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진 자리에 연두가 가득하다. 여리고 단단한 연두 물결이 눈을 맑게 밝히는 듯하다. 아무도 모르게 숨어 있던 건 아닐 텐데, 갑자기 짠하고 나타난 것만 같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공간에서 기지개를 폈을지도 모른다. 잠깐 일이 있어 떠난 그곳에서 이곳으로 온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했고 마음을 전했다. 이곳에서 그곳으로, 그곳에서 이곳으로 마음이 전해진다는 건 아무렇지 않았던 하늘에 무지개가 뜨는 것 같은 일이다. 선생님을 뵐 수 없었지만 아쉬움도 달콤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산다. 당신이 사는 그곳의 도시 이름만 들어도 나는 당신을 생각한다. 당신이 좋아하는 꽃이 피는 계절이 오고 있다는 게 신나고 즐겁다. 당신도 마찬가지 일 터.

 

 이번 주는 생일 주간이다. 그러니까 23일은 책의 날이었다. 책의 생일날에 축하 선물은 내가 받은 것이다. 착한 가격의 책 『서로의 나라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선물한 책은 김건우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읽고 있는 책은 책의 생일 주간에 맞게 황광수의 『셰익스피어』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클림트도 읽고 싶다. 잠시 주춤했던 읽고 싶은 책 목록이 늘어난다. 지인이 추천한 이갑수의 『편협의 완성』,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의 첫 시작인 편혜영의 『죽은 자로 하여금』, 곧 피어날 작약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유희경의 시집『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까지. 구매 목록으로 변경될지는 미지수다.


 

 

 

 

 

 

 

 

 

 

 얼마 남지 많은 4월의 날들을 손으로 꼽아본다. 4월에는 감정을 흔드는 일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확인 사살 같은 것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그리고 예상했던 일을 맞닥뜨리는 건 힘들다. 감정을 조절할 수 있을 거라 연습하고 다짐했지만 말이다. 상상했던 것과 현실, 그 감정의 온도는 다르다. 한동안은 그럴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4월, 내가 사랑하는 4월, 올해의 4월은 좀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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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라고 말하면 여름으로 변할 것 같은 날씨다. 날씨만 그런 게 아니라 입맛도 그렇다. 나는 벌써 냉면과 비빔면을 챙겨 먹고 있다. 하지만 커피는 아직 뜨겁게 마신다. 곧 얼음을 동동 띄운 커피를 마시겠지. 봄, 여름, 가울, 겨울 사계절이 있어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먹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 대형마트에만 가면 과일, 채소를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땅에서 바로 채취한 것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올봄에는 쑥개떡을 먹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손바닥 반 정도의 쑥개떡을 먹은 게 전부다. 향긋한 쑥과 콩을 버무려 만든 촌스러운 모양새의 떡을 맘껏 먹지 못하고 여름을 맞을 것 같다. 항상 누군가가 내밀어 덥석 받기만 했던 것. 내 손으로 쑥을 뜯고 콩을 불려 반죽해서 먹은 기억은 없다.

 

