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520
이제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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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니의 첫 시집에서 느꼈던 놀람과 감탄. 그리고 이제는, 돌보는 말과 돌아보는 말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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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18 소설 보다
박상영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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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마다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봄에는 불쑥 윤대녕의 단편 「보리」와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 생각난다. 소설의 내용보다는 제목이 주는 이미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 대설주의보가 발령된 이 계절에는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를 다시 펼치고 싶다. 소설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장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로맨틱한 일이다. 우리의 일상이 소설처럼 펼쳐지는 건 아닐지라도 말이다.

 

 박상영, 정영수, 최은영의 단편을 만날 수 있는 『소설 보다 : 가을 2018 』은 합쳐진 계절을 불러온다. 함께 계절을  보내고 맞이하며 즐겼던 이들을 말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죽이 맞아 잘 어울리던 동기, 단순한 만남에서 맺어진 다정한 사람, 안부 문자를 보내지만 답을 보내지 않는 친구. 그들과 보낸 시절이 아득하게 느껴질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 세 편의 소설 속 인물들이 어떤 공통점을 지닌 건 아닌데도 마치 소설 그들이 하나의 인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박상영의 「재희」는 재기 발랄하며 지나치게 명랑한 소설이었다. 바로 내 앞에서 소설의 제목이자 화자의 친구인 재희에 대해 들려주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게이인 화자와 여자 동기 재희가 동성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는 이야기. 막역함은 동거를 할 정도다. 둘 사이에는 어떤 비밀로 존재하지 않고 아무런 사건(?)도 발생할 수 없는 진한 우정이 존재한다. 수많은 연애의 종지부를 찍고 결혼하는 재희를 바라보는 화자가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며 눈물을 흐리는 장면은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 이상한 건 내가 그들을 잘 모르는데고 그 감정을 알 것 같다는 거다. 이것이 소설의 힘은 아닐는지.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니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것과 같으니까. ( 정영수, 「우리들」중에서)

 

‘나’와 ‘너’가 아니라 ‘우리들’이 되어 보낸 시간들을 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혹은 관계의 깊이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정영수의 「우리들」은 여운을 남겼다. 화자인 나는 연인인 현수와 정은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일에 동참한다. 둘 사이에 흐르는 믿음과 사랑에 반하게 된다. 그들이 얼마나 멋진 이들인지,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단단하지 그들을 지켜보는 일만으로도 즐겁다. 하지만 둘 사이가 불륜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작업은 중단되고 나는 혼란에 빠진다. 정은과 현수를 통해 나는 헤어진 연인 연경을 떠올린다. 현수와 정은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과 둘 사이의 진실을 알았을 때 감정은 분명 같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과 만난 나눈 이야기는 사라질 수 없고 변할 수 없다. 우리가 되었던 시간들, 우리는 이제 우리가 될 수 없기에 서글프고 아프다. 너와 나의 관계가 무너질 때 우리로 속했던 누군가와의 관계도 무너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어쩌면 최은영의 「몫」의 정윤과 희영, 해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90년대 대학의 편집부에서 만난 정윤 선배와 희영과 해진의 관계 말이다. 함께 토론하고 글을 쓰고 고치고 취재를 하면서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시대를 읽고 해석하는 방법은 달랐다. 그러니 같은 길을 갈 수 없었고 우리들로 남을 수도 없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방향을 보았던 시간만이 남았을 뿐이다. 대단해 보였던 정윤은 결혼을 해서 유학을 떠나고 희영은 활동가 되었고 해진만이 글을 쓰는 삶을 산다.

 

 글 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럽고 때때로 제대로 쓰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 시기를 쓰는 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어갈 수 있다는 행복을 알기 전으로 당신은 돌아갈 수 없었다.  (최은영, 「몫」 중에서)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을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편집부 할 때,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내가 그랬다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달랐겠지만. (최은영, 「몫」중에서) - 희영의 말

 

 쓰는 삶은 기록하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쓴다(기록한다)는 건 쉽고도 어렵다. 「몫」이란 한 글자에 담긴 의미처럼 말이다. 이 소설에 대해 조금 더 쓰고 욕심을 느낀다. 욕심만큼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한계를 절실히 느낀다. 안타깝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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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9-01-3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다면 제가 <환상의 빛>을 읽어야겠는걸요.^^

자목련 2019-02-01 10:17   좋아요 0 | URL
대구에 눈 많이 왔지?
겨울의 끝자락에 읽어도 줗을 것 같아.
설 연휴,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길^^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 윤대녕 소설집
윤대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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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떨림도 없이 기대도 없다는 건 믿음이 있다는 것일까. 여하튼 윤대녕을 처음 만났던 그 시절의 내가 품었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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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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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작가들이 한데 모였다. 그 중심엔 고 박완서 작가가 있다. 강화길, 권지예, 김숨, 김성중, 백수린, 백가흠, 윤고은, 윤이형, 정용준, 이기호, 이장욱, 정세랑, 한유주 등 29명의 작가가 『멜랑콜리 해피엔딩』속 짧은 소설로 박완서를 추모한다. 덕분에 책 한 귄에 담긴 29개의 짧은 단편을 만나는 즐거움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29편의 소설은 일상의 소소함을 소재로 삼았다. 그래서 어떤 소설이 아닌 수필처럼 다가오기도 했고 어떤 소설은 작가의 일상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나는 눈에 들어오는 작가, 그러니까 29명 가운데 그래도 먼저 읽고 싶은 작가의 소설부터 펼쳤다.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 작가였고 그들의 소설 속 인물은 우리 주변의 누군가와 닮아 그들에게 마음이 기울었다.

