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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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통해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소설 속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동병상련, 혹은 그래도 그들보다는 나은 것 같다는 나름의 위안. 아니면 단순한 재미와 즐거움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장류진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즐거움』을 읽으면서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알려진 대로 소설은 잘 읽혔다. 지루하거나 무겁지도 않고 숨겨진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아도 될 그 정도였다. 그러나 앞선 독자나 출판사, 언론의 칭찬은 과한 게 아닐까 싶었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건 맞다. 그러나 특정 세대, 그러니까 딱 30대를 위한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작가가 자기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소설에 풀어냈고 그 역시 30대이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소설의 소재나 작가의 시선은 신선하다 할 수 있다.

 

표제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월급이 고스란히 포인트로 적립되었다는 것, 직장 생활의 고단함과 월급의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시대가 다르지만 직장인의 스트레스는 여전하니까. 입으로는 모두 등등한 수평적 관계를 유지한다고 하면서도 지위의 권력을 놓으려 하지 않는 모습과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한 후에야 가능할 것 같은 복지에 대한 약속은 씁쓸했다. 제목에서 어떤 공포를 짐작할 수 있는 「새벽의 방문자들」는 혼자 사는 여성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택배 주문 시 수령인의 남자 이름으로 하거나 무인 택배함을 이용하는 일, 엘리베이터를 혼자 탈 수 없는 두려움. 인상적이었던 건 새벽에 소설 속 주인공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을 찾아오는 남자들의 평범함, 그것을 사회적 문제인 성매매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저 하나의 상황을 확장시켜 이야기로 만든다는 점이 장류진의 장점일 것이다.

 

수없이 많은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고 아르바이트와 계약직을 전전하다 드디어 첫 출근길 아침 풍경을 묘사한 「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과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성향의 직장동료의 결혼 준비를 들려주는 「잘 살겠습니다」, 그리고 결혼 칠 년 만에 장만한 집에 대한 애착과 그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들인 도우미와의 갈등을 그린 「도움의 손길」은 가장 보편적인 청년의 모습으로 보였다. 급여를 30일로 쪼개어 하루 평균 지출비용을 정하고 살아야 하는 마음, 받음만큼만 돌려주겠다는 의도, 부모 세대의 관심을 간섭으로 여기는 태도. 「도움의 손길」의 경우, 독자가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와 반전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장류진이 소설에서 그들의 깊은 고민이 너무 가볍게 표현된다는 점이다. 그 가벼움의 무게를 내가 체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꿈을 위해 현실과 타협할 수 없어 하루하루 위태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년의 일상인 「다소 낮음」, 반대로 다큐멘터리 피디가 뒤고 싶었지만 현실은 식품회사의 회계팀 취직한 「탐페레 공항」에서는 이전 소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탐페레 공항」에서 화자는 이력을 위해 졸업 전 휴학을 하고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한 더블린으로 가는 도중에 경유지인 핀란드 탐페레 공함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짧은 시간 만난 노인에 대한 기억이 찌들어가는 현실을 울컥하게 만든다. 안정적인 직장 생활의 숨 막히는 현실과 불안정한 감정의 조화가 나쁘지 않았다.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고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 결국엔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좋은 소설이 나에게도 해당될 수는 없다. 베스트셀러가 모두 좋은 소설이 아니듯 말이다.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 처음 맛본 음식과도 같았다. 설렘과 기대가 있었다. 나중에 다시 찾을 음식일지는 모르겠다. 누군가 처음이라 그렇다고 익숙해지면 괜찮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그런 즐거움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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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5-0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나서 마음에 남는 무언가가 거의 없는 그런 책이었던 거 같아요. ㅎㅎ

자목련 2020-05-12 16:50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모두 다 좋다고 하는 소설인데, 저만 이상한가 싶기도 하고. ㅎ

수다맨 2020-05-13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은 고민이 너무나 가볍게 표현된다‘라는 표현에 크게 동의합니다. 디테일을 다루는 솜씨는 뛰어난데 작가가 추구하는 창작의 방향이 직장인들의 속물성이나, 삼십대 여성의 전형성을 포착하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꽤 괜찮은 수준의 세태소설들의 모음집‘이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만 깊은 호감이 가지는 않더군요.

자목련 2020-05-15 10:35   좋아요 0 | URL
네, 특정 세대의 이야기를 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 안에서도 몇 몇 집단과 부류만 집중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 소설집 외에 다른 곳에서 만난 단편에서도 그런 느낌이 이어지니 당분간 이 작가에 대한 관심은 없을 듯해요. 비 오는 금요일, 건강하고 편안하게 보내세요^^*

야툽 2020-05-18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류진 작가의 다른 단편을 읽고 싶어도 ‘냉장고장고장고 고장은 아닐거야‘의 후유증이 너무 커서 못 읽고 있습니다. 남는 게 없다는 점이 이 책을 비판하는 독자들의 공통점이네요.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많이 읽은 소설이라지만 저는 오히려 깊이가 없어 충격이었습니다

자목련 2020-05-20 15:55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장류진 작가의 등단 당시 출판사와 언론의 찬사 때문에 얼마나 대단한가 싶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냥 그랬어요. 너무 쉽고 가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