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얼지 않게끔 새소설 8
강민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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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모르는 사소한 변화를 알아봐 주는 이가 있다면 행운아다. 타인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시대가 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직장 동료와의 관계는 그저 사회적 활동을 위한 관계로 인식하는 이가 많으니까. 입사 동기의 경우는 서로 경쟁을 하면서도 위로를 하는 사이로 발전하기도 한다. 직장에서 동료 이상의 감정을 키우고 좋은 친구로 발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강민영의 장편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속 인경에게 희진은 정말 고맙고 필요한 존재다.

인경과 희진의 직장은 여행사다. 인경은 고객을 인솔하여 계획을 짜고 가이드를 하고 희진은 경리 업무를 담당한다. 처음엔 서로 잘 몰랐다. 베트남 출장을 함께 가면서 인경과 희진은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희진이 인경의 몸의 변화를 알아보고 언급하면서 둘은 급격히 친해졌다. 인경의 변화는 더위를 타지 않는 것이었다. 인경도 몰랐다. 자신이 무덥고 습한 여름에 땀 한 방울을 흘리지 않고 휴대용 선풍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희진의 말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몸이 달라졌다. 에어컨 바람이 싫어서 카디건을 챙기고 선크림도 사용하지 않았다. 베트남 출장에서 인경과 희진은 변온동물처럼 변온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희진이 그런 종류의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있다고 했다. 기사, 논문, 자료를 공유해 주었다.

내 몸이 나도 모르는 사이 변온동물처럼 변하고 있다면 어떨까? 인경은 자신을 알아봐 주고 이해해 주는 희진이 있기에 직장을 다닐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인경은 희진을 알지 못했더라면 자신도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희진에 대해 편견이 가졌을 거라 생각한다. 타인의 배려와 이해 대신 소문을 믿고 그대로 판단하는 실수. 인경과 희진을 통해 우리가 사는 사회의 실체를 마주한다. 더위에 강한 인경은 점점 두려워진다. 겨울이 오면 어떻게 될까.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자신에게도 그런 시기가 오는 건 아닐까. 인경은 운동을 시작하고 희진과 모든 걸 공유한다.

막바지 더위로 모두가 피하는 제주도 출장을 인경이 선택한 이유도 날씨 때문이었다. 인경에게는 최적의 날씨였다. 제주도로 희진이 휴가를 오면서 둘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날이 시작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걱정까지도. 인경에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는 건 최악이었다. 몸은 빠르게 반응했고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제품을 사들였다. 희진이 여름을 견디기 위해 많은 선풍기를 사용했던 것처럼. 하지만 처음 맞는 몸의 변화는 인경의 외부로 나타났다. 직장 동료와 상사는 얼굴색이 좋지 않다며 걱정했고 다양한 건강식품을 추천했다. 외출을 하지 않고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일은 견딜 수 있었지만 출퇴근은 점점 힘들어졌다.


“누구나 변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인경 씨처럼.”

나를 배웅하며 희진이 건넨 말을 떠올렸다. 정말 누구나 이렇게 순간적으로 변할 수 있는 거라면, 그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걸 버텨내고 있는 걸까. (중략)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이 온다면, 그 순간을 버티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차분하게 찾아보자던 희진의 말. 원인을 찾아 헤매기보다 앞으로를 대비하자는 희진의 다독거림은 확실히 효력이 있었다. 희진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나 같은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 믿기로 했다. (80~81쪽)

인경은 휴직을 하고 동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인경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아무도 모르게 찾아온 몸의 변화와 일상의 균열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어디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도움을 청할 수 있었을까. 가족과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도움을 받으려면 자신의 상태를 공개해야 하는데 그 파장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희진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깨어날 수 있을까. 불안을 간직한 채 잠에 빠져드는 인경. 모든 걸 희진에게만 의지할 수 없는 인경과 그런 인경을 격력하고 응원하는 희진이 나누는 말에 울컥해진다. 단 한 사람의 응원만으로도 힘을 낼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제나 자신만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고통으로 힘겹게 살아온 이들의 시간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도 겨울은 추운 게 좋겠어요. 겨울에만 살아 있는 동물들도 있을 텐데. 나는…… 겨울에 이렇게 자도 되니까요.”