 

 20대 청춘의 불안과 두려움을 담담하게 묘사한 백수린의 「언제나 해피엔딩」은 조카나 내가 지나온 그 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하고 싶은 일들과 되고 싶었던 미래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 현실에 만족하고 이마저도 잃어버릴까 내색하지 못하는 마음을 소설 속 조교로 일하는 민주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그녀에게 정말 재미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중년의 여교수 박 선생과 짧은 대화를 나눈다. 과거 박 선생이 영화관에서 검표하고 안내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이야기를 들으며 민주는 위로를 받는다.

 

 ……괜찮아지나요?

 “그 시기만 지나면 그런 불안한 마음은 괜찮아지나요?

 민주의 질문에 박 선생은 아무런 말 없이 웃더니,

 “엔딩이 어떻든, 누군가 함부로 버리고 간 팝콘을 치우고 나면, 언제나 다시 영화가 시작한다는 것만 깨달으면 그다음엔 다 괜찮아져요.” (백수린, 「언제나 해피엔딩」)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지만 언제나 불안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인생은 길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은데 왜 우리는 불행을 걱정하고 사는 것일까. 괜찮다는 말 한 마디가 필요한 우리를 가만히 안아주는 걸 느꼈다. 동시에 마음속에서 뭔가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었다. 경력단절의 주부 지혜가 재취업을 하면서 경험하는 분노와 좌절을, 그리고 전업주부 슬기에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섬세하게 그린 「여성의 신비」는 동시대를 살아내는 엄마라는 이름에 매달린 무게를 실감한다. 어쩔 수 없는 서로의 사정을 무시한 채 현재의 단면만 보고 서로를 오해한 지혜와 슬기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며 커지는 상실감을 요리로 채우려 했던 슬기는 당당하게 재취업에 성공한 지혜가 부러웠다. 반대로 지혜는 완벽하게 살림과 육아를 해내는 슬기에게 질투심을 느꼈다.

 

 마음이란 얼마나 허약한지. 한 몸으로 여러 개의 역할을 하며 살아내야 하는 처지도 같고, 능력만큼 대접받지 못하는 것도, 언제나 시간이 부족해 발을 구르는 것도 똑같은데. 너의 과거가 내 현재이고, 내 현재가 다시 너의 미래가 될 수도 있으며, 그런 서로에게 굳은 의리를 느끼는 것도 사실인데. 그런데 끝없이 서로의 현재를 비교하고 다른 점을 찾아내려 한다. (윤이형, 「여성의 신비」)

 

 엄마의 역할은 무엇일까. 가정에서 여성의 일은 누가 지정하는가. 오랜만에 만난 조경란의 「수부 이모」는 형제를 위해 희생하는 수부 이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혼자서 악착같이 모은 재산을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고 나눠주다 암에 걸린 수부 이모. 살만하니까 이런 일이 생긴다는 수부 이모의 말에 나는 목메어 울고 말았다. 큰언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수부 이모와 같은 상황이 아니었는데. 자매를 잃은 슬픔이 터져 나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다. 소설은 이처럼 수많은 감정을 불러온다. 그런가 하면 소설이기에 만날 수 있는 기이한 상상도 있다. 전날 마신 술로 인해 안경을 어디다 벗어놓은지 모른 채 거래처 직원을 만나러 나가는 임현의 「분실물」엔 화자뿐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이 안경을 잃어버린 이들이다. 술자리에서 점을 봐주는 할머니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아서 정말 연기로 변해버리는 기이한 일을 그린 정용준의 「연기가 되어」도 인상적이다. 만약 내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말이다.

 

 심하게 다툰 부부가 화해하는 방법이 일곱 장에 만 원하는 돈가스를 사 오란 문자를 주고받는 일이라는 김성중의 「둥신, 안심」, 고3 수험생 딸을 둔 엄마가 입시 전형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다룬 「어떤 전형」, 술기운에 카드로 29만 9천 원을 주고 산 레고를 다음 날 아들과 함께 환불하러 가는 부자의 모습을 그린 이기호의 「다시 봄」은 일일 드라마 속 주인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우리네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안다.

