라 여기는 이는 얼마나 될까.


어느 집에나 있는 곽 티슈는 옳은 말일까? 맞춤법 검사를 돌리는 바로 곽 티슈를 갑 티슈로 수정하라고 안내한다. 그렇다. 물건을 담는 작은 상자를 나타내는 표준어는 이다. 곽 티슈 아니고 각 티슈도 아니고 갑 티슈가 정답이다.

이 책을 저 갑에 넣어봐.

휴지 한 갑만 주세요.

비슷해서 헷갈리기도 했고 주변에 누군가 바로잡아주는 이가 없어서 그냥 사용하는 말들은 어떤가. 자주 쉽게 쓰는 들르다 와 들리다를 보자. 비슷한 말이다. 들르다, 들리다로 쓰고 보면 확연하게 다른 것 같지만 정확하게 사용하고 있을까?

지나는 길에 잠깐 들어가 머무르다의 뜻을 담은 우리말은 들르다로 ‘친구 집에 잠깐 들렀다’, ‘퇴근길에 포장마차에 들러서 친구를 만났다’를 ‘친구 집에 잠깐 들렸다’, ‘퇴근길에 포창마차에 들려서 친구를 만났다’로 쓰면 틀린 것이다. 정말 헷갈리기 쉬운 우리말이다. 책에서 정리한 것을 기억하면 틀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틀리게 사용하게 있는 말은 얼마나 많을까. 책을 따라 읽으며 하나하나 고쳐가며 내 것으로 흡수하는 과정도 뿌듯하다.

근처에 오면 꼭 들러주세요. - 근처에 오면 잠깐 방문해달라는 뜻

근처에 오면 꼭 들려주세요. - 근처에 오면 무엇을 듣게 해달라는 뜻

이처럼 책은 쉽고 친절하게 우리말을 설명한다. 올바른 언어생활을 위한 순화어는 바로 일상에서 적용하면 좋을 것 같다. 다가오는 3·1절이나 광복절에 집집마다 국기를 게양하라는 안내방송은 국기를 달다로 순화하여 태극기를 달다, 국기를 올리다로 사용하기를 권한다. 나부터도 이렇게 바꿔 사용해야겠다.


뭔가 공부를 하거나 배운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펼치는 대신 몰랐던 단어의 뜻을 알아가는 재미, 내가 알게 된 것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쉽게 알려주는 기쁨으로 책을 만나면 좋겠다. 우리말보다는 외래어, 줄임말에 익숙한 청소년 세대가 많이 접했으면 좋을 책이다. 다이어리 꾸미기처럼 첨부된 책 꾸미기 스티커로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완독하고 나면 우리말을 쓰면서 자신감이 상승할 것이다. 물론 한 번으로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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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2-12 0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사람은 다 다른 몸을 입고서 태어납니다. 모든 사람은 머리숱이 다르고, 머릿결이 다르고, 키와 몸무게와 얼굴과 맵시가 다릅니다. 모든 사람은 이도 다르지요.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우리나라는 겉모습에 지나치게 치우치면서 ‘다 다른 사람’이 ‘다 똑같은 겉모습’이어야 한다고 여기기 일쑤입니다. 얼굴을 꾸미거나 고쳐야 한다든지, 살을 빼거나 붙여야 한다든지, 이빨을 줄세우듯 맞춰야 한다고 여기고 맙니다.

때로는 머리카락이나 몸이나 이를 살짝 다독일 수 있습니다만, 모든 사람이 얼굴뼈와 머리뼈가 다르기에 이도 다르게 마련인데, 그저 줄세우듯 이를 쇠줄로 친친 감아서 맞추려 하면, 오히려 나중에 뼈가 어긋나고 맙니다. 얼굴을 비롯해 몸에 자꾸 칼을 대어 고친 사람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고치고 손볼 일이 늘어납니다.