“봄이 빨리 오면 좋겠네요.”

희진의 말을 들으며 눈을 깜박였다. 다시 눈을 뜨면 정말로 봄이 와 있을까. 겨울을 버틸 수 있는 이유가 저기에 잇다. 조금만 내가 더 늦게 가 변해버렸다는 걸 알았다면, 함께 베트남에 가지 않았더라면 영영 어긋나버렸을 것이 분명한, 겨울을 이겨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저기에 있다. (199쪽)

누구나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하고 선을 긋고 경계한다. 소설 속 인경처럼 변온 인간이 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익, 시선, 문화적 차이를 이유로 들면서 함께 할 수 없다고. 그러니 단순하게 이 소설은 변온이라는 소재만을 대입해 읽을 수 없다.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함께 시간을 나누고 계절을 보내는 다종다양한 삶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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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12-31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도 몸 온도가 바뀔 수 있을지... 이건 상상이지만... 어떤 만화에서 본 게 생각나기도 하네요 벌레(요괴에 가까운)한테 기운 같은 걸 빼앗기고 겨울 동안에는 잠들었다가 봄에 깨어나는... 그것하고 이건 조금 다르지만, 그게 생각나는군요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단 한사람만 있어도 괜찮아요 그 한사람을 만나기가 아주 어렵지요

자목련 님 올해 마지막 날이네요 벌써 그렇게 되다니... 올해 마지막 날 잘 보내시고 새해 첫날 잘 맞이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새해에도 좋아하는 거 하시기 바랍니다


희선

자목련 2020-12-31 10:06   좋아요 2 | URL
소설을 읽으면서 언제나 인간도 그렇게 변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환경에 적응하려고요.
한 해의 끝이네요. 다정한 이웃으로 계셔주셔서 감사해요. 건강한 연말 보내시고 즐거운 새해 맞으세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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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이야기할 때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좋은 사랑을 했다는 증거다. 아픈 장면, 속상한 장면이 떠오른다 해도 사랑은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당시에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여겼을 테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에는 오직 그에게만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을지도. 설령 시간이 지나 그 순간을 후회하고 삭제하고 싶더라도 말이다. 사랑은 그런 거니까. 다나베 세이코의 연애 소설을 생각하면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맛이 생각난다. 완벽한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는 그런 사랑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부적절한 관계,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관계, 이별을 예감하는 사랑.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아마도 그건 다나베 세이코라서 그런 것 같다.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달콤한 말들을 이어가는 대신 솔직한 말과 행동, 후회 없이 사랑하겠다는 다짐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하지만 처음에 만났던 그런 느낌은 아니다. 사랑에 대해 회의적인 나의 시선과 시대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시대 20대 후반의 여성에게 결혼은 그저 선택이고 이른 결정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에 등장하는 자매의 마음은 그래서 살짝 이해하기 어렵다. 동생의 결혼에 대한 언니의 마음. 디자인을 배우고 백화점에서 일을 하는 동생의 결혼 선언에 마음이 복잡해지는 건 당연하다. 동생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연애에 대한 동경을 하는 언니의 마음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역시 다나베 세이코라고 해야 할까. 그런 면을 나는 좋아한다. 사소하면서도 소소한 일상의 변화를 잡아내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랑에 빠져 행복하지만 언제나 이별을 준비하는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눈이 내릴 때까지」는 그런 이야기다. 제목에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눈이 그치면 떠나야 한다는 걸 아는 것처럼. 소설 속 여자가 만나는 남자는 아내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들의 관계는 영원할 수 없다. 사랑의 끝이 이별이라는 걸 알기에 매 순간 더욱 소중할지도 모른다. 지금 바로 죽는다 해도 더 바랄 게 없다는 주인공의 마음처럼. 그런 남자가 있는 줄 모르고 여자의 언니는 결혼을 위한 남자를 소개한다. 어쩌면 눈이 그치고 여자는 그 남자를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지 않을까. 다나베 세이코라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단편집에는 다양한 사랑이 등장하지만 단연 표제작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만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소설, 최근에 한지민과 남주혁이 주연한 한국판 리메이크도 상영 중이다. 소설을 읽지 않았어도,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제목은 한 번쯤 들어왔을 정도로 유명하다. 장애인 조제와 대학생 츠네오의 사랑 이야기. 뻔하지 않은 사랑이라서 더 아름답고 더 고결하게 남은 사랑이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조제에게 다가온 츠네오. 처음 츠네오에게 조제는 호기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츠네오는 점점 조제에게 빠져들었고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조제가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 하나의 바람이며 꿈이라는 것을. 그것은 현실과는 다른 차원으로 엄연히 조제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51쪽)


