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지음, 황금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니가 죽었다. 죽은 언니를 발견한 건 안타깝게도 동생이다. 잔혹하고 처참한 모습이 언니의 마지막이었다. 동생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여느 주말과 다름없었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언니가 살고 있는 말로로 향한다. 역에서 언니를 볼 수 없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간호사 업무가 많거나 반려견 페노와 함께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노라는 그저 언니 레이첼을 빨리 만나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노라가 마주한 건 언니와 페노의 죽음이었다. 이제 노라에게 중요한 건 범인을 잡는 일이다.

경찰이 조사를 시작했고 형사는 노라에게 질문을 한다. 언니를 해칠 만한 이가 있는지, 언니에게 어떤 변화가 느껴졌는지, 마지막 통화를 했을 때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묻는다. 노라는 언니에 대해 자신이 아는 사실을 모두 말한다. 과거 15년 전 열일곱 살의 언니가 폭행을 당한 사실, 결혼을 하려고 했던 남자가 있었다는 것, 간호사로 일하면서 피곤해한 점. 그러나 그런 것들은 범인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이 들려준 일들이 더욱 놀라웠다. 페노는 보통의 애완견이 아니라 방범용으로 훈련된 개였고 언니는 말로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노라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범죄현장인 언니의 집으로 갈 수 없는 노라는 경찰이 구해준 헌터스에 머물면서 범인을 찾기로 한다. 15년 전 그 남자가 언니를 살해한 범인이라고 확신하면서 말이다.

 

언니의 집에 방문한 사람, 이웃, 모두가 다 의심스럽다. 노라는 언니의 집 주변에서 언니를 관찰하고 지켜본 이의 흔적으로 보이는 담배꽁초를 발견한다. 하지만 경찰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15년 전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술에 취한 십 대 소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았다. 언니의 행동이 불량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후로 레이첼과 노라는 비슷한 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마다 법원을 찾았다. 그러나 언니를 폭행한 범인은 찾을 수 없었다. 노라는 이번에도 범인을 잡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언니가 지났을 거리, 언니가 만났을 동네 사람들을 관찰하고 접근을 시도한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레이첼과 어떤 사이였는지 파고든다. 노라의 용의주도함과 집요함에 빠져들게 된다. 그들 가운데 범인이 있을까. 레이첼을 왜 죽였을까. 범인에 대한 궁금증과 용의자를 하나씩 지워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때문에 누군가는 이 소설을 심리 스릴러, 추리 소설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언니 생각을 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추억 하나가 꼬리를 물고 다른 추억으로 이어지고, 시간은 전혀 흐를지 않는 것만 같다. (202쪽) ​

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언니를 꼭 껴안았을 때 느꼈지던 언니의 체중이 기억난다. 시간이 느릿느릿 흐른다. (273쪽)

 

하지만 이 소설에서 돋보이는 건 노라와 레이첼이 함께 보낸 시간이다. 노라의 시선에 따라 레이첼의 삶을 들여다보며 둘만의 추억과 상처를 보여준다. 십 대 소녀 시절 파티에서 술을 마시고 울다 웃고 싸우기도 했던 시절, 같이 먹었던 음식, 같이 본 풍경, 바다. 알코올중독이었던 아버지는 그들에게 울타리가 되지 않았고 오직 자매만이 서로의 보호자였다. 레이첼이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라는 도왔고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둘 사이에는 묘한 갈등이 있었고 그것은 노라가 범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키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폭행, 살인, 스토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오는 이야기, 단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소설이다.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보다는 죽은 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압도적인 소설이라 해도 좋겠다. 작가는 상실감에 빠진 노라의 감정을 섬세하고 서정적으로 그려내 전달한다. 멈춰진 레이첼의 일상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애절한 슬픔이 통증으로 남을 뿐이다.