저는 우리말꽃(국어사전)이라는 꾸러미를 쓰고 엮는 일을 하는 터라, 어느덧 서른 해째 곳곳에 ‘우리말 이야기(강의)’를 들려주러 다니기도 하고, 노래쓰기(시창작)를 들려주기도 하는데, 이웃님한테 으레 여쭙는 몇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는 “‘맞춤말(표준어·정서법·철자법)’에 얽매이지 말라”입니다. 글쓰기를 거드는 풀그림을 쓸 적에 맞춤틀(맞춤법 검사기)을 켜는 분이 꽤 많은 줄 알지만, 맞춤틀은 아예 끄고서 글을 써야 한다고 여쭙니다. 맞춤틀을 켜고서 쓰는 글로 갇히면 ‘글다운 글’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글은 ‘말’을 옮깁니다. 말은 ‘마음’을 담습니다. 마음에는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짓고 가꾸고 누린 ‘삶’이 담깁니다. 그래서 “글쓰기 = 말하기 = 마음짓기 = 삶쓰기”인 얼거리입니다. 우리가 글을 쓰는 뜻이라면, “보기좋거나 반듯하거나 멋스러운 겉모습인 글”이 아닌, “내가 내 나름대로 살아내고 살아왔고 살아가려는 꿈을 그리는 이야기를 옮기는 글”이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글을 쓸 적에는 “맞춤길에 틀린 곳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내 눈으로 보고, 내 몸으로 겪고, 내 손으로 짓고, 내 발로 다니고, 이리하여 내 온마음에 고스란히 담은 이 삶을 어떻게 담느냐”를 바라볼 노릇입니다.

맞춤틀을 켠 채 글쓰기를 할 적에는, “내 삶을 내 손끝으로 가다듬어서 옮길” 적에 자꾸자꾸 ‘띄어쓰기가 틀렸’다든지 ‘바로적기가 아니’라든지 ‘서울말(표준말)이 아닌 사투리를 쓰면 안 된’다든지 하면서 자꾸 끊기거나 바뀌곤 합니다. 이렇게 걸리고 멈추고 바뀌다 보면, 막상 “내 삶을 담는 글쓰기”를 잊거나 등지면서 “틀린 말씨가 있는지 없는지 따지는 틀”에 갇히지요. ‘글쓰기’가 아닌 ‘글만들기’로 기울어 갑니다.

‘정서법·철자법’은 일본에서 영어를 비롯한 먼나라 글살림을 받아들여서 배우는 동안 일본에서 지은 한자말입니다. 일본말씨입니다. 우리 글살림이 아닙니다. ‘일본옮김말씨(일본식 번역체)’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맞춤길(정서법·철자법)을 따지는 글살림을 폈어도, 고을마다 고을말이 고스란하더군요. 우리나라는 경상말과 전라말과 강원말과 충청말과 경기말과 서울말이 이제 낱말은 그냥 똑같으면서 높낮이나 밀당만 조금 다를 뿐인데, 일본은 오늘날에도 도쿄·쿄토·오사카·훗카이도·류우큐우·구마모토…… 사투리가 대단해서, 서로 말을 못 알아듣기도 합니다.

사투리가 죽은 나라는 말과 글도 나란히 죽는다고 느낍니다. 사투리가 싱싱하게 살아숨쉬는 나라는 말과 글도 나란히 빛난다고 느낍니다. 사투리는 그냥 ‘고을말’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고 살림하고 사랑하는 하루를 스스로 가꾸고 빚은 말씨입니다. 남을 흉내내지 않고서, 스스로 생각하고 가꾸는 마음을, 스스로 깜냥껏 엮고 빚어서 드러내는 ‘새말짓기’가 사투리입니다. 우리나라 맞춤틀은 바로 이 사투리를 깡그리 죽이거나 억누릅니다.

그런데 이런 대목에서 그치지 않더군요. 저는 미역국을 끓일 적에 멸치나 고기를 아예 안 씁니다. 이를테면 풀밥(채식) 미역국인데, 무를 바탕으로 미역국을 끓이면 ‘무미역국’이고, 배추를 바탕으로 미역국을 끓이면 ‘배추미역국’입니다만, 맞춤틀을 켠 채 글을 쓰면 ‘무 미역국’이나 ‘배추 미역국’처럼 띄라고 붙잡지요. 맞춤틀은 우리가 새롭게 가꾸거나 짓는 모든 살림살이하고 얽힌 낱말을 고루 담지 않거나 못 합니다. 또한 맞춤틀은 다 다른 새소리와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하나도 못 담거나 안 담습니다. 우리가 쓰는 한글은 온갖 새소리와 물소리와 바람소리까지 낱낱이 갈라서 담을 수 있다고 합니다만, 정작 다 다른 새소리나 물소리나 바람소리를 글로 담는 글바치는 이제 아주 보기 어렵습니다.