 음식이라는 게 직접 손으로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해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막상 요리를 하려면 겁부터 난다. 매일 먹는 밥과 김치, 찌개, 반찬 가운데 밥과 찌개 정도만 직접 하는 것이다. 혼자 먹을 때는 찌개를 끓이는 일도 하지 않는다. 저마다 바쁜 일상을 보내기에 가족 구성원 전부가 밥을 먹는 때도 주말 오후, 치킨이나 피자를 배달해서 먹는 야식이 전부다. 먹는다는 일이 정말 부담스러웠던 기억은 병원 식사다. 아주 정확한 시간에 맞춰 하루 세 번 먹어야 하는 밥, 열심히 먹기를 바라는 간호하는 이의 눈빛. 가족이나 친구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건강에 좋으니 먹어야 한다고 무조건 권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을 정도다.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먹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시간에는 조금은 수선스러운 대화가 있고 함께 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그리움, 아쉬움이 있다. 음식과 요리를 테마로 한『파인 다이닝』에서도 그러하다.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에는 그것을 먹을 이를 생각하면 냄새가 기쁘고 소리도 즐겁다. 한 그릇의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정성을 들이는 일은 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수녀가 된 ‘나’가 둘째 아이를 낳은 언니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면서 들려주는 최은영의「선택」에는 비정규직 열차 승무원의 치열한 투쟁을 배경으로 한다. 비정규직 승무원의 파업이 시작되고 그 현장이 어땠는지,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어땠는지, 언니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 곳곳의 파업과 시위 현장, 그곳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이들과 그들의 가족을 생각한다. 식탁에 모여 하루 일과를 공유하며 밥을 먹는 보통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작은 섬의 카페를 배경으로 하루 동안 다양한 커피의 종류와 맛을 소개하며 커피를 주문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들의 절절한 사연을 들려주는 이은선의「커피 다비드」는 커피를 부른다. 고단한 하루, 피곤을 덜어 줄 커피와 맞닿은 짧은 순간의 위로라고 할까. 직장에서의 업무로 인해 늦은 귀가를 하는 싱글맘의 아이를 돌보는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승혜와 연인 미오의 관계와 심리를 그려낸 윤이형의「승혜와 미오」에는 ‘밀푀유나베’란 음식이 등장한다. ‘밀푀유나베’를 만든 승혜는 엄마랑 같이 먹겠다는 아이와 함께 아이 엄마를 기다린다. 연인인 미오가 고기를 먹지 않기에 승혜도 자연스레 좋아하는 고기를 멀리한다.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도 말이다. 퇴근한 아이 엄마는 돌아가려는 승혜에게 같이 먹기를 제안하고 승혜는 주저하다 음식을 먹는다. 너무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서 승혜는 미오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먹어보지 않았을 때는 몰랐을 맛이다. 모든 음식이 상대의 마음을 지레 짐작하지 말고 물어봐야 한다. 미오에 대해 혼자 판단하고 속상해하며 거리를 느낀 승혜는 이제 미오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사랑을 표현하지 않을까.

 

 승혜는 국물을 한 숟갈 더 떠서 입에 넣었다. 이런 맛, 궁금했는데, 생각과는 달랐다. 심심하고, 슴슴하고, 대단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너무 아무렇지 않은 맛이었다. 그 아무렇지 않음 때문에, 실망스러우면서도 안심이 되는 그 별것 아님 때문에,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승혜와 미오」, 99쪽)

 

 같이 밥을 먹으려고 배고픔을 참으며 엄마를 기다리는 소설 속 어린아이에게서 저녁을 준비하고 바깥에서 안으로 돌아올 이들을 기다리는 마음을 본다. 밥벌이를 위해 집을 나섰지만 제대로 된 밥은커녕 간편한 도시락이나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우는 이들을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 그것은 엄마의 마음일까. 갓 지은 밥에서만 취할 수 있는 냄새가 있듯 추억의 맛은 아무리 똑같이 재현해도 그 시절의 맛을 데려올 수 없다. 그 맛을 지울 수 없어 함께 먹었던 이들을 찾고 그리움에 빠져든다. 그래서 황석영의  산문『황석영의 밥도둑』에서 나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 이름도 생소한 음식이 등장하고 경험하지 못한 시대의 맛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은 기분이 듣는 이유다. 내가 맛있게 먹은 음식을 조카는 알지 못하고 권해도 먹으려 하지 않는다. 많은 시간이 지나면 나의 맛을 조카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 역시 돌아가신 엄마가 맛있게 드시던 음식을 그때는 손에 대지도 않았으니까.

 

 내가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은, 지금은 먹을 수 없다거나 만들 수가 없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그때의 맛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람이 변했든지 세월이 변했든지 했을 터이기에. (83쪽)

 

 먹을거리가 충분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너무 비싼 음식은 자주 먹지 못한다. 채널을 돌리면 먹방을 마주하는 시대,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언제부턴가 나도 몸에 좋은 음식을 찾는다. 비타민을 챙기기 시작했고 가을의 끝 무렵에는 겨울을 대비해 홍삼즙을 들인다. 그리고 돌아가신 엄마처럼 친구나 가족과의 통화 끝에는 항상 밥은 잘 챙겨 먹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살기 위해 먹는 것일까, 먹기 위해 사는 것일까. 가장 단순한 질문을 어렵게 생각하는 시대에 사는 건 아닐까. 한 그릇의 뜨거운 밥을 짓기 위한 첫 번째 과정, 모내기를 준비하는 눈에 가득한 물을 보면서 김훈의 이런 문장이 떠오르는 건 왜 일까.