빨간 립스틱을 좋아하는 언니는 앞으로 다시는 손등에 여러 가지 립스틱을 발라보며 약국 진열장 앞에 서 있지 못할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개봉하면 휴일에 보려고 했던 영화도 못 볼 것이다. 앞으로 다시는 좋아하는 판 콘 토마테를, 퇴근 후 토마토와 마늘을 으깨고 올리브오일을 뿌린 다음, 구운 빵에 문질러 그걸 부엌에서 선 채로 먹는 일도 없을 것이다. (11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통해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소설 속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동병상련, 혹은 그래도 그들보다는 나은 것 같다는 나름의 위안. 아니면 단순한 재미와 즐거움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장류진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즐거움』을 읽으면서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알려진 대로 소설은 잘 읽혔다. 지루하거나 무겁지도 않고 숨겨진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아도 될 그 정도였다. 그러나 앞선 독자나 출판사, 언론의 칭찬은 과한 게 아닐까 싶었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건 맞다. 그러나 특정 세대, 그러니까 딱 30대를 위한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작가가 자기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소설에 풀어냈고 그 역시 30대이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소설의 소재나 작가의 시선은 신선하다 할 수 있다.

 

표제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월급이 고스란히 포인트로 적립되었다는 것, 직장 생활의 고단함과 월급의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시대가 다르지만 직장인의 스트레스는 여전하니까. 입으로는 모두 등등한 수평적 관계를 유지한다고 하면서도 지위의 권력을 놓으려 하지 않는 모습과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한 후에야 가능할 것 같은 복지에 대한 약속은 씁쓸했다. 제목에서 어떤 공포를 짐작할 수 있는 「새벽의 방문자들」는 혼자 사는 여성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택배 주문 시 수령인의 남자 이름으로 하거나 무인 택배함을 이용하는 일, 엘리베이터를 혼자 탈 수 없는 두려움. 인상적이었던 건 새벽에 소설 속 주인공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을 찾아오는 남자들의 평범함, 그것을 사회적 문제인 성매매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저 하나의 상황을 확장시켜 이야기로 만든다는 점이 장류진의 장점일 것이다.

 

수없이 많은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고 아르바이트와 계약직을 전전하다 드디어 첫 출근길 아침 풍경을 묘사한 「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과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성향의 직장동료의 결혼 준비를 들려주는 「잘 살겠습니다」, 그리고 결혼 칠 년 만에 장만한 집에 대한 애착과 그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들인 도우미와의 갈등을 그린 「도움의 손길」은 가장 보편적인 청년의 모습으로 보였다. 급여를 30일로 쪼개어 하루 평균 지출비용을 정하고 살아야 하는 마음, 받음만큼만 돌려주겠다는 의도, 부모 세대의 관심을 간섭으로 여기는 태도. 「도움의 손길」의 경우, 독자가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와 반전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장류진이 소설에서 그들의 깊은 고민이 너무 가볍게 표현된다는 점이다. 그 가벼움의 무게를 내가 체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꿈을 위해 현실과 타협할 수 없어 하루하루 위태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년의 일상인 「다소 낮음」, 반대로 다큐멘터리 피디가 뒤고 싶었지만 현실은 식품회사의 회계팀 취직한 「탐페레 공항」에서는 이전 소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탐페레 공항」에서 화자는 이력을 위해 졸업 전 휴학을 하고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한 더블린으로 가는 도중에 경유지인 핀란드 탐페레 공함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짧은 시간 만난 노인에 대한 기억이 찌들어가는 현실을 울컥하게 만든다. 안정적인 직장 생활의 숨 막히는 현실과 불안정한 감정의 조화가 나쁘지 않았다.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고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 결국엔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좋은 소설이 나에게도 해당될 수는 없다. 베스트셀러가 모두 좋은 소설이 아니듯 말이다.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 처음 맛본 음식과도 같았다. 설렘과 기대가 있었다. 나중에 다시 찾을 음식일지는 모르겠다. 누군가 처음이라 그렇다고 익숙해지면 괜찮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그런 즐거움을 원하지 않는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0-05-0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나서 마음에 남는 무언가가 거의 없는 그런 책이었던 거 같아요. ㅎㅎ

자목련 2020-05-12 16:50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모두 다 좋다고 하는 소설인데, 저만 이상한가 싶기도 하고. ㅎ

수다맨 2020-05-13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은 고민이 너무나 가볍게 표현된다‘라는 표현에 크게 동의합니다. 디테일을 다루는 솜씨는 뛰어난데 작가가 추구하는 창작의 방향이 직장인들의 속물성이나, 삼십대 여성의 전형성을 포착하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꽤 괜찮은 수준의 세태소설들의 모음집‘이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만 깊은 호감이 가지는 않더군요.

