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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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은 무엇일까? 광고에 등장한 로봇은 생각한다. 마음이 무엇이길래 마음먹기에 달렸고, 가장 중요한 마음을 전한다는 것인지 모르기에 로봇은 생각한다. 정말 마음은 무엇일까? ‘네 마음을 이해해, 내 마음속에 너를 기억해, 내 마음이 너에게 닿기를 바라.’로봇은 모르는 마음을 인간은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인간과 로봇과의 우정, 사랑,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상상은 소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판타지가 아니다. 곧 우리의 현실이 되고 일상이 될 수 있다. 때문에 구병모의 『한 스푼의 시간』에서 명정과 은결의 이야기는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아내를 잃고 세탁소를 운영하는 명정은 하나뿐이 아들의 죽음을 접한다. 외국에서 살던 아들은 사고로 죽고 도착한 건 소년 로봇이다. 리모컨 같은 것으로 조종할 수 있는 단순한 기능성 로봇이 아니라 다양한 외부 자극에 반응하고 스스로 그것들의 상황에 분석하고 판단하며 결과를 예측하며 성장하는 인간형 로봇이었다. 그런 로봇에게 명정은 은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세탁소에서 함께 생활한다. 처음에는 그저 명정과 은결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그러니까 은결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흥미로웠던 것이다. 명정을 도와 세탁소 일을 하는 은결에게 중학생 시호와 준교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은결이 알 수 없는 감정, 인간과 로봇이 다르다는 걸 증명하는 것만 같은 그것.

 

 그러나 결국엔 구병모가 말했듯 이것은 로봇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은결에 완벽한 상태의 로봇으로 명정에게 도착한 게 아니었듯 우리도 은결이 조금씩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듯 성장한다는 것 말이다. 소설 속 시호와 준교는 은결과 다르지 않았다. 넘어져 다치고 상처를 입고 아파하고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일. 상대를 이해하며 감정을 교류하고 사랑하며 그렇게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명정처럼 남겨진 은결에 대해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일.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 오래도록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해 말한다.

 

 명정과 은결이 아버지와 아들처럼 살아온 것처럼 인간과 로봇은 마음을 나누며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어도 괜찮다. 은결이 알고 싶었던‘무너져 내린다는 느낌’을 몰라도 말이다. 영원하지 않기에 언젠가는 떠나야 하고 사라져야 하는 삶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이 소설도 그러하다.

 

 그는 인간의 시간이 흰 도화지에 찍은 검은 점 한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 점이 퇴락하여 지워지기 전에 사람은 살아 있는 나날들 동안 힘껏 분노하거나 사랑하는 한편 절망 속에서도 열망을 잊지 않으며 끝없이 무언가를 간구하고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것이 바로, 어느 날 물속에 떨어져 녹아내리던 푸른 세제 한 스푼이 그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이다.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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