 

 봄에 새잎 돋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는 늘 마음이 아팠다. 나무들은 이파리에 엽록소가 박혀 있어서 씨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면서 햇빛과 물을 합쳐서 밥을 빚어낸다. 자신의 생명 속에서 스스로 밥을 빚어내는 나무는 얼마나 복 받은존재인가. 사람의 밥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굴러다닌다. 그래서 내 밥과 네 밥이 뒤엉켜 있다. 핸드폰이 필요한 것이다. 엽록소가 없기 때문에 핸드폰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들 핸드폰을 한 개씩 차고 거리로 나아간다.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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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8-04-17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제일 맛난 음식은 직접 자기손으로 만든 음식이라고 영화 속 대사가 떠오르네요. 리틀 포레스트에서 여주인공이 그래요.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나다는 요즘 여자들 우스개와는 달리요.

자목련 2018-04-17 18:39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영화 속 요리를 해서 먹는 장면을 보면김태리처럼 직접 요리하고 싶어질 것 같아요. 저도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어요, ㅎ

서니데이 2018-04-17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날씨가 낮에 따뜻한 시간이 있긴 하지만, 바람이 차갑게 불어요.
그래도 비빔면은 맛있고, 가끔 덥다고 느껴지는 순간엔 아이스커피도 좋지만, 먹고나면 금방 추운 날씨예요.
자목련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8-04-19 16:48   좋아요 0 | URL
일교차가 심한 걸 보면 뒤늦은 꽃샘추위인가 싶어요. 눈에 닿은 연두가 예쁜 날들입니다. 서니데이 님도 신나는 오후 보내세요^^
 

 

 꽃을 보러 간다는 건 어떤 볼 일을 보러 나가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고 나는 꽃이 아님에도 꽃단장을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꽃을 피운다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과 지는 꽃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여유로움, 그리고 마주한 꽃터널. 가까운 곳에 이렇게 멋진 장소가 있었는데 나는 왜 이제야 이 꽃들을 만나러 왔을까. 사진을 잘 찍고 싶다는 마음이 든 순간이다. 늦은 오후에 누리는 호사였다.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고 이렇게 귀한 것을 받아도 되는 것일까. 게으름과 우울, 무기력으로 봄을 앓던 나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꽃이 지고 초록의 옷을 입은 터널을 다시 만나러 오겠다고 다짐했다. 꽃 피는 봄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그곳에 있을 나무를 보러 오겠다고.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 단지를 보니 자목련도 활짝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니 더욱 우아해 보였다. 거기 있다는 게, 정말 고마웠다. 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주말에는 비가 오고 꽃비가 내릴 것이다. 그리고 봄은 급하게 떠날지도 모른다. 붙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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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4-1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벚꽃과 자목련이네요. 여긴 목련이 이제 피는 중이고, 아직 자목련은 조금 분홍빛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번주도 벌써 금요일, 자목련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8-04-16 14:26   좋아요 0 | URL
주말에 내린 비로 꽃이 지고 연두 잎사귀가 환해요. 새로운 한 주 활기차게 보내세요^^

붕붕툐툐 2018-04-13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이 찍으신 자목련 사진. 우힛~^^

자목련 2018-04-16 14:25   좋아요 0 | URL
^^*
붕붕툐툐 님, 평온한 오후 보내세요^^

2018-04-13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6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한주 동안엔 새벽 기도에 참석했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날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날씨가 좋아지자 보이기 시작했다. 막 피기 시작한 매화가 교교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새벽과 달빛, 그리고 매화는 참 아름다웠다. 피고 지는 게 당연하듯 매화는 꽃잎을 떨구기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붉은 동백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목련은 맨 마지막에야 볼 수 있을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마주하는 봄이지만 매년 꽃들을 볼 때마다 대견한 생각이 든다. 친구가 보내온 살구꽃 사진을 보면서는 사과꽃과 배꽃을 맘껏 볼 수 있는 과수원 집 딸이었으면 좋았겠다 생각도 했다. 실은 봄마다 하는 생각이다. 수고로움보다는 예쁜 꽃을 즐길 생각에 말이다.