자목련 2020-05-15 10:35   좋아요 0 | URL
네, 특정 세대의 이야기를 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 안에서도 몇 몇 집단과 부류만 집중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 소설집 외에 다른 곳에서 만난 단편에서도 그런 느낌이 이어지니 당분간 이 작가에 대한 관심은 없을 듯해요. 비 오는 금요일, 건강하고 편안하게 보내세요^^*

야툽 2020-05-18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류진 작가의 다른 단편을 읽고 싶어도 ‘냉장고장고장고 고장은 아닐거야‘의 후유증이 너무 커서 못 읽고 있습니다. 남는 게 없다는 점이 이 책을 비판하는 독자들의 공통점이네요.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많이 읽은 소설이라지만 저는 오히려 깊이가 없어 충격이었습니다

자목련 2020-05-20 15:55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장류진 작가의 등단 당시 출판사와 언론의 찬사 때문에 얼마나 대단한가 싶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냥 그랬어요. 너무 쉽고 가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보는 이에게서 혹 만난 적이 있냐는 질문을 받은 횟수가 적지 않다. 호감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불쾌하다. 특별해지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를 특정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불편해하는 나를 눈치채지 못한 상대는 학교나 직장, 지역에 대한 질문을 계속한다. 공통점을 발견하는 일은 좋은 일일까. 아무런 정보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일은 어려운 것일까. 가만히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린다. 이름, 성별, 나이, 고향, 가족관계,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로 시작한다. 다른 건 무엇이 있을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나열, 친구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기억들, 이 정도뿐 더 확장되지 않는다. 상급 학교에 진학했을 때, 사회생활을 하면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지금의 나에 대해, 나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 적이 없다. 그러니 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지 않았고 돌아가시기 전 약간의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기억을 붙잡으려는 노력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냥 지금의 나이기 때문이다. 『출신』의 작가 사샤 스타니시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태어난 나라에서 성장하고 그곳에서 원하는 삶을 살았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자신의 이력을 가질 수 없었다. 열네 살의 나이에 1992년 보스니아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난민 출신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현재의 나를 이야기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과거에서 이어진 나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살아오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그들과의 추억을 꺼내야 한다. 때로는 상처와 아픔이 나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것은 친절한 시간은 아닐 것이다. 삶에 있어 불친절했던 시간들을 소환하는 일, 그것이 바로 출신에 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현재 2018년 3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화자인 ‘나’가 독일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이력서를 쓰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재가 아닌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할머니와 자필 이력서를 쓰는 ‘나’가 기억하는 과거는 같은 듯 다르다. 할머니의 기억에는 ‘나’가 태어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비셰그라드의 모든 것이 있다. 용을 퇴치한 전설이 있고, 조상들을 묘신 공동묘지가 있고, 전쟁에 대한 기억이 있다. ‘나’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춤을 추는 모습, 어머니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 사촌들과 놀았던 선명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 ‘나’는 그곳이 아닌 독일에서 보낸 날들에 대한 기억이 촘촘하게 박혔다.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낯선 곳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에 둘러싸여 사춘기를 보내야 한다면 어떨까. 다시 처음부터 독일어를 배우고 친구를 사귀면서도 적응하면 할수록 더욱 살아나는 이방인이라는 자각은 어쩔 수 없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집 안에는 재활용 쓰레기 더미에서 구한 물건이 있고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마주하는 일은 열네 살 소년이 감당할 수 있는 일상이 아니다.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하루하루 공사장을 전전하는 아버지가 자신에게는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기에 더욱 방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이델베르크에서 보낸 시절이 나쁜 건 아니다. ‘나’와 같은 형편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그대로 이해하고 아끼고 사랑했던 이들. 아지트였던 아랄 주유소에 모였던 이들, 여자친구 리케,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치아를 치료해 준 하이마트 박사. 어디서든 하루를 견디고 지탱할 수 있는 누군가가 존재했다. 나쁨이 아니라 좋음, 절망과 분노가 아니라 단순한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그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편견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또 공격적이고 야만스럽고 불법적이지 않은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알뿌리와 싹, 다른 식물에 붙어사는 식물. 엄밀히 말하자면, 본의 아니게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없는 우리는 어디에 있든 늘 하던 대로 행동하면서 계몽 의식을 고취시키고 있었다. (210쪽)