참새만 하더라도 ‘짹짹’ 노래하지 않습니다. 째째째째 찌찌찌지 쮜쮜 찟 찟 찌르릉 쪼릉 찌링 짭짭 칫칫 치리치리 짜르르르릉 쪼빗쪼빗 ……처럼 끝없이 다 다르게 노래하는데, 이런 ‘참새소리’를 맞춤틀을 켠 채 쓰면 다 고치거나 지우라고 나오지요. 더욱이 ‘참새소리’나 ‘박새소리’나 ‘딱새소리’처럼 붙여쓰기를 할 수도 없는 맞춤틀입니다. ‘바람소리’도 국립국어원 낱말책에 없기 때문에 띄어쓰기를 하라고 나올 텐데, 왜 띄어야 할까요?

글을 쓸 뜻이라면, 글로 내 마음을 담으려는 길이라면, 글로 내 삶과 살림과 사랑을 이웃하고 나누려는 하루라면, 우리는 이제 맞춤틀을 끌 일입니다. 이러면서 낱말책(사전)을 읽을 일입니다. 비록 국립국어원 낱말책이 우리 살림말을 두루 안 담았어도, 가장 수수하고 흔하다고 여길 낱말부터 찾아볼 노릇입니다.

글쓰기를 하려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열이나 스물쯤 이를 낱말책을 늘 자리맡에 놓고서 일부러 들춰서 읽을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익숙한 말이란 있을 수 없거든요. “다 아는 말”도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말꽃을 쓰는 일을 하지만, 날마다 낱말찾기(사전 검색)를 끝없이 합니다. 아주 흔하고 수수한 ‘하다·있다·보다·가다’ 같은 낱말도 여태까지 10만이 훨씬 넘도록 다시 찾아보고 살펴보고 읽으면서 새기고, 낱말풀이를 제 나름대로 가다듬습니다. 우리말이건 한자말이건 영어이건 다 찾아볼 노릇입니다. 우리가 쓰는 글에 담는 모든 낱말을 낱낱이 낱말책에서 손으로 종이를 넘기면서 살펴보고 찾아볼 때에 글힘이 붙고 글살림이 피어납니다. 익숙하게 쓰던 말씨라고 여겨서 낱말책을 안 뒤적이는 사람은 글힘이 사라지고 글살림이 안 자라더군요.

바로적기(표준어·정서법·철자법)가 좀 어긋나더라도 글이 엉망이거나 못날 수 없습니다. 띄어쓰기가 좀 틀리더라도 글이 엉터리라거나 어설플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로적기와 띄어쓰기를 내려놓을 일입니다. ‘마음쓰기’와 ‘삶쓰기’를 할 일이라고 느낍니다.

국립국어원 낱말책에 ‘신나다’라는 낱말이 2014년에 드디어 실렸습니다. 저는 2001년부터 국립국어원에 왜 ‘신나다’를 올림말로 안 싣느냐고 따졌습니다만, 열네 해 동안 “사람들이 ‘신나다’처럼 붙여쓰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올림말로 안 싣는다”는 대꾸만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신 나다’처럼 띄어서 쓸까요? 바로 맞춤틀 탓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입으로 말을 할 적에 “신 나요”처럼 띄어서 말하지 않습니다. “짜증 나!”처럼 띄어서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신나!”에 “짜증나!”처럼 ‘붙여말하기’를 합니다. 다시 말씀을 여쭙니다만, 국립국어원은 2014년에 드디어 ‘신나다’를 올림말로 삼았습니다만, 2025년 오늘까지도 ‘짜증나다’는 올림말로 안 둡니다. 이밖에도 ‘쓸모없다’는 올림말로 있으나 ‘쓸모있다’는 올림말로 없습니다. 아직도 ‘아들딸’만 올림말일 뿐, ‘딸아들’은 올림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맞춤틀로 글을 쓴다면 ‘아들딸’로 적을 적에는 붙여쓰기로 두겠지만, ‘딸아들’로 적으면 맞춤틀은 ‘딸 아들’처럼 띄라고 나옵니다.