 

 올 듯 말 듯 줄다리기를 하는 듯했던 봄이 와 있었다. 그리고 벌써 4월이다. 봄이 되면 기다려지는 책도 있다. 젊은작가상, 이번에는 박민정 작가가 수상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작가와 소설을 읽는 일, 봄이 주는 즐거움이다. 테마 소설 시리즈 바통의 두 번째 이야기도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음식과 요리를 테마로 했으니 맛있는 소설을 기대한다. 개정판에는 의미를 두려 하지 않는데 김이설의 『나쁜 피』가 개정판으로 나왔다. 아직 알라딘에서는 검색이 되지 않는다. 9년 전에 만났던 소설인데 다시 읽어도 좋을 소설이다.

 

 

 

 

 

 

 

 

 

 

 

 

 

 

 

 

 

 

 

 

 

 

 

 밭에서 흙은 만지는 이들의 모습이 보이고 쑥과 봄나물을 캐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이사를 위한 사다리차를 자주 만나는 봄이다. 안에서 밖으로 이동하는 봄이다. 삶이 움직이는 봄이다. 옷 정리를 해야 하고 올봄에는 거실 커튼도 빨아야 한다. 더불어 묵혔던 어떤 마음도 시원하게 빨아야지. 마음을 헹구는 봄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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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4-01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물이 소생하는 봄, 나이를 먹어보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우리의 몸도 그 섭리에 반응하는 걸 보면 신기해요..^^

자목련 2018-04-02 16:09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 참 놀라워요^^

프레이야 2018-04-01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헹구는 봄이길 저도 바래봅니다. 화사하고 온화한 봄날 맞이하세요^^

자목련 2018-04-02 16:08   좋아요 0 | URL
헹구고 헹궈서 깨끗해진 봄이면 좋겠어요, ㅎ 오늘은 살짝 덥기까지 해요. 이러다 꽃이 지기도 전에 여름이 올까 걱정이에요.
 

 

 소설을 읽다 보면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읽지 않았던가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니까 소재가 비슷했던 소설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야기는 많고 많으니까.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할 수 있는 전생에 관한 이야기도 그러하다. 내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 호기심으로 전생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었던 시절도 있었다. 전생이 있다면, 혹은 환생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전의 나를 알아보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랄까? 사토 쇼고 장편소설 『달의 영휴』를 읽은 후의 생각이다.


 소설은 기이한 만남으로 시작한다. 화자라 할 수 있는 오사나이 앞에 죽은 딸의 기억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아이와 어머니가 있다. 과연 그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본격적인 이야기는 오사나이의 과거로 이어진다. 학교 선후배로 만난 아내 고즈에와 딸 ‘루리​’의 이야기. 평범했던 일상이 흔들린 건 루리가 일곱 살 되던 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 후 건강을 찾는 루리는 점점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인형에게 남자 이름을 붙여주고 동요가 아닌 이상한 노래를 부른다. 가장 중요한 것 딸의 눈빛이다. 아내는 딸을 걱정했지만 오사나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돌아보면 모든 시작은 그때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고즈에가 딸에 대해 걱정할 때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했더라면 딸과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혼자 남은 오사나이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어머니와 지내던 중 딸이 남긴 그림을 발견한다. 딸이 그린 그림을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해온 모녀가 바로 또 다른 루리와 어머니다.

 

 같은 이름은 우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딸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여자아이와 그림 속 남자의 이야기는 너무도 놀라웠다. ​소설은 이제 더욱 흥미롭게 흘러간다. 그림 속 남자 미스미의 사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작소설인 것처럼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면서 집중시킨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미스미와 유부녀 루리의 만남은 사랑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걸 알면서 미스미와 루리는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무기력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의 루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묘한 말을 남긴다. 달처럼 죽었다가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는 방법을 택할 거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미스미 앞에 나타날 거라고. 그리고 마치 그것을 증명하듯 갑자기 사고로 죽는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죽은 루리가 환생하여 미스미를 그리워하며 어떻게든 그와 닿기를 원했던 안타까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환생한 루리는 모두 오사나이의 딸이 겪은 과정을 겪는다. 일곱 살에 열병을 앓고 다른 아이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차례대로 청의 미스미, 중년의 미스미를 만나기를 원한다. 만약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죽은 가족이나 연인이 다른 몸으로 환생하여 내 앞에 나타나 있다면 말이다.

