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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평전 - 음악, 사랑, 자유에 바치다
이채훈 지음 / 혜다 / 2023년 8월
평점 :
누군가의 평전을 쓴다는 건 그 사람에 대한 무한 애정이 있다고 해도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아는 유명한 예술가라면 더욱 그렇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기록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예술과 삶에 대한 평가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 처음으로 모차르트 전기를 쓴 저자 이채훈은 그만큼 모차르트에 대한 애정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건 단순히 개인 취향이 아니라는 걸 명확히 한다.
첫째, 모차르트는 피와 살의 인간이었다. 그는 하늘에서 떨어진 천재가 아니라 부지런히 노력한 음악가였다. 둘째, 모차르트의 음악이 35년 짧은 생애에서 끊임없이 무르익어 갔다는 점에 주모해야 한다. 그가 어린 시절 부터 경이로운 재능을 보인 것은 물론 놀랍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그의 음악이 깊이를 더해 가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진정 놀랍다. 셋째, 모차르트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넷째, 모차르트는 자유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유로운 예술혼을 억압하는 잘츠부르크 통치자 히에로니무스 콜로레도 대주교와 정면충돌했고, 결국 최초의 프리랜서 음악가의 새로운 길을 걸었다. 귀족과 성직자가 지배하는 신분사회에서 그는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유토피아의 꿈을 노래했다. (16~17쪽)
저자는 『모차르트 평전』은 모차르트의 일생을 순차적으로 기록하여 들려준다. 어린 나이의 음악 신동으로 알려졌고 살리에리의 질투를 받은 인물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의 작곡가로 영화 <아마데우스>의 삶을 모차르트의 진짜 삶이라고 착각한 내게 『모차르트 평전』은 모차르트의 35년 인생을 자세히 안내한다.
책을 읽을 때에는 모차르트의 곡을 찾아 듣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책만 읽게 되었는데 지금 은 조성진이 연주하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어떻게 이런 선율을 작곡할 수 있었을까 놀라고 감탄하는 중이다. 이처럼 음악에 문외한인 나 같은 독자에게 『모차르트 평전』은 모차르트의 곡과 연결시키는 가교가 된다. 오페라를 관람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의 음악을 가까이 조금 더 많이 듣게 될 것이다.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아버지 레오폴트는 1763년 가족을 데리고 가족 연주 여행을 시작한다. 1756년생인 모차르트는 겨우 7살이다.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의 실력을 세상에 선보이고 인정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마차를 타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연주를 하는 모차르트를 생각하면 안쓰럽다. 하지만 부모 마음을 생각하면 일정 부분 이해되기도 한다. 잘츠부르크가 아닌 더 넓은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황실과 귀족 출신이 아닌 모차르트에게 그의 재능은 신의 선물인 동시에 평생의 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든든한 배후가 없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18세기 유럽에서 피아노 연주와 작곡만 할 수 있도록 그를 지원하는 이가 없는 예술가의 삶은 쉬운 게 아니었으니까.
아버지가 연주와 작곡을 위한 나머지 모든 일을 처리해 주었기에 나중에 혼자 연주 여행을 떠났을 때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하나하나 아버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세부적인 사항을 조율하는 부분에 있어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레오폴트에게 모차르트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였고 모차르트에게 아버지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한 어른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모차르트는 현실적인 문제, 이를테면 연주 일정이나 작곡을 의뢰받은 비용에 대해 기준이 없고 계획보다는 충동적인 부분이 많았다. 물론 책을 읽으며 느낀 나의 생각이다. 안타까운 부분도 많았다. 아버지 대신 모차르트를 따라나선 어머니가 파리 여행에서 죽음을 맞이한 일이 그러했다. 모차르트가 나가고 나면 혼자 숙소에서 아들을 하루 종일 아들을 기다려야 했을 어머니,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모차르트의 마음과 편지로 아내와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아버지와 누나.