 

나의 반항은 출신의 숭배뿐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속감은 지지했다. 나를 원하고 내가 있고 싶은 곳에서는 소속감을 갖고 싶었다.(295쪽)

 

결국엔 그 모든 것이 ‘나’를 도왔고 완성시켰다. 나를 이야기한다는 건, 나를 존재하게 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자인 ‘나’가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과거를 함께 탐험하고 그것을 기록하면서 점점 자신의 뿌리에 대해 다가가는 모든 과정을 통해 정체성을 발견하는 건 당연하다. 할머니에게 이끌려 방문한 오스코루샤에서 만난 친척 가브릴로 노인에게 듣는 이야기가 나의 역사인 것이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조상들의 이야기와 상상할 수 없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 그 모든 것이 ‘출신’이다. 조금은 복잡하고 난해하면서도 아름다운 소설은 이 두 문장으로 가장 완벽하다. 설명할 수 없는 뜨겁고 거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들이 뛰쳐나와 온전한 형상으로 존재한다고 할까.

 

나의 할머니가, 그리고 할머니만 볼 수 있는 거리의 소녀가 바로 ‘출신’이다. (88쪽)

 

어머니에게 출신은, 고향 땅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움찔하는 몸짓 같은 것이다. (162쪽)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건 아니다. 치매로 인해 과거를 헤매다 죽음을 맞는 할머니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삶에는 여전히 부재로 존재하는 많은 것들이 있다. 누군가에는 소중한 이가, 누군가에게는 특정한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다른 것으로 채워진 어떤 공간이, 누군가에는 어떤 나라가 그럴 것이다. 사샤 스타니시치의 소설을 통해 나의 근원을 돌아본다. 내가 놓친 그것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다.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가 남긴 사진을 찾는다. 나와 닮은 구석은 어디인가, 전혀 나 같지 않은 얼굴과 표정. 어떤 과거를 살았든 여기저기 부유하는 시간을 보냈든 중요한 건 그들이다. 그들의 이름과 얼굴이 나의 출신이다. 존재의 시작은 어디인가, 끊임없이 묻고 고뇌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그렇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는 괜찮아 - 엄마를 잃고서야 진짜 엄마가 보였다
김도윤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모든 일은 후회를 남긴다. 좀 더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과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속상함까지. 완벽한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욕심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가족에 관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갑자기 닥친 이별로 남은 구멍은 영영 채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줄어들지도 않는다. 때때로 선명하게 달려든다. 드라마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같은 이름의 타인을 발견할 때, 밥을 먹다가... 멍해진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기 전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러나 그런 준비는 허사가 되었다. 나에게는 엄마라 부를 존재가 없고, 꿈에 나오는 일도 없다.

​엄마는 혼자였다. 못난 우리를 보느라 엄마는 혼자가 되었다. 그런 엄마에게 우리는 늘 등만 보였다.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등을 어루만져 주던 엄마의 손길을 기억하지만 그 손길 끝에 자리한 엄마의 눈은, 엄마의 입은, 엄마의 주름은, 엄마의 표정은, 무엇보다 엄마의 외로움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혼자였다. 홀로 살다, 홀로 그리워하다, 홀로 받쳐주다, 홀로 홀연히 떠나셨다. (26쪽)

살면서 엄마의 죽음을 생각한 적이 없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라 여겼으니까. 그래서 엄마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말하는 게 어려웠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렇다. 도저히 자연스러운 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엄마가 곁에 없으니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일도 없다. 쓰고 보니 서러운 일이다. 어쩌면 저자도 그랬겠구나 싶다.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를 생각하며 엄마를 기억하는 일이 참 아팠겠구나 싶다.