 

 처음엔 그저 단순한 환생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소설은 지독한 사랑 이야기이며 나와 연결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운명으로 이어진 끊을 수 없는 고리 같은 것. ​지극히 뻔한 소재와 진부한 결말이 아닌 놀라운 감동을 선물한다. 애틋하면서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게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루리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서.

 

 “나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난 달처럼 죽는 쪽을 택할 거야.”
 “달이 차고 기울 듯이.”
 “그래. 달이 차고 기울듯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거야.” (182쪽)

 

 사토 쇼고 장편소설 『달의 영휴』를 읽고 난 후 누군가는 주변을 둘러볼지도 모른다. 영원한 이별을 한 누군가가 다시 내 곁을 맴도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달의 영휴』에서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면 이꽃님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에서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두렵지 않는 사랑을 만난다.  미리 살짝 힌트를 주자면 그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달의 영휴』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도 판타지적 요소가 가득하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세계가 펼쳐진다. 바로 편지다.

 1년 후의 나에게 보낸 편지가 엉뚱한 곳에 배달되었다. 재혼을 앞두고 친한 아빠 연습을 하는 아빠의 제안으로 쓴 편지가 현재가 아닌 과거 1982년 은유에게 배달된 것이다. 2016년, 미래에서 보낸 편지를 받은 은유는 자신의 이름과 똑같은 열다섯 은유에게 답장을 한다. 마법처럼 과거에서 온 편지는 아빠의 재혼 후 독립을 꿈꾸는 언니 은유에게 도착한다. 신기한 건 과거의 은유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고 현재의 은유의 것은 천천히 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미래의 은유가 언니였지만 나중에는 과거의 은유가 언니가 되는 것이다. 편지로 인해 미래의 은유는 과거의 은유가 알지 못하는 사건을 알려주고 아빠의 재혼으로 인해 복잡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미래의 은유는 엄마의 존재를 모르며 아무도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아빠는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처음에 사춘기 소녀의 반항 비슷한 것으로 이해한 과거의 은유는 어린 은유를 달래며 자신도 항상 언니와 비교당하며 산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점차 은유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과거에서 할 수 있는 방법, 바로 은유의 엄마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것. 은유 아빠의 인적 사항을 통해 과거의 은유가 아빠를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드디어 만난 은유의 아빠는 자신과 동갑이었고 어린 은유의 말처럼 무뚝뚝하고 무서운 사람이 아닌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과거의 은유는 적극적으로 은유 아빠의 주변을 맴돌며 은유의 엄마가 될 것 같은 여자를 주시한다. 그리고 과거의 은유를 통해 은유는 조금씩 아빠를 알아가고 아빠도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빠랑 내가 같은 일직선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 양 끝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데, 내가 달리기를 멈춰 버린 거야. 그러곤 투덜거리는 거지. 아빠는 왜 더 빨리 달려오지 않는 거야. 왜 이렇게 멀리 있는 거야. 나는 투덜대기만 하고 달리기를 멈춰 버렸어. 아빠는 내가 달리지 않는 만큼 더 많이 달려와야 했어. 길이 그렇게 멀어졌는데 한 번도 투덜대지 않고 나만 보면서 묵묵히. (219쪽)

 

 편지가 오가면서 더욱 궁금해진다. 정말 은유의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아빠가 왜 엄마의 이야기를 함구하는지 알 수 있을까. 누가 은유의 엄마일까, 미래의 은유와 과거의 은유는 서로 만날 수 있을까. 이꽃님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가 진한 여운을 남기는 건 편지라는 아날로그의 소통 방식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진심을 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빠가 은유에게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것도 역시나 편지였으니까. 사랑의 힘을 막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자신이 죽음과 맞바꾼 귀한 생명, 엄마와 딸.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한다고 맹세를 한 적이 있었던가. 그 맹세가 얼마나 연약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오직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바란다. 그것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때때로 이런 소설에 끌리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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