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괜찮아 - 엄마를 잃고서야 진짜 엄마가 보였다
김도윤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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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후회를 남긴다. 좀 더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과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속상함까지. 완벽한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욕심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가족에 관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갑자기 닥친 이별로 남은 구멍은 영영 채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줄어들지도 않는다. 때때로 선명하게 달려든다. 드라마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같은 이름의 타인을 발견할 때, 밥을 먹다가... 멍해진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기 전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러나 그런 준비는 허사가 되었다. 나에게는 엄마라 부를 존재가 없고, 꿈에 나오는 일도 없다.

​엄마는 혼자였다. 못난 우리를 보느라 엄마는 혼자가 되었다. 그런 엄마에게 우리는 늘 등만 보였다.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등을 어루만져 주던 엄마의 손길을 기억하지만 그 손길 끝에 자리한 엄마의 눈은, 엄마의 입은, 엄마의 주름은, 엄마의 표정은, 무엇보다 엄마의 외로움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혼자였다. 홀로 살다, 홀로 그리워하다, 홀로 받쳐주다, 홀로 홀연히 떠나셨다. (26쪽)

살면서 엄마의 죽음을 생각한 적이 없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라 여겼으니까. 그래서 엄마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말하는 게 어려웠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렇다. 도저히 자연스러운 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엄마가 곁에 없으니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일도 없다. 쓰고 보니 서러운 일이다. 어쩌면 저자도 그랬겠구나 싶다.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를 생각하며 엄마를 기억하는 일이 참 아팠겠구나 싶다.

우울증을 심하게 앓다 스스로 생을 놓아버린 엄마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수많은 다짐을 한다 해도 어려운 일이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저자 자신에 대한 고백이었다. 저자의 엄마가 우울증을 앓게 된 건 큰 아들, 저자의 형의 우울증에서 기인했다. 모든 걸 다 내어줄 수 있는 자식이 우울증에 걸렸다.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에 다녀오고 취직을 했다. 그러나 적응하지 못했고 다른 곳에서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결국엔 우울증을 얻었다. 아들의 병은 쉬운 게 아니었다. 우울증은 공황장애로 불러오고 조현병으로 ​이어졌다. 병원에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엄마는 단호하지 못했다. 입원한 아들의 전화를 믿었고 퇴원을 시켰다. 아니, 아들을 믿었던 것이다.

엄마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던 저자는 모든 게 후회스럽다. 병실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랬더라면 엄마는 조금은 괜찮아졌을 텐데. 죽고 싶다는 말이 진심이었음을 알았다면 더 세심하고 주의 깊게 엄마를 살폈을 텐데. 엄마에게 함부로 했던 모든 순간조차도 소중하고 나중으로 미뤘던 엄마와의 시간이 얼마나 부질없는 약속이었는지 아프다. 엄마가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었던 미역줄기를 먹을 때마다 그립고 그립다.

하늘에 천국이라는 곳이 없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그곳에서도 내 걱정으로 눈물 흘릴지 모른다. 다음 생은 없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그 생에서마저 나를 기억할지 모른다. (130쪽)

 

엄마의 사전에는 ‘괜찮지 않다’는 말이 없는 게 아닐까. 그저 괜찮다는 말로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싶은 사람, 그 모든 걸 괜찮게 만들고 싶은 사람, 엄마는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151쪽)

 

우울증으로 형과 엄마의 삶이 무너졌으니 저자는 스스로를 챙긴다. 자신은 괜찮다고 다독인다. 하지만 아니었다. 슬픔을, 아픔을, 고통을 가둬 둔 둑은 터져버렸다. 그에게도 정신과 진료가 필요했고 상담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괜찮을 리가 없다.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고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천천히 차근차근 마음을 돌봐야 했다. 늦었지만 치료를 시작했고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성취감과 행복을 주는 일이라면 괜찮았다.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유튜브였고  그리하여 저자는 조금씩 회복한다. 그리고 말한다. 우울증과 평생 살아갈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고. 함께 지내기로 했다고.

​삶을 살다 보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럴 땐 그것들을 잠시 내버려 두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을 악착같이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200쪽)

 

책을 읽다 한 번씩 멈추고 만다. 책을 읽다 한 번씩 울게 된다. 엄마, 하고 가만히 불러본다. 아마도 다른 이들도 그럴 것이다. 엄마의 안쓰러운 얼굴이 보일 것이다. 떠난 엄마가 그리울 것이다. 엄마를 곁에 둔 당신이라면 엄마와의 소중한 일상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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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0-04-27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고 보니 서러운 일이다.
너무나도 크게 공감되는 문구입니다.
작가도 글을 쓰면서 수십 번 멈췄겠구나!!
싶군요....

자목련 2020-05-02 14:04   좋아요 0 | URL
엄마에 대한 글은 언제나 먹먹함을 불러오는 것 같아요. 가정의 달이라는 5월에는 더욱.
봄인가 싶더니 더위가 몰려오는 듯해요. 책읽는나무 님, 남은 연휴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2020-04-29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걸 알아도 그렇게 못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머니가 나이를 들고 세상을 떠난 게 아니고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그것 때문에 이 작가는 더 죄책감을 느꼈을 것 같네요 어떤 건 식구도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희선

자목련 2020-05-02 14:05   좋아요 1 | URL
소중한 것은 언제나 곁에 있다고 하는데, 잃고나서야 후회하는 것이겠지요. 희선 님 말씀처럼 가족도 어찌할 수 없으니 더욱 마음이 아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