우울증을 심하게 앓다 스스로 생을 놓아버린 엄마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수많은 다짐을 한다 해도 어려운 일이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저자 자신에 대한 고백이었다. 저자의 엄마가 우울증을 앓게 된 건 큰 아들, 저자의 형의 우울증에서 기인했다. 모든 걸 다 내어줄 수 있는 자식이 우울증에 걸렸다.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에 다녀오고 취직을 했다. 그러나 적응하지 못했고 다른 곳에서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결국엔 우울증을 얻었다. 아들의 병은 쉬운 게 아니었다. 우울증은 공황장애로 불러오고 조현병으로 ​이어졌다. 병원에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엄마는 단호하지 못했다. 입원한 아들의 전화를 믿었고 퇴원을 시켰다. 아니, 아들을 믿었던 것이다.

엄마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던 저자는 모든 게 후회스럽다. 병실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랬더라면 엄마는 조금은 괜찮아졌을 텐데. 죽고 싶다는 말이 진심이었음을 알았다면 더 세심하고 주의 깊게 엄마를 살폈을 텐데. 엄마에게 함부로 했던 모든 순간조차도 소중하고 나중으로 미뤘던 엄마와의 시간이 얼마나 부질없는 약속이었는지 아프다. 엄마가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었던 미역줄기를 먹을 때마다 그립고 그립다.

하늘에 천국이라는 곳이 없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그곳에서도 내 걱정으로 눈물 흘릴지 모른다. 다음 생은 없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그 생에서마저 나를 기억할지 모른다. (130쪽)

 

엄마의 사전에는 ‘괜찮지 않다’는 말이 없는 게 아닐까. 그저 괜찮다는 말로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싶은 사람, 그 모든 걸 괜찮게 만들고 싶은 사람, 엄마는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151쪽)

 

우울증으로 형과 엄마의 삶이 무너졌으니 저자는 스스로를 챙긴다. 자신은 괜찮다고 다독인다. 하지만 아니었다. 슬픔을, 아픔을, 고통을 가둬 둔 둑은 터져버렸다. 그에게도 정신과 진료가 필요했고 상담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괜찮을 리가 없다.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고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천천히 차근차근 마음을 돌봐야 했다. 늦었지만 치료를 시작했고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성취감과 행복을 주는 일이라면 괜찮았다.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유튜브였고  그리하여 저자는 조금씩 회복한다. 그리고 말한다. 우울증과 평생 살아갈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고. 함께 지내기로 했다고.

​삶을 살다 보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럴 땐 그것들을 잠시 내버려 두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을 악착같이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200쪽)

 

책을 읽다 한 번씩 멈추고 만다. 책을 읽다 한 번씩 울게 된다. 엄마, 하고 가만히 불러본다. 아마도 다른 이들도 그럴 것이다. 엄마의 안쓰러운 얼굴이 보일 것이다. 떠난 엄마가 그리울 것이다. 엄마를 곁에 둔 당신이라면 엄마와의 소중한 일상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20-04-27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고 보니 서러운 일이다.
너무나도 크게 공감되는 문구입니다.
작가도 글을 쓰면서 수십 번 멈췄겠구나!!
싶군요....

자목련 2020-05-02 14:04   좋아요 0 | URL
엄마에 대한 글은 언제나 먹먹함을 불러오는 것 같아요. 가정의 달이라는 5월에는 더욱.
봄인가 싶더니 더위가 몰려오는 듯해요. 책읽는나무 님, 남은 연휴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2020-04-29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걸 알아도 그렇게 못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머니가 나이를 들고 세상을 떠난 게 아니고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그것 때문에 이 작가는 더 죄책감을 느꼈을 것 같네요 어떤 건 식구도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희선

자목련 2020-05-02 14:05   좋아요 1 | URL
소중한 것은 언제나 곁에 있다고 하는데, 잃고나서야 후회하는 것이겠지요. 희선 님 말씀처럼 가족도 어찌할 수 없으니 더욱 마음이 아픈 것 같습니다.
 