조제가 가고 싶었던 동물원에 가고 그곳에서 호랑이를 본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를 보고 싶었다는 조제의 말은 가장 완벽하고 황홀한 고백이다.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은 예측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다고 시작하는 것조차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때로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이며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 보았던 영화의 장면과 겹쳐진다. 한지민과 남주혁이 표현한 조제의 사랑은 어떨까. 사랑의 끝에 조제가 홀로 남더라도 행복한 조제였으면 한다. 조제는 충분히 그럴 거라 여겨진다.


물고기와 같은 츠네오와 조제의 모습에, 조제는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츠네오가 언제 조제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늘 죽음과 같은 말로 여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 그런 생각을 할 때, 조제는 행복하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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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12-29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좋아도 그 시간이 지나고 그 사이가 끝나면, 많이 다를 듯하네요 그래도 그런 시간을 좋게 여기면 좋겠습니다 잊고 싶을지 몰라도... 시간이 가면 그런 마음도 희미해지지 않을까 싶네요


희선

자목련 2020-12-29 15:29   좋아요 1 | URL
좋았던 기억만 간직하는 게 좋겠지 싶어요. 상대는 어떨지 모르지만요. ㅎ
날씨가 많이 추워지네요. 건강 챙기시고 연말 잘 보내세요^^

공쟝쟝 2020-12-31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래 전 본 이 영화 인생영화라고 좋아했는 데ㅡ 책은 찾아볼 생각도 못했어요. 한지민 남주혁이라니 ㅠ 한국판 조제도 보고 싶다.. 오늘이 하루 남았어요~~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

자목련 2020-12-31 10:08   좋아요 1 | URL
많은 분들의 인생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단편도 만나보시면 좋을 듯해요.
저도 한지민의 조제가 궁금해요!
공쟝쟝 님, 건강하고 환한 새해 맞으세요!
 
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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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글쓴이를 동일시하지 말라는 말을 기억한다.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것이 소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종종 나는 그 소설의 주인공이 소설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직접 경험한 일을 시점을 달리해서 쓰기도 하고 주변의 일을 변주해서 소설을 쓰기도 하니까. 허구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쓰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감정이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작가는 절대 그렇게 쓰지 않으려고 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하루키의 단편집 『일인칭 단수』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최근에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은 영향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 기억이라는 게 항상 정확한 건 아니니까.


내게 하루키는 뭐랄까. 한때 대단한 존재였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구분하는 능력, 그러니까 어떤 소설은 이게 진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어딘가에서는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릴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낯선 여자와의 관계, 음악, 재즈, 술, 이러한 이야기는 살짝 식상하다. 일흔의 나이에 끊임없이 소설을 발표하는 그가 대단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같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돌베개에」도 여지없이 비슷하게 전개된다. 이십 대 중반의 여인과 하룻밤을 보내면서 그녀가 쓴 단카집을 받아보고 그것을 담아두는 마음에 대해.