글쓰기를 하다가 이런 작디작은 낱말에서 자꾸 멈추거나 걸린다면, 우리가 드러내거나 담거나 나누려고 하는 마음과 삶을 잊거나 놓치기 일쑤입니다. 숱한 사람들이 ‘가르치다·가리키다’를 가려쓰지 못 하더라도 그리 대수롭지는 않습니다. 두 낱말을 섞어서 쓰거나 잘못 쓰더라도 우리는 이 낱말을 쓰는 분이 무슨 말과 무슨 이야기와 무슨 마음을 나타내려고 하는지 알아듣습니다.

저는 전라남도에 삽니다. 전남에서도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살기에 곧잘 전남말이나 고흥말이 튀어나옵니다. “그랑께요.”라든지 “거석한디요.” 같은 말을 글로 옮기면, 이런 사투리도 맞춤틀은 다 지워버리려고 합니다. “그란디 말이죠” 같은 사투리를 “그러한데 말이지요”처럼 굳이 서울말씨로 바꾸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굳이 “우리말의 정확하고 올바른 사용”을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말을 알맞고 즐겁게 쓰”면 넉넉합니다. “올바른 우리말 사용”이란, 우리 마음을 스스로 옥죄고 억누르고 가두는 틀이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마음을 기울일 곳이라면 “즐겁고 신나게 우리말 노래”로 나아갈 일이지 싶습니다.

우리는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다 다르지만 다 닮은 듯한, 이러면서도 마음으로 다가가고 다가오면서 새롭게 다룰 말씨(말씨앗)”을 물려주기에 어른스럽습니다. 이렇게 해야 맞는다든지, 저렇게 하면 틀리다고 금을 긋는 틀이 아닌, ‘마음·말·만나다·마주·맑다·물’이 얽힌 수수께끼를 들려주면서 ‘밤·밝다·밭·바탕·바다·바닥·바람·파람(휘파람)·파랑·팔·활개·팔랑·펄럭·날개’가 얽힌 말밑을 하나하나 짚고 알려줄 적에 비로소 어른답다고 봅니다.

자목련 2025-02-17 11:55   좋아요 0 | URL
숲노래 님, 답글이 늦었습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익숙한 말과 다 아는 말도 있을 수 없다는 말씀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숲노래 님이 사시는 곳은 봄이 가까이 있을 것 같습니다.
건강하고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 한정원의 8월 시의적절 8
한정원 지음 / 난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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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여름을 만났다. 겨울밤에 만나는 여름이다. 여름에 읽으려고 사두었던 책을 잠들기 전 침대에 앉아 펼쳤다. 그냥 훑어봐야지 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끝까지 다 읽었다. 이렇게 금방 읽을 책을 나는 미루고 미루었던 것일까. 이상한 건 여름에 만난 여름이 아니라 오히려 좋았다. 온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던 습한 느낌을 기억해내려 애쓰는 시간이 괜찮았다. 지나고 보면 다 그런 것이구나 싶었다. 한정원의 글로 만나는 8월은 여유롭기까지 했다. 왠지 그랬다. 시와 에세이와 사진으로 하루하루 기록한 8월은 나쁘지 않았다. 지나친 열기, 과도한 비, 알 수 없는 분노와 걱정이 스르르 녹아드는 것 같았다. 어느 해의 8월일까 짐작하다 말았다. 어느 해의 8월이 뭐가 중요한가. 8월이었고 8월이었겠지.


