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라고 말하면 여름으로 변할 것 같은 날씨다. 날씨만 그런 게 아니라 입맛도 그렇다. 나는 벌써 냉면과 비빔면을 챙겨 먹고 있다. 하지만 커피는 아직 뜨겁게 마신다. 곧 얼음을 동동 띄운 커피를 마시겠지. 봄, 여름, 가울, 겨울 사계절이 있어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먹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 대형마트에만 가면 과일, 채소를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땅에서 바로 채취한 것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올봄에는 쑥개떡을 먹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손바닥 반 정도의 쑥개떡을 먹은 게 전부다. 향긋한 쑥과 콩을 버무려 만든 촌스러운 모양새의 떡을 맘껏 먹지 못하고 여름을 맞을 것 같다. 항상 누군가가 내밀어 덥석 받기만 했던 것. 내 손으로 쑥을 뜯고 콩을 불려 반죽해서 먹은 기억은 없다.

 

 음식이라는 게 직접 손으로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해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막상 요리를 하려면 겁부터 난다. 매일 먹는 밥과 김치, 찌개, 반찬 가운데 밥과 찌개 정도만 직접 하는 것이다. 혼자 먹을 때는 찌개를 끓이는 일도 하지 않는다. 저마다 바쁜 일상을 보내기에 가족 구성원 전부가 밥을 먹는 때도 주말 오후, 치킨이나 피자를 배달해서 먹는 야식이 전부다. 먹는다는 일이 정말 부담스러웠던 기억은 병원 식사다. 아주 정확한 시간에 맞춰 하루 세 번 먹어야 하는 밥, 열심히 먹기를 바라는 간호하는 이의 눈빛. 가족이나 친구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건강에 좋으니 먹어야 한다고 무조건 권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을 정도다.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먹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시간에는 조금은 수선스러운 대화가 있고 함께 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그리움, 아쉬움이 있다. 음식과 요리를 테마로 한『파인 다이닝』에서도 그러하다.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에는 그것을 먹을 이를 생각하면 냄새가 기쁘고 소리도 즐겁다. 한 그릇의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정성을 들이는 일은 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수녀가 된 ‘나’가 둘째 아이를 낳은 언니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면서 들려주는 최은영의「선택」에는 비정규직 열차 승무원의 치열한 투쟁을 배경으로 한다. 비정규직 승무원의 파업이 시작되고 그 현장이 어땠는지,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어땠는지, 언니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 곳곳의 파업과 시위 현장, 그곳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이들과 그들의 가족을 생각한다. 식탁에 모여 하루 일과를 공유하며 밥을 먹는 보통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작은 섬의 카페를 배경으로 하루 동안 다양한 커피의 종류와 맛을 소개하며 커피를 주문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들의 절절한 사연을 들려주는 이은선의「커피 다비드」는 커피를 부른다. 고단한 하루, 피곤을 덜어 줄 커피와 맞닿은 짧은 순간의 위로라고 할까. 직장에서의 업무로 인해 늦은 귀가를 하는 싱글맘의 아이를 돌보는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승혜와 연인 미오의 관계와 심리를 그려낸 윤이형의「승혜와 미오」에는 ‘밀푀유나베’란 음식이 등장한다. ‘밀푀유나베’를 만든 승혜는 엄마랑 같이 먹겠다는 아이와 함께 아이 엄마를 기다린다. 연인인 미오가 고기를 먹지 않기에 승혜도 자연스레 좋아하는 고기를 멀리한다.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도 말이다. 퇴근한 아이 엄마는 돌아가려는 승혜에게 같이 먹기를 제안하고 승혜는 주저하다 음식을 먹는다. 너무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서 승혜는 미오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먹어보지 않았을 때는 몰랐을 맛이다. 모든 음식이 상대의 마음을 지레 짐작하지 말고 물어봐야 한다. 미오에 대해 혼자 판단하고 속상해하며 거리를 느낀 승혜는 이제 미오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사랑을 표현하지 않을까.