그래도 만약 행운이 따라준다면 말이지만, 때로는 약간의 말語이 우리 곁에 남는다. 그것들은 밤이 이슥할 때 언덕 위로 올라가서, 몸에 꼭 들어맞게 판 작은 구덩이에 숨어들어, 기척을 죽이고, 세차게 휘몰아치는 시간의 바람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동이 트고 거센 바람이 잦아들면, 살아남은 말들은 땅 위로 남몰래 얼굴을 내민다.(「돌베개에」, 24쪽)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번의 만남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만남을 거부할 수 없다. 아니, 한 번이라서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은 같은 피아노 학원에 다녔던 한 여자아이에 대한 기억을 다룬 「크림」으로 이어진다. 피아노를 잘 쳤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여자아이에게 연주회 초대장을 받은 ‘나’는 그곳을 찾아간다. 많은 이들을 초대했을 거라 여겼지만 도착한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여자아이의 장난에 놀아난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쉬려고 들른 공원에서 노인을 만났고 그가 들려주는 말들이 특별하게 남는다. 마치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아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크림」, 48~49쪽)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게 인생이라는 걸 안다.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는. 그래도 받아들이고 살아야만 하는 게 인생이라는 사실이다.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영화를 본 것과 야구 경기를 본 것에 대해 읽었기에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은 친근하게 다가온다. 야구장에서 보낸 시간, 요구르트 스왈로스를 응원했던 날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 대해서. 기발하고 기이한 상상의 서사보다는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하루키가 대단하다. 아마도 이런 게 작가의 힘일 것이다. 많은 것들을 함축한 ‘어떻게 잘 지내는가’라는 질문.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하는 데서 나온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131쪽)


8개의 단편 속 일정 부분은 하루키의 경험과 기억이 아닐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엇갈렸던 인연을 떠올리며 그들과의 시간을 복기하듯 소설을 썼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표제작 「일인칭 단수」는 대단한 성공은 아니더도 괜찮은 삶을 유지하는 나의 일상을 들려준다. 한 번씩 좋은 슈트를 입고 술집에 들어가 술을 주문하고 소설을 읽는 즐거움. 그리고 느닷없이 직면하는 상황에 당황하는 ‘나’.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상황와 만나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잠시 마음이 주춤한다. 잃어버린 기억과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나간 일들이 모두 나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는 - 아마 대개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 중요한 분기점이 몇 곳 있었다.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오른쪽을 선택하거나 왼쪽을 선택했다(한쪽을 택하는 명백한 이유가 존재한 적도 있지만,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경우가 오히려 많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항상 스스로 선택해 온 것도 아니다. 저쪽에서 나를 선택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 단수의 나로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울에 비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일인칭 단수」, 223~224쪽)


누구나 자신의 선택을 만족하거나 후회한다. 하지만 그 모든 선택의 결과로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는 걸 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떠올리기조차 싫은 과거를 딛고 살아가는 게 인생은 아닐까. 하루키는 그걸 아는 작가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집이 만족스럽다는 건 아니다. 나의 시점에서는 하루키의 소설에 대한 보편적 기대감을 생각하면 아쉽고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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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4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미세먼지 최악이지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자목련님 거실에 트리 한그루 놓고 가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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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rry ☆ Christma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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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rry ..:+ +:.. Christma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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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행복한 메리 크리스마스 ^.~


자목련 2020-12-27 17:16   좋아요 1 | URL
이런 다정하고 귀한 인사,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따뜻한 오후 보내세요^^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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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은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23쪽)


책상 하나와 침대만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의 공간에서 그거면 족하다고 여겼다. 방이자 거실이었던 지난 집을 떠올리면 지금 이 공간에 대해서는 불평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곧 마음은 바뀌었다. 내 공간에 책장은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책장을 들이고 나니 흡족했다. 진짜 내 방, 내 공간이 생겼다고 느꼈다. 책상과 책장, 정리는 엉망이지만 방 안에 들어오면 편안해진다. 집을 떠올리면 춥고 어둡던 이미지 대신 따뜻하고 환한 빛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하재영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니까 집의 이야기,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공간,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서 말한다. 공간의 주인이라고 하면 맞을까. 어린 시절 형제가 많았던 내가 가장 부러웠던 건 내 방이 있는 친구와 언니의 방이었다. 그때는 방의 주인이 되면 그 공간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떤 공간이든 관리와 책임이 따른다. 그건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대구시 중구 북성로의 옛집을 소개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3대가 함께 살아온 시절을 시작으로 집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집의 사회적 의미와 공간적 의미에 대해서 말이다. 집이 바뀌면서 달라지는 삶의 형태, 이동하는 삶의 궤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부족함이 없이 보냈던 유년 시절,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인해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대구를 떠나 새로운 삶을 원했던 서울, 혼자만의 공간을 위해 꾸미고 수리하던 시간을 지나 동반자를 만나 함께 공간을 채우는 이야기까지.