어젯밤에 술술 읽어 내려갈 때는 아무것도 쓸 게 없을 것 같았던 8월의 풍경은 지금 이 순간 달라졌다. 나를 수다쟁이로 만든다. 나는 뭔가 마구 쓰고 싶다. 책에 대해서가 아니라 나의 8월에 대해서다. 어쩌면 이 책이 바라는 건 이런 마음일지도 모르다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유독 어느 해의 8월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 여름은 아팠고 두려웠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8월이나 건너뛸 수 없는 시간이다. 그래, 그런 8월이 있었지. 그리고 다른 해의 8월은 거대한 슬픔 덩어리다. 병원에서 가쁜 숨을 내쉬던 큰 언니를 만나고 큰 언니의 집에서 에어컨을 켜고 잠들었던 밤. 그게 마지막이라는 걸 몰랐던 날들. 선명하게 각인된 여름이다. 여름 위에 다음 여름이 더해지고 쌓이고 덧칠해지니 아프고 두렵고 슬픈 여름은 흐려지고 연해진다. 그래, 그런 여름이 있었지.


첫눈 같은 것은 여름에 없지

첫 땀 첫 수국 첫 매미 첫 소낙비

환호도 그리운 약속도 없고

오리나 하트나 사람으로 변신할 수 없지

적설 같은 것도 여름에 없지

흐르고 흐르고

아무것도 쌓이지 않지

모래도 옥상도 네 손도 따뜻하지

환해서 비밀도 슬픔도 잘 보이지

그림자가 쉬이 짓무르고

나무의 노래가 축축해지지

씨를 자주 뱉지

언젠가 목숨이 될 것을 겁내지 않고

휘파람을 불지 입술을 오므리지

사랑하기 좋은 모양이지 (「여름의 일」, 전문)


시를 따라 읽으며 나만의 여름의 일을 생각한다. 첫 수영복, 첫 휴가가 있던 여름,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던 여름,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걷고 뛰던 여름. 그러자 우리의 여름이 따라붙는다. 더위 따위는 상관없이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는 여름, 쏟아지는 별들을 머리 위에 두고 밤새 마주했던 여름, 오늘만 존재할 것 같았던 그런 여름. 지난여름이란 이름으로 묶음이 돼버린 여름.


겨울을 살면서 다가올 여름을 미리 걱정한다. 지난여름의 혹독한 더위를 기억하는 몸과 마음은 여름을 미워할 준비를 마쳤다.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란 제목처럼 여름을 향한 애정이 식어간다. 하지만 여름을 조금 사랑하기란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한정원은 여름을 조금 사랑한다며 본심을 숨긴다. 뻔히 보이는 그 진심을 숨길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 그러니 여름은 절대 조금 사랑할 수 없는 계절이다. 맘껏 충분히 사랑한다는 귀여운 고백이다.

나는 여름의 하늘을 조금 사랑한다. 당당하고 등등한 푸름을, 푸름을 가벼이 저버리고 소나기를 내리는 패기를, 패기를 무효하는 천진한 무지개를.

나는 여름의 밤을 조금 사랑한다. 흙과 풀과 낮이 끈기가 뒤섞인 냄새를, 짝을 찾는 맹꽁이의 전심전력의 소리를, 한바탕 꿈꾸기에 알맞은 짧음을.

나는 여름의 물기 많은 과일을, 헐거운 옷 속으로 들어오는 낮은 바람을, 오수에 빠진 사람과 동물의 방심한 얼굴을 조금 사랑한다. (「조금 사랑하기」, 일부)


여름은 여름을 사랑한다는 말은 선뜻 꺼내놓을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무자비한 여름의 비는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누군가를 혼자 남게 만들고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 점점 계절의 이름을 잃어버리는 계절이 되었다. 가을을 품은 8월이건만 가을을 밀어내는 8월이다.