 

 승혜는 국물을 한 숟갈 더 떠서 입에 넣었다. 이런 맛, 궁금했는데, 생각과는 달랐다. 심심하고, 슴슴하고, 대단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너무 아무렇지 않은 맛이었다. 그 아무렇지 않음 때문에, 실망스러우면서도 안심이 되는 그 별것 아님 때문에,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승혜와 미오」, 99쪽)

 

 같이 밥을 먹으려고 배고픔을 참으며 엄마를 기다리는 소설 속 어린아이에게서 저녁을 준비하고 바깥에서 안으로 돌아올 이들을 기다리는 마음을 본다. 밥벌이를 위해 집을 나섰지만 제대로 된 밥은커녕 간편한 도시락이나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우는 이들을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 그것은 엄마의 마음일까. 갓 지은 밥에서만 취할 수 있는 냄새가 있듯 추억의 맛은 아무리 똑같이 재현해도 그 시절의 맛을 데려올 수 없다. 그 맛을 지울 수 없어 함께 먹었던 이들을 찾고 그리움에 빠져든다. 그래서 황석영의  산문『황석영의 밥도둑』에서 나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 이름도 생소한 음식이 등장하고 경험하지 못한 시대의 맛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은 기분이 듣는 이유다. 내가 맛있게 먹은 음식을 조카는 알지 못하고 권해도 먹으려 하지 않는다. 많은 시간이 지나면 나의 맛을 조카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 역시 돌아가신 엄마가 맛있게 드시던 음식을 그때는 손에 대지도 않았으니까.

 

 내가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은, 지금은 먹을 수 없다거나 만들 수가 없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그때의 맛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람이 변했든지 세월이 변했든지 했을 터이기에. (83쪽)

 

 먹을거리가 충분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너무 비싼 음식은 자주 먹지 못한다. 채널을 돌리면 먹방을 마주하는 시대,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언제부턴가 나도 몸에 좋은 음식을 찾는다. 비타민을 챙기기 시작했고 가을의 끝 무렵에는 겨울을 대비해 홍삼즙을 들인다. 그리고 돌아가신 엄마처럼 친구나 가족과의 통화 끝에는 항상 밥은 잘 챙겨 먹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살기 위해 먹는 것일까, 먹기 위해 사는 것일까. 가장 단순한 질문을 어렵게 생각하는 시대에 사는 건 아닐까. 한 그릇의 뜨거운 밥을 짓기 위한 첫 번째 과정, 모내기를 준비하는 눈에 가득한 물을 보면서 김훈의 이런 문장이 떠오르는 건 왜 일까.

 

 봄에 새잎 돋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는 늘 마음이 아팠다. 나무들은 이파리에 엽록소가 박혀 있어서 씨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면서 햇빛과 물을 합쳐서 밥을 빚어낸다. 자신의 생명 속에서 스스로 밥을 빚어내는 나무는 얼마나 복 받은존재인가. 사람의 밥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굴러다닌다. 그래서 내 밥과 네 밥이 뒤엉켜 있다. 핸드폰이 필요한 것이다. 엽록소가 없기 때문에 핸드폰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들 핸드폰을 한 개씩 차고 거리로 나아간다.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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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8-04-17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제일 맛난 음식은 직접 자기손으로 만든 음식이라고 영화 속 대사가 떠오르네요. 리틀 포레스트에서 여주인공이 그래요.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나다는 요즘 여자들 우스개와는 달리요.

자목련 2018-04-17 18:39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영화 속 요리를 해서 먹는 장면을 보면김태리처럼 직접 요리하고 싶어질 것 같아요. 저도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어요, ㅎ

서니데이 2018-04-17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날씨가 낮에 따뜻한 시간이 있긴 하지만, 바람이 차갑게 불어요.
그래도 비빔면은 맛있고, 가끔 덥다고 느껴지는 순간엔 아이스커피도 좋지만, 먹고나면 금방 추운 날씨예요.
자목련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8-04-19 16:48   좋아요 0 | URL
일교차가 심한 걸 보면 뒤늦은 꽃샘추위인가 싶어요. 눈에 닿은 연두가 예쁜 날들입니다. 서니데이 님도 신나는 오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