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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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이야기가 된다.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재미와 감동이다. 예측 가능한 캐릭터의 성격, 뻔한 전개라면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소설 『침입자들』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제목만으로는 스릴러가 아닐까 짐작하게 만드니까. 그리고 마침내 소설을 다 읽었을 때에는 뭔가 가볍지 않은 것이 남았으니까.

소설의 화자인 ‘나’는 택배기사다. 택배를 담당한 구역이 행운동이기에 그는 ‘행운동’이라 불린다. 타인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공간에 의심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직업군. 뭔가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긴장감을 불러온다. 그러나 소설은 택배 업무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물건을 받아 분류하고 고객에게 전달하는 일. 차를 타고 이동하고 차에서 물건을 전달하는 반복적인 행동. 한 번 동선이 꼬이기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며, 제때 밥을 먹을 수 없지만 사람들을 대면하는 일은 아니다. ‘나’가 택배를 선택한 이유다. 하지만 혼자를 고집하지만 어디든 사람이 있다.

이 일은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결국 아무도 만나지 않는 일이라는 게 유일한 매력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쓸데없는 인간들과 엮이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87쪽)

‘나’는 타인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하지만 사람들이 다가온다. 같은 업무를 하는 이들은 동료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고, 택배를 받는 이들은 불편한 요구 사항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이들이 있다. 똑같은 복장으로 담배 한 개비를 빌리는 이상한 여자, 소변을 보면 손을 씻어야 한다고 말하는 젊은 남자, 마스크를 쓴 채 폐지를 줍는 여자, 뜬금없이 자신의 집에 와서 공부를 하라는 노인, 지정된 시간에 택배 배달을 부탁하는 바의 직원. 어쩌다 한 번이라면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는 있는 상황인데 그게 아니니 신경이 쓰인다. 결국 그들과 엮이고 만다.  

 

담배를 빌리는 여자에겐 우울증이 있으며 죽은 남편이 ‘나’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불량학생들에게 맞고 있는 남자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폐지를 줍는 여자에게는 양갱을 건네다 그녀의 사연을 알게 되고 노인의 집에 방문에 저녁을 먹고는 토론 아닌 토론을 벌인다. 그러나 ‘나’는 그저 들을 뿐 자신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필요한 말만 할 뿐이다. 상대를 배려하거나 가식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상식을 지키며 자신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 내뱉는다. 그러니 점점 궁금해진다.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나’가 택배 업무를 끝내고 유일하게 즐기는 취미는 술과 소설 읽기다. ‘나’가 읽는 소설의 줄거리와 구절이 그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혼자만의 삶을 위해 택배 일을 선택했지만 사람들과 부대낄 수밖에 없다. ‘나’가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통해 삶의 고단함을 전한다. ​택배 하나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결국 우리의 이야기는 아닐까.

“꾸준히 멈추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지. 그리고 해보면 알겠지만 그게 무척 힘들어. 아프거나 힘들어도 그렇게 해야 하고 기분이 좋아도 체력적으로 오버하면 안 돼. 매일 같은 보폭과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지. 말은 쉽게 들리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게 무척 힘들어. 얘기를 나룰 상대도 일상의 변화도 없어. 매일 똑같은 택배와 고독만 있지. 뭐, 성격에만 맞는다면야 구도 행위로 볼 수도 있겠지만.” (150쪽)

일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열심을 낸다고 해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다. 소설 속 택배 업무는 특수한 경우로 보이지만 결국은 어떤 일이든 다르지 않다. ‘행운동’이 만난 이들이 그런 것처럼.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삶에서 일이란 무엇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일지도 모른다. ‘침입자들’이란 제목처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삶에 개입하고 침입하는지도 모른다. 적정한 선을 찾을 때까지 실수를 반복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게 일적인 관계이든 아니든 간에. 우리의 삶은 그렇게 채워지고 이야기가 된다. 놓쳐서는 안 되는 이야기. 나와 당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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