집이라는 소재를 통해 지나온 공간을 채운 삶을 말한다. 나와는 다른 과정을 견디고 겪어온 삶이지만 이상하게 모두 그 집을 통과한 기분이 든다. 그건 아마도 다른 공간에서 내가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늦은 시각 퇴근할 때마다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지나던 기억, 하루가 다르게 높게 오르는 아파트 공사를 보면서 허탈했던 기억,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을 원했던 기억들이 겹쳐졌다. 내 몸 하나 누울 곳이 없다는 생각은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가,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었던 시간들. 나뿐이 아닐 것이다.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하는 물음이 나에게 중요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내 자리’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사회도 물리적으로는 하나이 거대한 장소이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도 자리의 문제였다. 이것은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넓게는 이 세상에서, 좁게는 이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130쪽)


공간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질문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가족 구성원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각자의 방이 아닌 거실, 부엌, 화장실, 베란다에 대해서도 자신의 공간이라고 여길까. 저자의 경험처럼 나머지 공간은 집안일을 하는 엄마의 공간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 엄마에게는 정작 아무 공간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공간의 이동은 곧 삶의 이동이다. 그래서 원하는 공간에서는 삶의 만족도가 높고 반대의 경우에는 그곳을 빨리 벗어나려 애쓴다. 공간을 누구와 보냈느냐에 따라서도 마찬가지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소중한 이와의 기억으로 채워진 공간이라면 특별한 장소가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공간을 점유하고 삶을 이어갈 때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재영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속 공간에 대한 사유는 감동을 안겨준다.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다. 삶의 배경은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략) 나는 한 존재를, 한 시절을 잃고 이 집에 왔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슬픔과 상실을 안고 시작되었지만 그조차 이 공간에서 만들어갈 나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여기가 내 삶의 새로운 배경이 될 것이다. (181쪽)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울림을 주는 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 절망, 좌절, 슬픔, 이별, 애도를 집이라는 공간이 지켜보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생명체로 존재하는 걸 말이다. 때로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감추고 싶은 표정을 바라보는 존재로 있었기에.  그러니 이 책을 읽은 이라면 자신의 공간(그곳이 어떤 형태이든, 어떤 크기이든)을 돌아보게 된다. 그건 삶을 복기하는 일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은 괜찮은지 자신에게 안부를 묻고 답하는 일이다.  나와 이어진 공간과 소중한 이들에게도.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과거가 되었기에 이야기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시절. 나는 집에 대해 쓰려 했으나 시절에 대해 썼다. 내가 뭔가를 알게 되는 때는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이다. 현재의 집이 가진 의미를 깨닫는 것도 이곳을 영원히 상실한 다음일 것이다. 아직 이 집은 한 시절이 되지 않았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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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0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이책 살까 말까 망설였는데
장바구니 속으로 ~@@
주말 따스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0^

자목련 2021-01-11 09:57   좋아요 1 | URL
앗, 감사합니다.
새로운 한 주 활기차고 따뜻하게 시작하세요^^*

서니데이 2021-01-09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21-01-11 09:5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해요. 포근한 월요일 보내세요^^
 
아무튼, 여름 -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아무튼 시리즈 30
김신회 지음 / 제철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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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여름을 준비하는 계절부터가 여름이다. 짧기만 한 계절을 길고 풍성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늦봄부터를 여름의 도입으로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여름은 덩굴장미가 피는 순간 시작된다. 5월이 되면, 올해도 전국의 덩굴장미들이 건강히 피어 주기를 바라는 일. 그게 바로 내 여름의 시작이다. (129쪽, 덩굴장미의 일부)


여름엔 빨간 원피스, 자두, 캔맥주, 바다가 전부다. 그냥 생각나는 것들이다. 빨간 원피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와 함께 했던 기억도 흐릿하다. 자두는 여전히 사랑하는 과일. 캔맥주와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맥락으로 끝도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원피스엔 샌들, 바다는 수영, 캔맥주엔 치킨. 냉면도 빠트릴 수 없다. 김신회의 『아무튼, 여름』은 제목 그대로 아무튼, 여름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다. 휴가, 여행으로 압축할 수 있는 계절, 여름이다.