한정원의 아삭하고 풋풋한 문장으로 8월을 담았다. 선명한 오후에 따라다니는 그림자를 밀치고 그늘 속으로 미끄러지는 8월. 땀을 흘리며 뛰어놀던 여름의 자리에 빠짐없이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여름이 들어온다. 여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아니다. 여름을 사랑하지 않는다.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름이 없는 건 싫다. 여름의 시작은 수국이며, 여름의 맛은 자두니까. 여름이라고 말하면 떠오르는 그 냄새가 잊히는 건 슬픈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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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전나무의 땅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7
세라 온 주잇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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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어렸을 때 먹지 않았던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국이나 찌개에 들어 간 작은 파도 골라내던 내가 파의 고유한 단맛을 알아버렸다. 요리를 만들 때 하나라도 빠지면 아쉬운 양념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다. 자극적인 맛이 아닌 재료 본연의 맛이 얼마나 맛있는지 말이다. 처음 만나는 세라 온 주잇의 소설 『뾰족한 전나무의 땅』은 그런 소설이다. 그러나 고수가 아니면 소설 도입 부분에서 바로 그 맛을 발견할 수 없다. 고백하자면 얇은 소설을 단숨에 읽지 못했다.


부여된 이름이 없는 화자(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이로 짐작)는 바닷가 마을 ‘더닛 랜딩’에서 여름을 보낸 이야기라 할 수 있는 『뾰족한 전나무의 땅』은 특별한 사건이 없이 흘러간다. 어찌 보면 똑같은 하루의 반복이며 비슷한 일상의 연속이다. 비슷하다고 해서 어제만 살지 않는 것처럼 삶은 이어진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삶도 마찬가지다. 조용하고 고요하게 지내고 싶었던 화자는 하숙집 주인 ‘토드 부인’의 따뜻한 오지랖 때문에 그럴 수 없게 된다. 야생 약초 애호가인 토드 부인은 몸이 아파 찾아온 이웃에서 복용법을 알려준다. 토드 부인을 찾는 방문객은 끊이지 않고 화자는 어느 순간 부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동업자 노릇을 하게 된다. 토드 부인은 화자를 “우리 동생”이라 부르게 된다.


토드 부인과 친밀해진 화자는 이웃의 이야기를 듣고 더닛 랜딩을 알아간다. 더닛 랜딩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어떤 아픔을 지녔는지, 몇 년을 어부로 살았는지, 누구와 결혼하고 혼자 남았는지, 어떻게 긴 시간을 견뎠는지. 더닛 랜딩은 그런 마을이었다.


토드 부인이 우리 이웃의 역사를 전부 이야기해주었다. 같이 어린 시절을 보냈고, 부인의 말을 빌리자면 “저마다 고생을 잔뜩 하고 그 고생의 명암을 전부 깨우칠 때까지” 함께했다. (23쪽)


소설은 화자를 통해 만난 더닛 랜딩 사람들의 삶을 들려준다. 토드 부인의 엄마와 남동생이 사는 섬 ‘그린 아일랜드’ 방문한다. 직접 배를 몰고 도착한 그곳에서 토드 부인의 엄마 ‘블래킷 부인’과 ‘윌리엄’을 만난다. 건강하고 다정한 블래킷 부인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토드 부인에게 특별한 장소로 간다. 그곳은 토드 부인이 남편과 연애할 대 즐겨 찾던 곳이었다. 그리고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다. 언제나 유쾌한 토드 부인에게도 슬픔이 있었고 외로움이 있었다.


어느새 독자인 나는 화자와 함께 그의 여정에 동반하며 귀를 기울인다. 토드 부인의 오랜 친구인 포스딕 부인의 방문과 그를 통해 듣게 된 조애나의 안타까운 삶.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혼자 ‘셀히프 아일랜드’에서 혼자 살아간다. 그녀를 걱정하며 찾아온 이들에게 아무도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단절된 생을 살다 죽었다. 포스딕 부인이 떠나고 화자는 이웃 선장에게 부탁해 배를 타고 그곳을 찾는다. 조애나의 무덤으로 길을 찾아가며 이제는 잊힌 조애나의 삶을 생각한다.


우리 모두의 생에는 외따로이 고립된 장소가 있다고, 끝없는 후회와 비밀스러운 행복에 바쳐진 장소가 있다고, 우리 모두가 한 시간이나 하루쯤은 동행 없는 은둔자이며 외톨이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이야기했다. 그들이 역사의 어느 시대에 속했든 우리는 이 똑같은 감옥의 수감자들을 이해하고 만다고도. (126~127쪽)


현재를 사는 이들은 조애나의 선택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깟 사랑이 뭐라고, 자신을 버린 남자 때문에 고립된 채 살아간 그녀를 비웃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뿐이다.