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것은 이야기가 된다.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재미와 감동이다. 예측 가능한 캐릭터의 성격, 뻔한 전개라면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소설 『침입자들』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제목만으로는 스릴러가 아닐까 짐작하게 만드니까. 그리고 마침내 소설을 다 읽었을 때에는 뭔가 가볍지 않은 것이 남았으니까.

소설의 화자인 ‘나’는 택배기사다. 택배를 담당한 구역이 행운동이기에 그는 ‘행운동’이라 불린다. 타인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공간에 의심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직업군. 뭔가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긴장감을 불러온다. 그러나 소설은 택배 업무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물건을 받아 분류하고 고객에게 전달하는 일. 차를 타고 이동하고 차에서 물건을 전달하는 반복적인 행동. 한 번 동선이 꼬이기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며, 제때 밥을 먹을 수 없지만 사람들을 대면하는 일은 아니다. ‘나’가 택배를 선택한 이유다. 하지만 혼자를 고집하지만 어디든 사람이 있다.

이 일은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결국 아무도 만나지 않는 일이라는 게 유일한 매력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쓸데없는 인간들과 엮이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87쪽)

‘나’는 타인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하지만 사람들이 다가온다. 같은 업무를 하는 이들은 동료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고, 택배를 받는 이들은 불편한 요구 사항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이들이 있다. 똑같은 복장으로 담배 한 개비를 빌리는 이상한 여자, 소변을 보면 손을 씻어야 한다고 말하는 젊은 남자, 마스크를 쓴 채 폐지를 줍는 여자, 뜬금없이 자신의 집에 와서 공부를 하라는 노인, 지정된 시간에 택배 배달을 부탁하는 바의 직원. 어쩌다 한 번이라면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는 있는 상황인데 그게 아니니 신경이 쓰인다. 결국 그들과 엮이고 만다.  

 

담배를 빌리는 여자에겐 우울증이 있으며 죽은 남편이 ‘나’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불량학생들에게 맞고 있는 남자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폐지를 줍는 여자에게는 양갱을 건네다 그녀의 사연을 알게 되고 노인의 집에 방문에 저녁을 먹고는 토론 아닌 토론을 벌인다. 그러나 ‘나’는 그저 들을 뿐 자신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필요한 말만 할 뿐이다. 상대를 배려하거나 가식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상식을 지키며 자신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 내뱉는다. 그러니 점점 궁금해진다.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나’가 택배 업무를 끝내고 유일하게 즐기는 취미는 술과 소설 읽기다. ‘나’가 읽는 소설의 줄거리와 구절이 그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혼자만의 삶을 위해 택배 일을 선택했지만 사람들과 부대낄 수밖에 없다. ‘나’가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통해 삶의 고단함을 전한다. ​택배 하나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결국 우리의 이야기는 아닐까.

“꾸준히 멈추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지. 그리고 해보면 알겠지만 그게 무척 힘들어. 아프거나 힘들어도 그렇게 해야 하고 기분이 좋아도 체력적으로 오버하면 안 돼. 매일 같은 보폭과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지. 말은 쉽게 들리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게 무척 힘들어. 얘기를 나룰 상대도 일상의 변화도 없어. 매일 똑같은 택배와 고독만 있지. 뭐, 성격에만 맞는다면야 구도 행위로 볼 수도 있겠지만.” (150쪽)

일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열심을 낸다고 해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다. 소설 속 택배 업무는 특수한 경우로 보이지만 결국은 어떤 일이든 다르지 않다. ‘행운동’이 만난 이들이 그런 것처럼.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삶에서 일이란 무엇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일지도 모른다. ‘침입자들’이란 제목처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삶에 개입하고 침입하는지도 모른다. 적정한 선을 찾을 때까지 실수를 반복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게 일적인 관계이든 아니든 간에. 우리의 삶은 그렇게 채워지고 이야기가 된다. 놓쳐서는 안 되는 이야기. 나와 당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