어디론가 떠나야만 할 것 같은 날들,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는 달콤함,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더라도 즐거운 상상이 가능한 날들이 여름의 특권일 것이다. 비록 방구석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더라도. 여름은 왠지 신나는 계절이다. 폭염, 장마, 무더위 이런 건 잠시 접어두면 말이다. 명랑하고 유쾌한 책이다. 솔직한 마음, 있는 그대로 자신의 여름을 소환한다. 그 결과가 아름다운 추억일지, 고개를 절로 흔드는 후회일지 그건 나중으로 미뤄두고.


초당 옥수수의 맛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 맛을 상상할 수가 없다. 옥수수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싶은 거다. 아마도 내가 자두를 생각하는 것과 같겠지 싶다. 자두란 말을 들으면 입에 침이 고이고 한자리에서 열 개 이상 먹을 수 있으니까. 그래도 어린 시절 최고의 간식이었던 옥수수의 맛이 그립다. 좋아한다는 건 그런 거니까. 입꼬리가 올라가고 단숨에 기분이 맑아지는 일.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말랑 입체감을 띤다. (32~33쪽, 초당 옥수수의 일부)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다. 긴 겨울을 잘 버티고 견딘 작은 씨앗들이 싹을 틔우는 봄이 지나고 여름엔 열심히 성장한다. 강렬한 햇빛과 충분한 물이 필요하다. 여름에 쑥쑥 자라는 식물을 확인하는 일은 성스럽다. 그래서 나는 이런 문장이 참 좋았다. 나의 반려 식물이 생각나서 그랬다. 어느 해 여름 나는 그 아이들을 죽일 뻔했다. 오랜 시간 집을 비워두고 돌아오니 잎은 하나도 없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충분히 물을 주고 겨울 살아난 식물들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고맙다.


그렇게 제 자리에서 묵묵히 위로 향하는 식물을 볼 때마다 내 안에도 비슷한 새싹이 자라는 것 같다. 그래, 각자가 가진 속도는 다 다르지. 아끼는 누군가의 성장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90쪽, 식물의 일부)


하루하루 조금이라고 앞을 향해 가는 발걸음, 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나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는 깨달음, 춥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따스한 햇살을 기다리는 마음, 그런 것들이 사람을 하루 더 살게 한다는 걸 우리 집 식물들이 내게 가르쳐주고 있다. (92쪽, 식물의 일부)


여름에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맥주다. 만 원에 네 캔인 수입 맥주,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어느 개그맨이 설명한 것처럼 귀가 후 샤워를 끝내고 마시는 맥주 한 캔의 맛은 여름 최고의 낙이다. 냉동실에 살짝 넣어둔 컵에 가득 맥주를 채우고 한 모금 마시는 순간의 황홀함이란. 하긴 맥주는 언제나 옳다.


겨울의 대척 점인 여름, 그 계절을 읽는 동안 겨울을 잠깐 잊는다.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 살짝 손이 시리고 잔뜩 옷을 껴입었지만 나는 지금 여름을 살고 있는 듯하다. 선명했던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니 여름과 겨울만 남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겨울에 만난 여름은 명랑하면서도 애틋하고 안쓰럽다. 지난여름을 우리가 어떻게 보냈는지 알기에. 더위에도 마스크를 챙겨야 하는 날들, 시간이 지나 이 여름은 더욱 애틋하게 남을 것이다.


계절과 계절이 교차하는 순간, 우리의 날들은 새롭게 이어진다. 그 계절이 무슨 계절이든 즐겁게 맞이하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좋아하는 것들의 생각하고 계절을 즐기는 일상을 기다리던 시간이 그립다. 우리가 마주한 다음 여름은 어떤 풍경으로 다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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