화자는 더 이상 방문자가 아닌 더닛 랜딩의 일원으로 바닷가 마을의 축제에도 참여한다. ‘보든가 모임’으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먹고 즐긴다. 미리 도착한 ‘블래킷 부인’과 함께 토드 부인과 화자는 마차를 타고 모임 장소로 향한다. 흙먼지 날리며 달리는 마차의 행렬 그 안에는 그리운 이를 만난 기대로 부푼 사람들이 있다. 곳곳에서 마차를 타고 사람들이 모여 만찬을 즐기고 추억을 나눈다. 언제나 헤어짐은 아쉬운 법. 모임이 끝날 때면 다음을 기약한다.


“다음 여름에”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아직 여름이 우리 것이고 나뭇잎이 초록임에도. (167쪽)


화자도 더닛 랜딩을 떠날 시간이 왔다. 부두에 나가서 배웅하지 않더라고 이해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토드 부인은 나간다. 작별 인사를 전하려는 화자에게 고개를 젓는 토드 부인의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헤어짐의 서운함과 애석함이 가득할 것이다.


다시 들어가 아담한 집을 둘러보자 갑자기 집 안이 적적하게 느껴졌고, 내가 쓰던 방이 처음 도착했던 날처럼 텅 비어 보였다. 나와 내 소지품이 전부 죽어 없어진 듯했다. 나는 토드 부인이 귀가했을 때 손님이 사라진 집이 어떻게 보일지 깨달았다. 그래, 때때로 사람들은 눈앞에서 사라진다. 인생의 한 막이 결말에 다다르면 그저 멀거니 바라볼 수밖에 없다. (194~195쪽)


『뾰족한 전나무의 땅』는 글 쓰는 화자와 그녀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눈부신 초록과 바닷가 풍경이 따라오는 소설이다. 화자가 보낸 여름의 시간은 잔잔하고 평온하다. 그 잔잔함과 평온함을 만든 건 마을 전체를 살피는 토드 부인과 든든한 어른으로 건재한 블래킷 부인과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 살아가는 이들 덕분이다. 뱃사람으로 살아온 이들, 뱃사람인 남편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 그들은 모두 청년이 아닌 노인이며 대부분 여성이다. 소박하고 다정한 이들이 살아가는 더닛 랜딩을 그려본다.


쓸쓸한 것 같지만 전혀 쓸쓸하지 않은 바닷가 마을. 화자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가운데 유독 선명한 건 “우리 동생”이라는 토드 부인의 목소리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잔잔한 그리움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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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1-23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잔하니 참 좋은 책이죠. 윌라 캐더도 생각나고 저도 비슷한 감상 느꼈어요.

자목련 2025-01-24 11:47   좋아요 0 | URL
이미 만나셨군요. 읽을수록 좋아지는 그런 책이었어요.
블랑카 님, 즐거운 설 명절 보내세요^^

전야제 2025-01-23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그리움 때문에 어쩐지 가슴 한 켠이 저려옵니다.
아름다운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이 책도 리스트에 추가합니다^^

자목련 2025-01-24 11:50   좋아요 1 | URL
마음 한 구석에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게 생인가 싶기도 해요.
시대와 장소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요.
전야제 님도 기쁘게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미로 속 아이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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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요트에서 습격당한 채 발견된다. 숨을 거둔 상태는 아니지만 희망도 없다. 범인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사건 현장에서 지문이 발견되었지만 해결 실마리는 아니다. 원한에 의한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잔혹한 짓을 벌인 것일까? 언론은 모두 이 사건에 주목하고 연일 기사를 쏟아낸다. 사건의 피해자는 이탈리아의 유명 기업가인 아버지의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은 상속녀다. 종군기자로 활동했고 출판사를 설립했다. 그뿐인가.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 남편과 두 아이의 엄마로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어가던 중이다.