 

 콩트 같은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웃기도 하고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29명의 작가들이 모두 박완서 작가를 생각하고 소설을 썼듯 독자의 마음도 그러할 것이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서 만났던 이들이 『멜랑콜리 해피엔딩』에 여전히 살고 있었다. 달라진 듯 달라지지 않은 우리의 일상이 속상하면서도 기쁘기도 했다. 복잡다단한 인생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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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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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눈을 뜨면서 잠들 때까지 나를 둘러싼 것들은 모두 상품이다. 핸드폰 알람으로 잠에서 깨어나고 TV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이런저런 일을 하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잠에 든다. 이토록 편리한 세상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본 적이 많지 않다. 당연히 자본주의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라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노동력 착취나 다국적기업의 사업 확장이나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생존 그 차제인 빈곤 국가의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세계는 점점 발전하고 잘 사는 나라로 성장하는 것 같은데 다른 한쪽에서는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라니.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부의 균등한 분배는 왜 어려운 것일까? 모두가 잘 사는 나라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을 위한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런 질문은 결국 우리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세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병패, 독식하는 재벌, 개선되지 않는 노동 현장. 어쩌면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는 세계의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책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아주 쉽게 자본주의를 설명한다. 할아버지 장 지글러와 손녀가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과거 노예제도, 대주주와 소작농, 17세기 프랑스 혁명,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처럼 누구나 들어봤지만 그 배경이나 그 후의 시대 변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장 지글러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연결해 설명하고 있다. 가장 쉽고 간단한 것을 살펴보면 이렇다. 문자로 TV 화면으로 거리의 건물 외벽이나 버스를 통한 광고에 숨겨진 의도,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제품 권장 사용시간, 뭐든지 소비하게 만드는 세상, 그 끝에는 누군가의 이익으로 집결된다는 말이다.


 소비 사회는 아주 간단한 몇 가지 원칙에 입각해서 세워졌단다. 구성원들은 사도록, 다시 말해서 소비하도록, 산 것을 버리고 또 최대한 많은 양의 상품을 사들이도록, 필요하지 않아도 자꾸 새로운 상품을 사도록 부추김을 받는 거야. 그러자니 그 상품들은 애초부터 짧은 기간 동안만 사용 가능하도록 기획되었고.  (89쪽)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은 첫째도 둘째도 이익이지. 그러니 모든 개인들과 민족들 사이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만 있을 뿐이야. 자본주의는 대결에, 전쟁에, 약자를 짓밟아버리는 있어. 때문에 자본주의는 전쟁으로부터 마르지 않는 이익을 퍼 올린다는 사실을 덧붙여야겠구나. 파괴하고, 재건하고, 무기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이 발생하는 거지. (176쪽)


 이런 설명을 듣고 나니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 기업에게 조종당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흔들리는 욕망은 잊어버리고 말이다.  이처럼 과도한 경쟁으로 이어진 신자유주의,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사례는 놀랍게도 너무 많았다. 제3국을 통해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들의 대부분이 어린아이의 노동력으로 만들어졌고, 콜탄(비행기 동체와 휴대전화를 만드는 필수품)을 채취하기 위한 광산의 좁은 갱도에 마른 어린아이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그 어린아이는 부모와 형제를 위해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 그것들로부터 부를 획득하는 민간 기업.

 

 여전히 하루 한 끼를 먹지 못해서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아이들, 우리는 그저 운이 좋아서 그 땅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라는 장 지글러의 말은 정확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거대한 힘과 권력으로 세계 금융권과 정부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을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 지글러는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돌아보라고 말한다. 노예제도가 폐지되었고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질 거라 그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니 유토피아를 꿈꾸고,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말이다.

 

 지구촌 시민사회라는 화두는 지극히 다양한 문화, 사회 계층, 연령대에 속하는 수백만 명의 남녀를 한데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지. 이들에게는 오직 하나의 동기만 있을 뿐이야. “나는 타인이고 타인은 나다.”중앙 위원회나 정당 노선 따위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 지구촌 시민사회는 오늘날 5대륙에서, 가장 예상을 뛰어넘는 장소에서, 식인적인 세계의 질서에 맞서는 수많은 저항 전선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더 이상 다양할 수 없는 사회 운동이 이를 대표하고 있지.(…) 이들이 모두 한데 모이면 신비한 형제애가 형성되고, 이러한 연대감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강력한 힘이 되어 자본주의라는 야만에 맞서 투쟁하게 되는 거지. 현재 지구상에는 이렇듯 각성한 사람들이 수억 명에 이른단다. (178~179쪽) 

 

 지독하고 끔찍해서 피하고 싶은 현실을 인식하는 일은 중요하다.“나는 타인이고 타인은 나다.”란 말의 힘을 기억해야 한다. 자본주의에 살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몰랐던 부분이 너무 많다. 아니, 모른 채 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당장 우리가 굶어죽거나 전쟁의 피해를 보거나 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여겼다. 알아야만 주변을 돌아보고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알릴 수 있으니까. 이 책이 그 시작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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