『모차르트 평전』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작품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어떻게 그 작품을 작곡하게 되었는지 배경도 알려준다. 당시에는 귀족들이 주최하는 음악회가 빈번했고 백작이나 황실의 대소사(결혼, 취임)을 위한 음악을 따로 의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실력을 믿지 못하고 시험한 이들도 있었다. 모차르트의 명성은 이미 잘 알려졌지만 좀처럼 운은 따르지 않았던 것 같다. <빈 음악협회> 정회원으로 등록하지 못했고 대주교의 궁정 악사였지만 궁정 악장의 기회도 얻기 못했다.
황제의 초청으로 궁정에서 연주를 할 기회를 얻었을 때에도 피아노 경연이었다. 무치오 클레멘티와 모차르트의 피아노 경연은 무승부로 끝났다. 클레멘트는 모차르트의 즉흥 연주에 열광했지만 모차르트는 그의 연주를 혹평했다.
“클레멘티는 훌륭한 피아니스트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죠. 그의 오른손은 무척 훌륭하고 특히 3도, 6도, 진행은 완벽합니다. 하지만, 기교를 제외하면 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단 한 푼의 취향도, 느낌도 없습니다. 그는 단순한 기계공일 뿐입니다.” (320쪽)
모차르트가 유명해지면서 자신의 작품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저작권을 분명히 해두자는 것. 저작권을 무시하는 당시의 관행을 생각하면 모차르트의 이런 행동은 자신의 곡에 대한 자부심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자부심은 음악의 작곡에도 나타난다. 물론 저자의 해석이지만 <피가로의 결혼>에 대한 이런 설명에 공감하고 동의하지 않을 이는 없을 것이다.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소중한 희망을 간직하는 거야말로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이라는 사실,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은 이 점을 우리에게 힘주어 말하고 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이는 중세 신분사회의 벽, 그 어둠 속에서도 모차르트는 자유와 평등의 꿈을 잃지 않았고, 이에 따르는 대가를 마다하지 않았다. (463쪽)
모차르트의 이런 사고는 그가 '프리메이슨' 단원으로 활동한 것과 연결된다. 사실 이 책을 통해 세계 민주주의, 인도주의적 우애를 목적으로 한 비밀조직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음악적 활동뿐 아니라 모차르트의 유머, 사교와 연애, 결혼에 대한 부분도 많다. 아버지를 비롯한 아내와 나눈 편지를 보면 유머스러운 글귀가 많다. 아내 콘스탄체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보낸 편지에 아내를 향한 애정이 가득하지만 첫사랑이지만 처형이 된 알로이지아를 잊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이채훈의 『모차르트 평전』에서 주목할 점은 모차르트의 작품에 대한 소개도 빼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오페라의 줄거리나 배우들에 대한 설명, 시대적 상황이 어떻게 녹아흐르는지 풍부하게 설명한다. 모차르트의 곡을 좋아하고 오페라도 익숙한 이들에게는 글로 오페라를 관람하는 시간이라고 할까. 반대로 오페라를 감사한 적 없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기대와 상상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 <레퀴엠>을 작곡하다 죽음에 이른 모차르트의 사망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시신을 찾을 수 없어 빈 묘지만 남은 그의 죽음은 독살설에도 무게를 두게 만든다. 작곡에만 자신의 쏟아부은 결과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전부를 걸 정도로 좋아하고 사랑했던 음악 때문에 너무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라니, 아깝고도 아깝다.
주석과 사진을 포함한 800쪽에 가까운 책이지만 어렵거나 난해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많은 자료를 찾아 모으고 진실을 놓치지 않으려는 저자의 노력이 대단하다. 그 덕분에 모차르트와 그의 음악에 대해 더 알게 된 시간이었다.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면 더 즐겁고 깊이 이해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는 점은 많이 아쉽다. 모차르트를 좋아하고 더 알기를 원한다면 이 책이 충분한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모차르트 음악은 사랑이 가득하다. 어린 모차르트는 자기에게 연주를 청하는 사람에게 묻곤 했다. “저를 사랑하시나요?” 아무 대가 없이 그의 음악을 즐기는 우리는 진정 그를 사랑하고 있을까? 모차르트는 아내 콘스탄체에게 썼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절반만큼이라도 나를 사랑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모차르트가 아낌없이 준 음악을 우리는 절반이라도 이해하며 감사할 줄 아는 걸까? (7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