상속녀는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사망한다. 맨 처음 용의자로 의심받을 이는 누구인가? 맞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사람. 바로 남편이다. 하지만 알리바이가 명확하니 제외된다. 경찰청 강력반은 범인을 잡기 위해 다각도로 애를 쓰지만 1년이 지나도록 제자리다. 놀랍게도 1년이 지난 후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살해도구가 있는 장소를 안다는 제보를 받는다. 그곳은 피해자의 저택에 딸린 지하 보트 창고였다. 지문을 감식한 결과 남편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사건 당시 없었던 지문이 왜 이제야? 소설을 읽을 때는 들지 않았던 의문이 이제야 생긴다. 누군가 남편에게 누명을 씌우는 게 아닐까. 아니면 이 모든 게 남편의 치밀한 계획일까. 아내가 죽으면 그 많은 유산이 모두 자신의 몫이니까.


이제 사건을 지휘하고 풀어갈 경찰이 등장할 타이밍이다. 용의자 남편을 상대할 경찰 팀장은 중년의 여성이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상태지만 전 남편의 SNS를 훔쳐본다. 아이는 필요 없다던 남편이 원 아이를 낳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다. 마음을 다잡고 남편을 취조한다. 팀장은 자신의 일과 가정에 충실한 남편의 진술이 거짓이 없음을 알고 당황한다. 하지만 증거를 보면 범인은 남편이어야 한다. 거기다 남편에게 피해자 말고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남편은 모른다는 주장으로 일관한다. 남편의 연인이란 여자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여자는 누구일까?


작가는 네 명의 등장인물을 화자로 내세워 하나의 사건을 다양하게 풀어낸다. 네 명의 화자 중 하나인 상속녀가 요트에서 피습을 당하기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이야기가 소설의 핵심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엄마를 잃고 오랜 시간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았고 그 이후에도 꾸준히 진료를 받았다. 사고가 남긴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갑자기 뇌종양 4기 판정을 받는다. 어떤 치료도 불가한 상태로 남은 시간은 겨우 2달 정도다. 그녀는 이 사실을 가족에게 비밀로 하고 남은 시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사실 이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은 물론이고 상속녀를 중심으로 등장인물 각각의 거침없는 욕망을 흥미롭게 펼쳐진다.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나 짜임새 있는 구성은 나쁘지 않다. 끝까지 다 읽어야만 제목인 『미로 속 아이』 가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리게 되니까. 나 같은 독자는 그렇다. 그런 이유로 기욤 뮈소의 데뷔 20주년 기념작으로 대대적인 홍보에 비하면 아쉽다. 기욤 뮈소의 열열한 팬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인생은 뭘까 생각하게 된다. 영원을 약속했지만 배신과 증오만 남는 사랑. 무엇 때문에 살고 무엇 때문에 괴로운가. 인생은 알 수 없다는 허탈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니 과거에 미련을 두지 말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을 생각하는 지금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에 다짐을 더한다.


비극적인 사건들은 지하나 바닷물 속을 흐르는 자연 발생 전류처럼 우리의 실존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사는 곳에는 항상 위험한 일들이 도사리고 있어 아무리 조심해도 모든 사고를 예방할 수는 없다. 그저 최악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만을 기도하고 바라는 수밖에 없다. 물 위에 떠다니는 한 줌의 지푸라기처럼. (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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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1-22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고 다가올 날을 걱정할 때가 많겠습니다 그런 것보다 지금을 잘 살면 좋을 텐데... 지금도 바로 지나가고 지난 시간이 되겠습니다 배신 당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이 일어나면 사는 게 뭔가 할 듯하네요


희선

자목련 2025-01-22 11:11   좋아요 0 | URL
지금을 잘 살아야지 싶은데, 어느 날은 과거에 매달려 속상하고 그런 것 같아요.
미세먼지 가득한 날들, 건강하게 지내세요^^

새파랑 2025-01-2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욤 뮈소 신작이군요~!! 요새 기욤 뮈소의 작품을 안읽었는데 이 책은 재미있을거 같습니다~!!!

자목련 2025-01-23 11:02   좋아요 1 | URL
기욤 뮈소의 신작을 기다리셨다면 흡족할 소설이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