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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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이야기할 때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좋은 사랑을 했다는 증거다. 아픈 장면, 속상한 장면이 떠오른다 해도 사랑은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당시에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여겼을 테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에는 오직 그에게만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을지도. 설령 시간이 지나 그 순간을 후회하고 삭제하고 싶더라도 말이다. 사랑은 그런 거니까. 다나베 세이코의 연애 소설을 생각하면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맛이 생각난다. 완벽한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는 그런 사랑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부적절한 관계,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관계, 이별을 예감하는 사랑.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아마도 그건 다나베 세이코라서 그런 것 같다.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달콤한 말들을 이어가는 대신 솔직한 말과 행동, 후회 없이 사랑하겠다는 다짐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하지만 처음에 만났던 그런 느낌은 아니다. 사랑에 대해 회의적인 나의 시선과 시대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시대 20대 후반의 여성에게 결혼은 그저 선택이고 이른 결정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에 등장하는 자매의 마음은 그래서 살짝 이해하기 어렵다. 동생의 결혼에 대한 언니의 마음. 디자인을 배우고 백화점에서 일을 하는 동생의 결혼 선언에 마음이 복잡해지는 건 당연하다. 동생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연애에 대한 동경을 하는 언니의 마음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역시 다나베 세이코라고 해야 할까. 그런 면을 나는 좋아한다. 사소하면서도 소소한 일상의 변화를 잡아내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랑에 빠져 행복하지만 언제나 이별을 준비하는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눈이 내릴 때까지」는 그런 이야기다. 제목에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눈이 그치면 떠나야 한다는 걸 아는 것처럼. 소설 속 여자가 만나는 남자는 아내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들의 관계는 영원할 수 없다. 사랑의 끝이 이별이라는 걸 알기에 매 순간 더욱 소중할지도 모른다. 지금 바로 죽는다 해도 더 바랄 게 없다는 주인공의 마음처럼. 그런 남자가 있는 줄 모르고 여자의 언니는 결혼을 위한 남자를 소개한다. 어쩌면 눈이 그치고 여자는 그 남자를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지 않을까. 다나베 세이코라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단편집에는 다양한 사랑이 등장하지만 단연 표제작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만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소설, 최근에 한지민과 남주혁이 주연한 한국판 리메이크도 상영 중이다. 소설을 읽지 않았어도,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제목은 한 번쯤 들어왔을 정도로 유명하다. 장애인 조제와 대학생 츠네오의 사랑 이야기. 뻔하지 않은 사랑이라서 더 아름답고 더 고결하게 남은 사랑이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조제에게 다가온 츠네오. 처음 츠네오에게 조제는 호기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츠네오는 점점 조제에게 빠져들었고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조제가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 하나의 바람이며 꿈이라는 것을. 그것은 현실과는 다른 차원으로 엄연히 조제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51쪽)


조제가 가고 싶었던 동물원에 가고 그곳에서 호랑이를 본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를 보고 싶었다는 조제의 말은 가장 완벽하고 황홀한 고백이다.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은 예측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다고 시작하는 것조차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때로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이며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 보았던 영화의 장면과 겹쳐진다. 한지민과 남주혁이 표현한 조제의 사랑은 어떨까. 사랑의 끝에 조제가 홀로 남더라도 행복한 조제였으면 한다. 조제는 충분히 그럴 거라 여겨진다.


물고기와 같은 츠네오와 조제의 모습에, 조제는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츠네오가 언제 조제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늘 죽음과 같은 말로 여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 그런 생각을 할 때, 조제는 행복하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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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12-29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좋아도 그 시간이 지나고 그 사이가 끝나면, 많이 다를 듯하네요 그래도 그런 시간을 좋게 여기면 좋겠습니다 잊고 싶을지 몰라도... 시간이 가면 그런 마음도 희미해지지 않을까 싶네요


희선

자목련 2020-12-29 15:29   좋아요 1 | URL
좋았던 기억만 간직하는 게 좋겠지 싶어요. 상대는 어떨지 모르지만요. ㅎ
날씨가 많이 추워지네요. 건강 챙기시고 연말 잘 보내세요^^

- 2020-12-31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래 전 본 이 영화 인생영화라고 좋아했는 데ㅡ 책은 찾아볼 생각도 못했어요. 한지민 남주혁이라니 ㅠ 한국판 조제도 보고 싶다.. 오늘이 하루 남았어요~~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

자목련 2020-12-31 10:08   좋아요 1 | URL
많은 분들의 인생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단편도 만나보시면 좋을 듯해요.
저도 한지민의 조제가 궁금해요!
공쟝쟝 님, 건강하고 환한 새해 맞으세요!